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눈을 떠라, 가엾은 소녀여[2]
화이엘은 그렇게 복잡한 내용을 얘기하면서 미스티의 이마
에 올려진 수건을 거둬냈다. 열이 꽤 있는 모양인지, 방금 올
렸던 냉수 수건인데도 불구하고 미지근했다. 다른 수건을 손
에 든 화이엘이 그것을 여러 번 냉수에 적셔 다시 미스티의 이
마로 올리면서 멀뚱해진 아투에게 말하였다.
"아투. 지금으로선 그녀를 믿는 수밖에 없어. 아마 우리들이
알고 있는 미스티라는 그 정도 시련쯤은 가볍게 극복하고 평
소의 그녀다운 모습을 보여줄 거야. 아마 오늘밤이 고비가 될
모양이니…, 힘들지만 아투가 옆에서 함께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녀는 친절한 태도로 그렇게 말을 마친 뒤, 다시 몸을 돌려
막사 밖으로 나가려했다. 지금까지 어려운 태도로 그녀를 대
하던 아투가 약간의 어색한 미소를 띄고는 그녀를 불러 세웠
다.
"엔젤님."
"응? 왜 불러?"
화이엘은 어린 아이처럼 잔뜩 무언가를 바라는 눈빛으로 고
개를 돌렸다. 어쩌면 막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 때를 기다리
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와 미스티, 그리고 가이트리아와 함께 한 화이엘
도 역시 엔젤님의 본 모습입니까?"
"으음…. 어쩌면 화이엘이란 소녀의 모습이 내 진정한 형체
일 지도 모르지. 어쨌든 난 아투와 미스티, 그리고 그 엉뚱한
골렘과 함께 하면서 항상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야. 이 정도면
만족스런 답이 되겠지?"
순간 화이엘의 등뒤에서 밝은 광채가 뿜어졌다. 그리고 새하
얀 깃털을 휘날리는 날개가 뻗어 나와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
러자 몸매를 드러내는 타이트한 붉은 가죽옷이 하얀색의 갑주
로 변했고, 허리에는 광선검이, 손에는 길다란 광선창이 들려
졌다. 이것이 화이엘의 본 모습. 바로 엔젤 나이트의 수장의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투는 그녀를 보면서 이상하게도 묘한 감정을 느꼈
다. 어렵게 대해야할 상대이건만 자꾸 친근하게 말을 걸고 싶
었고, 장난도 치고 싶었다. 아투는 처음에 그런 감정이 미스티
에게 느끼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 갈등을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바로 진정한 우정임을 깨달았
기 때문이다.
"엔젤님. 당신은… 언제나 나와 친구입니다."
아투가 의미심장하게 한 마디를 건넸다. 그의 대답을 들은 엔
젤은 희미한 미소로 아투를 설레게 한 뒤, 막사를 바람처럼 빠
져나갔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고, 그저 무의 공간이라 짐작되는 이곳.
이곳에서는 지금 칼도 없고, 마법도 없는 그런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무의 공간 한 가운데에는 눈을 지긋이 감은 미스티
가 둥둥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메마른 입술이 살짝 들썩이며
힘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누구지?"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초췌한 모습이 완연한
그녀는 거의 죽어 가는 분위기로 힘겹게 손을 들어올려 아무
것도 없는 앞쪽의 무언가를 잡으려 했다.
샤아아앙!
그러자 갑자기 그녀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의 무의 공간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너무나도 강렬하고, 거역할 수 없는
그 빛은 그나마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미스티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가혹한 고문과도 같았다.
다행히 빛은 오래가지 않고 사라졌다. 그러나 그 빛이 사라지
고 난 후의 광경은 큰 혼란을 겪고 있는 미스티에게 더 큰 충
격으로 와 닿았다.
"넌 누구지?"
방금 미스티가 손으로 무언가를 잡으려 했던 그 공간. 바로
그 공간에 미스티와 똑같이 생긴, 다만 표정과 옷차림만 다른
존재가 나타나 물었다.
"넌 누구지?"
"넌 누구냐고!"
갑자기 주변에서 수십 차례의 빛이 터져 나오며 미스티와 똑
같은 생김새를 지닌 존재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녀들은 하
나같이 독기 어린 어조로 진정한 미스티의 실체를 향해 마구
소리쳤다. 넌 누구냐는 질문…. 미스티는 갑자기 슬퍼졌다. 그
녀들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지? 아주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들. 그녀를 공주라 부르며 시중을 들고 있는 하
녀들과 도도한 표정으로 머리를 빗고 있는 미스티. 그런 영상
이 잠깐 머리를 스쳐지나갔고, 곧 이어 준수한 용모를 가진 소
년과 사랑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영상 또한 잠깐 스쳐
지나갔다.
"난 누구지?"
미스티가 다시 그녀와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존재들을 향
해 되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질문을 던지던 미스티의 분체
들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이
에 용기를 낸 미스티는 다시 한번 그녀들을 향해 강하게 소리
쳤다.
"난 누구냐고! 지금 넌 누구지라고 묻고 있는 난 누구냔 말이
야!"
그녀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입으로 새어나오는 말
들을 강하게 인식했다. 자신이 누군지 알 필요도 없는 것 같았
고, 또 자신과 똑같은 형상을 한 그녀들에 대해서도 알 필요
가 없었다. 그저 나 자신의 느낌을 간직하기만 하면 될 뿐. 그
렇게 마음을 안정시키자, 서서히 또 다른 미스티의 형상들이
눈이 녹아내리 듯 물이 되어 바닥으로 내리 깔렸다. 동시에 그
녀의 눈앞엔 아주 낯익은 소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투……."
그녀의 눈에 들어온 아투는 말없이 다가와 손을 꽉 잡아주었
다. 따스한 온기가, 그의 심정이 그녀의 마음속까지 와 닿았
다. 더 이상 자신이 누군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기
억을 되찾았고, 또 지금의 기억 또한 간직한 상태였다. 아무
것도 잃은 것은 없는 것이다.
『닭살 돋아 못 봐주겠군.』
말없이 아투의 품에 안기려는 순간, 갑자기 쩌렁쩌렁한 목소
리가 들려와 분위기를 망쳤다. 거대한 갈색의 빛을 발하는 웅
장한 형체의 소유자. 바로 아투와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있는
일심 동체, 우드 골렘 가이트리아였다. 미스티는 골렘의 그런
짓궂은 행동 또한 반갑고 소중하다 생각하며 다시 아투의 가
슴으로 얼굴을 기댔다.
"아투…. 난 역시 미스티죠? 그렇죠?"
"미스티…. 넌 미스티가 맞아. 고민할 필요는 없는 거야. 넌
내가 아는 그 미스티가 확실해."
무의 공간에 함께 떠있는 아투의 형상이 긴 팔을 휘둘러 그녀
의 몸을 감싸고 끌어당겼다. 곧 골렘의 거대한 형상은 공간의
저편으로 흡수되어갔고,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서
미스티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었다.
* * *
"다이티 교황. 이 책을 지금 당장 얻고 싶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타크니스님."
"이 책을 넘겨줌과 동시에 우리 마족과의 계약은 끝이 남을
알려준다 해도 지금 당장 받을 텐가?"
"어차피 수도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차라리 이곳을 버
리고 한적한 곳으로 몸을 피해 신이 되는 준비를 하는 게 좋
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후에 마족의 도움은 없어도 된
다고 생각합니다."
"웃기지 마라. 넌 아직 모든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 클라미
디 대륙의 모든 성물. 최소한 하급 마족의 힘을 제약하는 성
물 만큼은 다 파괴해야 할 것이다. 그 후에 이 책을 주도록 하
지. 어떤가?"
"타크니스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일단 수도를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귀족 연합 세력에게 공격받아 수하들이 흩어지는 것
은 당연한 일. 차라리 믿을 만한 수하들이 제 곁에 있을 때, 일
을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타크니스님께서도 수도를 지키
는 데에 도움을 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우리 마족들이 직접 나선다면 저쪽에서는 엔젤 나이트들이
나설 것이다. 그러면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치닫게 되
지. 별 수 없이 마물들의 힘을 넘겨야겠군."
"마물들의 힘을 빌린다면 일주일은 버틸 것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교황, 일 처리는 똑바로 해라. 우리 마족은 네 녀석 없이도
다른 녀석들을 이용해 대사를 치를 수 있으니 말이다. 네 녀석
에게 실증이 나면 그걸로 끝이니, 꼭 내 말 명심해라."
"네, 알겠습니다. 위대한 마왕이신 타크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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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올리는 즐거움... 여러분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