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37화 (137/244)

[골렘마스터]  # 또 다른 시작[2]

"후우. 이거 너무 싱겁네. 숲의 엘프들이랑 싸울 때보다도 더

재미가 없어."

다크 엘프는 땀으로 뭉쳐진 머리칼을 털어 내며 태연하게 말

했다. 천으로 만들어진 가슴받이와 핫팬츠가 땀에 젖어 몸의

굴곡을 완연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트롤들은 재생되는 능력만 믿고 설치는 놈들이다. 상대할 가

치가 없지."

마지막으로 엄청난 힘이 실린 주먹으로 트롤의 머리통을 박

살내던 묘인족이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다크 엘프의 말 뒤에

덧붙였다. 리자드 맨도 곡도를 멋지게 사용해 트롤의 양쪽 어

깨를 찢어낸 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물러섰다. 그들을 둘러쌌

던 수많은 트롤들의 대부분은 이미 전투 불능 상태였다.

짝짝짝짝.

잠자코 그들의 싸움을 방관하던 다이티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박수를 치며 걸어나왔다. 얼굴에는 상당히 반가운 기색

이 떠올랐다.

"정말 대단하군요. 당신들을 선택했다는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약속만 지킨다면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다."

리자드 맨은 곡도를 허리 검집에 다시 집어넣으며 대꾸했다.

"후후후. 뭐 우리 다크 엘프들에게도 당신이 했던 그 약속만

지킨다면 큰 이익이 될 거야. 앞으로 잘 부탁해."

과장되게 웃으며 허리를 흔드는 다크 엘프의 풍성한 가슴이

가슴받이 사이로 세차게 흔들렸다. 묘인족은 조신하지 못한

그녀의 옷차림과 행동을 보며 어울리지 않게 이마를 찌푸렸

다.

"정말이지, 조신하지 못하군. 숲의 엘프들과는 정 반대야."

"수, 숲의 엘프들과 감히 다크 엘프를 비교하려드는 거야?"

다크 엘프가 갑자기 크게 화가 나서는 단검을 뽑아들며 묘인

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말실수를 했음을 인정한 그는 양손

으로 미안하다는 인사를 대신하며 딴 청을 피웠다.

그때 다이티가 앞으로 몇 발자국 더 걸어나가며 한쪽으로 시

선을 모았다.

"자, 이제야 우리들이 기다리던 그 존재가 오는 것 같군요."

『감히 어떤 녀석이냐! 우리 트롤의 땅에 들어오다니, 간이

크게 부어도 한참이나 부었구나!』

놀랍게도 다이티가 눈으로 가리킨 존재는 마법으로 엄청난

위압감의 목소리를 흘렸다. 미리 얘기를 들어 어느 정도 그 존

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다이티를 제외한 일행들

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트롤은 원래 지성을 지니지 않

은 종족이기 때문이다.

빠지지지직. 콰광.

갑자기 어둠에 감춰졌던 한쪽 공간의 커다란 나무들이 힘없

이 쓰러졌다. 동시에 거대한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와, 이곳에

서 벌어진 싸움의 여파로 인해 박살이 나버린 천장 나뭇가지

들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달빛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정말 트롤이 맞는 거야?"

녹색의 거칠고 털이 곱슬한 피부를 상상하던 다크 엘프는 의

외의 상대 모습에 입을 딱 벌렸다. 온 몸이 얼음처럼 새하얗

게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몸집도 보통 트롤들 보다 훨

씬 더 거대했고, 못 생긴 얼굴의 이마에는 알 수 없는 고대의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파랗게 빛났다. 목소리를 울리게 하

는 마법도 지금 그곳에서 발산되는 마나에 의해 컨트롤되는

듯 했다.

『어리석은 모험가들이여. 당장 이곳을 떠나라. 이곳은 예전

부터 내가 다스리는 트롤의 지역. 너희들이 들어와 이렇게 행

패를 부릴 곳이 못 된다.』

일단 얼음처럼 차갑게 보이는 트롤은 섣불리 공격해 들어오

지 않고, 다이티 일행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

트롤도 긴장하고 있었지만, 다이티를 제외한 일행들도 긴장되

긴 마찬가지였다. 색깔이 다른 트롤이었기에 뭔가 분위기부터

가 틀리지를 않는가!

"빙설의 야수여. 저흰 트롤들과, 또 당신과 싸우러 온 것이 아

니에요. 어리석은 모험가도 아니고, 바보 같은 약자들도 아니

지요. 우리들은 당신만큼이나 강하고, 또 마음만 먹으면 피해

는 크겠지만, 이곳을 싹 쓸어버릴 수도 있어요. 우리에겐 그

런 힘이 있으니까요."

다이티가 긴장한 일행을 돌아보다가,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

서서 자신들의 우월함을 설명했다. 빙설의 야수라 불린 트롤

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하나 하나 침입자들을 노려보더니, 이

내 진상을 파악했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신들의 말이 맞다. 원하는 게 뭔가?』

빙설의 야수는 어느새 재생이 완료되어 다시 침입자들을 공

격하려 하는 트롤들을 물러서게 한 뒤, 한 발작 앞으로 나섰

다. 다른 트롤들은 기괴한 울음으로 경계만 하였을 뿐, 지도자

의 말에 절대 복종하여 나서지 않았다. 다이티는 이제 대화가

통하게 됐음에 기뻐하면서 한껏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

다.

"도움을 얻으러 왔어요. 물론 일방적인 부탁은 아니지요. 당

신이 좋아할 아주 굉장한 제안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일부러 상대를 애타게 하기 위해 말을 하다 끝을 흐리는 다이

티였다. 빙설의 야수는 슬쩍 입맛을 다시기 시작하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고대 제국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 존재하는 나에게 고작 나이 어린 당신들이 부리는 수작

이 먹혀들 것 같으냐?』

"수작 같은 것은 없어요. 일단 이들을 보세요. 다크 엘프. 리

자드 맨. 그리고 묘인족까지. 지상계에서 소외당한 종족들이

이렇게 뭉쳤어요. 물론 저를 중심으로 모였지요. 제가 제안한

것들을 듣고 다들 크게 기뻐하면서."

『과연 지상계에서 입지를 잃은 종족들이군. 물론 우리 트롤

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 당신의 제안은 뭐지?』

빙설의 야수는 다이티의 제안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이며 경계의 빛을 풀었다. 이미 그 트롤은 침입자들을 이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자들은 지금 눈앞

에 보이는 존재들을 제외하고도 수없이 많아, 이미 숲 전체를

빼앗겨버렸음을 보고 받았기 때문이다.

"트롤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다이티는 신성력을 완전히 거두며 신뢰감 있는 모습으로 터

벅터벅 빙설의 야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일행은 모두

불안한 모습들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역시 지상계에서 입지를 세우고 트롤

들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동등한 생활을 하는 것이겠죠?"

다이티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를 보며 정곡을 찔러 말

했다. 확실히 빙설의 야수는 뜨끔한 기색으로 고개를 바닥에

떨궜다.

"자, 어떤가요? 저희들이… 아니, 제가 당신이 원하는 그것을

이루어줄 수 있는 있는데 말이죠. 결정은 당신에게 달렸어요.

저를 도와 새로운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겠어요?"

이제 거의 마음이 넘어온 빙설의 야수를 보며 다이트는 의미

심장한 미소를 감추고 친근하게 다가가 푸근한 얼굴로 트롤

의 거친 손가락을 부여잡았다. 무시무시한 괴력을 지닌 재생

괴물 트롤. 그들에게 이리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은 아마도 없

었을 것이다. 이 정도 태도만으로도 이미 빙설의 대답은 정해

져 버렸다.

『좋다. 우리들도 협조하겠다. 자세한 얘기를 들려달라.』

"일단 제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서 하도록 하지요. 제가 인도

하겠으니, 함께 갈 동족들을 모아주세요."

『알았다. 빠른 시간 안에 모으도록 하겠다.』

빙설의 마수는 정말로 다이티를 믿는 눈초리로 고개를 돌려

수하 트롤들을 이끌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커다란 뒷모

습을 보면서 다이티는 참았던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고대 마도 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최강 키메라 빙설의 마수

도 넘어왔다. 이제 타천사들만 회유한다면, 코스모스의 법칙

에 따른 신의 제물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제물들만 모은

다면 나는 그렇게 원하는 신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정화시

켜 새로운 안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난 신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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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설의 야수...

왜 저는 저런 캐릭이 오히려 끌리는 건지...;; 나도 야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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