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금단의 지역. 그리고 성수[1]
금단의 지역. 그리고 성수.
다시 거친 모래바람이 일었다. 금단의 지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그 계곡 앞으로도 엄청난 광풍이 일어 나약한 생
명체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에메랄은 다시 높고 험난한 계
곡의 위쪽으로 올라가 아래쪽을 주시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
다.
"금단의 지역으로 들어간 그들이 과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까?"
에메랄은 문뜩 자조적으로 미소지으면서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눈은 어느 정도의 갈등으
로 인해 조금씩 떨림이 느껴졌다.
"깨달음이라…. 사실 나처럼 죄를 짓고 지상계의 문지기나 하
고 있는 존재는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겠지."
왠지 그녀의 음성에서는 슬픔이 묻어났다. 방금 전까지 당당
한 태도로 아투 일행을 대했을 때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모
습이었다.
에메랄. 엔젤이기에 중립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감정에 빠져 신의 뜻을 어긴 자. 인간을 사랑
한 그녀는 한 때 엔젤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사랑을 선택하
려 했으나, 신의 간섭으로 인해 남자와 결별한 후 지금은 신
의 벌을 받아 지상계의 금단의 지역을 지키는 문지기다가 된
엔젤이었다. 어떻게 보면 엔젤이라는 존재 중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느낀 희생물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그런 서글픈 존재
였다.
"브레이트……."
그녀가 사랑했던 유일한 존재. 에메랄은 미세하게 떨리는 목
소리로 문뜩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제는 수많은 세월이
지나 그의 영혼조차 정화되어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 속에 옛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 한 구
석에 남은 사랑의 감정이 꿈틀거렸다.
"훗. 아직 수행이 부족한가봐. 엔젤이라는 존재가 감히 사랑
이라니…. 그나저나 화이엘님도 뭔가 엔젤답지 않게 변하신
모습이었는데, 괜찮으시려나?"
사실 에메랄이 화이엘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그녀 자신의
옛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었다. 엔젤은 중용과 중립을
지켜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화이엘에게서는 감정의 개
입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투라는 소년와 그라디우스
라는 드래곤 로드의 출입까지 부탁했던 엔젤 나이트의 수장
인 그녀를 생각하며 에메랄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 분 정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 그렇다면 엔
젤의 고통도 모두 끝을 내리게 될 지도 몰라."
챠르르릉.
에메랄이 다시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그 때, 갑자기 어디선
가 방울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엔젤의 날개가 펄럭이며 울
린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생명을 가진 존재가 지금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었다. 에메랄은 다시 중후
한 표정으로 얼굴을 포장한 뒤, 한쪽 손을 허공으로 내밀었다.
"빛이여. 내 손에 현신하라!"
그녀의 짧은 외침과 함께 갑자기 빛의 입자들이 그녀의 손바
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빛의 입자들은 곧 길다란 창의
모양으로 고정되어졌고, 이내 광선창으로 바뀌어졌다. 완벽
히 모습을 드러낸 창을 힘껏 손에 쥔 에메랄은 다시 네 장의
날개를 허공에 펼치고는 강한 모래바람이 불고 있는 계곡의
아래쪽으로 하강하였다.
그녀가 지나가는 곳은 놀랍게도 모래바람이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모래와 바람들이 스스로 그녀를 인식하고는 길
을 내어주는 느낌이었다. 에메랄은 잠시 한쪽 허공을 바라보
며 눈빛을 발했다.
"실프. 계속 수고 좀 해줘."
그녀가 바라본 허공에서 갑자기 녹색의 빛을 띈 작은 요정들
이 나타났다. 한 13, 14세 가량 되어 보이는 소녀의 몸을 한 손
가락 만한 크기의 바람의 요정들이었다. 바로 그녀들이 이 모
래바람을 일으키는 원동력인 것이다.
에메랄은 가볍게 미소지어 답을 하는 실프들을 뒤로 한 채,
다시 저 낮게 깔린 황무지를 향해 내려갔다. 바람을 가르는 소
리가 그녀의 귓가를 울렸지만, 이미 익숙해진 일이라 상관없
었다.
과연 저 밑에서는 누군가가 계속으로 들어가려고 힘을 쓰고
있었다. 일단 생명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은 모두 다
섯. 아무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지만 놀랍게도 움직이고 있
는 거대한 물체가 둘. 에메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는 손에
든 창에 신성력을 가해두었다. 왠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
운이 사악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누구시죠?』
에메랄은 지면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낯선 이방인들을 노려
보았다. 그녀의 접근을 눈치 챈 상대는 이미 그녀와의 싸움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가까이서보니 한 명은 용기의 신을 받드는 사제인 것 같았
다. 그다지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기운이 느껴
지는 걸로 봐서는 하이 프리스트급 이상이었다. 또한 검을 찬
붉은 갑주의 사내들이 둘 있었다. 하나같이 살기를 머금은 모
습들이었는데, 반대되는 인상과는 다르게 발산되는 존재감이
상당했다. 고수들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두 명의 로브를 차려입은 마법사
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쪽으론 회색과 은색의 빛을
머금은 거대한 거인들이 서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골렘들
인 것 같았다. 바로 돌을 주성분으로 해서 창조된 스톤 골렘
과 금속을 주성분으로 해서 창조된 메탈 골렘 말이다.
"엔젤이시군요. 저는 용기의 신, 브레이브를 섬기는 사제 미
사엘이라고 합니다."
사제로 보이는 중년으로 갓 접어든 사내가 이방인들의 대표
로 나서며 말을 꺼냈다. 에메랄은 다른 자들을 잔뜩 경계하면
서도 차분한 태도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왔나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성수가 솟아난다고 하는 그 금
단의 지역. 신의 땅이라는 장소임을."
에메랄이 갑자기 당황하는 빛을 띄었다. 방금 전 통과시켜주
었던 화이엘님의 일행 역시 성수를 찾기 위해 왔다고 하지 않
았던가. 도대체 인간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성수를 찾으려 하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곧 그녀는 자신의 본분을 깨닫고 차갑게 식은 얼굴로
경고했다.
『저는 이곳의 출입을 관리하는 문지기입니다. 당신들은 보
아하니, 선택받거나 허락 받지 못한 존재. 그 누구도 신의 뜻
을 거역하고 지나갈 순 없어요.』
"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꼭 지나가야
만 할 사정이 있으니, 그냥 순순히 비켜주십시오."
협박을 해보는 수작이었다. 에메랄은 감히 엔젤에게 그러한
행동을 보이는 이방인들을 바라보며 허공에 창을 한번 휘둘렀
다.
『신의 뜻을 이행하는 사자로서 저는 당신들의 출입을 하럭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엔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은 물러서지 않았
다. 오히려 이미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서로들 시선
을 주고받은 뒤, 일정한 대열을 갖추며 자리를 잡았다. 그리
고 미사엘이라는 용기의 신 사제가 조금 앞으로 걸어나오며
냉소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지나가겠습
니다."
짭짤하게 풍겨오는 바다 고유의 냄새. 맑게 개인 하늘에는 갈
매기들이 평화롭게 날아다녔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에는 낮
게 깔린 흰 구름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구름 뒤에 살짝 숨
어 고개를 내민 태양은 바다를 가로질러 펼쳐진 대륙을 따스
하게 비춰주었다. 바다는 고요하게 물결치며 해변을 아름답
게 수놓았고, 반짝이는 모래알은 눈이 부시게 빛났다.
샤아아아아앙!
그때 갑자기 고요하던 해변가 한쪽에서 강렬한 백색의 섬광
이 생겨났다. 맑고 청아한 소리를 동반한 그 빛의 폭발로 인
해 주변에서 물결치던 바다의 파장이 살짝 바뀌어졌고, 미세
하게 불어오던 바닷바람도 멈추었다. 막 물고기를 노리고 밑
으로 내려오던 갈매기 무리들도 크게 놀라 다른 곳으로 날아
가고 있었다.
---
오늘도 열쒸미 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