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가디언 나이트의 칭호[5]
강조를 웃음에 두어 크게 외치는 아투를 보던 화이엘의 이마
에 힘줄 하나가 불거졌다. 예전 같았으면, 한껏 애교를 부리
며 안겨들었을 테지만 확실히 사람이 변한 모양인지 다시 입
가에 살짝 미소만 지으며 아투를 찾은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
다.
"호호호. 어쨌든 아투. 할 말이 있어서 찾은 거야. 으음. 솔직
히 아투, 요즘 골렘술에 관심이 있긴 해?"
이틀 동안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가이트리아. 정말 목상으
로 변하기라도 했는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화이엘이 엉덩
이를 살짝 걸쳤는데도 평소다운 반응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투도 요즘 자신이 너무 나태해졌다고 생각
하고 있지 않았어?"
뜨끔. 정곡만을 찔러오는 계속되는 질문에 아투는 머쓱하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두었다. 사실 그도 자신이 몇 주 동안 계
속 방황하고 있다고 인정한 처지였다.
'가이트리아와도 거리가 좀 멀어진 것 같고, 그렇다고 골렘술
이 늘은 것도 아니고. 이런 걸 다른 사람들이 말하던 슬럼프라
고 해야 하나?'
솔직히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훗. 역시 그랬구나."
아투가 곧장 반박하지 못하고 수긍하는 눈치를 보이자, 화이
엘은 묘한 웃음과 함께 여운을 남기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
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
….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멀뚱하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
는 모습이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했는지, 아투가 용기를 내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아. 화이엘. 충고 고마워. 안 그래도 요즘 내 스스로가 뭔
가 어색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훗. 그걸 깨달았다니, 다행이야. 아참! 그리고 마력 등급은
확인해봤어? 분명 내가 느끼는 기운으로는 5서클 이상인 것
같은데 말이야."
"아, 그리고 보니 깜빡하고 있었다."
아투는 저번에 매직 아머라는 골렘술을 시도해보려다가 뜻하
지 않은 상황 때문에 뒤로 미뤄두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 점
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해준 화이엘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눈
을 찡긋해 보인 아투는 조금 걸음을 옮겨 자세를 잡기 시작했
다.
그런데 갑자기 화이엘이 그의 행동을 말리면서 급히 말을 덧
붙였다.
"으휴. 성질도 급해, 정말. 난 골렘술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아
투를 찾은 게 아니란 말이야.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어!"
그녀가 정말로 삐친 모양인지, 사납게 아투를 몰아붙이고는
획 하니 몸을 돌려 눈만 살짝 흘겨보았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
고 급히 사과를 하려 아투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지만, 그
녀는 더욱 냉랭한 태도로 손길을 뿌리쳤다.
"흥! 됐어. 어쨌든 몇 일 동안은 날 볼 수 없을 거야.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어디를 좀 다녀와야 하거든."
저벅저벅.
몇 일 동안 어디를 다녀와야겠다고 말을 남긴 그녀는 그 뒤
로 아투를 돌아보지도 않고 약간은 쓸쓸해 보이는 걸음을 옮
겼다. 너무 빠른 행동이라 잠깐 멍해있던 아투는 급히 그녀의
뒤를 쫓아가 기분을 풀어주려 했지만, 어느새 그녀는 텔레포
트를 사용해 다른 편의 성벽 위로 올라가 있었다.
"화이엘! 정말 기분 많이 상한 거야? 난 화이엘을 무시하려는
생각은 없었어! 그냥 요즘 내가 머리 속이 복잡해서 잠깐 잊었
던 것 뿐이야!"
아투는 성벽 위의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똑같이 텔레포
트를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이성은 자꾸 솟구치는 마법
의 의욕과는 다르게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외쳤다. 골렘
술사로서 골렘술 외의 다른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안정성
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텔레포트를 잘못 사용하여 이상
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거나, 그 공간을 뛰어넘는 아공간에 갇
혀버리기라도 한다면…. 실제로 골렘술사가 너무 욕심을 부
려 아공간으로 사라졌다는 얘기를 접해 들었던 아투는 잠깐
머리 속에 떠올랐던 상상을 지워버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
다.
다행히 화이엘도 진심으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성벽에 오른 그녀는 조금 먼 거리였지만,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아투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뭔가 말을 하는 것이었
는데, 워낙에 목소리를 죽여서 말하는 터라 아투에게까지 들
리지는 않았다. 아투가 그녀의 입 모양을 확인하려 눈을 동그
랗게 떴을 때는 이미 늘씬한 화이엘이 신형이 성벽 위에서 사
라진 뒤였다.
『훗. 오래 걸리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난 기다리지 말고 미
스티만 생각하면서 잘 보살펴 줘. 앞으로 그녀가 상당히 힘든
입장이 될 테니까.』
마인드 스피커였다. 이미 화이엘의 모습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분명 아투의 머리 속으론 그녀의 음성이 또
렷이 들려왔다.
『아참! 그리고 골렘술도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거야.
이미 아투는 가이트리아의 엄청난 능력 때문에 6서클 마나 이
상을 지니고 있지만, 골렘술에서는 형편없는 실정이야. 둘이
호흡만 잘 맞추고 아투가 더 노력하게 된다면 분명 역사에 길
이 남는 골렘술사가 될 수도 있어.』
마지막으로 정리라도 하여 말하는 듯한 화이엘의 음성 때문
에 아투는 정신이 확 들었다. 분명 미스티를 생각하여 화이엘
에게는 가이트리아가 지닌 그 특별한 능력들을 설명하지도 않
았는데, 어떻게 그녀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하
는 것일까. 게다가 6서클의 마나를 지녔다는 어처구니없는 말
까지….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은 아투가 급히 마나장을
주변에 펼쳐내어 그녀의 위치를 추적하려 했지만, 이미 그녀
는 다른 곳으로 마법을 이용해 사라진 모양이었다. 이 근방
100베타 안쪽에서는 그녀의 마력과 존재감이 감지되질 않았
다.
'도대체 화이엘의 정체는 뭘까?'
아투는 새삼 그런 의문이 싹 텄다. 혜성처럼 사유라의 축제
행사중 하나인 마법 대회에 등장하여 우승을 하고, 또 다짜고
짜 그를 따라나서겠다고 우기던 그녀. 노골적으로 아투에게
애정 표현을 하여 미스티의 질투를 자아냈던 여성. 아투가 그
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다였다.
『주인이여. 화이엘 그녀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일
가능성도 있다.』
"으아아아악!?"
막 골렘의 팔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기려 했던 아투는 지금
껏 말이 없다가 귀신처럼 목소리를 흘리는 가이트리아 덕분
에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뭔가 확신을 내리는 그
런 느낌의 어조 때문에 아투는 작은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다.
"가이트리아. 넌 뭔가 알고 있는 눈치다?"
『넘겨짚지 마라. 난 그저 가능성을 말했을 뿐이다.』
가이트리아는 또다시 싱거운 말을 남기고는 몇 일 동안 구부
리고 있던 거구를 일으켰다. 관절 부분마다 기름칠을 하지 않
은 금속의 것과도 비슷한 소리가 자그마하게 새어나왔다.
『화이엘의 말을 듣고 뭔가 느낀 점이 없나?』
완전히 일자로 몸을 펴고 멋진 폼으로 팔짱을 낀 가이트리아
가 고개를 떨구어 저만치 아래에 있는 주인을 향해 말했다. 아
투는 약간 목이 뻐근해옴을 느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
를 쳐들어 골렘과 눈빛을 교환했다.
『흐음. 그래도 뭔가 느낀 점이 있는 모양이군.』
"얼래? 난 아직 대답도 안 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골렘의 입장에선 의외이다 싶을 정도로 비유의 표현까지 사
용해 친근감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아투는 눈치도 없이 맹한
소리를 내뱉었다. 말을 마치고도 뭔가 실수를 한 느낌도 없는
모양인지, 표정의 동요 또한 없었다.
허나…, 자존심이 강한 가이트리아가 이런 멍청한 주인의 모
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언성
을 높이며 거대한 손가락으로 아투의 몸을 툭툭 쳐버렸다.
『이 바보 같은 녀석! 어차피 네 녀석과 나는 계약의 단계를
넘어선 뭔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당연히 눈빛
만 보고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퍽!
"으아아악! 사람 살려!"
나중에는 골렘이 힘 조절을 잘못한 모양인지 손가락에 툭툭
치이던 아투의 몸이 허공을 붕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미처 상
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었
다. 가이트리아도 이번엔 조금 심했다고 느낀 모양인지 간신
히 몸을 일으켜 켁켁 거리는 주인을 바로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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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만 남아도는 골렘입니다... 쿨럭. -_-;;
그나저나 여자에게도 거의 잡혀 살 듯한 아투.
골렘에게도 잡혀살겠군요...;;;
일단 여기까지 올리고 또 글 좀 쓰다가 자기 전에 몇 편 더 올
리겠습니다. 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