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3]
"하하하. 다행히 우릴 잊지 않았네?"
루미니 공작이 특별히 훈련시키며 키우고 있던 특수 부대, 와
이번 나이트. 비록 짧은 시간동안 함께 지낸 사이였지만, 성
격 좋은 아투와 친해진 그들이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그들에
게도 분명 특별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만약 그들이 조금 더 일
찍 와주었더라면 수도를 더 빨리 탈환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
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일부러 뚱한 표정으로 다시 외쳤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와이번 나이트들이라면 교황의 몇 안
되는 군사가 지키고 있는 에리아는 쉽게 공략할 수 있었을 텐
데 말이야."
"미안해.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 와이번 나이트들에게 맡겨
줘. 자, 와이번 1편대 왼쪽 망루의 신관들을 맡아라! 나머지는
골렘을 도와 오른쪽의 망루를 공격한다!"
곧 하강을 시도하던 와이번 편대가 한 사람의 명령대로 두 개
조로 나뉘어 흩어졌다. 든든한 아군의 등장으로 귀족 연합 세
력의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감은 물론이고, 아투 또한 어느 정
도 부담감을 덜고 전투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무서운
야수를 타고 날아다니는 기사들을 보며 교황 측의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하는 자가 속출했고, 끝까지 발악을 하
려던 몇 몇 되지 않는 자들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어느새
골렘의 거대한 주먹 공격에 의해 내성 또한 완벽히 무너져 내
렸고, 굳게 닫혔던 강철 문도 박살이 났다.
"휴우. 와이번 나이트들이 등장하니까 순식간에 해결이 되는
군."
아투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주변으로 팽창시
켰던 마나장을 거두어 들였다.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가이트
리아도 그 활동의 원동력이 되는 마나가 사라지자, 눈에서 쏟
아내던 광채가 약해졌다.
『과연 와이번 나이트들이로군. 엄청난 속도로 병사들을 무
력화시키고 있어.』
가이트리아도 감탄할 만큼 와이번 나이트들은 능숙하게 적들
을 제압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퍼붓는 화살. 지
상에서 비록 활을 쏘아대고 창을 날려봐도 와이번 나이트들
을 공격할 순 없었다. 게다가 간혹 날아드는 화살과 창도 단단
한 와이번의 피부에 가로막혀 전혀 상처를 입히지 못하였다.
어느새 궁수들이 전멸함은 물론이고, 성벽을 지키던 신관들까
지 겁을 먹고 사라진 뒤였다. 귀족 연합의 지휘관 격 기사들
은 내성의 방어선까지 무너지자, 사태를 냉철히 판단하고는
기세 등등한 병사들을 안쪽으로 몰았다.
이제 남은 것은 교황이 버티고 있는 거대 성 홀리 캐슬 뿐. 어
차피 교황의 병사들은 거의 전멸하거나 항복한 상태이다. 홀
리 캐슬처럼 거대한 성을 그 혼자 지켜내기엔 엄청난 무리가
따름은 당연지사였다. 아투는 아군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골렘
의 어깨에 올라타고 천천히 느긋한 마음으로 병사들의 뒤를
따랐다.
대륙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홀리 캐슬이 지금 불타
고 있었다. 항상 평온을 유지하던 성안은 지금 거친 병사들의
진입에 의해 소란스러웠고, 마지막으로 남겨둔 붉은 화염 기
사단의 일원들과 신관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지만, 언
제 귀족 연합이 들어 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일은 신이 되려는 마음을 가졌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
던 일. 다이티 교황은 최고 사제에게만 부여되는 가드 스틱을
손에 꽉 쥐고는 위대한 마계의 마왕, 타크니스를 돌아보았다.
"타크니스님. 이미 신관들과 붉은 화염 기사단을 시켜 각 지
의 흩어진 성물의 파괴를 명령했습니다. 이곳 수도를 적들에
게 내준다해도 그들은 목숨을 받쳐 임무를 완수할 것입니다.
이제 슬슬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지금 그 고대 마도 제국의 서적을 넘겨달라는 말인
가?"
타크니스는 교황이 꺼내려는 말의 의도를 파악하고 날카롭
게 지적했다.
"어차피 귀족 연합과 공주의 일행들은 제가 뛰어난 인물들을
뽑아 성물을 파괴하려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무방
비 상태의 성물을 파괴하는 것은 제가 신임하는 부하들이 아
주 간단히 해결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고대 마도 제국의 서적
은 지금 넘겨주셔도 상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 녀석의 뜻이 정녕 그러한가?"
타크니스는 다시 한번 낮게 깔린 어조로 되물었다. 교황은 중
후한 태도를 보이는 마왕을 보며 잠시 침을 삼키더니 이내 굽
히지 않는 태도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좋다. 이제 이 서적은 넘기도록 하지. 그리고 마물의 일부를
조종할 수 있는 이 구슬까지 네 녀석에게 선물로 주도록 하겠
다. 앞으로 유용하게 쓰일 테니, 알아서 잘 간직해라."
놀랍게도 타크니스는 서적을 넘겨줌은 물론이고 다른 선물까
지 주려는 태도를 보였다. 교황은 갑자기 마왕인 그가 왜 이
런 호의를 베푸는 것인가 의심스러워 의혹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타크니스는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대로 낡은 책 한 권과 함께 칠흑처럼 어두운 빛깔의 구
슬까지 건네줬다.
"이걸로 우리의 계약은 끝이다. 서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
지 않도록 하지. 하지만… 네 녀석이 신이 된 후 마족에게 해
를 입히는 짓을 한다면 우리는 또 귀족 연합과 손을 잡을 수
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라."
타크니스는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 마디 남겨놓고는 그
대로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교황은 너무나 순식
간에 벌어진 사태를 마주하며 잠시 멍하게 서있기만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들린 책과 구슬을 번갈아 쳐다봤다.
"결국 이 책을 얻었다.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으
려 했던 신이 되는 방법을…."
교황은 그토록 얻고 싶었던 책을 손에 들고는 그동안의 어려
웠던 과거의 나날들을 회상하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왜 이렇
게 신이 되는 것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 솔직히 다이티 교황
스스로도 그것이 의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나면서 신의 뜻을 이행하는 자가 되길 원했었는데, 왜 목
숨까지 걸고 신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신이 되려 하는 것인지.
하지만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히 내려졌다. 바로 교황의 마
음 한 구석에서 소리치고 있는 어떠한 존재감. 그것 때문이었
다.
"아버지. 함께 할 최후의 인물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그만 가
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느새 미사엘이 방안으로 들어와 그의 아버지, 다이티 교황
에게 말했다. 곧 때가 됨을 인식한 교황은 감았던 눈을 천천
히 뜨고는 약속을 해두었던 집합 장소로 가기 위해 미사엘의
옆으로 다가갔다.
"미사엘. 잠깐만 기다리거라. 타크니스님께서 뜻하지 않은 선
물까지 주셨으니 그걸로 우리도 귀족 연합에게 마지막 선물
을 하나 남겨주도록 하자."
순간 교황의 손에 들린 작은 검은 구슬이 은은하게 빛을 발했
다. 하지만 곧 그 빛마저 원래의 검은 색에 의해 잠식당했고,
동시에 교황과 미사엘의 모습 또한 안개가 물러가듯 방에서
사라져 버렸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궁!
엄청난 굉음이 대지를 진동시켰다. 마치 큰 지진이라도 일어
난 듯, 땅이 속을 드러내며 갈라지기 시작했고, 거대한 자태
를 자랑하던 홀리 캐슬이 그 틈으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
다. 마법도 아니고, 사술도 아닌 극히 자연스런 지각 현상으
로 벌어지는 참상인 것만 같았다.
막 홀리 캐슬로 접근하려 했던 병사들은 그 엄청난 사태와 직
면하여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섣불리 성안으로 진입
했던 꽤 많은 병사들이 그대로 성과 함께 땅속으로 자취를 감
춰버렸다. 성이 무너지며 튀어나온 돌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떨어졌고 그나마 목숨을 보전하여 물러섰던 병사들의 피해를
더 크게 만들었다.
"뭐, 뭐지?"
뒤늦게 홀리 캐슬 근처에 도착한 아투는 엄청난 참상에 눈살
을 찌푸리며 날아드는 파편을 이리 저리 피해 다녔다. 가이트
리아가 커다란 돌들은 어떻게 막아주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위협이 되는 작은 돌멩이들 전부를 막아주진 못했기 때문이
다.
한 수도의 왕성이 이리도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아투는 이제
그 흔적만이 남겨진 왕성의 터를 바라보며 멍해져 버렸다. 대
지는 크게 화가 난 듯 거대한 주둥이를 벌려 성을 완전히 삼켜
버렸고, 그 틈으론 불그스름한 안개들이 마구 피어올랐다. 자
연적으로 발생한 지진으로 생각하기에는 뭔가 이상한 현상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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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었다가 조금 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