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57화 (57/244)

[골렘마스터]  # 미스티의 정체[1]

미스티의 정체.

물거품이 된다는 느낌은 바로 이것이군. 교황은 자신에게 부

여된 집무실에서 국정에 대한 여러 가지 서류를 검토하다가

문뜩 자신이 놓인 극한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신이 되고 싶었던 욕망. 왜 그런 마음이 일었을까. 애초에 그

런 생각이 없었더라면 지금은 기도와 수행에 전념하면서 해탈

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절친

한 친구인 카드무랑과도 지금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 지도 모

르고.

하지만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렸음을 알고

있었고, 또 이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도 잘 알고 있

었다. 죽기가 싫다면 살아가는 수밖에. 신이 되고 싶다면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 낸 뒤, 나중에 이 썩어빠진 세

상을 정화하면 되니까. 교황은 거의 미쳐 가는 상황에서도 간

신히 정신을 차리고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크흠."

그나마 기대하고 있던 까마귀라는 암살 집단의 공격도 실패

로 돌아갔고, 더욱이 교황 자신에 대한 불신만 커져가고 있으

니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이티 교황은 곤혹스럽게 얼

굴을 찌푸리면서도 간단한 마법 도구를 이용해 밖에서 대기하

고 있던 빛의 신관 한 명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교황님."

문을 열고 집무실로 들어선 신관이 몸을 45도로 구부려 인사

를 한 뒤, 교황의 명령을 기다렸다. 잿빛 머리칼을 지닌 남성

신관이었는데 요즘은 교황의 눈에 들어 충성을 맹세하고 수

행 신관 역을 맡고 있었다. 더욱이 나이는 아직 중년에 지나

지 않아도 상황 판단이 빠르고 야심에 들어 찬 사나이였기 때

문에 단기적으로는 교황이 써먹기 쉬운 인물이었다.

"그래. 러드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거라."

교황이 엄숙한 목소리로 무시 못할 압력을 가해오자, 러드엘

이라는 빛의 신관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 하며 귀를 기울였다.

"험. 지금 할렘가에 있는 까마귀 집단을 만나고 와라. 물론 비

밀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그들을 만나면 즉시 모든 부하들을

이끌고 수도로 합류하라고 일러라. 그리고…."

이제부터 할 말은 좀더 위험한 말인 모양이다. 교황은 잠깐

신성력을 사용해 주변에서 엿듣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

인한 뒤, 다시 차분하게, 하지만 절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역할 수 없게 만드는 위압감 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 수도 어딘가에 어둠의 프리스트들이 와 있을 것이다.

그들의 하이 프리스트와 접촉하여 암흑 계열의 신관들을 모

두 수도로 모이게 하라고 전해라. 만약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

간다면 일이 성사되기도 전에 너와 나는 끝이니, 절대 비밀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교황님의 말을 이행하러 움직이

겠습니다. 나가봐도 되겠습니까?"

순간 러드엘이라고 하는 신관이 모든 교황의 음모를 파악한

모양인지 두 눈에서 불꽃이 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건 강한

배신감으로 이루어진 증오의 불길이 아니라 자신의 야망이 이

루어지는 배경으로 삼겠다고 하는 듯 먹이 감을 노리는 눈빛

이었다. 교황은 순간 그의 눈빛을 보며 자신이 언젠가는 그에

게 배신을 당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큰 일을 하

려면 그러한 위험쯤은 감수해야 하는 법. 다이티 교황은 너그

럽게 태도를 고치면서 깜빡 잊고 있던 존재를 떠올리고는 돌

아서는 러드엘을 불러 세웠다.

"잠깐만 기다려라. 깜빡 잊고 있었는데, 용기의 프리스트인

미사엘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하거라. 이제 그 때가 왔으니 빛

의 신관들 중에서 나를 따를 자를 선별하라고."

교황이 말을 마쳤는데도 러드엘은 꼼짝하지 않고 그를 바라

보고 있었다. 혹시나 또 다르게 할 말은 없는지를 생각하는 모

양이다. 하지만 다이티 교황은 이내 손목을 까닥거리며 그를

집무실에서 나가게 한 뒤, 한쪽 손으로 이마를 푹 짚었다.

스르르르.

그때였다. 갑자가 커다란 집무실 가득히 알 수 없는 사악하

고 음습한, 아주 어두운 기운이 꽉 차오르기 시작했다. 반사적

으로 신력을 끌어올린 교황은 몸 주변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막을 형성한 뒤,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검은 기운

이 뭉치는 지점으로 향했다.

"오랜만이군, 다이티 교황 나으리."

탄탄한 근육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호리호리한 체형과 그

위로 둘러싸여진 붉은 자아의 망토. 바로 어둠의 마계의 주인

이자, 암흑 창조 3대신 중 하나인 다크니스의 에이전트 타크니

스였다. 언제나 그의 허리에는 악마형의 기이한 검이 매여져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듯한 살기가 뿜어지는 물

건이었다.

갑자기 등장한 타크니스가 상당히 비꼬는 말투로 자신을 모

욕하자, 다이티 교황이 살짝 이마를 찌푸리며 인사를 올렸다.

"인사 올립니다. 타크니스님."

"그런 가식적인 인사 따위를 받으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어떡할 셈이냐. 다른 지역에 존재하는 성물들의 행방은 아직

도 묘연한 건가?"

타크니스도 상당히 다급한 입장인 모양이었다. 나타나자마

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그를 보며 다이티 교황은 슬쩍

미소지었다가 이내 표정을 감추고 답했다.

"지금 붉은 화염 기사단의 기사들을 풀어 열심히 찾고 있습니

다. 기사단 자체의 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흥! 웃기지 마라! 고작 기사급 인간들이 찾을 수 있을 정도라

면 우리들도 그 신성력을 느끼고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분명

하급 마족의 힘을 제약하는 가드 터널보다도 훨씬 더 알 수 없

는 곳에 숨겨져 있을 터, 보통의 인간들 정도가 찾아낼 수 없

음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만약 인간들의 힘으로 가능했다면,

태초부터 지금까지 건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타크니스는 교황의 시커먼 속을 들여다보고는 열이 뻗쳐 분

노를 표현했다. 대륙에 퍼져있는 성물을 찾으라고 명령했거

늘, 고작 기사급 정도가 되는 인간들로 뭘 어쩔 셈인가. 아무

래도 교황은 마족이 지상계로 진출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

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물론 타크니스 또한 교황을 속이고 있

었지만,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에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

던 것이었다.

교황은 자신의 속마음을 살짝이나마 들킨 것에 뜨끔하여 한

동안 말을 못하다가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수습하러 나섰다. 아

직까지는 마족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교황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라. 공

주 또한 이미 제국 영토로 들어왔기 때문에, 어찌 손을 쓸 방

도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최후의 일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 옛 마도 제국의 비기만 얻을 수 있다면 이 난

항을 빨리 타개하고 타크니스님을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됩

니다만."

위기에서 빠져나오면서도, 또 자신의 실속을 차리려는 교황

의 말솜씨. 타크니스는 마족에게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교황

이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마족보다도 더 사악한 존

재일 지도.

"우리도 지금 거의 실마리를 잡은 상태이다. 하지만 메션 왕

국에 보관되어지는 그 비기를 우리 마족이 어떻게 찾아오겠는

가? 중 상급을 비롯하여 하급 마족까지 힘을 못 쓰는 이 마당

에."

"그렇다면 마족 측에서나 제 세력 측에서나 난감한 일이 아

닐 수 없군요."

"큰일이군. 공주가 영토 내로 들어왔다면 그 귀족 인간들한

테 발견되어 사건 주동자인 교황 자네를 가만 두지 않을 텐데

말이야."

"이미 그쪽으론 다 생각이 있긴 있습니다만, 성물을 찾을 여

력은 솔직히 없습니다."

교황은 하는 수 없이 솔직히 대답했다. 사실 붉은 화염 기사

단도 귀족 세력이 병력을 이끌고 수도에 들이닥칠 것에 대비

해 24시간 대기 시켜놓았지, 성물을 찾으러 보내지 않았다. 타

크니스의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

다.

하지만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쪽은 마족인 타크니스도 마찬가

지였다. 힘이 강하게 속박 당하고 있는 상황에선 인간도 만만

치 않은 상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한 녀석들이 대거 출현하

는 전쟁이나 분란의 상황에는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 더구나

성물을 찾기 위해 마족이 지상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엔

젤 나이트들의 눈길만 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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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열심히 업로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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