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대현자 헤르테미스[3]
"바주크. 물론 너와 나는 비를 맞아도 견딜 수는 있지만, 여
기 화이엘님은 여성이시잖아."
『여성도 여성 나름이지. 엔젤이라는 존재가 겨우 비 맞고 힘
들어하진 않겠지.』
아투는 은근히 화이엘을 높은 존재로 삼으며, 말을 꺼냈다.
가이트리아도 뭐가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인지 투덜거렸다. 아
투의 옆에 바짝 붙어서 걸음을 옮기던 화이엘은 다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그동안 참고 있던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투. 할 말이 있어."
그녀가 걸음을 멈추어 섰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주변을 둘
러보던 아투는 그녀를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눈길을 주었다.
"그럼 난 비를 피할 만한 곳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바주크는 덩치와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물론 가이트리아는 그림자처럼 아투
의 옆을 지켜섰다. 화이엘은 꽤나 눈치가 빠른 키메라의 등짝
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아투와 눈을 맞추며 참
았던 얘기를 꺼냈다.
"아투. 금단의 지역에서 나에게 했던 말 기억나지?"
"약속이라뇨? 으음. 그러니까…."
그때는 워낙에 당황했기 때문에,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렇다고 대놓고 기억이 안 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투
는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는 생각에, 초조하게 손가락을 만지
작거렸다.
"설마… 모르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화이엘이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투를 쏘아보며 그에
게 다가갔다. 괜한 기세에 밀려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던 아투
는 이내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변명을 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때는 워낙에 정신이 없어서…. 기억은 나
지 않지만, 어떤 약속이든 꼭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도
록 하세요."
"호호호호. 지금 그 말 정말이지?"
"네, 정말입니다."
아투는 한쪽 손으로 가슴을 짚으며 맹세했다. 그러자 안심한
듯, 얼굴 표정을 부드럽게 푼 화이엘은 아투에게 조금 더 다가
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약속이 뭐냐하면 말이야, 바로 내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하는 거였잖아."
"아! 이제 생각납니다."
아투는 그제야 이마를 탁 치며 그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
다. 바로 금단의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녀의 권한을 잠시
빌리려 할 때, 그녀가 요구했던 것. 물론 그 때 화이엘의 도움
으로 에메랄의 승낙을 얻어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던 아투였
다. 지금 와서 변명을 할 필요도 없었고, 또 소원 한 가지쯤은
들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어떤 소원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화이엘이 답했다.
"호호호호호. 좋아. 지금 그 소원을 말할게. 난 아투가 나를
전처럼 편하게 대해줬으면 해. 그게 내가 바라는 소원이야. 어
때? 간단하지?"
"그, 그건……."
솔직히 곤란했다. 천상계 엔젤은 인간으로서는 감히 우러러
볼 수도 없는 위대한 존재. 지상계 최고의 종족인 드래곤과는
또 다른 이미지를 지닌 존재였다. 아무리 성격이 좋고, 다른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는 아투라고 하지만, 화이엘을 전처럼
대하기에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다.
"흥! 제국의 황제인 미스티는 그렇게 아무런 부담 없이 부르
면서 왜 나는 안 된다는 거야?"
화이엘이 뾰로통하게 표정을 바꾸어 몰아붙였다. 물론 아투
가 미스티가 황제가 되고 난 후에도 편하게 대하는 것은 사실
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인사가 없을 때, 즉. 아투와 미스티
가 아주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 때만 그렇
지, 전혀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분별 없이 행동한 적
이 없었다. 아투는 그 점을 이용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화이엘님. 저는 미스티를 대할 때도 때와 장소를 가
립니다. 물론 저와 미스티의 사이를 잘 아는 사람 앞에서는 편
하게 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황제 폐하와 그녀
를 수호하는 가디언 나이트의 입장으로 행동합니다."
"호호호호호. 그럼 나도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사람 앞에
선 전처럼 대해줄 수 있다는 소리가 되는 거네?"
"으. 그러니까 그게…. 윽."
당했다. 아투는 순간 그녀의 말솜씨에 그만 넘어가 버렸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도 없는 일. 재빠
르게 상황을 판단한 그는 표정을 획 바꿔서는 화이엘에게 다
가갔다.
"하하하. 화이엘. 내가 졌다 졌어. 이제부터 다시 전처럼 편하
게 지내보자. 하지만 신경 쓰이는 사람들 앞에선 형식적으로
대할 테니까, 알아둬."
"호호호호. 뭐 그 정도라면 내가 너그럽게 참아줄 수 있으니
안심해."
이제야 호칭 문제가 해결되어 화이엘의 얼굴이 꽃처럼 화사
하게 피어났다. 어느새 그녀의 손이 아투의 팔 사이를 파고들
었고, 그녀의 가슴이 아투의 한쪽 팔에 닿아 있었다. 둘이 꼭
붙어 서있으니 마치 사랑스런 한 쌍의 연인들처럼 보였다.
후두두둑.
결국 찌푸렸던 하늘에서 그 두 사람의 모습을 시기하는 듯,
굵은 빗방울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으르렁대던 하늘은 이제
밝은 빛까지 포함하였고, 먹구름도 더욱 짙어졌다. 순식간에,
초원 한복판에 서있던 아투와 화이엘의 옷이 비에 젖었다.
"으앗! 큰 일이네! 이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고생인데."
아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화이엘은 비를 맞아도 마냥 기분만 좋은 듯, 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투! 이쪽이다!"
저쪽에서 바주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비를 피할 곳
을 찾은 모양인지 목소리가 밝았다. 아투는 일단 화이엘과 함
께 그곳으로 달려갔다.
바주크가 발견한 곳은 놀랍게도 거대한 바위였다. 거의 시골
의 작은 집 만한 크기의 바위였는데, 다행히도 안쪽으로 조금
파여진 부분이 있어, 세 사람이 들어가도 공간이 충분했다. 하
지만 가이트리아의 큰 덩치는 들어올 수 없어, 바깥에서 계속
비를 맞아야만 했다.
"휴. 그래도 다행이네. 이런 바위라도 초원 한복판에 놓여져
있으니 말이야."
아투는 빗물에 젖은 머리와 옷을 털어 내며 한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화이엘도 옷자락을 잡고 두 손으로 비틀며 빗물을 짜
냈다. 하지만 스며든 빗물 때문에 타이트하게 달라붙은 옷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노출이 심한 옷에다가 몸의
굴곡까지 지나칠 정도로 드러나자, 그녀를 슬쩍 바라본 아투
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아투. 어디 아픈가? 얼굴이 빨갛다."
바주크가 순진하게 물어왔다. 아투는 화이엘이 얼굴을 보지
못하게 고개를 떨구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픈 건 아니니까 걱정 마. 그냥 조금 더워서 그래. 흐음. 그
나저나 이 비는 언제 그치려나? 하늘을 보니까 꽤 오랫동안 내
릴 것 같은데…."
"호호호호. 내 생각엔 두 세 시간 동안은 그치지 않을 것 같
아. 물론 엔젤인 내 얘기니까 어느 정도 믿어도 될 거야."
화이엘은 잔뜩 빗물을 쏟아내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풀로 된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그녀가 편히 앉는 모습
을 보자, 그제야 다리의 피로를 느낀 아투도 바닥에 철푸덕 주
저앉았다. 대현자 헤르테미스를 만나러 메션 왕국의 수도에
서 떠나온 지 이틀째. 그나마 화이엘의 텔레포트로 남쪽 지방
에 빨리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 아투 일행은 말을 타고 달려
도 거의 나흘은 넘게 걸리는 거리를 이틀만에 이동해온 셈이
었다.
꼬르르르륵.
갑자기 누군가에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아투와 화
이엘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더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지?"
바주크는 배가 고프지도 않은 모양인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망토와 후드는 방수처리라도 된
모양인지, 물방울이 스며들지 않고 겉에 고여있었다.
"배가 고파서 그래. 으음. 가방에 챙겨온… 아, 그래! 아직 크
런티 아저씨가 싸준 그 도시락이 남아 있었지!"
아투는 기쁜 마음으로 매고 왔던 가방을 찾았다. 하지만 어깨
에 둘러매고 있었던 가방은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바닥에 내
려놓은 것은 아닌가 하여 바위 속 공간을 돌아보았지만, 똑같
았다. 가방 속에 든 물건도 물건이지만, 일단 도시락을 잃어버
렸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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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_ㅜ 저도 도시락 먹고 자파여~~ ㅜ_ㅜ
크런티 아저씨 저도 하나 싸주시징...
참고로 이 글은 새벽에 올린 글입니다.
토요일에 올릴 글은 아직 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