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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마스터-32화 (32/244)

[골렘마스터]  # 용기의 프리스트의 동료, 그녀는 마족[4]

신관을 놓쳐버린 아투가 어쨌든 막아냈다는 심정으로 바닥

에 드러누워 있을 때, 그의 아버지인 아트란은 마족, 레이와

팽팽한 접전 중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로브는 어느새 이곳저곳 눈에 띌 정도로 찢겨

져 있었고,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물론 8서클 골렘

술사인 그를 상대하고 있는 레이 또한 몸매를 강조하기 위해

입었던 붉은 옷 여기저기가 찢겨져나가 아찔할 정도였다. 둘

다 이미 많은 마나와 기력을 소비한 상태였고, 얼굴 또한 비슷

하게 땀이 흥건했다.

'골렘만 불러낼 수 있었어도 이리 시간을 끌지는 않았을 것인

데….'

상대를 주의 깊게 관찰하던 아트란이 마나 애로우의 마나를

주입하며 속으로 한탄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15베타 짜리 스

톤 골렘, 바이크론을 불러낸다면 당연히 쉽게 승부를 낼 수 있

었을 것인데, 이곳은 안타깝게도 시가지였다. 게다가 한 왕국

의 수도이다. 그런 곳에서 15베타 골렘을 움직여 싸운다면 상

대를 잡기 전, 도시가 먼저 파괴될 위험이 컸다. 때문에 아트

란은 자신이 불리해짐을 알면서도 매션 왕국의 신하된 도리

로 도시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골렘을 불러내지 않고 있었

던 것이다.

하지만 아트란만이 전력을 다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를 상대하고 있는 레이 또한 사실은 속으로 많이 당황하고 있

었다.

'분명히 신성 제국에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하급 마

족 전력을 다 끌어올릴 수가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겨우 절

반 정도 밖에 사용할 수가 없어. 왜지? 분명 가드 터널은 파괴

되었는데…. 왜 내 힘이 제약을 받는 거지?'

그녀는 얼굴로 날아드는 얼음 덩어리를 보며 급히 고개를 숙

였다. 다행히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 엄청난 냉기가

뿜어져 온 몸이 오싹해졌다.

상대 골렘술사는 골렘을 부르지도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싸

우고 있다. 물론 골렘술사, 그 직업의 특성 상 공격마법은 완

벽히 제한을 받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고작 마나를 이용해 화살을 매겨 쏘아

내는 마나 애로우에서는 놀랍게도 갖가지 공격 마법들이 쏟아

져 나왔다. 마치 마법의 매개물이 되어주는 듯 8서클 전 속성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듯 보였다. 역시 생김새부터가 기

이한 절대적인 존재가 탄생시킨 물건이었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여 버린 거지?'

절박했다. 어쩌면 하찮은 인간에게 자신마저 소멸 당할 것 같

았다. 어디서부터 마족인 자신이 이렇게 됐을까. 소녀를 쫓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움직인 나인데, 갑자기 금빛 청년이 다

된 일을 망쳐버렸고….

그녀의 머릿속엔 잘 생긴 금발의 청년이 떠올랐다. 고작 언령

의 힘으로 마족을 소멸로 몰고 간 존재. 이제는 오히려 두려움

보단 상대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악! 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진, 난 절대 소멸할

수 없어! 가라, 죽음의 불길!"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그녀로서는 고작 '죽음의 불

길' 정도밖에 끌어올릴 수 없었다. 순간, 그녀의 발악 같은 외

침과 함께 검붉은 화염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꽤나 굵은 촉

수들이 수백 개나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승부수인 것 같군! 그렇다면 나도 이번 마법 화살로 승부를

내겠다."

그는 가슴 쪽으로 빛의 입자 시위를 끌어당겼다. 끊어질 듯

팽팽히 늘어난 시위 안쪽으로 서서히 그의 마나가 모여들었

다.

"천공을 가르는 한 줄기의 빛. 사악한 영혼을 정화하는 그대

의 눈물로 적을 섬멸하리라! 샤이닝 블라스터!"

샤이닝 블라스터. 빛 속성의 8서클 공격 주문. 그 위대한 마법

의 힘이 아주 밝은 백광이 터짐과 동시에 쏘아졌다. 실로 눈으

로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가라, 죽음의 불길! 저 당돌한 인간에게 죽음의 고통을 느끼

게 해주거라!"

그 둘의 중앙에서 두 가지 상반된 속성의 기운이 부딪혔다.

악, 마를 섬멸하는 성스러운 빛. 그리고 모든 것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검붉은 불길. 그 속에서 튀어나온 수백 개의 촉수들

은 제각기 흉측한 악귀의 형상을 띄고는 날아오는 새하얀 화

살을 둘러쌌다.

콰과과과광!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레이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샤이닝 블라스터. 새하얀 빛을 띈 화살은 죽음의 불길이라 불

려진 그 엄청난 기세의 화염을 일순간 잠재운 뒤, 허공에 흰

궤적을 남기며 쇄도했다. 그리고 그 빛의 궤적 끝은 아트란의

마나 애로우에서부터 레이의 왼쪽 가슴까지 이어졌다.

"크으으윽. 마, 말도 안… 돼. 이, 인…간인 주제에 감히…."

그녀가 한 마디 한 마디 고통스럽게 내 뱉을 때마다, 알 수 없

는 보랏빛의 액체에 입으로 흘러내렸다.

상황은 끝이 났다. 아트란은 자신의 아들이 신관을 훌륭히 쫓

아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레이에게로 좀 더 다가갔다. 8서

클 마법이 심장에 적중한 이상, 게다가 그 존재가 빛과 극성

인 마족이니 곧 상대는 소멸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몇 가지 물어볼 사실들이 있었다.

"보아하니, 하급 마족 같은데…. 흠. 어찌되었건 왜 기억조차

봉인 당한 그 미스티란 소녀를 쫓는 것이지?"

"흥! 내, 내가 그런 것을 말…할 것 같…으냐!"

"흠. 그렇다면 마족이 왜 하필이면 빛의 계열 신관과 함께 동

행한 것인가? 지금 신성제국에서 소녀를 쫓고 있는 것 같은

데, 설마… 마족과 제국이 손을 잡은 건가?"

"크으윽. 우, 웃기지… 마라. 우리 같은 위…대한 존재들인 마

족이 왜 그 썩어빠진 신의 종들과… 손을 잡았…다고 제멋대

로 생각하…느냐."

이미 소멸 직전에 다다라서일까. 그녀의 말과는 반대로 표정

관리는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아트란이 슬며시 던져본 유도

질문에 정곡을 찔린 그녀의 얼굴은 이미, 비밀을 들켜버린 어

린 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곧 그 사실을 인식한 레이는 까마득

히 멀어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으며 마지막으로 증오의 불길

을 떠올렸다.

'이대로 소멸할 순 없다. 증오한다. 복수도 하지 못한 날 소멸

시켜버린 이 자를 더욱이 증오한다.'

"위대한 어둠의 신, 다크니스이시여. 저는 증오합니다. 위대

한 어둠의 종족, 이 레이를 소멸시킨 이 자를……."

"헛! 갑자기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이제 곧 소멸을 앞둔 마족이 무슨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 그러기에 아트란은 다시금 사악한 기운과 함께 흘러나

오는 레이의 음성에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베리어를 형성시

켰다. 지금껏 상대에게서 느껴지던 기운과는 전혀 다른 이질

적인 것이었다.

"다크니스, 어둠의 궁극. 당신에게 제 영혼을 바칩니다. 그리

고 요구합니다. 이 자에게 진정한 고통을, 그리고 저주를 내려

주십시오! 소울 트랜스!"

순간, 터질 듯한 육체적 매력을 자랑했던 레이의 몸에서 검

은 기체가 스르르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기체가 땅속으로 조

용히 스며듦과 거의 동시에, 그것이 빠져나간 육체가 쪼그라

들기 시작했다.

탱탱했던 구리 빛 살결은 이미 쭈글쭈글 노인의 것으로 변해

버렸고 키도 점차 줄었다. 풍만했던 가슴과 엉덩이도 차츰 작

아졌다. 요염한 입술도 그 빛깔을 잃었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무수히 많아져 흉측스런 외모로 변화하고 있었다. 살기를 내

뿜던 그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허공을 주시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빠지직 소리와 함께 이미 완벽히 노인

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레이의 육체가 찢어져 버렸다. 살점이

사방으로 흩날렸고, 마족 특유의 보라색 체액이 튀어나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트란이 피할 겨를도 없었다.

게다가 베리어까지 이미 전개시켜놓았다는 생각에 방심하여

그다지 두렵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쿠엑. 쿠엑. 이, 이게 뭐야!"

아트란은 자신의 몸 전체를 뒤덮어버린 마족의 보라색 체액

을 닦아내며 성질을 냈다. 그저 평범한 액체였기 때문에, 베리

어에도 막히지 않았고 그대로 자신의 몸에 쏟아져 버린 것이

다.

"음…. 첫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다음부턴 소멸되는

마족 근처엔 가지……. 으윽. 가, 갑자기 몸이……."

기분 나쁜 점액성 물질인 그 보라색 체액을 열심히 닦아내던

그가 갑자기 몸을 휘청거렸다. 의식까지 가물가물해져갔다.

뭔가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 서서히 죽음

의 세계와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던 그의 머릿속엔 마족

이 남긴 마지막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

고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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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아주 좋아요~~

용기의 프리스트의 동료, 그녀는 마족 편도 다 올렸습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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