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9]
쿠아아아아아아앙!
순간 그들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아주 가까이까지 얼굴을
들이민 마룡 녀석이 브레스를 뿜어낸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디트는 급히 와이번을 몰아 상공으로 날아올랐고, 아투도 급
히 가이트리아의 어깨에 올라타며 그림자 보법으로 그 자리
를 벗어났다.
취이이이이.
마룡의 브레스는 대단했다. 점점 더 그 위력이 강해지는 듯,
녀석의 붉은 안개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것도 남
아있질 못했다. 메마른 땅마저 강한 산성에 의해 죽어버리는
듯, 흙의 색깔마저 검게 변해버렸다.
"스승님! 이제 어떡해야 되는 거예요!"
아투는 급히 먼저 도망치기 시작한 실피스를 향해 물었다.
"이놈아! 마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마법사인 내가 어떻게
상대하겠느냐! 이런 일은 네 말대로 신관들에게 맡기는 게 낫
겠다!"
역시 그는 여러 가지 성격의 소유자답게 급히 말을 바꾸어 제
자의 질문에 답을 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 무
책임하다는 생각이 든 아투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
다.
"이봐, 아투! 실피스님! 마룡이… 언덴드 드래곤이 하늘을 날
아 뒤쫓아오고 있습니다!"
디트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디트의 말이 아니더라도 아투와
실피스의 뒤쪽에서부터 바람을 가르는 무서운 소리가 들려오
고 있었다. 실피스의 비행 마법과 골렘의 그림자 보법. 그 모
든 것을 능가하는 무서운 속도였다.
"아주 끝장을 낼 셈인가?"
아투는 도망가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며 허무하게 내뱉었다.
이제 곧 미스티와 샤우드 백작이 있는 곳까지 다다르게 될 것
이고, 계속 도망만 친다면 귀족 연합의 모든 병력이 집결된 곳
까지 가게 될 것인데….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마룡의 폭주
를.
챠르르릉.
갑자기 어디선가 맑은 방울소리가 들렸다. 듣는 모든 이로 하
여금 마음의 평정을 찾게 하는 묘한 마력이 담긴 아름다운 소
리가 아투와 실피스, 그리고 와이번 나이트들. 더욱이 멀리 떨
어진 미스티와 샤우드 백작의 귀에까지 들려갔다.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소리에 놀라 동작을 멈추고는 그 근원지로 고개
를 돌렸다.
밝은 빛이 뭉쳐져 빛나고 있었다. 새하얀 빛. 성스러움과 밝
음만을 간직한 그런 순수한 빛이 허공에 둥둥 떠서 마룡의 정
면을 가로막았다. 뼈다귀로 이루어져 눈알조차 없이 횡 하니
뚫린 구멍이 그 빛을 주시하며 하늘에서 멈추어 섰다.
"저, 저 빛은!"
실피스는 갑자기 크게 놀란 모습으로 앞으로 몇 발자국 달려
나갔다. 하지만 곧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부딪힌 듯, 쾅 하
는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나왔다. 아투가 즉시 달려가 그를 부
축하며 앞을 만져보니, 과연 보이지 않는 막이 형성되어 주변
사람들의 접근을 완벽히 막고 있었다. 아마도 저 빛의 짓인
듯 했다.
"스승님. 왜 그러세요?"
"저 빛은 천상계 존재들만이 내뿜는다는 퓨어 레어. 불순한
것들을 일순간 소멸시킬 수 있다는 전설상의 힘이다!"
순간 실피스의 설명을 듣고 아투의 머릿속에 문뜩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지금껏 마룡을 앞에 두고도 골똘히 생각에 잠
겨 움직이지 않고 있던 존재.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에 휩싸여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엔젤… 역시 그녀
였다.
"엔젤님이 나서시려는 건가…."
아투가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귀
가 밝은 실피스가 그 소리를 듣고는 제자의 옷자락을 끌어당
기며 물었다.
"이 녀석아. 지금 엔젤님이라고 하는 건, 천상계 엔젤을 말하
는 것이냐?"
"모르셨어요? 저번의 그 화이엘이라는 소녀 마법사, 사실 그
녀가 엔젤이었어요. 물론 우리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저번
에 마왕과의 대면에서 모든 사실이 밝혀졌죠."
"허어……."
실피스는 거의 탄식에 가까운 소리를 내었다. 역시 천상계 존
재를 만나는 것은 그리 흔히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엔젤의 등
장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모두들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계세요. 이 마룡은… 이 언데
드 드래곤은 제가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였다. 밝은 빛 사이로 위엄 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막을 사이에 두고 마룡과 빛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
의 시선이 일순 빛을 향해 고정되었다. 왜 언덴드 드래곤을 언
데드라 부르는 것일까. 엔젤께서 받침을 빼먹는 실수를 할 일
도 없을 테고…. 모두 의아한 기색이었고, 아투는 꼭 나중에
그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언덴드라는 단
어를 둘러싼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챠르르릉.
다시 방울 소리가 들리며 거대한 구의 형을 하고 있는 백색
의 빛이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빛이 작아질수록 그 안쪽에서
는 빛에 가려졌던 아름답고 신성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등에서 하늘거리는 백색 깃털의 날개. 허리까지 길게 늘어져
찰랑이는 윤기 있는 붉은 머릿결. 커다란 눈망울 속에 감춰진
코발트 빛 눈동자. 그리고 가녀린 팔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느다란 손으로 점점 작아지던 백색의 빛이 모여들어 쥐어졌
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앙!
마룡이 순간 모습을 드러낸 기분 나쁜 존재를 향해 입을 벌렸
다. 드래곤 하트에서부터 발생한 붉은 안개가 목구멍을 지나
커다란 주둥이로 집중되었고, 강렬한 바람과 함께 쓸려나와
화이엘을 향해 쇄도했다.
『정화!』
화이엘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한 마디 외침으로 모든 브레
스를 소멸시켰다. 하지만 감정 따위를 지닐 리 없는 언덴드 드
래곤은 동요 없는 모습으로 거대한 뼈다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마족의 기운이 전신을 둘러싸고 있군요.』
화이엘은 이번에도 역시 움직이지 않고 날아드는 꼬리를 바
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잠시 그녀의 눈빛이 퍼렇게 빛나는가
싶더니 보이지 않는 힘이 뿜어져 마룡의 꼬리를 붙잡았다. 녀
석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해 무형의 힘을 밀어내려 했지만, 소
용없는 짓이었다.
『일단 마족의 힘부터 제거하겠습니다.』
마치 덮어둔 천을 치우겠다는 듯이 화이엘은 아무렇지도 않
게 말을 하며 빛의 구를 든 손을 조금 펴서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엄청난 섬광이 주변을 뒤덮었고, 마룡의 전신
으로 퍼져나갔다.
!
그런데 순간, 화이엘 그녀의 얼굴의 미묘한 감정 변화가 일었
다. 그리고 갑자기 빛의 구를 지속시키던 힘을 거두어들인 모
양인지, 구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마룡의 전신을 덮었던 빛의 장막도 사라졌고, 아투 일
행을 막고 있던 무형의 막 또한 사라졌다.
『저보다는 역시 그 분이 나서는 게 좋겠군요.』
화이엘은 아리송한 말을 남기며 마룡에게서 멀어졌다. 아투
를 비롯한 사람들은 갑자기 엔젤님께서 왜 변덕을 부리시나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마룡의 앞에서 새
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황금빛 존재를 보고는 입을 딱
다물었다.
거대했다. 언덴드 드래곤인 마룡을 보고 거대했다고 한 사람
을 무안하게 할 정도로 갑자기 황금빛으로 드러난 존재는 어
마어마한 크기였다. 마룡의 얼굴은 고작 그 황금빛 존재의 중
간지점에도 미치지 못했다. 온통 찬란히 빛나는 황금의 비늘.
매끄럽게 뻗은 유려한 신체. 하지만 강인한 인상을 보이는 무
시무시한 얼굴과 발톱, 이빨들은 엄청난 위엄을 자아냈다. 등
으로 뻗은 거대한 날개 또한 하늘을 뒤덮어버렸다.
"저, 저 존재는…. 서, 설마!?"
아투는 갑자기 등장한 거대한 존재를 보며 크게 놀랐다. 하지
만 곧 낯익은 느낌을 풍긴다는 것을 깨닫고는 찬찬히 그 존재
의 모습을 살폈다. 엄청나게 커다란 황금 드래곤. 마룡을 완벽
히 압도하는 거대한 신체를 가진 거대한 골드 드래곤이었다.
게다가 드래곤의 매서운 눈매를 보자 아투는 곧 그 정체를 파
악할 수 있었다. 바로… 그의 아버지인 아트란의 친구, 모든
드래곤의 최고봉인 로드 그라디우스!
『이 녀석… 예전에도 드래곤의 명예를 더럽혀놓더니 이제
는 언데드까지 되어서 드래곤 일족에게 수치를 주는군.』
황금색의 입이 들썩였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주변의 대기마
저 출렁였다.
『일단 이 녀석부터 해결하고 얘기하도록 하자. 아투.』
그라디우스는 그렇게 아투에게 말하면서 날카롭게 손톱이 발
달한 한쪽 손으로 뼈다귀 마룡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골
렘의 엄청난 힘으로도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던 녀석의 드래
곤 본에서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마룡은 안간힘을 쓰며 골
드 드래곤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괜한 헛수고에 불과했
다.
『이제 끝을 보도록 하지. 그래도 한 때 드래곤 일족이었던
만큼, 최대한의 예를 갖춰주겠다.』
그라디우스는 조금씩 손에 가하는 힘을 풀며 마룡을 놓아주
었다. 그러자 지금껏 물러서지 않고 파괴를 일삼던 녀석이 뒤
도 돌아보지 않고 날개를 펼쳐 도망을 가려 했다.
『잘 가라. 드래곤의 일족이여!』
쿠아아아아아아아앙!
순간 그라디우스의 입에서 엄청난 황금 섬광이 작렬했다. 거
대한 탑의 크기를 능가하는 그 황금빛의 기둥은 주변을 온통
황금의 물결로 바꾸어놓으며 일직선으로 날아갔고, 그대로 마
룡의 전신을 덮어버렸다.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퓨티아 제국
의 수도를 휩쓸었고, 아투 일행 모두 아득히 멀어지는 의식을
끝내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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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같은 드래곤의 입장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그라디우
스... 드래곤 로드께서 했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