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미스티의 정체[6]
『대충 상황을 알만 하군.』
어느새 소리도 없이 다가온 가이트리아가 아투의 앞에 멈춰
서며 말했다. 마나장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골렘은 그동안 가
이트리아가 성장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었지만, 드래곤 하트
의 영향력이 더 큰 것이 사실이었다.
주머니를 받아들고 나서부터 꼼짝도 하지 않는 아투에게 화
이엘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투. 이제 어떻게 할거야? 그냥 메션 왕국으로 돌아가는 거
야?"
메션 왕국으로 돌아간다? 분명 아투는 미스티의 기억을 되찾
아주기 위해, 그리고 또한 저주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워진 아
버지를 구하기 위해 퓨티아 제국에 온 것이다. 그런데 돌아가
다니. 아투는 그 두 가지의 목적을 모두 이룰 때까지는 절대
갈 수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의 상태가 더욱 더 악화되어 가
고 있을 듯한 지금, 최소한 퓨티아의 수도에 있는 대신전의 하
이 프리스트에게 자문을 구해야겠다고 다짐한 그였던 것이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히 깨달은 아투는 화이엘의 질
문에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 솔직히 이제 미스티. 아니 헬레니아 공주님에겐 우리
같은 사람보다는 퓨티아 제국 사람들이 더욱 필요할 거야. 우
리는 이쯤에서 빠져줘야겠지."
"그럼, 이제 어디로 가지? 난 아직 아투와 함께 있고 싶은데?
더구나 나와 라이벌 관계였던 미스티까지 이렇게 떠나버린 이
상 우리 둘 사이를 방해할 사람은 없잖아? 호호호."
붉은 머리칼을 양손으로 쓸어 내리던 화이엘이 갑자기 눈빛
을 빛내며 애교를 떨었다. 목소리가 나긋나긋 살살 녹아드는
것을 보니 잠깐 없어졌나 싶었던 그 병(?)이 또 도진 모양이
다. 화들짝 놀란 아투가 슬쩍 뒤로 물러섰고, 그녀는 아쉽게
입을 쩝 거리면서 미련이 남아 있는 듯 저택을 향해 몸을 돌렸
다.
꾸오오오오오!
"가이트리아! 왜 갑자기 또 소리를 지르고 그래!?"
갑자기 엄청난 크기로 포효를 내지르는 가이트리아 때문에
귀가 얼얼해진 아투가 양손으로 귀를 막으면서 소리쳤다. 미
처 빠르게 반응하지 못한 화이엘은 멍해져버린 귀에 손가락
을 집어넣다 뺐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청력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멍청한 녀석. 네 녀석을 주인이라고 믿고 따르는 게 부끄러
울 정도이다.』
안 그래도 아투의 마음 또한 심란한 상태인데, 자신을 무시하
는 소리를 골렘이 해대자 화가 난 그가 전에 없이 가이트리아
에게 버럭 화를 내며 답했다.
"가이트리아! 아무리 내가 널 존중해준다고 해도 난 너의 주
인이야. 물론 친구처럼 해주는 충고도 고맙지만, 그런 친구의
마음 또한 이해해주면서 그냥 조용히 있어주는 것도 좀 배우
라고!"
『웃기고 있군. 넌 지금 엄청난 세력가라는 샤우드 백작의 배
경에 눌려버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생쥐와 다름없다. 그저 마
음이 가는 대로 따른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을, 뭐 하러 속
마음까지 꼭꼭 숨겨가면서 이런 고생을 사서하지?』
똑바로 아투를 노려보던 가이트리아는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
을 마인드 스피커로 전달하면서 바닥에 철푸덕 앉아버렸다.
물론 아투의 의식과 연결된 마인드 스피커의 내용을 들을 수
없던 화이엘은 그냥 눈치만 살피면서 가이트리아의 다리 부분
에 걸터앉았다. 뭔가 심각한 표정들이었기 때문이다.-적어도
화이엘에게는 무표정한 골렘의 얼굴의 그렇게 보였다.-
"누군 이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하지만 미스티가
원하지 않았어. 넌 보지 못했지만, 난 똑똑히 보았어. 샤우드
백작이 우리를 내보낼 때도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숙
이고 있었단 말이야!"
『이런 바보 같은!』
콰과광!
순간적으로 드래곤의 성격이 살아난 가이트리아가 그 분을
참지 못하고 거대하게 주먹 쥔 손으로 땅바닥을 내려쳤다. 대
리석으로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산책로의 일부가 그 충
격으로 볼 품 없이 부셔졌지만, 아직도 골렘의 목소리에선 노
기가 느껴졌다.
『넌 이런 생각은 안 해봤나? 샤우드 백작 또한 미스티를 노
리는 존재들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샤우드 백작 또한 적일 가능성?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
까. 한심하다는 자책감이 아투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
까지 미스티를 해하려 했던 존재는 정말 다양할 정도로 많았
다. 하급 마족. 빛의 신관과 어둠의 신관. 정식 기사. 암살자.
이런 자들을 자유롭게 부릴 수 있는 존재라면 샤우드 백작 또
한 수하에 둘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의심이 가는 교황
이 아니라 샤우드 그 자신이 모든 일을 꾸몄을 지도 모른다.
가이트리아의 충고에 이제야 본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아투
는 모든 고민 따위가 사라진 얼굴을 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맞아. 내가 잊고 있었어. 정말 가이트리아의 말처럼 난 샤우
드 백작이 지닌 인물의 배경에 쪼그라들었던 거야."
"아투…? 괜찮아?"
화이엘이 혼자 넋이 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중얼거리는
아투를 보자,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아. 이제야 내가 뭘 해야 할지가 확실히 정해진 것 같으
니까."
"메션 왕국으로 돌아가는 거야? 아니면 원래 아투의 목적대
로 우리 둘이 퓨티아의 수도로 갈까? 호호호. 난 어디든지 따
라갈 수 있어. 게다가 아직 내 진정한 실력도 보여주지 못했
어. 내가 아투의 신부감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걸 보여줘야 하
는데 말이야."
그녀는 괜스레 과장된 동작으로 사랑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
다. 하지만 그러한 동작 하나 하나가 지금 아투의 눈에 들어
올 리가 없었다. 이제 마음을 완전히 굳힌 그는 바닥에 앉아있
던 가이트리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오랜만에 강력한 수
준의 마나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슈아아아!
푸른빛의 마나가 아투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기
운들은 얇은 막을 형성하면서 샤우드 백작의 메인 저택 주변
을 완전히 매웠다. 마치 뿌연 안개가 낀 새벽녘을 연상시키는
광경이었다.
꾸오오오!
마나장의 기운을 받은 가이트리아가 훌쩍 4베타가 넘는 몸을
일으키고는 아투의 앞을 막아섰다. 골렘의 두 눈에선 이미 노
란 광채가 쏟아지고 있었고, 나무로 된 몸 전체에 강한 힘이
들어가 보였다.
골렘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화이엘은 엉덩이를 쓱쓱 문지르면서 엄살을 피웠다.
"히잉! 아프잖아! 일으킬 거였으면 말이라도 해주지!"
"미안해.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따지고 들 때가 아닌 것 같은
데?"
"으……."
뭐라고 다시 한마디 대꾸하면서 쏘아붙이려 하던 그녀는 이
내 아투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그의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바로 저택 주변에 우거진 풀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여러 존재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개인 소유의 바로 샤우드 백작님의 저택에서 함부로
마나장을 전개시켰다! 이건 엄연한 선전포고로 생각한다! 이
제부터 당신을, 아니 네 녀석을 존중하던 말투 따윈 버리겠
다!"
어느새 나이츠란 사내 또한 저택의 큰 문 밖으로 나와 검을
뽑아든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는 전신 무장을 한 사
내들이 무서운 눈초리로 아투 일행을 노려보았다. 미리 이런
상황이 생길 줄 예상하고 많은 준비를 해둔 것 같았다.
"왼쪽 나무 뒤에 둘. 오른쪽 풀 숲 뒤쪽으로 하나. 그리고 우
리 바로 등뒤에 있는 큰 바위 뒤에 셋. 더구나 숨어 있는 사람
들은 모두 마법사 같은데, 아투는 어떻게 생각해?"
화이엘은 태연하게 겉으로 미소짓고 있었지만, 조그맣게 목
소리를 낮추고 긴장된 표정을 숨기고 속삭였다. 아투 또한 숨
어있는 존재들의 기운까지 느낀 모양인지,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술을 꿈틀거렸다.
---
다시 업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