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74화 (74/244)

[골렘마스터]  # 골렘술도 첫걸음부터[3]

『강한 마력이다. 저 밑에서부터 인간치고는 꽤 강한 마력이

풍겨지고 있다. 주인이여, 너를 낳아준 인간의 마력과도 거의

상등할 정도인 것 같다.』

완만한 경사로를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가이트리아가 걷는

속도를 줄이며 경고했다. 마찬가지로 강력하게 풍기는 마력

을 느낀 아투도 걸음을 늦추었고, 주변의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마나장을 퍼뜨려 상대의 마나를 밀어 내보려 했다.

"허허허허허! 젊은이가 마음이 급한 모양이군. 첫 인사치고

는 아주 거칠게 나오는 걸?"

순간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꽉 매인 마나

가 주변을 가득 매움과 동시에 경사로의 끝 부분에서 맑은 남

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루미니 공작이 소개했던 전

궁중 마법사인 8서클의 마도사, 실피스인 모양이다. 아투는 가

이트리아와 잠시 눈빛을 교환한 뒤, 다시 걸음을 옮겨 경사로

를 내려갔다.

과연 경사로를 내려가자 아주 넓고 높은 공간이 시야에 들어

왔다. 천장은 반 돔의 형식을 띄고 있었고, 날카롭게 각이 진

건축물이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걸로 봐서는 고대에 유행했다

는 고딕 양식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사용한 것 같았다. 뾰족하

게 튀어나온 부분들과 매끄럽게 처리된 곡선들이 확연히 대립

되었지만, 나름대로의 멋을 뽐냈다.

더욱이 천장에는 거대한 구가 달려 튼튼히 고정된 모습이었

다. 거대한 구 주변으로는 그것보다는 약간 작은 사각의 반투

명한 큐브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두에서 밝은 백색의 빛이

뿜어져 지하 광장의 구석구석까지 비춰줬다.

"허허허. 반갑네. 젊은이. 난 실피스라고 하는 노망난 노인네

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지하 공간에 압도되

어 있는 아투에게 광장 중앙에 서있던 한 노인이 말을 걸었

다. 이마는 반쯤 벗겨져 전형적인 시골 노인을 연상시켰지만,

그 뒤로 이어져 땅까지 끌리고 있는 완전 순 백발의 머리는 노

인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암시하는 느낌을 받게 했다.

또한 노인의 의상도 보통의 마법사들과는 조금의 차이를 보

였다. 청아한 빛을 내는 옷감은 부드럽게 가공되어 소매 부분

으로 갈수록 그 폭이 넓어졌고 밑 부분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가슴 부분부터 이어진 끈은 허리 부근에서 끝

이 났는데, 품이 넉넉해 보이는 상의 전체에는 모두 여러 가

지 효과를 내는 마법 문자들과 도형들이 그려져 마력의 기운

을 풍겼다. 하의도 그와 비슷한 형태였다. 마치 치마와 비슷하

게 보일 정도로 밑으로 갈수록 통이 넓어진 부드러운 재질에

바지에도 알 수 없는 도형들과 문자들이 마력을 풍겼다.

"당신이 실피스님이신가요?"

아투가 노인의 모습을 살피면서 침을 꼴깍 삼키고는 조심스

럽게 물었다.

"허허허. 그렇다네. 하지만 가디언 나이트의 칭호까지 받은

자네가 이제는 모든 정사에서 물러난 나를 그렇게까지 조심스

럽게 대하니 조금 부담되는 것 같군."

아투의 공손한 태도가 은근히 마음에 든 것 같았지만, 노인

은 스스로를 낮추면서 손에 들린 기이한 생김새의 지팡이로

지면을 탁탁 두드렸다.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들을 엮어놓은

듯한 나무 막대 끝에 갖가지 보석과 구슬이 달려 있었는데, 바

닥을 치자 보석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지팡이의 끝을 타고 지

하 광장 전체에 스며들어갔다.

스으으으.

『굉장하군.』

"대, 대단하시네요."

아투와 가이트리아가 실피스가 사용한 마법을 알아채고는 거

의 동시에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실

피스는 뭘 그리 놀라느냐는 듯이 가슴 깨까지 흘러내린 턱수

염을 쓸어 내리며 말했다.

"허허허. 루미니 공작은 내 친구이네. 더구나 이곳은 그가 아

끼는 성이 아닌가. 자네의 수련 상대를 해주다가 행여나 이곳

을 파괴하게 되면 안 되니, 간단하게 보호막을 친 것이라네."

마법을 펼친 실피스는 아주 간단한 마법이라고 느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하지만 아투는 속으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란 상태였다.

이 거대한 석실 전체에 보호막을 치는 것은 엄청난 마력 소모

를 필요로 한다. 더구나 대련이 끝날 때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실피스의 마력 일부가 보호막을 유지하기 위해 빠져나간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서클에서 차이가 나는 상대라고

는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핸디캡을 가지고 시작하려 할 정도

로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다니. 아투는 은근히 자존심이 상

했고 가이트리아도 불편한 심기를 들어내며 낮게 포효했다.

"허, 거참. 아무리 드래곤의 성격을 닮았다고 해도 인간의 손

에서 창조된 골렘이 그 창조주를 얕보고 있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군 그래. 허허허허."

화이엘에 이어서 이제는 실피스까지 가이트리아의 진면목을

알아본다. 뭔가 다른 골렘과는 차이가 나는 것일까. 아투는 그

러한 생각으로 실피스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떻게 아셨죠? 제 골렘이 드래곤 하트를 지녔다는 것을?"

"허허허. 아무리 내가 노망난 노인네라고 해도 예전에는 마법

사라는 호칭으로 불리던 사람이네. 그 정도도 몰라선 얼굴도

들고 다닐 수 없지 않겠나?"

여유롭게 대답하는 실피스의 태도는 전혀 긴장한 사람으로

는 보이지 않았다. 반면 아투는 잔뜩 긴장하여 8서클 마스터

실피스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아투가 아직 본격적인 대련

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딱딱히 굳어있자, 역시 삶의 연륜을 가

진 실피스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 5서클을 넘어선 실력 있는 골렘술사라고 들었는데, 어

떤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자신 있게 다른 사람

들에게 실력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나?"

"솔직히… 저는 아직도 5서클 마나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

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 어느 정도까지의 마나를 끌어낼 수

있는 지조차 모릅니다. 남에게 대놓고 부끄럽게 자랑할만한

실력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아투는 솔직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실피스가 기대했

던 그러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아투의 대답을 듣고 난

뒤 얼굴이 구겨졌다. 뭔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허…. 젊은이가 아직 패기나 자신감이 부족하군. 내가 보기

엔 자네 정도면 골렘술이 크게 발달한 메션 왕국에서도 꽤 인

정받을 수 있을 것 같구먼."

피융!

천천히 입을 들썩이던 실피스의 몸이 갑자기 아투의 시야에

서 사라졌다. 아주 잠깐 동안 마나의 흐름이 조금 감지되긴 했

지만, 어디로 이동한 것인지 아투의 감각으로선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데, 무언가 아투의 어깨를 툭툭 치는 물건이 있었다.

"이봐, 젊은이! 사람이 이렇게 둔해서야 쓰나? 나 같은 늙은이

의 움직임조차 읽을 수 없다면 정말 어디다 쓰겠나?"

강하게 질책하는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고 아투가 황급히 뒤

를 돌아보았다. 과연 실피스가 기이한 형태의 지팡이를 들어

아투의 어깨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 평범한 노인의

인상이 풍겨서 조금 방심하고 있던 아투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대련하실 마음이 없으신 것 같은데, 제가 먼저 공격해보겠습

니다! 혹시나 저의 무례를 용서하세요!"

실피스가 본격적인 대련을 피한다는 느낌을 받은 아투는 그

의 대답도 듣지 않고 선제 공격에 나섰다. 이미 경사로를 내려

올 때부터 퍼뜨려놓은 마나장이 근처에 안전하게 배치된 뒤였

고, 가이트리아의 움직임 또한 최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조건

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건물 안이기 때문에, 아무리 보호막이

있다고 해도 상대가 대규모의 마법은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

는 게 아투의 예상이었다.

꾸오오오오!

안 그래도 상당히 여유를 부리는 노인네의 모습이 마음에 들

지 않았던 가이트리아는 곧 아투의 공격 신호를 시작으로 대

담하게 사정거리까지 들어와 있는 실피스에게 주먹을 날렸

다. 덩치와는 맞지 않게 바람을 가를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허허허. 성질이 급한 것 보면 요즘 젊은이 같기도 하군 그

래. 좋네. 자네의 실력도 체크해볼 겸 또 다른 목적도 달성해

볼 겸, 상대해주지!"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한 실피스의 몸이 순간적으로 모

습을 감추었다. 그를 노리고 날아들던 골렘의 거대한 주먹은

보호막으로 둘러 쌓인 바닥과 부딪혀 퉁겨졌다. 상당한 파공

음이 울려 퍼졌는데도, 바닥에는 흠집하나 없이 깨끗했다.

---

후아~~ 이번 에피소드는 다 올리고 자야 할 텐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