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마스터] # 네 주인은 바로 나다[1]
네 주인은 바로 나다
칼리어 산맥 바로 밑자락에 자리잡은 라미트 왕국 소속 영토
의 작은 마을.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다른 산촌 마을들과 비
슷하게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담한 집들과 자그마한
광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예술에 대해선
별 반 알고 있지 못한 자의 말일뿐이었다. 마을을 세세히 살펴
본다면 자그마한 집 한 채의 지붕에서도, 광장에 세워진 단상
과 작은 조각상의 미세한 부분에서마저도 뛰어난 장인의 솜씨
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건축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갖고 있는 존재라면 이곳을 보고는 크게 감탄을 할 정도였다.
전문가도 감탄시킬 수 있는 대단한 솜씨로 탄생된 이 마을.
다름 아닌 선천적으로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그리고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고집을 지녔다고 하는 종족. 바
로 드워프 일족의 마을이었던 것이다.
마을 안 풍경도 다른 인간 종족의 마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
다. 거대한 도끼를 등에 메고 총총 걸음으로 분주히 뛰어다니
는 남성 드워프. 작은 망치와 못 등의 공구를 지닌 채 이곳 저
곳 뜯어고치고 있는 여성 드워프. -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 드
워프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염이 조금 깔끔하고
머리칼이 좀 길며 가슴이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 얼굴 곡선이
나 몸의 크기 등에선 전혀 차이가 없었다. - 여러 사람들이 모
여 사는 마을 특유의, 그리고 산촌 마을 특유의 광경이 드워
프 마을에서도 예외 없이 펼쳐졌다.
저벅저벅.
자기 할 일에 푹 빠져 분주히 손을 놀리며 발을 움직이는 드
워프들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아투의 발걸음은 마을 입구를 향
했다. 갈색의 삐죽거리는 머리칼을 지닌 인간 족의 소년, 아
투 판드리엘. 그 주변을 지나는 드워프들과는 신장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었기에 결코 드워프 일족으로 착각할 염려는 없
었다. 게다가 갈색의 롱코트가 살짝 펄럭이며 도저히 드워프
로서는 꿈꿀 수 없는 긴 다리가 드러났다.
아투의 시야에 흙으로 세워진 작은 마을 입구가 들어왔고,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나이 든 한 드워프가 그를 알아보고는 인
사를 건넸다.
"흐음. 아투 군이군. 잘 지냈는가?"
"예? 아, 네. 저야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네미로 어르신."
그는 자신을 알아보고 살짝 인사를 건네주는 드워프 어르신
을 바라보며 문뜩 이곳에 처음 왔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하아…. 드워프 마을에서 이들과 함께 지낸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었나.'
1년 동안 많이 친해진 드워프 친구들. 특히 무뚝뚝하긴 했지
만, 자신을 친자식처럼 대해준 드워프 장로부부 테미르, 레프
티. 그리고 항상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자랑을 하곤 했던
자칭 천재 발명가, 기스뮬은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렇게 아투는 1년 동안의 마을 생활을 천천히 정리하면서 홀가
분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어! 아투. 또 그 골렘인지 뭔지 하는 걸 만들 때 필요하다
는 목재를 구하러 가는 거야?"
아투가 막 마을 입구를 밟으려 할 때, 그의 뒤통수에서 익숙
한 말투가 들려왔다. 이런 목소리라면…. 목소리의 주인공을
어느 정도 예상한 아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
고 역시나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하하. 역시 너구나. 하긴 내게 그런 말투를 쓰는 사람은, 아
니 드워프는 너밖엔 없으니까."
아투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1년 동안 가장 친해진
친구, 기스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다른 드워프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외모였지만, 왠지 아투는 그런 그의 모습도 특별
하게만 느껴졌다. 짙은 녹색의 조끼도, 발목까지 겨우 오는 어
정쩡한 곤색의 바지도 오늘만큼은 멋있게 보였다.
아투가 잠시 기스뮬이라는 드워프 친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기스뮬이 먼저 어색
한 상황을 정리했다.
"어이어이! 그렇게 쳐다보면 드워프 초고의 미남인 이 기스뮬
의 잘생긴 얼굴 닳아지겠다. 험험. 그나저나 또 마을 밖으로
걸어나가는 걸 보니 골렘 재료를 구하러 가는 모양이지?"
"하하하. 이미 재료는 다 구했어. 다만 오늘은 그 노력의 산물
을 얻을 시간이라고 할까나?"
"호오! 나무 명칭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던 네가…?"
골렘을 만들 때 필요하다는 목재는 어떻게 구했냐? 라고 말하
려던 기스뮬은 자신의 인간 친구 손에 들려있는 작은 갈색 나
무토막을 보고는 입을 다물며 짧게 신음했다. 드워프 최고의
발명가라 자칭하는 그는 이런 저런 방면에서 쌓은 지식이 뛰
어났기에, 아투의 손에 들려있는 나무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
챘던 것이다. 분명 그가 알기론 왕성에서 자주 사용한다는 큰
신축성을 가진 최상의 목재였다.
"너, 너! 그 나무 목재 어디서 구한 거야!?"
"어? 이 나무토막? 저번에 골렘의 주성분을 이룰 목재를 구하
러 산으로 올라갔던 적이 있잖아. 그때 우연히 발견한 건데 왠
지 다른 나무들과는 빛깔부터가 다르기에 가져왔지. 서적 같
은 걸 뒤져보니까 꽤 괜찮은 목재 같던데, 맞아?"
마치 크게 놀란 사람처럼 말까지 더듬는 기스뮬을 바라보는
아투는 '이 녀석이 왜 이러나'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곧 대수
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는 어울리지 않게 눈까지 동그랗게
치켜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기스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
했다.
"하하. 친구. 그리 놀랄 것 없어. 다 내 실력이 되니까 이런 나
무도 구할 수 있는 거야. 아, 그리고 지금 마을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재료도 이미 모았고, 2서클 정도 되는 마력도 지녔으니
까 오늘은 골렘을 창조하는 것에 한번 도전해보려고. 물론 어
려운 일이겠지만 말이야."
잠시 아투가 타고난 나무꾼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겼던 기
스뮬은 순간 골렘을 창조한다는 말에 퍼뜩 놀라 고개를 치켜
올렸다. 아투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아서는 분명 거짓말을 하
거나 농담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너…. 골렘을 만들면 이곳을 떠나는 거냐?"
분명 타 종족의 존재인 아투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기스뮬은
이런 날을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그 상황이었더라도
진정한 친구들과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향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1년 동안 사귀어온 친구가 떠난다는 생각을 하자 고지
식한 종족 드워프인 그도 씁쓸한 감정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
었다.
아투도 미세하게 떨리는 기스뮬의 목소리, 그 안에 담긴 묘
한 감정을 알아챘다. 하지만 뭐라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는 것도 잘 알았다. 어차피 자신은 드워프 족과 평생을 살수
는 없는 일. 머지 않아 떠나게 될 거라면 냉정한 태도를 보이
며 자연스레 그들과의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흠. 원래 이 마을에 오게 된 이유도 다 따지고 보면 골렘술
을 익히기 위한 것이니까. 처음부터 골렘술을 완벽히 익히면
떠나려고 했었어."
애써 태연하게 말을 잇던 아투는 고개를 돌렸다. 왠지 자신
을 정말 친 혈육처럼 대해주었던 친구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그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
았다.
"…."
"……. 하하하!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무게를 잡았냐? 어울
리지 않게 그러지 말자고, 우리. 정신 차려, 정신!"
이번엔 아투가 먼저 어색하고 무겁던 상황을 정리하고는 양
손으로 거칠게 기스뮬의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짧고 굵은 물통이나 술통을 연상케 하는 기스뮬의 몸이 크게
흔들거렸고 동시에 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해갔다.
"크으. 아투, 너 감히 날 놀려!"
기스뮬이 막 녀석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미 아투는 예상
을 했다는 듯이 일찌감치 멀리 물러서 있었다. 이제는 아쉽다
는 감정도 사라지고 친구라는 존재도 눈에 뵈지 않는 듯 눈에
서 불이 뿜어졌다. 아투는 그런 그의 모습을 정답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흠. 그래. 이곳에서의 생활. 그리고 특히 기스뮬 녀석은 절
대 잊지 못할 거야.'
후우웅!
그때였다. 기스뮬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하던 아투에게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맹렬
히 날아들었다. 은빛의 날카로움을 빛내며 무섭게 회전하는
물체. 아투는 바로 기스뮬의 전용 무기. 배틀 엑스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경악하며 몸을 틀었다. 다행히 1년 동안 산을 뛰어
다니며 몸놀림이나 체력이 많이 늘었기에 망정이지 예전처럼
집에 쳐 박혀만 있던 그였더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무시무시
한 공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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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른 곳에서 연재하던 분량 계속 옮기겠습니다.
그게 한 4권 반 정도 분량이 되서...
그것만 옮기려 해도 한참 걸릴 듯.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