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58화 (58/244)

[골렘마스터]  # 미스티의 정체[2]

"그렇다면 교황. 당신과의 계약은 어찌될 것 같나? 지금 상황

이라면 계약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은데."

"그것은… 음… 방법이 있습니다."

이대로 마족 세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신의 힘

을 얻기 전까지 만이라도 잡아두어야 한다. 교황은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한 가지 궁책을 떠올리고는 조심스럽게 말했

다.

"신관들. 그러니까 하이 프리스트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신관

들을 이용하여 메션 왕국에 존재하는 성물을 찾아내는 것입니

다. 물론 그것만 파괴되면 마족들의 힘도 본래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제가 원하는 그 고대 비기 또한 쉽사리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비기를 사용하여 제가 신의 힘을 얻고 공간

과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신적 존재가 된다면, 대륙 전 지역

에 있는 모든 성물들을 찾아내 제 손을 파괴하겠습니다. 어떻

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지상에는 저 혼자 신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마족들은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자유롭게

지상계로의 왕래가 가능해질텐데."

비록 궁한 상황에서 생각해낸 방법이라고 해도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타크니스에게는 아주 현명한 방

법처럼 여겨졌다. 어차피 자신이 가져다줄 고대의 비기는 신

의 능력을 얻게 되긴 하는 것이지만, 그게 교황의 생각처럼 사

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족 편으로 끌어들여 성물을 파

괴하는데 용이할 것이다.

"흠. 그나마 쓸만한 방법 같긴 하군. 자네의 사정이 급한 것

같으니 어서 하이 프리스트들로 구축된 자들을 모아 메션 왕

국으로 보내게."

교황은 됐다 싶었다. 어떻게든 시간도 벌게 되었고, 다시 마

족의 신임을 얻었으며 또 자신의 뜻하는 바도 이룰 수 있게 되

었으니까. 이에 용기를 얻은 그는 마족의 지도자인 타크니스

에게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어둠 계열의 프리스트들도 자신의

수하로 있게 해달라고. 물론 이미 훗날을 내다보고 의미심장

한 미소를 짓고있는 타크니스에게서 승낙을 받아내는 것은 어

렵지가 않았다.

*  *  *

어둠. 온통 어둠뿐이다. 그리고 그 어둠 가운데에서 밝은 광

채가 솟아났다. 미스티는 자신이 알몸으로 둥둥 떠 있다는 것

도 잊은 채 하염없이 그 빛을 쳐다보았다.

"우리 공주님. 안녕?"

순간 빛이 사라지고 인자한 인상의 할아버지와 한 7세 가량

의 소녀가 나타났다. 노인은 사랑스럽게 소녀를 품에 안고 있

었고, 품에 안긴 소녀는 아주 편안한 태도로 노인을 따르고 있

었다.

저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야.

허공에 둥둥 떠돌던 미스티는 평화롭게 펼쳐지는 그 두 사람

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문뜩 자신의 머리 속을 괴롭히는 아련

한 기억 때문에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가슴 속 한 부분을 차

지하는 아주 따스한 느낌이었지만, 도무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리고 왜 저 노

인을 보자마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미는 것일까. 하지만

그 분노와는 다르게 마음 한 편에서는 알 수 없는 그리움 또

한 들고 있었다.

샤아아!

미스티가 잠시 혼란스런 마음을 진정시키는 동안, 밝은 빛에

둘러싸였던 두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대신 다른 푸

르스름한 빛이 한번 터짐과 동시에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하지만 생김새가 비슷한 노인이 흰색의 로브를 입고

나타났다. 그리고 어린 소녀 대신에 그 노인의 곁에는 나이대

가 비슷한 한 명의 남자가 서 있을 뿐이었다. 망토를 멋있게

두른, 깔끔하게 깎인 수염이 위엄 있어 보이는 얼굴. 인자한

인상의 상대편과는 거리가 있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금발의

멋진 생김새였다.

저, 저 분은… 저 분은….

마구 이상한 영상들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머리

속으로 이해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머리가 아파 왔고,

온 몸 구석구석이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으로 가득 찼다. 가

슴에 무언가가 팍 꽂혀 있어서 숨쉬는 것을 가로막는 듯한 갑

갑한 심정. 미스티는 말도 안 나오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그저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자네가 웬 일인가. 요즘은 통 보이질 않더니만. 허허허."

카리스마 넘치는 노인이 먼저 농담조의 말을 건네며 온화한

인상의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말을 받은 그는 고개만

푹 숙이고 작은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몸을 바들거릴 뿐이었

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약간은 빛 바랜 금발의 노인이 친구

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자네. 어디가 아픈 것인가?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데."

"흐흐흐흐흐."

온화한 인상의 노인은 갑자기 이상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어

깨에 올려진 손을 싸늘하게 쳐냈다. 평소 같지 않은 친구의 행

동에 크게 놀란 금발의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친구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고, 웃음을 흘린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광기.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는 미스

티에게까지 뻗어오는 알 수 없는 광기와 살기. 그리고 살짝 감

겨진 시야에 들어오는 참혹한 광경. 온화한 인상과는 반대로

그 노인의 손에는 작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 단검이 지금

은 금발 노인의 가슴에 꽂혀 있었다. 바로 심장이 있는 그 자

리에.

선홍색의 피…. 그리고 배신감에 젖어든 슬픈 얼굴. 금발 노

인은 그렇게 믿었던 친구에게 목숨을 빼앗긴 채, 스르르 무너

져 내렸다. 미스티 또한 전혀 기억에 없는 그들의 행동을 보면

서 눈물을 흘렸고, 가슴이 미어짐을 느꼈다.

하지만 곧 밝은 빛이 다시 한번 주변을 휩쓸었고, 두 노인도

이상한 공간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 무의 공간에서 둥

둥 떠다니고 있던 미스티 또한 자신이 알 수 없는 세상과 동화

되는 야릇한 기분을 느끼면서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하아… 하아…."

기분 나쁜 악몽. 온 몸 깊숙이 잠식해오는 야릇한 꿈의 환상

속에서 간신히 정신이 든 미스티는 간신히 힘을 쥐어 짜내 몸

을 일으켰다.

온 몸이 축축했다.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는 얼굴은 지친 표

정이 역력했고, 땀에 완전히 젖어버린 반투명한 실크 잠옷 안

으론 새하얀 속살이 비쳐졌다. 하지만 미스티는 그러한 자신

의 모습에도 별 관심이 없는 듯 멍한 눈동자로 멀리 있는 창

밖의 풍경을 주시했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 벌써 똑같은 꿈을 꾸기 시

작한지 사흘 째. 그런데 왜 그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입안을

맴도는 단어는 아버지라는 것일까. 기억이 날 듯 말 듯 머리

속을 괴롭히는 꿈의 영상이 자꾸 미스티에게 떠오르고 있었

다.

"헬레니아 공주님. 당신은 미스티가 아니라 퓨티아 제국의 공

주이십니다."

문뜩 창 밖을 주시하던 그녀의 머리 속에 몇 일전 샤우드 백

작이란 사람이 해주었던 황당한 얘기가 떠올랐다. 그녀가 퓨

티아 제국의 공주이며, 이제는 황위제승권 1위에 올라 곧 제국

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쥐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교

황이라는 작자가 그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기억을 잃어버린 미스티로선 백작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분에서

는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슬픔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런 얘기를 듣는 와중에도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을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났다는 점에 기뻤고 반가

울 뿐이었다.

'내가 정말 공주였을까?'

하루 빨리 기억을 되찾았으면. 그래야 아투를 진실 된 모습으

로 대할 수 있을 텐데. 미스티의 머리 속엔 아직까지 온통 아

투에 대한 생각뿐이었지, 돌아가셨다는 아버지나 제국에 대

한 욕심은 전혀 없었다.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감

정에 대해 충실해질 뿐이다.

똑똑똑.

한참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미스티를 상당히 놀라게 했던 소리였지

만, 몇 일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아마도

자신을 돌보기 위해 아침 일찍 찾아온 하녀일 것이라는 생각

을 한 그녀는 잠시 흐트러진 머리를 바로 하며 들어오라고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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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우우우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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