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212화 (212/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212화>

213. 방법을 찾으세요

“현중 대리! MD 사업부에 자료 요청했어?”

“네. 도재문 팀장님한테 직접 부탁해 놨습니다. 이사님 이름 팔았더니 대우가 다르던데요?”

“잘했어!”

“재원 과장! 개발 팀장 미팅 잡아 놨지?”

“네. 2시로 잡아 놨습니다.”

“회의실은?”

“개발팀 쪽 회의실 빌려 놨습니다.”

“오케이. 굳!”

“경수 과장! 이따 3시까지 작년도 리타깃팅 수치 좀 뽑아 줘. 개발팀 회의 끝나고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아침부터 팀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조창연 팀장.

며칠 지켜봤는데, 리더십이 참 좋은 사람이다.

팀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마음에 쏙 든다.

“뭐요? 어제 요청했잖아요! 지금 와서 힘들다고 하면 어떡합니까? 우리 애들 한숨도 안 자고 그 데이터만 기다린 거 몰라요?”

불같이 화를 내며 통화하는 김재원 과장.

이 팀의 싸움닭이다.

아직 박대영 부장의 레벨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 저 정도면 조만간 넘어설지도 모른다.

“이사님! 어제 갑자기 생각났는데, 이건 어떨까요?”

출력한 문서를 들고 내게 찾아온 장주식 대리.

삐딱한 성격의 돌아이.

하지만 그런 성격 때문인지, 그가 가져오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신선했다.

나는 그가 내민 문서를 훑어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주식 대리님. 도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다 제가 잘나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전 좋은데, 창연 팀장님 확인 후, 추가하도록 하죠.”

“예압!”

장주식 대리는 손가락 두 개로 거수경례를 하며,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순정 만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리더십이 뛰어난 조창연 팀장.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오는 장주식 대리와 김소정.

묵묵히 제 몫을 다 해내는 김재원 과장, 김경수 대리, 김현중 대리, 정이현까지.

어떻게 이런 드림팀을 구성했는지,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하지만 단 하나.

“창연 팀장! 잠깐 나 좀 볼 수 있을까?”

파티션에 팔을 걸치고 묻는 김중신 부장.

UX 3팀의 자리는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저렇게 오가며 팀원들을 따로 부르거나, 말을 거는 사람들 때문에 흐름이 깨졌다.

지금처럼.

나는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중신 부장을 불렀다.

“김 부장님! 급한 겁니까?”

“아…… 아뇨. 그냥 담배 하나 태우려고요.”

“그럼 나중에 하세요.”

“아…… 그럴까요?”

내 말에 김중신 부장은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를 가만 보고 있던 조창연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사님이 계셔서 든든하네요.”

“네?”

“김중신 부장이요. 아마 서 부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떠보라고 시켜서 왔을 겁니다.”

“매번 그랬어요?”

“네. 저번에도 이랬습니다. 사업부 부장이 꼬치꼬치 물어보는데, 팀장의 처지에 답을 안 해 줄 수도 없고…… 그래서 말인데요. 저…….”

“네?”

“혹시 근처에 호텔 좀 잡아 주실 수 있을까요?”

“호텔이요?”

“네. 이제 5일 남았잖아요. 팀원들 데리고 들어가서 속도를 좀 더 내 보려고 합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있는 팀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다들 괜찮겠어요?”

“네. 팀원들도 어제 다 동의했습니다.”

“강요한 건 아니고요?”

“네. 정말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얘기 먼저 꺼낸 건 장주식 대리였습니다. 소정 씨 내 말이 틀려?”

조창연 팀장이 묻자, 김소정은 씩 웃으며 두툼한 가방을 툭 쳤다.

“네. 어제 장 대리님이 그러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 트레이닝복 챙겨 왔습니다.”

“전 집에 가도 딱히 할 게 없어서 동의했습니다.”

“야식만 잘 챙겨 주신다면, 기계처럼 쉬지 않고 일하겠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열심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조창연 차장에게 내밀었다.

“스위트룸으로 잡아요. 밥도 꼭 맛있는 거 먹고.”

“네. 팍팍, 아주 팍팍 쓰겠습니다.”

* * *

MD 사업부 사무실.

이곳은 키보드 소리만 들리는 전략기획부와 달리 분주했다. 전화를 받고, 자료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직원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사님! 이거 좀 봐주세요.”

나를 보자마자 빠르게 다가오는 마성근 차장.

그는 노란 파일철 안의 출력한 종이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뭔가요?”

“알바오 3차 기획전 상품 기획서입니다. 이번엔 라면을 메인으로 잡아 봤는데요. 아시다시피 중국 라면들이 워낙 형편없잖아요.”

그 자리에 서서 기획서를 넘겨봤다.

그 안에는 중국 시장의 분위기와 근래 매출이 오른 라면들이 적절하게 배치해 놨다. 또한, 경쟁심이 많은 중국인을 자극하는 카피 문구까지 딱 마음에 들었다.

“이 카피 문구는 마 차장님이 정하신 겁니까?”

“당근이죠! 어때요?”

“좋은데요? 이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 참, 윗동네는 어때요?”

“좋아요.”

“하긴 이사님이 하시는데, 당연히 좋겠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마성근 차장.

나는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김태하 부장이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원 이사님! 원 이사님!”

그는 옆에 바짝 달라붙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윗동네 분위기는 어때?”

“괜찮아.”

“그래? 며칠 전에 새로 TF 꾸렸다면서?”

“어떻게 알았어?”

“어제 현중 대리 내려와서 한참 떠들다 갔어. 걔 눈빛이 달라졌던데?”

“응. 요즘 완전 열심이야.”

“그러겠지. 회사의 최고 실세 원지훈이가 지원해 주는데, 뭐가 부족하겠어. 이따 잠깐 올라가 볼까?”

“왜?”

“궁금하잖아. 어떤 직원들을 TF로 뽑았을지 말이야.”

조창연 팀장이 호텔에 가서 하겠다는 것은 바로 김태하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냥 궁금해서…….

혹은, 김중신 부장처럼 정보를 빼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가도 없을 거야.”

“왜?”

“너 같은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딴 데 가서 일하라고 했거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김태하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난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

“그냥 원지훈이가 직접 TF를 꾸려서 기획한다니까 궁금해서 그런 거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을걸? 특히 전략기획부 애들은 널 잘 모르잖아. 그러니까 더 궁금했을 거야.”

“알아.”

이미 알고 있었다.

TF 팀원들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한 기억을 수없이 들었으니까.

“사업부는 별일 없지?”

“응. 여긴 다 괜찮으니까, 큐레이션 서비스 좀 그럴싸하게 기획해 봐. 명진 부장이랑 내기했거든.”

“무슨 내기?”

“서인수 부장이랑 원지훈 이사, 둘 중 누구의 기획서가 최 이사의 선택을 받을지 말이야.”

김태하 부장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섭섭한데? 명진 부장이 서 부장한테 베팅했다는 거야?”

“아니.”

“그럼?”

“명진 부장이 아니라, 내가 서 부장에게 베팅했지롱.”

“야!”

“왜? 뭐 잘못됐어? 이런 선택은 자유라고. 그리고 서 부장은 완전 최구열 이사 사람이야. 신입 때부터 최 이사한테 배워서 유리하다고.”

“그래서 얼마나 했는데?”

“잠실 뷔페 2 인권. 바닷가재 나오는 뷔페, 너도 거기 알지?”

“그래. 너 곧 눈물 흘리며 후회할 거다.”

“오…… 꽤 자신 있나 본데?”

“당연하지.”

나는 씩 웃으며 김태하의 어깨를 툭 쳤다.

* * *

늦은 저녁.

3건의 미팅을 마치고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0시 30분.

입에서 새어 나오는 하품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회사 인근의 호텔.

데스크에서 투숙객을 확인하고 꼭대기 층의 스위트룸으로 향했다. 그리고 벨을 누르자, 두 눈이 시뻘건 김현중 대리가 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아직까지 일한 거야?”

“네. 생각보다 봐야 할 데이터들이 많아서요.”

“그래. 고생이네. 다른 팀원들은?”

“아직 일하고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 근처의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편안한 자세로 일하는 팀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미팅 끝나고, 바로 이쪽으로 오신 거예요? 힘드실 텐데, 좀 쉬시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걱정하는 조창연 팀장.

아침엔 못 봤는데, 입술의 끝이 터져 있었다.

피곤했나 보다.

나는 그가 앉아 있던 소파의 옆으로 다가갔다.

“약은 발랐어요?”

“네?”

“입술이요.”

“아…… 이거요? 이거 사실은 마누라가 찐하게 뽀뽀를 해 줘서, 하하하.”

농담이 재미없는 것도 마성근 차장과 비슷하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후, 테이블 위에 출력해 둔 문서를 들었다. 그러자 조창연 팀장이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아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MD 사업부에서 만든 데이터가 좋아서, 그걸 기반으로 유사한 관심사를 가진 회원들을 추려 봤습니다. 처음은 카테고리고 두 번째는 구매 상품, 마지막은 장바구니에 체류 시간까지 계산해 봤습니다.”

“데이터 처리 속도는요?”

“그게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가 많아서 부하가 좀 걸립니다.”

“별도로 서버를 구성한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시시뮬레이션 해 봤죠. L4 스위치 2대를 물려서 구성해 봤는데도 답이 나오지 않아요.”

많은 데이터를 기초로 회원들의 다음 패턴을 예측하는 것.

이것이 바로 큐레이션 서비스다.

쉽게 말해, 신선 식품을 자주 구매하던 회원이 친환경 밀폐 용기를 90퍼센트 이상 구매했다면 아직 친환경 밀폐 용기를 구매하지 않은 회원에게 이를 추천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처리 속도가 느려지겠는가?

수많은 회원의 데이터를 계산하고, 회원마다 맞춤 결과를 줘야 하니 처리 속도가 꽤 걸릴 수밖에 없다.

“흠…….”

내가 문서를 놓고 잠시 고민하자, 가만 지켜보던 김재원 과장이 나를 불렀다.

“저…… 이사님.”

“네?”

“우리도 UX 1팀처럼 표본을 먼저 뽑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빅 데이터를 운영하지 못하는 사이트들은 종종 일부 회원을 표본으로 두고, 이를 기본 데이터로 활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무료 콘텐츠를 추천하는 서비스는 그렇게 넘어갈 수 있지만, 페이지를 꼭 필요한 서비스만으로 채워야 하는 커머스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1팀이 표본으로 계산한다고요?”

“네. 거기 동기 놈이 있어서 좀 물어봤습니다. 매월 신규 가입자 200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그들 활동 데이터를 기본으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조 팀장님 생각은 어때요?`

고개를 돌려 조창연 팀장에게 묻자,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냥 보여 주기식으로 꾸며 놓을 바에는 차라리 다른 기획전 상품들을 보여 주는 게 더 낫습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다.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표본의 데이터를 추출할 경우, 그냥 기획전을 보여 주는 것이 더 매출에 도움이 될 겁니다. 방법을 찾으세요. 어떻게든 빅 데이터를 간결하게 만들 방법을요.”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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