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113화 (113/244)

[골렘마스터]  #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8]

"자, 일단 내가 하는 걸 잘 봐두거라. 너야 물론 공격 마법을

아무리 연마해도 5서클 이상을 넘지 못하겠지만, 아마 내 가르

침을 계속 이해하려들면 큰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는 날이 올

것이다."

어느새 늙은 그의 몸이 하늘을 유유히 날아 바로 뼈로 이루어

진 마룡의 머리 뒷부분까지 다다랐다. 다행히 와이번 나이트

들이 맡은 바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어 마룡은 그의 접근을 눈

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의 근본이여. 부정된 것을 정화하는 자연의 능력이

여. 지금 나의 의지에 따라 이곳에 모여들어 영혼마저 불태우

는 지옥의 불길을 선사할 것을……."

실피스의 입에서부터 주문의 말들이 술술 새어나왔다. 동시

에 그의 주변 기류들이 불규칙하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반투

명한 막이 생성되어 주문을 방해하지 못하게 보호하였다. 바

로 8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을 행할 때만 형성된다는 자동 베리

어 기능이었다. 점점 더 주문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그가 양손

으로 꼭 쥐고 흔드는 지팡이의 움직임 또한 격해졌고, 실피스

의 깡마른 전신이 마구 흔들렸다. 저만치 밑에서 스승의 모습

을 지켜보고 있던 아투마저 긴장감에 꼴깍 침을 삼켰다.

"정화 속의 새로운 탄생. 그 모든 것을 행하는 심판자의 숨

결. 내 앞을 가로막는 불순한 존재를 멸하여라! 헬 파이어!"

결국 실피스. 9서클 대마도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엄청난 주

문이 완성된 모양이다. 그가 휘젓고 있던 지팡이의 끝에서부

터 갑자기 엄청나게 강렬한 붉은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고, 그

지팡이의 괘적이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며 허공에 희귀한 마법

진을 그렸다. 방대한 마나가 마법진과 공명 반응을 일으켰고,

날카로운 기류가 실피스의 몸을 마구 강타했다. 하지만 지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그는 노인답지 않은 모

습으로 지팡이를 크게 끌어당겼다가 이내 힘껏 마법진의 중앙

을 향해 내질렀다.

화아아아아아아!

굉장했다. 엄청난 공명을 일으키며 발생한 마나장이 이내 거

대한 화염 덩어리로 변하였다. 마법진 중앙에서부터 퍼져 나

온 그 붉디붉은 화염은 거대한 산보다 더 큰 범위로 퍼져갔

고, 무방비 상태로 와이번 나이트들에게 정신을 빼앗겼던 언

덴드 괴물 마룡을 본체를 뒤에서부터 덮쳐갔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여 마그마가 솟구쳐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것처럼 거

칠 것 없는 막강한 기세였다.

"대, 대단하다. 과연 9서클 마도사는 8서클 마도사와는 차원

이 다른 존재야."

아투는 그의 아버지인 아트란과 실피스 스승을 비교했다. 화

끈화끈 헬 파이어 주문의 뜨거운 열기가 그가 서있는 곳까지

퍼져 하마터면 화상을 입을 뻔한 그는 가이트리아를 이용하

여 마법의 범위 밖으로 물러서 짙은 홍염에 휩싸인 마룡의 처

참한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과연 자신만만하던 스승의

말처럼 일은 쉽게 해결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쿠아아아아아아앙!

지옥의 불길에 휩싸인 마룡은 몸에 붙은 불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모양인지, 그대로 몸을 돌려 뒤쪽에 있는 작은 생명체를

발견했다. 안 그래도 와이번 나이트들이 주변을 날아다니며

짜증을 나게 한 모양인지, 녀석의 뼈다귀 얼굴이 마구 일그러

져 있었다.

"이 괴물 녀석, 헬 파이어를 정통으로 맞고도 쓰러지지 않다

니."

실피스는 당황하고 있었다. 강한 확신을 가지고 사용했던 9서

클 궁극의 화염 마법 헬 파이어가 녀석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뭔가 헬 파이어의 불길로부터 마룡의 몸을

보호하는 느낌이었다. 한참 마룡의 전신을 살피던 실피스는

뭔가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뜩 그를 바라보는 마

룡과 눈이 맞았다.

"스승님!"

아무래도 스승님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아투는 큰 소리로 그

를 부르며 가이트리아와 함께 달려나갔다. 하지만 거센 지옥

의 불이 마룡에 몸에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

갈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마법을 시전한 쪽인 실피스의 보호막

이 그 홍염에 의해 녹아 내리려 하고 있었다.

"큰일이야. 스승님이 위험한데…."

『우리 실력으로 더 이상 다가가는 것은 무리다. 그냥 저 당

돌한 마법사의 실력을 믿고 기다려라.』

가이트리아도 경계의 눈빛으로 마룡을 노려보며 멈칫했다.

골렘의 어깨에 올라탄 아투의 얼굴도 걱정의 빛으로 물들었

다.

"아투! 실피스님의 마법 때문에 우리도 다가갈 수가 없어. 이

제 어떡하지? 더 일이 커져버린 것 같은데."

하늘을 날고 있던 와이번 나이트 편대 중, 가장 커다란 와이

번을 타고 있는 디트가 아투에게 내려왔다. 미처 헬 파이어의

불길을 피하지 못한 모양인지, 갈색 와이번의 단단한 몸체 이

곳저곳이 불그스름한 화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헬 파이어의 불길은 우리 힘으로 어떻게 끌 수 있는 것도 아

니야. 일단 스승님이 마나의 공급을 끊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투는 스승님이 어서 현실을 인정하고 마룡에게 헬 파이어

가 통하지 않음을 깨닫기를 바랬다. 일단 마나의 공급만 끊긴

다면 헬 파이어의 불길은 사라질 것이고, 그렇다면 다시 와이

번 나이트들이 녀석의 관심을 돌리면 될 것이다. 최소한 시간

을 끌 수는 있다는 말이었다.

"마족 녀석들이 언덴드 드래곤의 몸에 장난을 친 모양이군."

다행히 실피스는 마법이 통하지 않음을 순순히 인정하고는

머뭇거림 없이 마나의 공급을 중단했다. 그러자 마룡의 몸에

붙었던 지옥의 불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춰버렸

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러한 마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마룡은 실피스를 향해 커다란 주둥이를 벌렸다.

쿠아아아아아아앙!

일순간, 강력하게 집중된 붉은 브레스가 입안 가득 모여들었

다. 그리고 거친 바람과 함께 폭발하듯 입에서 뿜어져 보호막

에 둘러싸인 실피스를 노리고 쇄도했다.

"정말 골치 아프게 하는 놈이로구나. 윈드 스파이럴!"

그가 손에 들린 지팡이를 한번 휘두르며 가볍게 주문을 외우

자, 녹색 기류의 회오리가 발생하여 날아드는 붉은 안개의 브

레스와 부딪혔다. 대기를 찢는 듯한 강렬한 파공음이 여러 차

례 울렸고, 바람이 흩어짐과 동시에 붉은 안개도 대기 중에 스

며들어 사라졌다. 하지만 실피스도 강력한 9서클 마법을 사용

한 뒤라 그런지 조금 지친 기색을 내보이며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왔다.

"스승님! 괜찮으세요?"

아투는 골렘의 몸에서 뛰어내려 휘청거리는 실피스의 몸을

부축하였다. 마나 소모가 극심한 듯, 작게 주름이 진 노인의

얼굴빛이 창백했다.

"이 녀석아! 이 정도로 내가 쓰러질 것 같으냐? 오랜만에 조

금 무리를 했더니, 머리가 어지러울 뿐이다."

"하지만 스승님. 저 언덴드 드래곤은 어떻게 해결하죠? 역시

시간을 조금 끌면서 지방에 파견된 신관들을 불러야 할까요?"

다시 한번 지팡이에 머리를 얻어맞으면서도 아투는 마룡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물었다. 와이번 나이트들의 지

휘관인 디트도 상당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실피스의 입을 주

시했다.

사람들의 기대를 다시 한 몸에 받게 된 실피스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룡

을 바라보았다. 잠시 눈싸움이라도 하는 듯 녀석의 얼굴과 그

의 얼굴이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룡도 움직이지 않았고, 실피스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시 스승님이 무슨 마법이라도 사용하

신 건 아닐까 기대하는 눈빛으로 아투가 실피스의 마나를 살

폈지만, 마나를 운용하는 것 같지도 않아 의아한 마음만이 더

해갔다.

"에헴."

그때 갑자기 실피스가 헛기침을 하며 허리를 짚었다. 순간 침

묵을 지키던 디트와 아투의 시선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아무래도 마족이 이상한 짓을 해놔서 마법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역시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최후의 방법이라는 소리에 아투와 디트의 얼굴이 동시에 밝

아졌다. 9서클 대마도사가 준비한 최후의 방법이니 만큼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한다는 눈치였다.

"일단 도망치자!"

하지만 실피스는 그들 모두의 기대를 깨버리며 황당한 한 마

디를 내뱉고는 허공을 날아 뒤편으로 날아갔다. 아투와 디트

는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뜩

뒤통수를 향해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흠칫하여 고개

를 돌렸다.

---

하아. 9서클 마법도 먹히지 않는 이상... 가망은 없는 듯?

과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