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건국 기념 축제 속의 눈물[6]
"나이츠! 도대체 왜 이래? 넌 이렇게 남에게 조종이나 당할 그
런 나약한 놈이 아니잖아?"
나이츠이 행로를 막아선 아투가 절규하듯 내뱉었다. 마의 기
운이 스며들어 이렇게 사람이 변하다니. 신을 섬기는 신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신빙성은 있었지만, 아투는 결코
믿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나이츠는 그러한 그의 심정도 알
아주지 못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유난히도 요란히 들렸다. 잠깐 빛이
번쩍 하는가 싶더니, 방심하고 있던 아투의 옷소매가 베어졌
다. 확실히 장난이 아니었다.
"치잇. 나이츠. 이 바보 같은 녀석!"
계속 방어만 할 순 없었다. 평소의 나이츠보다도 지금의 나이
츠가 구사하는 검술이 훨씬 더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다. 오로
지 살기만을 품은 살인마의 광기가 넘실넘실 몸에 와 닿았고
소름마저 끼치게 할 정도였다. 짧은 기간 동안 싸움에 잔뼈가
굵어진 아투였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빠지지지지직.
그때였다. 아투가 막 마나 애로우에서 마력을 담아 시위를 당
기려는 순간, 갑자기 오른편에서 강력한 뇌전이 번쩍이며 날
아들었다. 그리고 완전히 오른쪽을 비우고 있던 나이츠의 옆
구리에 정통으로 부딪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이 일순간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
만 인상을 구기며 한차례 풍검술의 기운을 검에 실어 허공에
휘두르자, 전신을 휘감았던 짜릿한 전류가 팟 하는 시원스런
소리와 함께 소멸해버렸다. 동시에 마비의 용도로 뇌전을 날
렸던 화이엘의 얼굴에 당혹스런 빛이 스쳐갔다.
"젠장. 도대체 어떤 기운이 스며들었기에 마법까지 통하지 않
는 거지?"
"아투! 나이츠를 봐주려는 생각은 지워야 할 것 같아. 아무래
도 저 사람의 몸에 스며든 기운은……."
씹어뱉듯 소리치는 아투의 거친 소리를 들은 화이엘은 마치
남들은 모르는 무언가를 아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하지
만 말하는 도중 아투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대로 말꼬리를 흐
려버렸다.
"화이엘. 넌 나이츠의 몸에 스며든 기운에 대해서 뭔가 파악
이 된 것 같은데 왜 숨기려고 하지?"
"지금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투가 이상한 화이엘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캐물으려 했지
만, 중간에 미스티가 끼어 드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뭔
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해진 아투도 일단 상황
이 상황이니 만큼, 잡생각은 떨쳐버리고 현실에 직시하기로
마음먹고는 다시 자세를 잡는 나이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떡하지? 지금은 가이트리아까지 없는 상황이라 나이츠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싸우기는 무리인데."
"잠깐만. 내가 팔찌를 이용해 어떻게 해볼게요."
고민스럽게 중얼거리는 아투를 보며 미스티가 앞으로 나섰
다. 그녀의 뒤에는 그림자처럼 호위를 하고 있는 팔찌의 영혼
체가 뒤따랐다.
"저기…, 지금 저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수 있
겠어?"
주인이 팔찌에 속박되어 있는 존재에게 명령하는 상황인데
도 미스티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도무지 누가 주인이고
누가 영혼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투는 그런 그녀의
모습까지도 사랑하고 있었기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해보도록 하겠습니
다."
영혼체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언행을 보이면서 어
떠한 장애도 없이 바람처럼 허공을 날아갔다. 영혼체가 다가
옴을 본 나이츠가 풍검술의 기술이 걸려 녹색의 기류로 보호
되고 있는 검을 횡으로 휘둘렀지만, 기이하게 몸을 꺾는 존재
를 베기는 쉽지가 않아 보였다. 영혼체는 자유자재로 몸을 구
부리고 늘리면서 나이츠의 공격을 피했고, 나직이 한 마디를
썰렁하게 내뱉었다.
"속박의 인."
그러자 갑자기 엄청난 크기의 붉은 색 고대 문자 하나가 나이
츠의 몸에 그려졌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쇠사슬에 묶여있는
형상을 묘사하여 만든 문자 같았다. 풍검술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나이츠가 영혼체의 몸 일부를 검으로 베어버렸지만, 거
기서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딱딱한 석상처럼 굳어버
렸다.
"휴. 확실히 그라디우스님이 주신 마법 호구라 그런지 성능
이 다르긴 다르구나."
아투는 일단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나이츠를 보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눈빛도 어느 정도 평소의 그로 돌아온 것 같았
고, 몸에서 뿜어지던 광기도 차츰 줄어들자 그에 비례하여 아
투의 표정이 밝아졌다.
"여러분."
어느새 아노 신관이 아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냥
평범한 귀족 자제인줄로만 알았던 그는 새삼 손님 일행의 범
상치 않은 실력을 보고는 감복을 한 것이다. 아이들도 겁을 잔
뜩 집어먹은 표정이긴 했지만, 다들 무사한 듯 했고 유클레샤
와 데라시안도 비교적 안정된 표정이었다.
"손님들은 도대체 어떤 분들이십니까? 이러한 사람을 친구로
두고 계시다니."
아노 신관의 얼굴에는 신전과 아이들을 염려하는 마음이 그
대로 묻어났다. 물론 광기 어린 살인마가 신전에 들어왔으니
어지간히 놀라지 않을 순 없었을 것이다. 아투는 아노 신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어색하게 답을 했다.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저란 사람이 아니라, 아주
충직한 사람인데."
"그런 것을 따질 게 아닙니다. 지금은 일단 여기 미스티양의
힘으로 묶어두긴 한 것 같습니다만, 아직 저 사람의 몸 속에
는 마의 힘이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제 다시 폭발하여 움직일
지 모르는 일입니다."
"마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 마족의 힘을 뜻하는 것입니
까?"
아투는 진지하게 말하는 아노 신관에게 조심스럽게 되물었
다. 아니길 바랬지만, 역시 대답은 예상 그대로였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한 존재의 힘입니다. 웬만해선
저희 신관들의 힘으로 소멸시킬 수 있지만, 이건 저희들의 힘
을 훨씬 웃도는 것입니다. 최소 하이 프리스트 정도는 되야 가
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분명 미스티를 노리는 존재들이 마족에게 부탁을 해 나이츠
를 이용하려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마족
이 등장하여 이런 사건을 벌일 리도 없으니 말이다. 아투는 잠
깐 루미니 공작과 샤우드 백작이 괜찮을 지를 걱정했다.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인 교황과 그들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왠지 꺼림칙한 아투였다.
"아투. 이번 일도 역시 날 노리는 자가 벌인 일이겠죠?"
아노 신관과 아투의 대화 사이에 미스티가 살짝 끼어 들며 물
었다. 왠지 슬퍼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읽은 아투는 애써 미소
를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마. 다 잘 될 거야."
아무래도 신전에 계속 머물기에는 이곳을 관리하는 신관들이
나 어렵지만 밝게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어떤
일이 터질 지도 모르고 아직 나이츠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되도록 빨
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아투는 일단 나이츠를 어떻
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상의를 하기 위해 미스티와 화이엘을 불
렀다.
"아무래도 교황은 루미니 공작님과 샤우드 백작과 함께 우리
가, 아니 공주가 올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우리가 엄청난 능
력을 지닌 마족을 얕본 탓이지. 아마 지금 루미니 공작님과 백
작이 위험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야. 일단 빨리 성으로 돌아
가 봐야겠어."
"하지만 여기 석상처럼 굳어진 사람은 어떡하고 가자는 얘기
야?"
화이엘은 간신히 바로 옆까지 옮겨온 나이츠의 가슴 부분을
툭툭 건드리면서 내키지 않는 눈치로 말했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눈빛이 이상하게 자꾸 떨리는 것
을 보고 아투는 다시 의혹을 품게 되었지만, 일단은 지금 당장
에 일이 급했다.
"미스티. 팔찌를 사용해 옮길 수 있겠어?"
아투는 예상보다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그라디우스의 마법
호구를 믿는다는 듯이 물었다. 질문을 받은 미스티는 잠시 팔
찌와 아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한번 해보겠다고 답하
며 무표정하게 서있는 영혼체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자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줘."
"알겠습니다."
명령을 수행하는 영혼체의 손바닥에서 강렬한 기류가 뿜어졌
다. 그것은 회색의 안개를 일으키며 잠시 시야를 흐리다가, 이
내 한곳으로 모이면서 굳어진 나이츠의 발 밑으로 쇄도했다.
하지만 그것이 큰 화근이었다. 간신히 나이츠의 몸에 스민 이
상한 기운을 지탱하며 속박을 가하던 인이 또 다른 그 힘에 휘
말려 약화되어버린 것이다. 이제야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나이츠는 다시 광기 어린 기운을 내뿜으며 풍검술의
검을 휘둘렀고, 강렬한 녹색의 기류가 영혼체의 기류를 밀어
냈다. 오히려 퉁겨져 버린 바람에 휘말린 영혼체는 어이없게
힘을 잃고는 스르르 강제적으로 팔찌로 재 소환되어 사라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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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힘들다~
[골렘마스터] # 건국 기념 축제 속의 눈물[7] 2권 끝
"크아아아아아악! 죽인다!"
이제는 얼굴마저도 광기가 짙어진 모습이었다. 괴수가 포효
하듯 절규의 외침을 내뱉은 나이츠는 이제는 완전히 광전사
의 몰골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시한 채, 미스티를 향해 달려
들었다. 워낙에 순식간에 일이라 아투가 손을 쓸 겨를도, 화이
엘이 마법 주문을 외울 시간도 없었다.
"아아악!"
망연자실해진 미스티가 소리를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제 곧 차가운 나이츠의 검이 심장을 꿰뚫으면서 모든 것이 끝
이 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찾지도 못
한 채, 끝이 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울컥 감정이 상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비명은 들리지 않았고, 붉은 피도 흐르
지 않았다. 미스티의 엉덩이는 바닥에 부딪혔고, 대신 그녀가
서있던 자리에서는 어느새 신관용 메이스를 손에 든 아노 신
관이 나이츠의 검을 막아낸 뒤였다.
"아, 아이들을 일단 안전한 곳으로!"
그는 힘겹게 광전사로 변해버린 나이츠의 검을 막으면서 소
리쳤다. 조금만 더 밀린다면 곧장 팔이 잘려나갈 판이었다. 아
노 신관도 당연히 신관 수업 중에서 무술 훈련을 받았고 또 수
제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신관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지만, 광
전사로 보이는 자의 괴력을 감당하기에는 완력이 턱없이 모자
랐다.
"이 사람을 제정신으로 돌리기엔 이미 늦은 듯 싶습니다! 결
단을 내려야 합니다!"
아노 신관은 이마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힘을 주어 간신히
나이츠의 검을 퉁겨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결단이 세워진 듯 결의를 다지는 엄숙함이 흘렀다. 하마터면
큰 상처를 입을 뻔한 미스티를 화이엘의 부축하며 일으켰고,
아투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힘든 결정을 내려야했다.
"물론 나이츠를 다치게 하는 건 싫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며 겁에 질려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유클레
샤와 데라시안에게 안겨있는 아이들을 눈에 담았다. 여러 가
지 안 좋은 사정으로 신전에 맡겨져 생활하게 된 아이들. 죄
없는 그 애들을 절대로 다치게 해선 안 된다. 설사 나이츠를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평소
의 나이츠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일 것이다. 아투는 마음이 쓰
렸지만,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쨌든 나이츠를 제압하는 수밖엔!"
결단을 내린 아투는 잽싸게 미스티의 앞을 막아서면서 한 손
으로 아름답게 제련된 검 형태의 마나 애로우를 들어올렸다.
잠깐 의식을 집중하며 마나를 끌어올리자, 푸른빛의 활시위
가 생겨났고 곧이어 더욱 짙은 파랑의 마나 화살이 매겨졌다.
"미안하다, 나이츠!"
슈슈슈슈슉!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이츠를 바라보던 아투의 손에서 마나
화살이 떠나갔다. 허공에 푸른 선을 남기며 날아간 화살은 정
확히 상대의 복부를 노리고 있었다. 아무리 수련을 많이 한 자
라고 해도 정확히 맞는다면 치명적인 상처로도 이어질 수 있
을 정도의 위력이 담긴 화살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죽인다!"
화실이 거의 나이츠의 복부에 꽂힐 듯한 순간이었다. 놀랍게
도 마의 기운에 지배를 당하는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확 솟
구쳤다. 동시에 검날을 둘러싸고 있던 풍검술의 기류가 짙은
녹색의 빛을 띄면서 더욱 맹렬해졌다. 검을 든 나이츠의 손은
그대로 부드럽게 움직여 마나 화살을 정확히 베어버렸고, 순
식간에 자세를 바꾸어 땅을 박차고 살벌한 기세로 달렸다.
그의 광기 어린 눈빛이 미스티를 향해 있었다. 아노 신관을
비롯한 유클레샤 신관과 견습 신관인 데라시안도 무시한 채,
또 힘없는 아이들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그
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미스티 뿐이었던 것이다.
"이야아아앗!"
힘찬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대단하게도 나이츠의 이번 공격
역시 아노 신관이 막아내고 있었다. 작은 방망이를 연상시키
는 은 재질의 스태프와 날카로운 검날이 부딪히자, 불똥이 튀
었고,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에 의해 아노 신관의 몸이 움찔했
다. 하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나설 사람이 없었다. 검을 사용하
는 검사나 기사를 단거리에서 상대할 때는 그 어떤 뛰어난 마
법사라도 힘겹기 때문이다. 그나마 무술 수련을 한 데라시안
견습 신관이 있긴 했지만, 아직 견습에 머무르고 있는 만큼 나
이츠와 견줄 실력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어떻게든 이 사람의 행동을 막아야 합니다. 이대로 놔두었다
간 이 사람이 노리는 존재를 죽이더라도 계속해서 폭주 상태,
즉 광전사의 성향을 띈 채 세상에 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만
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엄청난 참상이 벌어질지도 모릅니
다."
아노 신관은 다시 한번 나이츠와의 거리를 두기 위해 뒤로 물
러서면서 말했다. 화이엘은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
덕이더니, 평소답지 않게 차가운 표정을 짓고는 냉랭한 어조
로 입을 열었다.
"아투. 지금 여기서 사소한 감정으로 일을 질질 끌 순 없어.
나이츠를 죽이지 않는다면 가망은 없어. 우리가 죽고 나이츠
가 살던지, 우리가 살고 나이츠가 죽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
해야 할 때야."
"나도 알아. 아주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알
아. 하지만…, 하고 싶지도 않아."
아투는 다시 축 처진 모습으로 아노 신관의 분투도 외면하면
서 고개를 돌렸다. 안타까운 모습으로 나이츠를 바라보던 미
스티의 눈가에는 이슬까지 맺혀 반짝였다.
"네가 못하겠다면 나, 화이엘이 하겠어."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혼란스럽게 맘을 바
꾸는 아투를 보며 차갑게 말을 한 뒤, 돌아섰다. 그리고 누가
미처 말려볼 틈도 없이 재빨리 주문을 읊으면서 양손을 허공
에 내질렀다.
"파이어 블라스터!"
화르르르르!
강력한 화염계열의 주문이었다. 겹겹으로 엉켜든 마나는 곧
선홍빛으로 빛나는 화염으로 화하였고, 일정한 크기와 굵기
를 유지하면서 나이츠를 향해 날아갔다. 온통 칠흑 같은 기운
으로 둘러싸인 신전의 대기를 붉게 물들일 정도로 대단한 기
세였다.
이번엔 마의 기운에 조종을 당하고 있던 나이츠의 표정이 적
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다. 풍검술을 사용하는 그에게는 그다
지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주문이었는데도,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광전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크으아아아아악!"
광전사로 변한 나이츠의 입에서 순간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
에게 날아드는 화염을 보며 몸을 뒤로 빼냈던 아노 신관마저
흠칫할 정도로 처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마법을
펼친 화이엘의 화염이 그대로 그의 몸에 부딪혔고, 순간적으
로 엄청난 불길이 일며 그의 몸을 불기둥 속으로 휘감아버렸
다. 풍검술의 날카로운 기류 자체가 완전히 무시된 상태에서
벌어진 광경이었기에,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투의 입이
쫙 벌어졌다.
'풍검술을 사용하는 나이츠에게는 웬만해선 마법이 통하질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거지? 화이어
블라스터라고 해봤자, 5서클 마법인데.'
아까부터 계속 화이엘에 대한 의문이 싹터 오르던 아투는 차
갑게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연신 갸웃거
렸다. 하지만 나이츠가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보자, 다시 몸
과 마음이 축 늘어져 버리는 그였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아노 신관은 스태프를 아래로 내리면서 양손을 가슴으로 모
았다. 아이들을 지키고 있던 유클레샤와 데라시안도 그 자리
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해줄 수 있는 간단한 기도식을
행했다. 사랑과 빛, 그리고 용기의 가호를 내리면서 꼭 천국으
로 가라는 내용의 기도문이었다. 하지만 그 긴 기도문이 끝날
때까지 아투와 화이엘, 미스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아
이들도 숙연해진 분위기를 깨닫고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신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르르르.
그때까지도 나이츠는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전신에 화염이
휘감겨 타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절대로 검을 놓지
않고 있었고,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켰다. 비록 마의 기운에
조종을 당하고 있는 그였지만,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나이츠……."
아투는 불덩어리가 되어버린 나이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
다. 그가 쓰러질 때까지 바라보면서 친구로서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사과를 할 참이었다. 화이엘의 행동에
대해서 따져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냥 마음이 시
키는 대로 행동하고픈 게 그의 심정이었다.
움찔. 순간 불길에 휩싸인 나이츠의 몸이 움직였다. 계속 시
선을 고정하고 있던 아투는 아닐 것이라 믿고 싶었지만, 정말
로 그의 몸은 별 다른 손상 없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게
다가 이제는 그의 얼굴과 겹쳐져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있
었으니……. 그 마의 존재를 알아본 신관들, 그리고 차갑게 행
동하던 화이엘의 얼굴이 심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흐흐흐흐흐흐."
그가 웃었다. 나이츠가 아닌, 그의 몸 속에 파고든 어둠의 존
재…. 바로 섀도우 나이트라 불리며 역사 속에서 악명을 떨쳤
던 그가 웃고 있었던 것이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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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연재도 완료입니다. 부지런히 올려서 겨우 여기까지 올렸
네요. 이제 3권 연재 들어가겠습니다.^^* 즐독.
[골렘마스터] # 마족의 재등장, 섀도우 나이트의 위용[1] 3권 시작
마족의 재등장, 섀도우 나이트의 위용
달빛도 하나 없는, 별 하나 비추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찾아든 밤이었다. 축제의 뜨거운 분위기에 물들어 화려한 조
명으로 빛나던 거리도 어느새 무거운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
고, 거리를 가득 매웠던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모
든 생명을 지닌 것들이 동작을 멈춘 것처럼 섬뜩한 기분마저
자아내는 그러한 풍경만이 펼쳐졌다.
사실은 거리 전체가 어두운 안개를 연상시키는 기운에 의해
둘러 싸여진 것이었다. 거리에서 유흥을 즐기던 사람들은 모
두 바닥에 쓰러진 채, 어둠의 안개에 묻혀 움직일 줄을 몰랐
고, 건물들도 마치 오래된 폐허처럼 변한 상태였다. 오색빛깔
찬란히 빛나던 등불도, 구름 속에 숨어서 수줍은 듯 얼굴을 내
밀었던 작은 초생달도 어둠의 안개를 이기진 못했다.
"이걸로 드디어 시작되는 것인가?"
놀랍게도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거리에 유일하게 몸
을 움직이며 말을 하는 존재가 있었다. 그는 검은색으로 차려
입은 멋진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유독 붉디붉은 망토만큼은
생명력을 가진 촉수처럼 꿈틀거렸다.
휘이이이이.
시내 부근에서 가장 높다고 감탄이 자자한 종탑에 오른 그의
전신으로 음침한 바람이 지나갔다. 만족스런 눈빛으로 싸늘하
게 식어버린 도시를 내려다보던 그는 문뜩 다가오는 강력한
존재감을 느끼고는 드러나지 않게 마기를 끌어올렸다.
"호호호호호. 과연 어둠의 마계를 지배하는 마왕답게 금방 내
가 다가오는 걸 알아채는데?"
순간 검은 갑옷의 기사에게 익숙히 들려오는 음성이 새어나
왔다. 흑기사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잠시 공간이 흔들리
는가 싶더니, 이내 아름답고 관능적인 모습의 여인 한 명이 나
타났다. 몸을 꽉 조여오는 보랏빛의 가죽옷이 터질 듯이 부풀
어올랐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머리를 흔들자, 염홍색의 머리
칼이 아름답게 출렁였다.
흑기사는 약간 살벌한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표
정을 풀고는 조금의 억양도 없이 말을 했다.
"테자이어. 여기까진 웬 일이지? 그저 욕망의 신관들만 빌려
줄 생각 아니었나?"
"호호호. 처음엔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뜻하지 않은
움직임이 보여서 말이야."
테자이어는 어둠의 마계의 지배자 마왕이자, 흑기사라 불리
는 타크니스를 바라보고는 그렇게 대답했다. 평소에 몸에 벤
습관 때문에 그녀의 얼굴 가득히 요염한 미소가 피어났다.
"뜻하지 않은 움직임?"
농담을 하는 태도로 말을 하지만, 은근히 타크니스는 그녀의
말이 신경 쓰이고 있었다. 욕망의 마계를 지배하는 마왕인 그
녀가 작은 움직임으로 이렇게 모습을 드러낼 정도라면 과연
그 움직임의 정체는 누구라는 말인가. 그러한 걱정이 타크니
스의 얼굴로 드러나면서 표정이 묘해져 버렸다.
"후후후후. 이봐, 타크니스. 너무 긴장하는 거 아니야?"
테자이어가 잔뜩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는 흑기사의 등을 툭
툭 두드리며 말했다. 순간 자존심이 상한 타크니스는 매몰차
게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갑자기 크게 노하여 외쳤다.
"어둠의 마계를 무시하지 마라! 테자이어, 네 녀석이 감히 나
에게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윽……."
사실 마계의 마왕 타크니스, 테자이어, 티스페어는 동등한 입
장의 존재들이다. 지닌 능력과 기술도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서로 대적한다면 쉽사리 승부의 결말을 예상하기도 힘들다고
들 하는 위대한 권능의 존재들. 하지만 지금 살기 어린 타크니
스의 한 마디에 테자이어의 얼굴에는 곤란하다는 감정이 역력
히 묻어났다. 암암리에 둘 사이에 무슨 묘한 관계가 성립된 모
양이었다.
스르르르르르.
그때였다. 무언가 또 다른 존재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
다. 거의 동시에 그 낌새를 눈치 챈 타크니스와 테자이어는 내
심 불안해하면서 마기를 적당량 끌어올렸다.
파핫!
그때 갑자기 알 수 없는 존재가 움직임을 멈추는가 싶더니,
한쪽 공간에서 강렬한 바이올렛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반
사적으로 한쪽 손을 들어올려 눈을 보호하던 두 마왕의 시야
에 강한 마기를 풍기는 또 한 명의 존재가 들어왔다.
"허험. 다들 여기 모여있었군."
절망의 마계, 그 위대한 지배자인 티스페어였다. 그는 보랏빛
이 감도는 깔끔한 메탈 색깔의 정장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그
의 보랏빛의 장발과 묘한 매치를 이루었다. 고위 마족들이 겉
으로 드러내는 모습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답다고 해도, 티스
페어의 외모는 정말 마계에서도 칭찬 받을 만큼 훌륭했다.
"오늘따라 너희 둘 다 상당히 기분 나쁜 등장을 하는군."
타크니스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다시 까맣게 죽
어버린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오자마자, 눈치를 받은 티스페
어는 잠시 욕망의 마왕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똑같
이 도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둘 다 그 사실을 알고 이곳으로 모인 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흑기사를 보며 티스페
어는 이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장난
기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욕망의 마왕에게 물었다.
"흠. 아직 모르고 있었나? 테자이어. 너는 알고 있었겠지?"
"호호호호. 엔젤 나이트들이 지금 이곳, 퓨티아 제국의 수도
에 모여있다는 말을 하려는 거야?"
"자, 잠깐! 지금 두 사람 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타크니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귀를 기울이며 두 마왕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엔젤 나이트라니. 분명 그 부분에 대해
선 정보 수집 능력에서 뒤질 리 없는 사크슨에게 명령해 조사
하라고 일러두었는데, 어떻게 그런 수하를 둔 나보다 다른 마
왕들이 먼저 엔젤 나이트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는 걸까. 순
간 사크슨에 대한 실망감이 찾아든 그는 약간 굳어진 얼굴로
티스페어를 바라보았다.
"엔젤 나이트들이 여기 모였다는 소식은 어떻게 듣게 된 거
지? 직접 그들을 목격이라도 한 건가?"
"내가 직접 보진 않았지만, 정보 수집이라면 사크슨이란 자네
의 수하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블러드 로즈에게 들
은 얘기이네. 이 정도로 말하면 내 말을 믿을 수 있겠지?"
자신 있게 답하는 그를 보며 흑기사는 잠시 눈을 감고 블러
드 로즈라는 마족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자세히 기억나는 것
은 없었지만, 분명 마족의 피를 이어받은 반마 요괴 중 하나
인 뱀파이어의 족장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뱀파이어
중에서도 족장의 위치까지 오른 존재라면 사크슨과 비교해 뒤
질 것은 없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테자이어는 어떻게 그 사실
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혹을 품은 흑기사가 그녀에게 고
개를 돌리며 추궁했다.
"테자이어. 너는 어떻게 그걸 알고 있었지? 네 밑에 있는 수하
들 중 정보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자는 없었을 텐데?"
"호호호. 날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비록 우리 욕망의 마계
가 가장 전투력 면에서 취약하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능력을
사용해 인간들이나 다른 종족들을 유혹하면 어둠과 절망의 마
계를 능가할 수도 있어. 당연히 엔젤 나이트들의 동태는 예전
부터 파악해뒀었지."
그녀는 손가락 하나를 세워 절레절레 저으며 타크니스를 살
짝 놀렸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파악한 그
녀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럼 나만 모르고 있었단 거군. 흐음."
"뭐 그렇게 실망하진 마라고. 어차피 엔젤 나이트들과 직접적
으로 대면하게 될 존재는 너뿐인 것 같으니 말이야. 호호호
호. 이거 타크니스가 신족과도 안면이 생기게 되니 마계를 통
일해버리는 거 아니야?"
"테자이어. 장난은 거기까지다. 더 이상 날 가지고 놀려 한다
면 너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게 해주지."
흑기사는 계속 참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자신을 놀리려 드
는 테자이어를 보며 결국 참고 있던 분노가 표출해 강력한 마
기가 전신에서부터 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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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시작입니다.
조아라에서 오신 분들의 독촉으로 최대한 빨리 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