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드러나지 않는 자[1]
드러나지 않는 자
"미사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상세히 말해보세요!"
신성제국의 현 실질적 지배 세력. 그 중심에 서있는 샤이트리
아 교단의 교황, 다이티. 평소 온화하던 얼굴은 온데 간데 없
이 사라지고 지금은 적지 않은 분노가 표출되고 있었다. 바로
막중한 임무를 띈 채 홀리 캐슬을 떠났던 용기의 하이 프리스
트, 미사엘이 흉한 몰골로 동행했던 레이도 버리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교황의 화난 모습을 보게된 미사엘은 스
스로가 교황의 기에 위축됨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순간적으로 흥분하는 바람에 신성력
을 낭비했습니다. 그에 합당한 벌은 달게 받도록 하겠으니 어
떤 벌이라도 내려주십시오."
"허허…."
교황은 허탈한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공허한 창 밖을 바라보
며 눈살을 찌푸리던 그는 참으로 묘한 강운 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벌써 공주를 죽이려 벌인 일들이 꽤 되지만, 정작 성공한 사
례가 없다. 더구나, 공주를 보호하는 사람들만 늘려놓은 꼴이
되어버렸으니…. 허, 참. 이런 회개한 일도 다 있구나.'
붉은 화염의 기사단도. 힘의 제약을 받던 하급 마족 셋도. 더
욱이 빛의 계열 하이 프리스트까지 나섰지만 해결된 일은 없
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도대체 이미 벌려놓은 일들을 어떻
게 처리해야 할지…. 또다시 심각한 고민에 빠져버린 그의 머
리 속에 문뜩 어떠한 존재가 떠올랐다. 미사엘과 함께 보낸
그 하급 마족. 가드 터널 파괴 후, 자만하던 그 다크 엘프 마족
은 어떻게 된 것일까? 교황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직책에 어
울리지 않게 무릎을 꿇고 있는 대신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녀는 교황님도 알다시피 마족이었습니다. 어째서 마족과
동행시키셨는지는 묻지 않겠으나, 아마도 그녀는 아트란이라
는 메션 왕국의 귀족에게 당한 듯 싶습니다. 게다가 그의 아들
로 추측되는 소년도 골렘술이 대단했던 것으로 추측하면 아
마 살아 돌아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허어…. 가드 터널까지 파괴되어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는
하급 마족이 인간에게 당했다는 말인가요?"
"아마도 아트란이라는 귀족은 8서클 마스터였던 것 같았고,
소년도 4서클 골렘술사였습니다. 특히 소년의 골렘은 타 골렘
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했습니다. 게다가 이상하
게도 레이라는 그 하급 마족.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
은 것 같습니다. 아니, 아마도 사용할 수 없었을 겁니다."
냉랭한 표정을 지은 채, 미사엘을 내려다보던 교황의 얼굴에
순간 당혹스러운 감정이 내 비췄다. 이미 하급 마족의 지상계
진출을 방해하던 가드 터널이 파괴되었는데, 무언이 그녀의
힘에 제약을 가했다는 말인가. 설마 지상계에 존재하는 가드
터널이 하나 이상 있다? 그렇다면 일이 더욱 복잡하게 된다.
잘못하면 타크니스라는 마족 대표와의 입장도 뒤틀리게 될 것
이다. 아직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일은 점차 커
져만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교황의 얼굴은 점차 내면의 고
통이 드러났다.
"교황, 아니 아버지. 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
오. 이번엔 꼭 목숨을 걸고 그 소녀를… 신성 제국의 공주를
영원의 나락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미사엘의 음성은 하나 흐트러짐 없이 명확했다. 또 그의 의지
가 명백히 묻어났다. 마치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의 말처럼.
교황은 잠시 따스한 눈길로 미사엘… 자신의 아들을 내려다
보았다. 언젠가 양아들로 맞이하여 신관으로의 수업을 받고
자라난 수재. 신학 쪽의 모든 학문을 깨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타고난 신의 종. 예전에 자랑스런 아들을 보며 생
각했던 단어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에게 화를 내며 책임을
추궁하려 했던 생각도 완전히 사라졌다.
'하이 프리스트. 한번의 실수로 죄를 묻기에는 너무도 대단
한 존재이다. 그래, 기회를 한번 더 주기로 하자.'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한 교황이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미사엘. 내 아들아. 그렇게 간곡히 부탁하니 들어주기로 하
겠다. 다만…."
완전히 약속을 받아낼 수 있겠다 생각하던 미사엘은 교황이
말꼬리를 늘이자, 당황하며 고개를 올려 시선을 옮겼다. 그리
고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다만 무엇인지…."
"다만, 내가 누군가와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으니 일단은 브레
이브 대신전으로 돌아가서 내 부름을 기다리거라."
용기의 신, 브레이브의 대신전으로 미사엘을 돌려보낸 교황
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가 지닌 강력한 샤이트
리아의 신성력을 바탕으로 걸어놓은 신성 자물쇠이니, 그 어
떤 존재라도 쉽게 열고 들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혹시나 하는 사태를 생각해 준비를 마친 그는 문
오른편으로 자리잡은 서재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
을 움직이며 붉은 표지로 싸여진 책을 찾았다.
'열려라.'
책 끝을 잡고 살짝 기울이자, 철커덕 소리가 울리며 뭔가가
돌아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기관이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였
다. 바로 전 황제가 비밀리에 사용하던 회의장소로 통하는 비
밀문과 연결된 것이었는데, 교황은 그와 아주 각별한 사이였
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곳을 잘 알고 있었다.
곧 기관이 멈추고 서재의 책장 전체가 한바퀴 벽안으로 돌아
갔다. 교황은 어둠으로 가려진 서재 뒤편의 복도를 보며 외쳤
다.
"성스러운 빛이여. 제 길을 밝혀주소서."
그가 가볍게 신성 주문을 외우자, 손에서 빛이 생겨나 허공
에 떠올랐다. 밝은 백색의 빛은 어두운 비밀 통로를 환희 비추
며 서서히 교황의 발걸음 속도에 맞추어 비행했다.
교황이 한 10베타쯤의 거리를 걸었을까. 짧은 통로 너머로는
대략 100여명 정도가 들어가도 남을 듯한 큰 아치형의 공간이
나타났다. 회색의 돌로 다듬어진 그 거대한 공간 중간에는 회
의를 위해 놓여진 원형의 테이블과 여러 개의 탁자도 준비되
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사용하지 않은 지가 한참이나 지난
듯, 뽀얀 먼지가 쌓여 있어 황량함을 느끼게 했다.
"교황. 이번 일은 어떻게 설명할 참이지?"
어둠 속에서 강한 위압감이 실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로 의
자에 앉아 교황을 기다리던 타크니스가 살기가 담긴 어조로
물었던 것이었다. 비밀 회의실 공간 전체가 그에게서 뿜어진
마기로 인해 숨이 탁 막힐 정도였는데도 교황은 아무렇지 않
다는 듯 그를 마주보며 태연히 의자에 몸을 맡겼다.
"아무래도 지상계에 마족 진출의 제약을 주는 무언가가 또 있
는 모양입니다. 공주를 죽이라는 명령과 함께 움직였던 그 레
이라는 마족이 자신의 본래 힘을 뽐내며 다시 한번 기회를 달
라기에 보냈더니만, 결국은 소멸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동행
했던 하이 프리스트의 말에 따르면 뭔가 그녀의 힘을 속박하
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흠. 물론 나와 같은 고위 마족이나 중급 마족의 힘을 제약하
는 신의 권능 발현체는 다른 곳에도 있음을 알고 있다. 허나,
하급 마족의 힘을 제약하는 가드 터널은 홀리 캐슬에서 파괴
된 걸로 아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의 커다란 음성이 정막이 흐르던 비밀 회의실 전체를 쩌렁
쩌렁하게 울렸다. 담담한 표정의 교황까지 잠시 어깨를 움찔
할 정도로 엄청난 기세였다.
'어차피 가드 터널만 파괴하면 될 것이라는 것은 마족 측에
서 먼저 꺼낸 말이다. 내가 이렇게 수그러들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자신이 위축되고 있음을 판단한 교황은 속으로 그런
말을 떠올려 위안을 삼으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분명 이곳. 신성제국에서는 완벽히 하급 마족의 힘을 사용하
던 그녀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메션 왕국에서는 제약
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정황을 살펴 추측을 하자면, 타국에
서도 그 영역을 수호하는 가드 터널과 비슷한 뭔가를 소지하
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분명 타크니스님께서 말씀해주신
얘기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교황은 온화한 눈빛 뒤에 숨어있는 교활함으로 엄청난 마기
에 둘러싸인 고위 마족을 바라보았다. 어둠의 신, 다크니스의
하이 프리스트까지 동원하여 겨우 만날 수 있었던 마족의 지
도자. 자신의 커다란 소망을 이루어줄 존재가 바로 그였던 것
이다.
"흠. 그렇다면 네 수하들 중 믿을 만한 놈들을 뽑아 조사를 해
보도록 해라. 아무래도 최소 몇 주일간은 우리 마족이 지상계
에서 발견되면 안 될 것 같군."
"그러지 않아도 벌써 생각해놓은 부하들 몇 명이 있습니다.
타국에 파견해놓은 첩자들과 연결하여 빠른 시일 내에 마족
에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지요.
그런데…."
시원스럽게 답을 하던 교황이 잠시 뜸을 들였다. 차츰 그의
얼굴은 경직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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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쭈우우우우우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