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밝혀지는 교황의 음모[3]
"아무도 없잖아?"
빛 한 점 없는 공간으로 들어서던 아투가 화이엘의 판단이 잘
못된 것 같아 투덜댔다. 그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르던 미스티
도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곳에 교황이 있
다고 장담을 했던 화이엘은 동요 없는 얼굴을 한 채, 한곳만
을 노려보고 있었다.
『방심하지 마라. 누군가 분명히 있다.』
마지막으로 방안에 들어서던 가이트리아가 덜렁대는 주인의
모습을 보고 심사가 뒤틀려 한 마디 내뱉었다. 하지만 골렘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반쯤 열려졌던 거대한
문이 쾅 닫혀버렸다.
안 그래도 어두웠던 방안은 이제는 아예 옆에 있는 사물의 형
체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비록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아투였지만, 혹시나 기습에 대비하여 뒤
로 도약하며 마나 애로우에 마나를 주입했다. 곧 푸른 마나의
빛이 은은히 감돌아 주변을 어느 정도 밝혔다.
"교황! 나와라! 어디 숨어있는 거냐!"
마나가 맺힌 활을 이리 저리 향하며 어두운 공간을 비춰보던
아투가 외쳤다. 그러자 온화하지만 위엄 있는 노인의 목소리
가 방안을 울리며 들려왔다.
"대단하군요. 결국 이곳까지 오다니."
동시에 갑자기 어두웠던 방안 자체에서 엄청난 광채가 터져
나왔다. 아투는 강렬한 섬광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옷자락
을 들어올려 얼굴을 감쌌고, 속으로는 주문을 외워 보호막을
형성시켰다. 미스티와 화이엘도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며 제각
기 팔찌의 힘과 보호막으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샤아아아앙.
다행히 빛은 금방 사라졌다. 장시간 어둠에 노출되었던 눈도
곧 시야를 회복한 것 같았다. 아투가 고개를 들어 방안의 모습
을 확인했고, 곧 놀랄만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져 입을 딱 벌
리고 말았다.
"허허허허허. 낮에 이미 뵈었던 걸로 아는데, 왜 그리 놀라시
죠?"
교황이었다. 그것은 아투도 예상했던 인물이었다. 당연히 이
곳이 교황의 방일 테니.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일행을 둘러싸
고 활과 검을 향하고 있는 병사들. 하나같이 명령만 떨어지면
그대로 일행을 공격할 기세였다. 활에는 이미 화살이 매겨져
있었고, 검을 쥔 병사들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기
사차림을 한 자들도 몇 눈에 띄었다. 만약 이대로 싸움이 붙는
다면 완벽한 패배가 될 것이다.
"루미니 공작님에게 초청장을 보낸 것 자체가 우리를 끌어들
이기 위한 작전이었군. 아예 끝을 보자는 생각인가?"
아투가 교황을 노려보며 물었다.
"글쎄요. 끝을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긴 하죠. 허허. 헬
레니아 공주님."
교황은 애매 모호한 말을 중얼거린 뒤, 골렘술사의 등뒤에 숨
어 고개만 내밀고 있던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고 벌레를 보는 듯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자, 곧 실수
를 깨달은 교황이 다시 말을 고쳤다.
"아, 실수를 했군요. 이제 헬레니아 공주가 아니라 미스티 공
주라지요?"
"당신… 도대체 속셈이 뭐죠? 왜 내 기억을 봉인한 거예요?
왜 마족까지 끌어들여, 또 어둠의 신관들까지 끌어들여 날 죽
이려 했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미스티는 태연한 교황의 행동을 보며 그동안 쌓였던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눈물을 흘렸다. 주위를 둘러싼 병사들의 기세
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다짜고짜 따지고 들려는 그녀의
행동에 약간 이마를 찌푸리던 교황이 부드럽게 말을 하기 시
작했다.
"미스티 공주. 정말 모르는 건가요? 허허허. 하긴… 교황의 권
능으로 기억이 봉인되어 있는데 알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지금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니잖아!"
듣다못한 아투가 버럭 화를 내며 마나 애로우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상황을 잘 파악한 가이트리아가 먼저 주인의 행동을
제지했고, 뒤늦게 아투를 말리려 움직이던 화이엘이 다시 제
자리에 멈춰 섰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반응한 교황 측의 병사
들도 점점 더 분위기가 고조되어갔다.
"아투. 이건 내 일이에요. 내가 해결하겠어요. 그러니 아투
도, 또 화이엘도, 가이트리아도 모두 나서지 말아요."
아투의 등뒤에 숨어 소극적인 행동을 하던 미스티가 용기를
내어 교황에게로 다가갔다. 무모한 그녀의 행동에 아투가 급
히 말리려했지만, 곧 그녀 전신을 둘러싼 팔찌의 기운을 보고
는 어느 정도 안심하여 주위 병사들의 움직임에만 신경을 기
울였다.
"허허허허. 미스티 공주.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더니 많이
변했군요."
교황은 당돌하게 다가서는 공주를 보며 가식적으로 웃었다.
평소의 온화한 어조가 입에서부터 배어나고 있긴 했지만, 아
투 일행은 그런 그의 말투마저 혐오스러웠다.
미스티는 걸음을 멈추고 경계의 빛을 잔뜩 띈 채, 떨리는 목
소리로 물었다.
"교황. 말해주세요. 왜 내 기억을 봉인했는지…, 또 왜 날 죽
이려 했는지…."
"뭐 지금은 저의 목적이 완벽히 다 이루어졌으니 말해줘도 상
관은 없겠군요. 그럼 공주님과 함께 온 사람들도 잘 듣기 바래
요."
선뜻 교황은 공주의 질문에 대답해주려는 듯 한쪽 손을 입가
로 가져가 헛기침을 몇 번하였다. 그리고 공주를 비롯한 그녀
의 일행, 즉 아투와 화이엘, 그리고 거대한 우드 골렘을 돌아
보더니 이내 담담한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전 신이 되려 해요. 항상 신의 종노릇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직접 신이 돼서 지상계를 위해 살아보고 싶어요. 물
론 평범한 인간들은 이런 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
요."
신이 되고 싶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감히 이 세상
을 창조한 그 분들과 동등한 자격을 가지려 하다니. 그것도 교
황이 말이다. 아투는 혹시 그가 미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이 들어 뭔가 반박을 하려 했지만, 옆에 있던 화이엘이 지긋
이 그의 몸의 압력을 가해 말렸다. 그리고 교황의 말은 계속되
었다.
"물론 신이 되는 일은 생각만 먹고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일
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는 신 다음으로 버금가는 존재인 마
족과 손을 잡았지요. 다행히 마족들을 다스리는 3대 마왕 중
한 명인 타크니스님은 하찮은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어요. 아니, 그 방법을 최소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
지는 알고 있었죠."
"지금 그런 얘기를 들으려 한 것이 아니에요! 왜 날, 왜 내 기
억을 봉인했나요?"
미스티는 그저 넋두리를 늘어놓는 느낌을 받으며 교황을 향
해 사납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교황은 잠시 당황하여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가식적으로 온화한 표정을 짓고 따스하게 말
했다.
"이런 이런…. 성격이 너무 급하군요. 이제 말하려고 했는데.
네, 공주님의 기억은 제가 봉인했지요. 당연히 그래야 했어
요.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비밀로 붙여져야 할 그 장면을 공주
님이 보고 말았으니 말이죠."
"그, 그 장면이라니…."
"마왕 타크니스님과 저와의 비밀스런 만남. 공주님 당신은 아
주 불쌍하게도 그 만남의 장소에 나타나 저의 모든 계획을 듣
고 말았죠. 때문에 저는 공주님의 기억을 없앨 수밖에 없었어
요."
미친 짓이다. 아투는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교황이 늘어놓
는 말을 들은 그는 제발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길 빌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일 뿐, 교황이 설명하는
내용을 끝까지 듣고는 멍해진 미스티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깊게 잠긴 목소리를 흘렸다.
"당신의 음모가 드러날 것을 염려해 그랬다는 말이군요."
교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마족과 첫 접촉
이 있었던 그 날, 우연히도 교황의 방으로 무언가를 상의하러
갔던 미스티가 봐서는 안 될 그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그 상
황 당황했던 교황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일 수밖에 없었던 처사
였다.
"그럼 날 죽이려 한 것은 내가 당신의 손아귀에서 도망쳤기
때문인가요? 마족과 당신이 내통한 사실이 혹시나 세상에 알
려져 그 신이 되기 위한 작업이 망쳐질까 봐?"
미스티가 큰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몸을 휘청거렸지만, 옆에
있던 테이블을 짚고 다시 중심을 잡으며 말했다.
"당연하지요. 기억이 봉인된 상태이긴 했지만, 일 처리는 확
실히 할 필요가 있으니. 허나…, 이상하게도 공주님 주변에는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많더군요. 그들 덕분에 공주님이 지금
이곳에 서있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교황이 웃었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경건한 마음이 드러나는
웃음이었지만, 그의 속은 시커멓고 타락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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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사실은 썩었군요...;;; 좀비인가... 쿨럭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