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43화 (143/244)

[골렘마스터]  # 대현자 헤르테미스[5]

카강!

여성을 노리기도 전에 다른 존재가 그 사이를 막아섰다. 고블

린 대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덩치를 가진 자였다. 거의 세 배

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의 검이 고블린 대장의 검과 부딪히자, 곧 고블린쪽의 검

이 부러졌다. 상대의 얼굴을 잠시 살피니, 인간이 아닌 것 같

았다. 고블린 대장은 그가 엄청난 마물이라고 생각하며 싸울

의욕을 잃었다. 상급 마물은 힘없는 고블린이 어떻게 해볼 상

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부부부부루루루룩!(빨리 후퇴하라! 우리들의 힘으로 상대

할 수 없는 마의 존재들이다!)"

대장은 아직도 용감히 싸우고 있는 동족들에게 일일이 소리

치며 자신도 뒤늦게 마을 쪽으로 도망을 쳤다. 다행히 침입자

들이 급히 역공을 펼치지 않아, 울타리를 사수할 태세를 갖출

수는 있었다.

"고블고블고를를.(대장. 헤르님이 오셨다.)"

침입자의 놀라운 전투 능력에 전의를 상실한 고블린 대장에

게, 희망을 주는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부하의 보고

는 사실이었다. 고블린들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 하지만 신장

은 비슷한 인간의 어린 소년이 고블린 대장의 곁으로 다가왔

다. 소년은 그를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끄덕인 뒤, 울타리 바

깥쪽의 침입자들을 살폈다.

아투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고블린들이라고는 하지

만, 다짜고짜 공격을 퍼붓다니. 처음에 돌이 날아오는 건 어떻

게 참으려 했지만, 나중에 밀려나오는 고블린 전사들을 본 아

투의 눈에선 불똥이 튀었다. 결국은 가이트리아로 다 쓸어버

리긴 했지만, 겁을 먹고 도망치는 고블린들을 보며 솔직히 아

투는 금세 그런 분노가 사라지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고블

린들도 다른 타종족의 편견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는 안타까

운 존재에 불과하니 말이다.

"흐음. 그래도 그렇지. 여긴 마물들의 힘이 강성한 곳이잖아.

나 같은 인간들은 숨쉬기도 힘든데, 꼭 인간인 걸 알면서도 공

격을 해야 했나?"

아투는 가이트리아를 뒤로 조금 물러서게 하며 투덜거렸다.

왜 헤르테미스님이 이런 고블린 촌락에 숨어살고 계실까. 그

는 국왕 폐하인 프리스탄이 말해준 사실을 떠올리고는 혹시

실피스 스승님과 같은 괴상한 노인이 아닐까 걱정했다.

'에이. 설마 스승님 같은 사람이 또 있겠어?'

스스로 자신을 달래보았지만, 전혀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고블린들이 우리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바주크는 거대한 대검을 바닥에 박아 넣으며 손가락으로 촌

락을 가로막고 있는 울타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잠시 고블린

들의 무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아투. 저, 저기… 혹시 사람 아니야? 아무리 봐도 고블

린 같지는 않은데?"

그때 화이엘이 옷매무새를 가다듬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 사

람이라는 말에 퍼뜩 놀란 아투도 그녀가 향한 곳으로 시선을

옮겨 사실을 확인했다.

"저, 정말이야! 사람이 확실해! 키가 작은 걸로 봐서 남자 꼬

마 아이인 것 같은데…. 어쨌든 왜 저런 꼬마가 고블린의 마을

에 있는 거지?"

"호호호호호. 그 대현자라고 하는 헤르테미스의 손자일 수도

있고, 아들일 수도 있고. 뭐 가능성은 많아."

화이엘은 장난스럽게 말을 내뱉으며 혼자 웃어댔다.

"설마… 이런 곳에서 숨어사는 전설의 인물이 그런 손자나 아

들을 숨겨놓았겠어? 만약 있다면 그 분의 전설처럼 알려져 있

을 거 아니야?"

아투는 한심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울

타리 밖으로 그 어린 꼬마아이가 겁도 없이 걸어나왔다. 그 뒤

로는 단 한 마리의 고블린 밖에 따르지 않았다. 일단 덩치 큰

고블린 한 마리가 뒤를 따르는 것부터 심상치 않게 여긴 아투

는, 꼬마가 중요한 인물임을 직감하고는 가이트리아와 일행

을 뒤로하고 홀로 앞으로 나섰다.

"형은 어디서 왔어요? 여긴 고블린의 숲. 마물들의 기운이 강

하고, 인간들이나 다른 타종족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에요. 특

별한 사정이 없다면 그냥 조용히 물러가면 안될까요?"

꼬마 아이는 당돌하게 아투의 눈을 그대로 직시하며 말했다.

너무 똑똑하고 능숙하게 말을 하는 아이를 보며 아투는 눈빛

을 빛내며 되물었다.

"그러는 너는 누구니? 왜 이런 곳에서 고블린들과 살고 있

지? 너도 인간인 것 같은데, 넌 별 문제 없이 이곳에서도 살

수 있는 모양이네?"

아투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아이는 잠깐 당혹스러운 듯 고

개를 살짝 떨구었다. 역시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인 모양인지

쉽게 대답을 하지 못 했다. 뒤에 서있는 고블린이 거친 숨을

씩씩 내쉬었다.

"저에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요. 형에겐 가르쳐줄 수 없지

만. 어쨌든 왜 이곳에 온 거죠? 뭘 원하는 거죠?"

"걱정하지마. 여기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고블린들을 해칠 생

각도 없고, 또 너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도 없으니까 말

이야."

"그럼 이곳에 왜 온 거죠?"

아이는 일단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야겠다는 기세였다. 뒤

쪽의 고블린이 울타리 너머의 다른 일족에게 신호를 보내자,

언제라도 꼬마 아이를 보호하러 나갈 수 있게 자리를 잡는 것

이 보였다. 아투는 옅은 웃음으로 아이를 안심시키며 차분하

게 답했다.

"하하하. 난 특별한 용건으로 이곳에 살고 계신다는 대현자

헤르테미스님을 만나 뵈러 왔어. 혹시 여기에 그 분이 살고 계

시니?"

"그 할아버지는 왜 만나려 해요?"

"큰 일이 달린 문제야. 꼬마 아이 앞에선 말할 수 없는 일인

데, 이 형을 믿고, 안내 좀 해주면 안되겠니?"

아투는 꼬마에게 거의 사정 조로 말했다. 꼬마는 이내 뒤쪽

의 고블린과 뭔가 눈빛을 교환하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어울

리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하지만 소란을 피운다면 용서하지 않겠어요. 그 때

는 정말 각오해야 될 거예요."

"고맙다. 이번 은혜는 잊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투는 겨우 꼬마 아이 한 명에게 이렇게 쩔쩔매고 있다는 것

이 우스웠지만, 그런 기색은 내비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뒤쪽

에 서있는 일행을 손으로 불렀다. 어느새 고블린들과 꼬마 아

이가 길을 비켜주었고, 촌락으로 들어가는 문도 열어줬다. 가

이트리아와 화이엘, 그리고 바주크. 아투는 일행들과 함께, 느

린 걸음으로 안내를 해주는 꼬마 아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쿠구구구구구궁!

그때였다. 갑자기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긴장을 풀고 안

도하던 고블린들 중 비교적 체력이 약한 자들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장 고블린은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으로 옆쪽 수하의 검을 하나 빼앗아들고는 진동의 근원지

로 판단되는 곳으로 눈길을 향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던

아투 일행과 꼬마 아이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멈추어 서서는

뒤를 돌아봤다.

쿠과과과과광!

"고블고브르르를!(거대 괴물 지렁이다!)"

고블린 대장이 바닥을 뚫고 튀어나온 거대한 괴물을 바라보

며 소리쳤다.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꼬마 아이밖에 없었

지만, 특별히 알아듣지 못한 아투 일행도 괴물의 정체를 단번

에 파악했다. 요즘 들어 하급 성물의 파괴로 인해 출몰이 빈번

해진 마물 중의 하나. 지하 괴물. 자이언트 웜.

"자이언트 웜. 단단한 껍질을 가진, 육식성 괴물. 땅속을 자유

자재로 움직이며 적의 발 밑으로 접근한다. 내부로 감춰진 이

빨로 적을 씹어먹는 것이 특기."

바주크는 무표정하게 마물의 특성을 중얼거리며 대검을 다

시 손에 들었다. 아투도 가이트리아를 앞으로 내세우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형은 걱정하지 말고 있어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놀랍게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꼬마아이가 나섰다. 게다가 더

욱 황당한 것은 고블린들이 다 믿는다는 표정으로 길을 내줬

다는 것이다. 아투와 화이엘도 일단 말리지는 않고, 의외라는

듯 꼬마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앞으로 나선 꼬마 아이가 양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그러

자 갑자기 아이의 이마에서 밝은 빛이 솟구치며 무언가 반짝

였고, 동시에 손바닥을 중심으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마나가 집중되어갔다. 9서클의 마도사인 실피스가 가진 마력

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굉장한 양이었다. 아투

와 화이엘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딱 벌렸다.

『8서클 마법. 블리자드 스톰이다.』

가이트리아도 마법의 이름을 감탄하듯 내뱉었다. 확실히 드

래곤 하트를 지며 마법 감지에 능한 탓일까. 아직 꼬마가 주문

도 외우지 않았는데, 골렘은 그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백발 마녀의 숨결. 차가운 증오의 힘

을 지닌 눈의 마수의 포효……. "

과연 블라지드 스톰의 주문이었다. 꼬마 아이는 능숙하게 마

법 캐스팅을 하면서 자이언트 웜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눈

에 담았다.

"나, 지금 가장 순결한 그대들의 힘을 빌려, 내 앞을 막아서

는 자에게 눈과 얼음의 심판을 내리려 한다. 블리자드 스톰!"

꼬마는 이내 재빠르게 주문을 완성하고는 양손을 앞쪽으로

힘껏 내밀었다. 그러자 마나가 폭풍 치듯 마구 뻗어나가 녀석

의 주변에 엄청난 마나장을 형성했다. 마나장은 곧 모든 것을

묻어버릴 듯한 엄청난 눈과 얼음이 되어 휘날렸다. 기세 좋게

꿈틀거리며 다가오던 자이언트 웜의 동작이 둔해져갔다.

"저, 저럴 수가!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은 꼬마 아이

가 8서클 상급 빙계 마법을 사용하다니. 그것도 아주 능숙한

솜씨로…."

아투는 그만 주저앉고 싶어졌다.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화이

엘과 가이트리아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이를 두렵게 여

겨 바라보았다.

"굉장하다. 내가 나서려했는데 별 문제가 없겠다."

바주크는 마법에 대한 개념이 없어, 꼬마가 마법을 사용했음

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무

표정하게 아이의 실력을 칭찬하며,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빠지지지직.

결국 블리자드 스톰의 영향권 안에 있던 자이언트 웜은 새파

란 얼음 덩어리가 되더니, 이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

이 나버렸다. 상당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마물의 최후라 하기

엔 조금 허무했다.

"형, 왜 그래요? 마물은 사라졌으니, 이제 안내해드리죠. 따라

와요."

아이는 방금 8서클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

따윈 없었다. 고블린들도 역시나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

는지, 상황이 정리되자 병영으로, 망루로 돌아갔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

아투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곳 고블린의

숲에 들어선 것 자체가 꿈인 것처럼 생각됐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은 아투는, 더 이상 놀랄 것

도 없겠지 하는 심정으로 일행을 이끌고 꼬마 아이의 뒤를 따

라갔다.

---

-0- 무슨 꼬마가 저리도 쌜까요...

순간 19년 인생이 허무해졌다눈...;;; 하하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