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마스터-42화 (42/244)

[골렘마스터]  # 엉망진창 축제 중의 마법 대결[4]

'역시 내 힐링 마법 레벨로는 어림도 없겠어.'

"여보세요! 치유 마법에 능한 마법사나 신관 안 계시나요?"

자신의 능력으론 힘들겠다 판단한 아투가 주변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이미 어둠의 프리스트 쪽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 있어 그의 외침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

양인지 반응이 없었다.

'이런…. 저런 녀석보다는 차라리 살아있는 사람한테 신경을

써줘야 할 거 아니야.'

그는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으며 어쩔 수 없이 응급처리라도

해보려 옷자락에 손을 가져갔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긴 했

지만, 상처 주위를 압박하여 출혈을 막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곧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옷자락을

찢어내려 하는데,

"잠깐만, 아투. 내가 할게요."

어느새 따라 올라온 미스티가 나타나 그의 손을 살짝 밀어낸

뒤, 자신이 입고 있던 코트 자락을 '북' 찢어냈다. 뭐라 말하

며 그녀를 내려보내려 하던 아투도 소년 마법사의 상태가 심

각하여 일단은 입을 다물고 그녀의 행동을 지켜봤다.

다행히 그녀의 능숙한 솜씨 덕분에 출혈은 어느 정도 줄었고

새어나오던 신음소리도 잦아들었다. 최선을 다해 응급 처치

를 마친 그녀는 구부정했던 몸을 일으키며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음…. 어쩔 수 없이 이 찢어진 코트는 버려야 할 것 같네요."

미스티는 지혈대로 사용하느라 옷자락이 많이 찢어진 롱코트

를 벗으며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아투는 그녀의 능숙

한 치료 솜씨에 놀라 멍하니 서있기만 할 뿐, 입을 열지 못했

다.

"다, 다행이군. 늦지 않았어."

때마침 소년 마법사를 살피러 여성 신관 한 명이 당도했다.

성스러운 디바인의 문양이 하트를 닮은 걸로 봐서는 사랑의

신, 러브샤를 모시는 신관인 것 같았는데, 신관모 밖으로 매끈

한 흑발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가지런히 모아 가

슴에 가져가며 눈을 지긋이 감고는 성스러운 주문을 외웠다.

"세상 모든 존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러브샤의 이름으로 몸

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자에게 치유의 힘을…! 하이퍼 힐링!"

주문을 외우자, 가지런히 모은 손에서 푸른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천천히 이동하여 죽은 듯 누워있는 부상자 소

년에게 날아가 스며들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은 모양인지, 지

혈대 사이로 조금씩 새어나오던 검붉은 피도 멎었고, 고통으

로 일그러진 얼굴도 안정을 차츰 되찾아갔다.

"우와……. 역시 마법사의 '힐링'과는 엄청난 차이네요."

"훗. 신관은 신의 힘을 직접 빌리는 것이다 보니, 치유 마법

쪽으로 강할 수밖에 없죠. 다행히 음…. 이 소녀 분께서 지혈

을 한 것 같은데 맞죠? 어쨌든 소녀 분께서 능숙한 솜씨로 피

를 멎게 해놓아서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네요."

자신을 따라온 수행 신관들을 향해 신호를 보낸 러브샤의 프

리스트가 아투와 미스티를 돌아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슈아아아앙!

그때였다. 갑자기 대회장의 중앙에서부터 날카로운 파공음

이 울려나왔고, 그와 동시에 매서운 기류가 뿜어져 옷을 갈가

리 휘날렸다. 그 예사롭지 않은 기운에 반응한 아투는 고개를

휙 돌렸고, 옆에 있던 러브샤의 신관 또한 얼굴이 약간 굳어졌

다.

"저, 저럴 수가!"

아투는 자신의 눈에 들어온 광경을 보며 경악했다. 마법 대

회 관계자들에게 잡힐 듯했던 어둠의 프리스트가 일순간 검

은 안개에 휩싸이더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더욱이 그 자가 사

라지며 뭔가 수작을 부린 까닭일까. 갑자기 녀석이 사라진 자

리에서부터 검은 색의 빛 줄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이미 그 주

변으로 발생한 어둠의 임팩트 때문에 포위 작전을 펼치던 병

사들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러 저리 나뒹굴었고, 마법사들

은 베리어를 간신히 형성하며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곧 하늘의 구름을 꿰뚫고 사라져버린 그 검은 빛줄기가 맑고

푸르렀던 하늘을 삽시간에 잿빛 구름으로 뒤덮었다. 한창 햇

살이 내려 찌는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두운 구름들

이 사유라의 상공 전체를 가렸기에, 거대한 도시 전체가 순식

간에 암흑 천지로 변해버렸다. 게다가 아주 음습하고 스산한

기운까지 감돌아 대회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약간의 패닉

상태에 이른 듯 보였다.

"아투……. 이게 무슨 일이죠?"

"윽. 미스티. 나랑 떨어지지 말고 딱 붙어있어."

아투는 두려움에 질린 눈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스티

를 가볍게 어깨로 감싸 앉았다. 그와 비슷하게 긴장하고 있던

러브샤의 신관이 전방을 주시하던 차에 고음의 목소리로 외쳤

다.

"크, 큰일이에요! 사라진 어둠의 프리스트가 재앙의 힘을 불

러냈어요!"

"재앙의 힘!?"

다들 그녀의 말에 대한 반응은 일치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시선으로 모두들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한 것

이다. 하지만 그런 반응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저, 저걸 보세요!"

슈아아아아앙!

다시 한번 신관의 날카로운 경고의 목소리가 주변을 울림과

동시에 검은 빛이 쏘아졌던 그 자리에서부터 날카로운 기류

가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주변에 널려졌던 돌 부스러기와

대부분의 먼지들이 그 회오리 성의 바람에 휘말려 시야를 흐

리게 만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의 범위가 점차 넓어져

만 갔다. 어느새 경기장 자체를 덮어버릴 정도의 크기가 되어

버리자,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대회 관계자들이 관

객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소리쳤다.

"자자, 이곳에 있으면 모두들 위험하오! 어서 이곳에서부터

멀리 떨어지시오!"

"침착하게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진행 요원들과 사회자, 마법 학원의 마법사들과 사유라의 관

리들까지 모조리 동원되어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이

미 무시무시한 기세로 커져버린 검은 회오리를 본 사람들은

이성을 잃은 채, 무질서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채이고, 넘어지고 밟히고…. 서서히 사상

자가 속출했다. 최선을 다해 목청을 높여 그들을 이끌려던 사

람들도 아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저기 신관 님! 저 회오리가 뭐죠? 재앙의 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투가 그 난장판이 되어버린 경기장 밖을 바라보다가, 엄청

난 흡입력에 몸이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옆에 서

있는 신관에게 물었다.

"재앙의 힘. 어둠의 프리스트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저주받

은 권능. 저도 잠시 문헌으로만 접했을 뿐, 이렇게 직접 본 것

은 처음이에요. 어쨌든 저걸 빨리 막지 않으면 사유라의 녹아

있는 어둠의 힘을 점차 빨아들여 훨씬 커지게 될 거예요. 그렇

게 되면 아무리 이런 큰 도시라 하더라도 버텨내지 못해요."

"이런…. 무슨 방법이 없나요?"

아투가 습관적으로 자신의 일인 마냥 집중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미스티의 시선은 불안감에 젖어들며 살며

시 떨렸다.

"풍속성의 반대되는 힘으로 저 사악한 어둠의 권능을 이겨내

야 돼요. 아니면 아주 강한 빛의 계열 프리스트가 신력을 사용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아직 프리스트라 불릴 만한 존

재가 아니라서…."

친절히 대답해주는 여성 신관의 말에는 왠지 모를 허탈감마

저 느껴졌다. 아투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도시를 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침울해진 그녀를 향해 몇 마디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주려 했지만, 이미 거대한 흑폭풍은 미처 도망

가지 못한 사람들을 집어삼켜 까마득한 하늘로 날려버리고 있

었다.

괜히 죄 없는 사람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모습에 화가 치

민 아투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어쩔 수 없어요! 이대로 도망쳤다간 나중에 사유라에 주둔중

인 마법 군단이 나서도 저 회오리를 막지 못할 것 같아요! 신

관 님은 마법 대회에 참관자 자격으로 참석하신 저 분들에게

회오리의 정체와 소멸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그동안 제

가 어떻게든 막아보도록 할게요. 미스티도 우선 안전한 곳으

로 피해 있어."

그리고는 그 둘의 대답도 들으려 하지 않고 재빨리 자신의 몸

에 헤이스트 마법을 건 뒤, 회오리 바로 근처까지 접근했다.

뒤에서 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투를 저지할 순 없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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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후아. 잠시 숨 좀 돌리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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