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왕성 홀리 캐슬[4]
"하하. 뭐야. 아무래도 삐친 것 같은데?"
아투가 은근슬쩍 토라져있는 그녀의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
을 걸었다. 처음에는 계속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던 미스티도
몇 번의 손가락 공격에 맥없이 무너져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
며 살짝 드러난 두건 밖으로 귀엽게 눈을 흘겼다.
"미안해. 너무 긴장해서 나도 정상인 것 같지가 않거든."
이제야 조금 풀린 듯한 그녀를 보며 아투가 푸념을 했다. 밝
은 표정을 회복한 미스티는 일부러 장난 식의 비아냥거림으
로 아투를 놀렸다.
"훗. 말도 안 돼요. 9서클 마도사가 인정한 골렘술사인 아투
가 긴장을 하다니. 게다가 이제는 공격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
도록 도움을 줄 마법 아이템까지 얻었잖아요?"
미스티는 실피스가 선물한 마나 애로우를 얘기하는 것 같았
다. 아투는 망토 속으로 가려진 그것에 살짝 손을 가져가 보더
니, 미스티에게 화살을 쏘는 듯한 시늉을 해 보였다.
『못 봐주겠군. 여기는 적진임을 잊지 마라, 주인이여. 내 생
각에는 교황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미스티를 노리던 붉은 화
염 기사단의 배후인물은 너도 알다시피 교황이 확실하니 말이
다.』
발소리를 완벽히 죽이며 아투와 미스티의 뒤를 엄호하듯 따
르던 가이트리아가 정말 긴 침묵을 깨고 한 마디 내뱉었다. 지
금까지의 상황을 잊고 태평하게 장난을 치던 아투는 골렘의
충고 덕분에 실수를 깨닫고는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미스
티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교황의 의심을 사게 될 수도 있
기 때문에 미리미리 예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걷지 않아 홀리 캐슬의 내성이 드러났다. 외성과 외관상
으론 별 차이가 없이 하얀색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
이 놀라웠다. 돈이 얼마나 많아야지 값비싼 화강암 원석으로
이렇게 거대한 성을 지을 수 있을까. 아투의 머리 속에는 잠
시 동안 돈에 대한 계산으로 가득 차버렸다.
"골렘술사."
누군가 아투를 불렀다. 하지만 잠깐 딴 곳에 정신을 팔고 있
던 아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딴 청을 피웠다.
"골렘술사! 당신, 지금 내 말이 안 들리나?"
그제야 아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자꾸 사납게 굴고 있는 붉은 화염 기사가 부른 것임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자연스레 일그러졌다. 그래도 일개 호위를 맡고
있는 사람에게 기사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의 태도로는 이상
할 점이 없었기에, 다른 공작이나 백작, 그리고 교황도 신경
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이츠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허리
에 매여진 검집을 만지작거렸다.
"왜 부르셨습니까?"
자신이 실수한 점도 있고 하니, 아투는 한 발짝 물러서며 몸
을 굽혔다. 다행히 기사도 기분이 풀어지는 모양인 듯 어깨를
쭉 펴며 말했다.
"여기에 골렘은 놓아두고 가길 바란다. 만약 명령을 어길 시
에는 성 내부적인 법률에 따라 처벌할 것이니, 명심하길."
"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투는 명료하게 대답한 뒤, 가이트리아를 향해 마인드 스피
커로 말했다.
『가이트리아. 일단 여기서 내가 무슨 특별한 명령을 하기 전
까지 대기해. 괜히 저번처럼 나도 모르게 졸졸 따라다니지 말
고.』
뿌드득.
『쳇. 알겠다. 위대한 주인의 말에 따르도록 하지.』
졸졸이라는 말을 들은 골렘이 잠시 이빨을 가는 듯 했지만,
상황을 생각하고는 화를 삭이며 명령대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
았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팔짱까지 끼면서 눈을 감으니, 영락
없는 목조 조각의 형상이었다.
"골렘이 참으로 세밀한 동작까지 취하는군요. 자세히 아는 바
는 없지만, 상당한 실력자인 것 같은데, 어떤가요?"
교황이 질문을 던지는 대상을 파악하기 힘들게 아리송한 말
투로 입을 열었다. 아투가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몰
라 머뭇거리자, 눈치 빠르게 루미니 공작이 나서며 가볍게 대
답했다.
"아주 못 쓸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그런가요?"
교황은 다시 한번 아리송한 말투로 중얼거리면서 완벽히 굳
어버린 골렘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수행 기사와 함
께 다시 내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곧 홀리 캐슬의 내성을 본 아투는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
다. 루미니 공작의 거대한 암흑성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크
기. 그런데 그러한 것이 외성도 아닌, 고작 성안의 또 하나의
작은 성이라 불리는 내성의 크기였던 것이다. 게다가 내성 양
옆쪽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뾰족한 첨탑이 두 개
나 서있었고, 탑의 꼭대기에는 빛의 창조 3대신들의 조각상들
이 아름답고 영롱한 자태를 뽐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
도로 경건한 분위기도 풍겨 나왔다.
"루미니 공작, 샤우드 백작. 저와 함께 가서 얘기를 좀 나누셨
으면 하는데, 괜찮겠어요?"
중성적인 말투로 교황이 물었다. 아마도 그들의 수행을 맞은
아투와 미스티, 그리고 나이츠를 때놓고 어디론가 데려가려
는 것 같았다. 교황의 이상한 권유에 약간 불안한 느낌을 받
은 나이츠가 급히 한 마디 하려 나서려 했지만, 샤우드 백작
이 손으로 살짝 저지했다. 아투 또한 나이츠의 생각과 비슷했
지만, 섣불리 나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괜히 이런 곳에
서 싸움이 붙었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파악하
고 있는 것이다.
루미니 공작은 그 품은 의도를 알 수 없는 교황의 말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해보더니, 이내 입을 열어 말했다.
"뭐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곳에 초대를 해주신
분도 교황이시니, 당신의 말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 요즘 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
을 듣고 싶습니다."
샤우드 백작도 공작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자꾸 걱
정을 하며 긴장하고 있는 나이츠에게는 자신이 찬 검을 가리
키며 안심하라는 신호까지 보냈다. 교황은 그들의 시원스런
대답에 잠시 만족스러운 듯 턱 부근을 어루만지다가 그를 수
행하는 기사들 중 한 명을 돌아보며 명을 내렸다.
"유카. 이 수행원들에게 묵게 될 방을 안내해주세요. 이들의
직위를 생각해서 유카가 알아서 정해줄 거라 믿어요."
"네, 알겠습니다. 교황님."
다행히 아투에게 계속 노골적으로 적의를 표현했던 기사는
아니었다. 잠깐 긴장했던 아투는 이내 유카라는 인물의 얼굴
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온순하게 생긴 얼
굴, 그리고 이십 대 초반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운
상대는 아니리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럼, 공작과 백작은 이리로 따라오세요."
교황이 남은 붉은 화염 기사단과 함께 루미니 백작과 샤우드
백작을 이끌고는 내성의 한쪽으로 사라졌다. 완전히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던 나이츠는
계속 불안한 생각이 드는 모양인지, 떨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
했다.
"자, 그럼 방을 안내해주겠네. 날 따라오도록 하게."
과연 유카는 기사답게 어느 정도 예의를 차린 말로 아투 일행
을 대했다. 연신 적의를 표현하던 몰상식한 다른 기사와는 확
실한 대비를 이루는 인성이었다.
유카라는 기사를 따라 걸어 들어간 곳은 성에 들린 평범한 사
람들이 묵게 되는 손님용 숙소였다. 일체 다른 시설과 다른 용
도로 사용되는 방도 없는, 그저 휴식과 잠을 청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침실과도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마치 일반 여관이
나 큰 호텔을 연상시키듯, 일렬로 쭉 늘어선 방문들을 본 아투
는 그다지 좋은 손님 취급을 받는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씁
쓸한 미소를 지었다.
'에휴. 메션 왕국에 잘 나가는 가문 아들인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쿡.
누군가 아투의 배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댔다. 아투의 표정
을 보고 그의 심정을 읽은 미스티가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장
난을 치고 있었다. 괜히 그녀에게 걱정을 끼쳤다고 여긴 아투
는 괜찮다는 표시를 하며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유카에게 집
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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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이번 에피소드 다 올리고 가서 또 글을 써야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