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행복이란?[4]
'혹시 내가 이분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걸까….'
잠시 아투의 가족들 사이에서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던 그녀
의 머리 속에 문뜩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흉악
한 살인범이거나, 아주 못된 짓을 한 범죄인이라면 어쩌지. 그
런 불안감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대로 계속 살았으면…. 이런 막연한 기
대도 생겼다. 차라리 기억을 되찾는 것보단 이대로 자신이 좋
아하는 사람과 함께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싶은 게 진정 그녀
의 바램이었다.
'훗. 아투가 항상 불안해하는 날 보면서 이렇게 말했었지? 내
일 일은 내일 생각하라고.'
미스티는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지금 깊게 자신의 처지
를 탓해봤자, 얻는 것은 혼란일 뿐. 차라리 모든 걸 잊고 잠시
간의 행복을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미스티 양?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어
요? 후훗. 혹시 제 아들을 생각하고 있던 건…?"
"아, 아니에요!"
갑작스럽게 해오는 라일라의 질문에 미스티는 괜히 당황하
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내 실례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사과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소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르자, 라일라도 속으론 대
충 아투와 그녀와의 사이를 짐작하면서도 말을 돌렸다. 자연
스런 감정을 몰아붙이는 것은 사춘기 소녀에게 실례라는 것
을 떠올리며.
"훗. 알았어요, 미스티 양. 어쨌든 식사나 하러 가요."
그러면서 그녀는 아직도 죄송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말
도 꺼내지 못해 입만 뻐끔거리는 귀여운 소녀를 데리고 1층 식
당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라일라의 손에 이끌리던 미스티
의 얼굴에도 어느 덧 웃음이 꽃피어났고, 가볍게 저택을 구경
하며 주방 옆에 자리잡은 큰 식당으로 향했다.
다만 미스티는 아직도 디자이너가 사라진 문을 슬쩍슬쩍 바
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말투까지 느끼해.'
확실히 귀족들이 식사를 하는 공간답게, 저택의 식당은 아주
크면서도 화려했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여러 개의 촛대는 마
나를 머금은 마법 용품인지, 특이하게도 오색 빛깔 무지개로
빛났고 바닥에 깔린 초록빛의 융단은 빛을 은은히 머금으면서
도, 반짝거리는 특이한 재질의 것이었다.
식당 중앙에는 대략 스무 명 정도는 넉넉히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큰 직사각형의 식탁이 놓여져 있었다. 고급 원목으로
만들어진 그 위에는 얇은 레이스가 수놓아진 식탁보가 깔아졌
고, 그 위에도 마법 촛불이 올려져 분위기를 더하며 밝게 빛났
다.
의자도 특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원형의 비교적 두꺼운 판
이 위에 올려져 있고 그 밑은 굵은 기둥이 받친 뒤, 다리 여러
개가 지탱하는 형식이었는데 앉는 자가 편리하도록 개량된 것
인 듯 푹신한 천이 덮어졌다. 게다가 엉덩이와 맞닿는 부분에
는 솜이 들어가 있어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 큰공간에 비해 식당에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인원은 총
다섯 명. 아트란 부부, 아투, 미스티, 그라디우스. 약간은 썰렁
하다고 할 수 있는 그들이 전부였다. 하인들과 집사는 그들이
식사를 한 다음에나 차례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미 큰 식탁에 둘러앉은 그 다섯 명은 옹기종기 가까이 모
여 앉아 일상적인 대화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훗. 오늘 저녁쯤에는 아름다운 미스티 양의 모습을 볼 수 있
을 거랍니다. 다들 기대하셔도 좋아요. 특히 가장 기대할 사람
은 아투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니, 아투야?"
장난기 어린 말투로 라일라가 아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괜히
목소리를 높인 아투가 얼굴을 붉히며 부인하려 나섰다.
"내가 왜 기대를 해요! 엄마도 참…."
"하하하. 괜히 화를 내는 것 보니까 네 엄마 말이 맞는 것 같
은데?"
이제는 아트란까지 합세하여 부부가 함께 아투의 얼굴을 홍
당무로 만들었다. 당사자인 미스티는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끼
며 고개를 푹 숙였고 아투도 뭐라 반박의 말을 하려 했지만,
사실은 사실인지라 그냥 대충 넘어갔다.
'왔다.'
아투의 눈빛이 갑자기 빛났다. 드디어 오른편 주방과 연결된
문이 열리고, 작은 바퀴가 달려 음식을 편히 나를 수 있는 사
각의 수레가 들어온 것이다. 층 층으로 나눠진 수레의 가장
밑 부분에는 여러 모양의 병들과 함께 찻잔, 물 컵이 올려져
있었고 은으로 만들어진 수저와 젓가락, 포크와 나이프도 준
비되어 있었다.
그 위층으로는 납작한 쟁반에 담겨진 수프가 준비되었고, 간
을 맞출 수 있는 작은 양념 통이 올려졌다. 제일 위쪽에 자리
잡은 판에는 본 음식인 라이프시 - 포유류 동물인 '라이프
시'를 양념과 버무려 삶아놓은 음식 - 가 큰 쟁반에 담겨져 있
었는데, 방금 만들어온 것이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허허허허. 자네 집에선 항상 푸짐한 식사만 하는 것 같군."
저택의 하녀가 자신의 앞으로 수프와 빈 접시를 놓아주자, 그
라디우스가 농담조의 말을 건네며 수저를 집어들었다. 아트란
과 라일라는 이미 드래곤 족인 그에게 많이 적응이 된 탓일
까. 아무 부담 없이 그의 농담 소리에 웃으며 똑같이 수저를
들고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무서운 드래곤 족
이란 생각이 머릿속에 꽉 틀어 박혀있는 아투와 미스티로서
는 음식이 잘 넘어갈 지부터가 의문이었다.
"미스티 양. 음식이 입에 맞질 않나요?"
아직까지 빈 수저만 들고 머뭇거리던 미스티를 보며 라일라
가 신경을 써주었다. 한참 수프를 음미하던 아트란도 아들이
아직 먹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슬쩍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드래곤 족 앞이라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고요.'
그는 속으로 우는 시늉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라디우스
의 시선을 느끼며 수프를 입 속으로 가져갔다. 드디어 아투가
식사를 시작하자, 미스티도 하는 수 없이 주변 눈치를 보며 라
일라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 말했다. 그리고는천천히 수저를
움직여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던 식사시간이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화기애애해져 갔다. 좀처럼 말을 하지 않던 미스티도 아투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었고, 그라디우스의 질문에도 간간이
대답을 했다. 아트란과 라일라도 그라디우스와 그동안의 담화
를 나누었고, 점점 식사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한참 식사에 열중하던 아투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배를 문질
렀다.
"하하.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마침내 라이프시를 말끔히 먹어치운 그라디우스도 그답지 않
게 배를 문지르며 미스티에게 말했다.
"자, 이제 배도 든든하니 아가씨의 기억 봉인을 풀어보도록
할까?"
미스티는 갑작스런 그의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팡
질팡했다. 잠시 잊고 있던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평생 기억
을 잃고 살아가는 것도 그리 좋지는 않겠지만, 차라리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투는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밝은
모습으로 미스티를 부추겨 그라디우스의 말에 따르게 했다.
그의 부모님도 어떻게든 미스티의 기억을 되찾아주고 싶은
듯, 연거푸 권유했고 결국 마음을 정리한 미스티는 감사하다
는 말을 하며 그들과 함께 그라디우스가 권한 저택의 정원으
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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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우우우우우욱.
플티의 신화는 계속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