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왕성 홀리 캐슬[2]
사람들이 바삐 오갔다. 간혹 갑자기 등장한 이방인들을 향해
불쾌한 시선을 던지거나, 관심 어린 눈길을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할 일에만 열중하
며 길을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는 사람들조차 거대
한 갈색의 골렘에게만 눈길을 줄뿐이었다.
이곳은 퓨티아 제국의 수도 에리아. 바로 신성 제국의 건국
기념 축제 준비가 한창이면서 이미 축제 전야제를 맞이하고
있는 화려한 도시의 거리였다. 그리고 화려한 용모와 의상을
자랑하면서 거리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몇 일전 루미니 공
작의 영토를 떠나 수도로 향했었던 아투와 미스티 일행이었
다. 일행 뒤에 바짝 붙어 주변을 경계하는 가이트리아의 모습
은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빠르게 하는 요인으
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정작 일행 모두는 느끼질 못했다.
"우와. 역시 제국의 수도답게 축제 준비 또한 완벽히 해 놓았
는걸?"
아투는 주변의 길거리 풍경을 돌아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
뱉었다. 사유라 시에서 보았던 축제와는 사뭇 다른 엄청난 규
모의 것이었기 때문에, 주변 거리를 가득 매운 축제 준비물을
본 아투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미스티 또한 화려하게 장
식된 거리를 둘러보면서 아투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
다.
"훗. 정말 대단하네요."
"하하. 그렇지?"
아투는 환하게 미소짓는 그녀를 보면서 속으로 내심 불안해
했던 마음을 지웠다. 하지만 일행의 옆을 스쳐가며 날카롭게
눈알을 굴리는 사람을 보며 다시 불안한 마음이 싹터 그녀에
게 경고하듯 말했다.
"아참, 미스티. 여기서부턴 조심해야해. 어떤 녀석이 널 노릴
지 모르잖아."
아투의 표정은 진지했다.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고 있는 것
이다. 항상 자신을 배려해주고 아껴주려 하는 아투를 보며 미
스티는 따스한 감정이 일어 얼굴을 붉히면서 소매 속에서 무
언가를 뒤적거리다 꺼내 보여주었다.
그녀의 소매에서 나온 건 동그랗게 스크롤처럼 말려있는 종
이였다. 미스티는 그것을 아투에게 말없이 내밀었고, 종이를
받아든 아투는 잘 묶여진 리본을 풀어낸 뒤 구김 없이 펼쳤
다. 빼곡이 쓰여있는 글씨가 한 눈에 들어왔다.
보낸 사람을 쓰는 자리에는 정확히 다이티 라무스라는 이름
이 쓰여져 있었고, 그 옆에는 자필 사인과 도장이 찍혀 있었
다. 받는 사람은 루미니 공작이라고 쓰여져 있었는데, 내용은
신성 제국 건국 기념 축제에 한 번 참석하라고 하는 일종의 초
청장과 같았다. 아투는 천천히 눈을 내려가며 내용을 확인한
뒤, 약간 기분이 상한 듯 미스티에게 물었다.
"왜 이런 글을 출발하기 전에는 보여주지 않았어?"
"으응…. 사실은 그게 아투랑 함께 잊다보면 자꾸 중요한 사
실을 잊어버리게 되요. 나도 그렇고 싶지 않지만, 자꾸 마음
이 들뜨게 되어버려서…. 이 초청장도 당연히 아투에게 보여
주려고 했는데, 그만 잊어버리고 있던 거예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그녀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푹 숙였다. 아투는 내심 그녀의 말을 듣고 기뻤지
만, 아직 궁금한 점이 많았기에 감정을 절제하며 가디언 나이
트의 직책에 어울릴만한 태도로 되물었다.
"그런데 이 초청장이랑 미스티의 안전과 무슨 관계가 있어서
보여준 거야?"
"아투 백작. 그건 내가 대답하겠네."
미스티와 아투의 솔직한 대화를 담담하게 듣고 있던 루미니
공작이 드디어 자신이 설 자리를 찾았다는 듯 반갑게 맞이하
며 나섰다. 그는 잠시 입을 막고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목을
가다듬고 아투를 주시하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공주님은 지금 교황이 이번 모든 기이한 사건들의 중심 인물
이라고 판단하시고 계시네. 이성으로 판단할 순 없으나, 뭔가
마음 깊은 곳에서 자꾸 그러한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시더군.
어쨌든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교황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커
다란 일을 벌일 여력을 지닌 자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네. 우
리 연합 귀족 세력 또한 공주님의 생각과 일치 하다는 말이
지."
아투는 공작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내 그의 생각을 읽어
냈다. 이미 적의 중심 인물을 교황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금,
그에게서 받은 초청장에는 그만큼 많은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
이다.
곧 아투는 교황이 아직 루미니 공작과 공주의 접촉 여부를 파
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만약 미스티와 루미니 공작
이 이미 합류하여 모든 진상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알
고 있다면 공작을 수도로 불러드려 애써 환심을 사려는 짓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교황은 아직 미스티
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훗. 공작의 말이 맞아요. 이 초청장을 본다면 교황은 아직 내
가 이곳에 온 줄 모르고 있을 거예요. 따라서 내가 일부러 드
러나지만 않는다면 위험할 일이 없다는 얘기가 되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미스티가 다시 밝은 얼굴을 띄며 아투에
게 설명했다. 비록 루미니 공작과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긴 하
지만, 한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
다. 아투는 그 한 가지 오류를 집어내면서 루미니 공작과 미스
티를 번갈아 쳐다봤다.
"만약 교황이 그 중심 인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건지…."
"교황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아니라면 우리측에선 훨씬 더 유
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지. 이런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축제의
한 복판에서 살인 행각을 벌일 수도 없을 테고, 또 교황보다
강한 세력은 현재 없으니 우리 귀족 세력만으로도 충분히 모
든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네. 어찌 되었건 일단 교황을 만나
은근슬쩍 공주님에 대한 얘기를 꺼내본 뒤, 마지막 순간에 공
주님이 직접 등장하시면 모든 정황이 파악될 것으로 생각되
네."
굳게 입을 다문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샤우드 백작이 머리
를 감아 칭칭 두르고 있던 두건을 벗어 던지며 대화 중간에 끼
어 들었다. 비록 아투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대답이긴 했지
만, 아직 뭔가를 잊고 있는 그러한 찜찜한 기분이 드는 아투였
다.
『저기… 누군가가 오고 있다. 행렬로 봐서는 엄청난 권위를
지닌 자들인 것 같다.』
한참 길거리에서 머리를 싸매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아투의 머리 속에 가이트리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분명 루미
니 공작을 초청한 교황이 직접 마중을 나왔으리라 생각한 아
투는 몇 일전 준비를 해둔 손가락 사인으로 일행에게 신호를
보냈다.
"정말입니다. 거리를 꽉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
고 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던 나이츠가
일행에 선두로 나서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과연 책임 의식
이 투철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자세였다.
"길을 비키시오. 현 제국의 모든 신자들을 대표하는 교황 다
이티님께서 행차하십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사람들에게 길을 트라는 우렁찬 목소
리가 들려왔다. 길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은 그 한 마디
에 정확히 반으로 갈리어 길 양옆으로 물러났고, 공손히 고개
를 숙인 채, 지나가는 인물에게 경의를 표했다. 교황이라 자처
하며 모습을 드러낸 자와 그의 일행은 똑바로 넓게 트인 길을
따라 아투 일행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투는 상대편에서 먼저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기 전에 벗어
두었던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미스티도 벗어두었던 모자로
길다란 금발을 틀어 올린 뒤,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천으로 얼
굴을 가렸다.
『주인이여. 나도 이미 상대에게 알려져 버렸는데, 이렇게 그
냥 있어도 되는 것인가?』
석상처럼 다시 굳어져 말없이 서있던 골렘이 퍼뜩 아투가 잊
고 있던 점을 먼저 상기해내고는 급하게 말했다. 다행히 교황
일행이 다가오기 전에 일이었기에 아투는 급히 마나를 끌어올
려 가이트리아의 외관에 변화를 주기 위해 매직 아머를 생각
했다.
최대한의 변화를 주기 위해선 일단 광범위한 범위로 입혀지
는 갑옷이 적당할 것 같았다. 일단은 서클에 상관없이 얼굴부
분과 전신을 다 가려주는 윈드 아머로 결정을 본 그는 가볍게
수인을 맺으면서 주문을 읊었다.
다행히 아슬아슬한 시간차를 두고 초록빛의 매직 아머가 가
이트리아 몸체 위에 입혀졌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뒤에 다가
온 교황 일행이 아투 일행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정말 오랜만에 다시 뵙는군요. 루미니 공작."
온통 푸른색을 띄는 로브를 차려입고 나온, 지극히 나이가 들
어 보이는 노인이 그를 보호하는 두 붉은 갑주의 기사 앞으로
나서며 공작에게 말을 걸었다. 아투가 상황을 살피면서 생각
해보니 아무래도 그자가 교황 같아 보였다. 아투는 일단 첫인
상은 굉장히 온화해 보이지만, 그 속은 알 수 없다고 스스로
를 깨우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훔냘~ 열쒸미 업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