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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마스터-18화 (18/244)

[골렘마스터]  # 계속해서 등장하는 존재들[4]

슈슈슈슉!

파공음과 함께 푸른 마나 화살이 시위를 떠나 마이트에게로

쇄도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 일이라, 아투의 옆에 있던

레이와 스카드도 손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

린 레이가 소년의 손에 들린 마나 애로우를 뺏어 쥔 뒤, 허리

춤에 묶여 있던 채찍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호호호호호. 마이트가 고작 그 정도 마력으로 어찌할 수 있

는 상태 같았니?"

아투는 그 여자의 말뜻을 이해했다. 정말로 자신의 혼신의 힘

이 담긴 마나 애로우였지만, 상대방 검사는 귀찮다는 듯이 검

집을 이용해 막아낸 것이다. 이제는 몸까지 묶여있어 더욱 절

박한 상황에 처했다고 아투는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는 하지 않는다. 분명 기회는 올 거야.'

"어이! 거기 소년 골렘술사! 아무래도 이 소녀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가 널 대신해 쾌락을 느끼게 해주지."

잠시 아투에 의해 제지를 당하긴 했지만, 그는 즉시 작업에

들어가려 손을 뻗었다. 아투의 얼굴도 그 움직임에 비례해 점

점 더 하얗게 질려갔다.

"미스티!! 어쩔 수 없겠어. 가이트리아, 미안하다. 하지만 미

스티가 잘못되는 걸 볼 순 없어!"

아투는 급히 가이트리아에게 마인드 스피커로 명령을 내리

려 했다. 마나가 거의 고갈되어 어느 정도 골렘술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만히 당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나를 끌어올리기도 전, 갑자기 마이트의 옆 공

간이 크게 출렁이며 강력한 마나가 집중되었다. 동시에 여유

만만 실력을 자랑하던 그가 큰 충격을 받은 듯 뒤로 퉁겼고 금

빛 섬광이 작렬하며 이 일대를 잠시 덮어버렸다.

"네, 네 녀석은 뭐냐! 감히 우리가 누군지 알고 우리 일을 방

해하려 하는 것이냐!"

가장 먼저 시력을 회복한 스카드가 소녀의 옆에 나타난 존재

를 보며 긴장했다. 금빛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와 찰랑이는

그는 중성적인 외모를 지닌 대략 20~25세 사이의 청년이었는

데, 다크 엘프인 레이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

모라 할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머리칼과 똑같이 황금빛을 내

뿜었고 위압적인 느낌을 발산하여 스카드 일행을 완전히 제압

한 상태였다.

"스, 스카드. 지금 저 자에게서 느껴지는 이 기운들은…."

충격을 받고 날아갔던 마이트가 배를 문지르며 일행에게 다

가갔다.

"우리 셋이 덤벼도 이길 수 없는 존재이다. 저런 녀석이 인간

일 리가 없는데…."

"호호호. 이럴 땐 나에게 맡겨봐."

스카드와 마이트가 갑작스레 등장한 실력자에게 눌려 긴장하

고 있었지만, 레이는 오히려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전까

지 아투를 향했던 그 눈빛을 이번에는 그 황금빛 존재에게 옮

기며 자신의 가슴을 한껏 감싸 앉고는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

나갔다.

"어머머. 잘 생긴 오빠네. 어때요? 저 맘에 들지 않아요?"

"웃기는 군."

"머, 뭐라고!?"

순간 자신 있게 걸어나갔던 레이의 이마에서 힘줄이 불거졌

다. 자신의 몸매와 얼굴에 자신이 있던 그녀는 언제나 남자들

을 유혹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있었는데, 지금 그 환상이

보기 좋게 깨져버린 까닭이었다.

"내가 경고한다. 당장 소년과 소녀를 포기하고 이곳에서 떠나

라. 아니면 너희들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투는 갑자기 나타난 잘생긴 청년이 적어도 새로운 적이 아

님을 깨닫고는 안도했다. 미약하게나마 마나를 끌어올려 마나

장을 전개하려던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는 미스티에게로 나는

듯이 달려가 그녀를 살폈다.

"흥! 웃기는 군! 우리 같은 존재가 너 같은 놈에게 당할 리가

없잖아! 이얏!"

레이가 아직도 상대의 존재감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당돌하

게 달려들었다. 그녀에 손에 들린 길다란 붉은 채찍에서는 푸

른 화염이 이글거렸다.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사라져라!]"

금빛 청년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푸른 화염 채찍을 보면서

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어조로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레이가 당황하며 급히 몸을 틀었다. 얕보고 있

었던 상대의 말 중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역시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는지, 그녀에 손에 들려있던 마법 채찍이

소리도 없이 완전 공중으로 소멸 되어버렸다. 덕분에 소년에

게서 빼앗아든 마나 애로우까지도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어, 언령 마법까지!"

"이 바보 같은 년아! 지금 상대를 자극해봤자, 우리만 손해라

고!"

급기야 욕지기를 내뱉은 마이트가 보랏빛의 기이한 검을 빼

들고 레이에게 달려갔다. 잘못하다간 자신의 동료가 당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스카드도 아투와 소녀

는 보이지도 않는 듯 블래카이를 움직여 금빛 청년과 대립케

했다.

"당신이 누군 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도 위쪽으로부터 받은 명

령이 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지 않느냐!"

스카드가 아까보다는 조금 예를 차리며 상대에게 물었다. 하

지만 금빛 청년은 냉소할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아예 자신

을 어떻게 해보라는 듯이 뒤에 있는 소년과 소녀에게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스카드, 마이트!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저런 놈은 어떻게

될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다들 그러는 거야!"

"이, 이자는…. 타크니스님 정도의 실력자가 나서야 해결될

녀석이야."

"뭐!? 그렇다면 이 자가 타크니스님과 맞먹을 정도의 힘을 지

녔다는 거야?"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것 같군."

마이트의 말을 듣고는 레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애써 여유롭게 웃으며 금빛 청년에게 말했다.

"당신! 우리를 방해하면 우리 위쪽 분들께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훗. 웃기지 마라. 네 녀석들의 상관은 이곳 지상계에선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아투는 그들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대화들을 들으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도대체 타크니스는 누구며, 이 금빛 청년은 누구

며, 또 골렘술사 일행들은 누굴까. 게다가 왜 미스티를 노리

는 것일까. 왠지 미스티가 뭔가 중요한 열쇠를 지닌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자 그는 고개를 떨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온했다. 세상 모르고 잠든 그녀의 얼굴은 방금 신계에서 내

려온 천사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슬몃 미소를 지은 아투는 다

시 고개를 들어 자신들을 돕는 금빛 청년을 향했다.

"자,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도 없겠군."

갑자기 승부를 보겠다는 말뜻을 담은 그 목소리에 스카드 일

행은 당황하며 최대한의 힘을 끌어올렸다. 아투와 대결할 때

와는 사뭇 다른 엄청난 기운이 그들 주변으로 피어올랐다. 보

랏빛 마이트의 검에선 짙은 마기가 충만했고, 스카드도 자신

의 마나장을 최대한 넓게, 그리고 강하게 팽창시켰다. 레이의

몸 주변에도 푸른 화염이 떠올라 일정한 형태 없이 출렁였다.

"너희들도 자신들의 한계 정도는 알 정도의 실력일텐데, 나에

게 덤비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훗. 좋다. 모두 한꺼번에…

[소멸!]"

"크, 큰일이다! 상대의 마력이 아까보다 더 증가했어! 이대로

라면 우리 셋 모두 저 언령에 의해 죽는다!"

스카드가 자신들을 압박해오는 엄청난 기운에 흠칫하여 체

면 불구하고 외쳤다. 마이트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자신 주변으로 검을 휘둘러 보라색 기운의 막을 쳤지만, 이내

공기 중으로 화하여 검신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레이 주변의

푸른 화염도 마찬가지였다.

"브, 블래카이!! 어서 우리를…. 크허허헉!"

급히 자신의 아이언 골렘을 부르던 스카드가 자신의 다리부

터 서서히 사라지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자지러지게 소리쳤

다. 하지만 오히려 주인을 구하러 달려든 블래카이가 더욱 빠

른 속도로 소멸하기 시작했다.

"소년이여. 이리로 와라. 아참. 소녀도 깨워야겠군. [깨어나

라!]"

마치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지은 청년

이 아투를 불렀다. 게다가 마지막은 언령으로 잠들어있는 미

스티까지 깨워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왜 우리를 도와주시는 지…."

아직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미스티를 대

신해 아투가 물었다. 공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청년은

더욱 온화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난 네 아버지의 친구이다. 그러니 그리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아, 아버지한테 저런 굉장한 실력을 가지신 친구 분이 있었

나…. 내가 보기엔 갓 스물을 넘었을 듯한 나이 같은데 말이

야.'

아투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청년은 그저 온화한 미소를 머

금은 채 다시 정면을 향했다. 이미 스카드 일행은 거의 기진맥

진한 상태였고, 마이트와 스카드는 허리 부근까지 소멸이 완

료되어 있었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크아아아아악! 젠장! 타, 타크니스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

다!"

스카드가 거의 죽음을 각오하며 마지막으로 몸 안의 마기와

마나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눈길로 마이트에게 신호

를 주었다. 레이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사인을 주고받는 그들

을 보며 뭔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

써 고통을 참았다.

"좋아, 스카드! 시작하자!"

"크크크. 그래, 오랜만에 의견일치를 보는군."

둘 다 고통에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이내 자신들의 모든 힘

을 운용하여 레이를 향해 쏘아냈다. 각기 보랏빛과 검은빛이

그녀의 주변을 에워쌌고, 서서히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

다. 잘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

고 있던 레이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는 평소답지 않은 모

습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너, 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나, 나

만 살아난다고 해서 내가 너희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할

것 같아?"

"레이. 어차피 우리는 이미 글렀다. 그나마 네가 가장 괜찮아

보이니까 어서 가서 타크니스님께 이 사실을 알려라!"

"하, 하지만!"

결국 그녀는 마지막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공

간 저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사라지자 다시 일그러진

공간의 문이 닫혔고, 이제는 스카드와 마이트, 그리고 아이언

골렘만이 그 처절한 소멸을 기다린 채 고통 어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금빛 청년은 조금 곤란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흠. 어떻게든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건가…. 웃기는 녀석

들이군."

그는 이제는 얼굴만이 남아 서서히 소멸 되가는 그들로부터

시선을 거둔 뒤, 소년과 소녀를 향해 말했다.

"자, 너희들의 목적지가 아트란의 집이겠지? 나도 마침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으니, 함께 가도록 하지."

"당신이 저희를 구해주셨군요. 정말 감사 드립니다."

어느새 아투의 팔짱을 꼭 낀 채, 얼굴에 홍조를 띄고 있던 미

스티였다. 하지만 그녀는 청년의 뒤쪽으로 처참한 모습으로

소멸되어 가는 존재들을 확인하고는 눈을 질끈 감으며 아투

의 등뒤로 숨었다. 그녀의 마음 상태를 살짝 들여다본 청년은

어울리지 않게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걱정하지 말거라. 이들은 너희들과 같은 인간이 아

니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이들에게 없다. 다만 소멸. 그 후 환

생이라는 순리대로 살아가지. 흠흠. 어쨌든 시간이 많이 지체

됐으니 근처 큰 도시까지 내 힘으로 인도하지! [공간 이동!]"

그렇다면 당신께서도 인간이 아니라는 말로 들리는 데…. 아

투는 마침 그 물음을 던지려 했지만, 이미 청년의 마나가 그들

을 둘러쌌고, 백색 섬광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싸움의 흔적이

짙은 그 초원에서 그들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다만 이제는

머리마저 흐릿해져 소멸되어 가는 마이트와 스카드의 처절한

고통 소리만이 그곳을 지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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