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듣는 회사원 196화>
197. 이거 짝퉁입니다
* * *
“아이고 죄송합니다.”
붐비는 퇴근 시간의 지하철.
내 발을 밟은 정갈한 가르마의 30대 남자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으세요? 혹시 병원에…….”
심하게 상대를 배려하는 이 남자.
나는 그를 직접 보기 위해 오늘은 차를 두고, 지하철을 탔다.
스타일 몰의 주영민 과장.
그는 패션과 식품 카테고리를 동시에 운영하는 벤더들이 강력 추천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프로필을 살펴봤을 때는 특출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스타일 몰의 양동직 차장이나 박희열 차장의 능력이 더 돋보였다.
왜 벤더들은 주영민 과장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을까?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내 성격.
나는 그를 거쳐 간 물건들로 기억을 듣고 싶었다.
“정말 괜찮아요.”
내가 씩 웃어 보이자, 주영민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혹시 나중에 아프시면 꼭 연락주세요.”
“네. 그러죠.”
명함에서 들려오는 조금 전의 기억.
<정말 아팠을 거야. 세게 밟았잖아.>
<다치지 않았을까? 부려졌을 것 같은데?>
겨우 발을 밟은 것뿐인데.
그것도 붐비는 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 실수로.
보통의 사람이라면 모른척하거나 그냥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그는 벤더들의 추천, 그대로의 사람이었다.
남을 배려하는 성격 때문에 도드라지지 않는 사람.
능력은 좋으나 욕심이 없는 사람.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가정적인 사람.
10여 분 후, 제물포역에 도착했다.
나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내리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여기 사세요?”
먼저 말을 걸어오는 주영민.
나는 그와 속도를 맞춰 걸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명함 보니까 스타일 몰 MD이시던데.”
“네, 맞아요. 혹시 저희 회원이신가요?”
내 옷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주영민.
그는 아직도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내 구두를 보고 재빨리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신의 옷 소매로 내 구두를 닦아내며 말했다.
“이거 가죽에 스크래치 갔잖아요. 비싼 건데……. 어쩌죠?”
패션 MD라 그런가?
브랜드 로고가 보이지 않는 구두인데도 바로 명품임을 알아챘다.
나는 황급히 몸을 숙여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아니에요. 이거 짝퉁입니다. 짝퉁.”
“네?”
“친구가 여행 갔다 선물로 사준 짝퉁이요.”
“아닌데……. 아무리 기계가 정교해도 이렇게 만들 수가 없어요. 여기 박음질 마무리를 보면 사람 손으로 한 티가 나잖아요. 실례가 안 된다면 잠깐 볼 수 있을까요?”
구두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주영민.
나는 그가 진짜 알아낼 수 있을지 궁금했기에, 지하철 플랫폼의 의자에 앉아 구두를 벗어 줬다.
한참을 살펴보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네?”
“이거 진품입니다. 그것도 작년 시즌에 출시한 한정판입니다. 이 제품은 장인이 직접 브랜드 로고를 새겨 넣거든요. 여기 보시면 글씨체가 약간 흔들린 것 보이시죠?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이런 건 아무리 기계가 정교해도 따라 하지 못합니다.”
“아……. 네.”
“제 생각에는 아마 그 친구 분이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 것 같습니다.”
주영민은 말을 마치고, 다시 한번 옷소매로 닦아서 돌려줬다.
그리고 나는 구두에서 그의 기억들을 가감 없이 들었다.
<가죽에 스크래치 너무 길게 났는데? 이거 복원이 될까?>
<콜라보 한정판이라 AS도 안 될 거고, 태천이 아저씨는 가능할까? 전화로 물어볼까?>
<그냥 위조품이라고 할까? 아니, 어떻게 그래. 내 실수로 이 귀한 친구가 다쳤는데.>
처음에는 내 발을 걱정하더니…….
이제 내 발은 안중에도 없고 구두만 걱정하는구나.
벤더들이 말했던 마지막 추천의 이유.
구두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로 구두에 대한 가치관이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신던 건데…….”
“네?”
“그냥 더럽지 않나 해서요.”
내 말에, 주영민은 금방이라도 싸울 듯한 태도로 말했다.
“아니요! 이 구두는 정말 귀하게 만들어진 친구입니다. 가죽이 늘어나면서 사람의 발에 스스로 맞춰지고, 중량도 다른 구두의 70% 수준이라 안 신은 것처럼 가볍잖아요. 어디 그뿐입니까? 산을 올라도 될 정도의 내구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이 구두를 만드신 분이 어떤 분인지 아세요? 50년간 직접 바느질부터 가죽 손질까지 혼자서 하신 분입니다. 그런 장인이 은퇴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샤갈과 콜라보 제품을 내놓은 거라고요.”
아주 줄줄 꿰고 있구나.
지영이가 선물을 주면서 아무렇지 않게 줬기에 이런 내용은 전혀 몰랐다.
“그……. 그런가요?”
“제가 국내에서 잘 아는 분이 있는데, 그쪽에 연락을 해 두겠습니다. 꼭 수선해서 신으세요.”
좀 과하다.
아니, 아주 심하다.
구두는 언제든 밟히고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건데.
더군다나 선물해 준 지영이도 비싸지 않다며 막 신고 다니라고 했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벌써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아저씨! 저 영민입니다. 샤갈 X페렐 2019년 제품인데요. 가죽에 스크래치가 생겼어요. 혹시 수선 가능할까요?”
“마르코 장인께서 샤갈이랑 콜라보한 제품이요!”
“네. 그거요. 제거는 아니고 제가 실수를 좀 해서요.”
“얼마나 들까요?”
“네. 네. 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저씨, 다음에 내가 소주 한잔 살게요.”
전화를 끊은 그는 주머니에서 펜과 작은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전화번호와 상호명을 적은 종이를 뜯어, 내게 내밀었다.
“종로에 있는 수선집인데, 국내에서는 이분이 최고십니다. 100% 복원 가능하다니까 꼭 수선 받으세요. 그리고 비용은 제가 다 내기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참 흥미로운 사람이다.
겨우 발을 밟은 것뿐인데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 말이다.
사람에 대한 미안한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내가 아닌, 이 구두를 만든 장인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종이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네. 그러죠.”
“귀한 친구인데 좀 아껴 주세요. 가시면 아저씨가 뒷굽도 수선해 줄 겁니다.”
“네.”
주영민은 내 답을 듣고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끝까지 내 구두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이틀 후, 제물포 역.
플랫폼의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8시가 되자, 퇴근을 한 주영민이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물론,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발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또 뵙네요.”
“네. 덕분에 수선 잘했습니다.”
나는 의자 옆에 둔 종이가방에서 구두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그는 구두의 수선한 부위를 꼼꼼히 살피며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정말 신경 써서 해 주셨네요.”
“네. 그래서 말인데, 어디 가서 커피 한잔할 수 있을까요?”
“네?”
“고마워서요. 이 구두가 그렇게 의미가 있는 물건인지 몰랐거든요.”
“아……. 그게.”
“10분이면 됩니다.”
커피를 사주겠다는 말에 미안했는지, 주영민은 잠시 망설이다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지하철 플랫폼에 있는 커피 자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걸로 하죠.”
“네?”
“전 시원한 아이스커피로 얻어먹겠습니다.”
“그래요.”
나는 씩 웃으며, 커피 두 잔을 뽑아 한잔을 그에게 건넸다.
“괜찮겠어요? 더 비싼 커피를 사드리고 싶었는데.”
“아니요. 이거면 충분합니다. 근데 뭐 하시는 분이세요?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혹시……. 모델?”
“네?”
“몸매도 좋고, 옷 입는 센스도 좋은 것 같아서요.”
“아닙니다. 이렇게 키 작은 모델이 어디 있어요?”
“에이……. 아닙니다. 요즘은 180 안 되는 모델도 많아요.”
나는 씩 웃어 보이고, 주머니에 있던 명함을 꺼내 보였다.
그러자 그는 내 명함을 뜨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켓 프레시 이사님이셨어요?”
“네.”
“아…….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했더니……. 맞아요. TV에서 봤어요. 우리 동네. 그거 나왔던 그분 맞으시죠?”
“네. 맞아요.”
“하하하, 이렇게 지하철에서 스타를 만나고 반갑네요. 이따 사인 한 장 해 주시겠어요?”
“아닙니다. 사인은 무슨…….”
“우리 아내도 마프에서 주문해서 먹어요. 마프 제품은 뭔가 깔끔하고 믿을 수 있다면서요.”
“아내분께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네. 그러죠.”
그렇게 그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벤더들의 추천처럼 정말 진실하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20분이 지났지만, 대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배우는 점이 많았고, 특히 구두에 대한 열정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였다.
한참 동안 신이 나서 떠들던 주영민은 남은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고,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그리고 무슨 약속이 있는지, 조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내랑 약속이 좀 있어서요.”
“혹시 다음에 정식으로 뵐 수 있을까요?”
“네?”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그럽니다.”
“잠시만요.”
주영민은 한 손을 올려 내 말을 끊고, 뒤로 돌아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내 옆에 앉았다.
“저도 사실, 한잔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마프 콜라보 제품들 얘기 좀 더 해 주세요. 잘하면 의류 쪽에도 접목할 부분이 많을 거 같아서요.”
“이번엔 좀 다른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네요.”
“네?”
“약속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핵심만 말씀드리죠. 마켓 프레시에서 패션 카테고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장님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놀란 표정의 주영민.
그는 안경 뒤의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저를요?”
“네. 주영민 과장님이요.”
“그럼 이사님은 그제 지하철도 그렇고……. 오늘도 일부러 저를 만나러 오신 건가요?”
“네. 맞아요.”
“왜요? 그냥 전하로 하셔도 되잖아요.”
“전화로 했으면 그냥 끊어 버리셨을 거잖아요.”
그를 추천해 준 벤더들이 그랬다.
전화로 스카우트를 제안하면 단칼에 거절할 사람이라고.
스타일 몰에 있기에는 아까운 인재니 어떻게든 내가 직접 나서서 데려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본래 협력사의 조언은 99% 이상 정확한 법.
나는 그들의 말을 믿고 이렇게 접근했던 것이었다.
“그야…….”
“세미원, 쉬즈, 도담의 벤더들이 직접 만나 보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흠……. 그래서 그렇게 하신 겁니까?”
“처음에는 그냥 멀리서만 지켜볼 생각이었어요. 어떤 분인지 보려고요.”
“그래도 그렇지……. 좀 심하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놀란 줄 아세요?”
“그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놈이라. 어떠세요? 원하신다면 구체적인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주영민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좋은 제안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아직 스타일 몰에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네?”
“양동직, 박희열 그 사람들을 위해서요?”
양동직, 박희열.
주영민의 기획을 가로챈 상사들로 현재 스타일 몰의 실세들이다.
그를 처음 만나고, 나는 그에 대해 더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벤더들을 통해 스타일 몰의 상황을 더 알아 봤고 그가 기획하고 영업한 제품들을 모두 뺏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이제 다시 찾아야죠.”
“아닙니다. 차장님들과 함께 기획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애써 부인하는 주영민.
하지만 그의 기억은 숨기지 못했다.
나란히 앉아 있는 플랫폼의 의자는 그의 기억을 고스란히 들려줬다.
<아니야. 차장님이 다음에는 날 올려 준다고 하셨어. 그리고 내 기획이 맞았잖아. 사실 그거면 된 거잖아.>
너무 착해 빠진 건가?
이 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MD는 자고로 욕심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니까.
“과장님을 추천한 벤더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혼자서 부인하시는 겁니까?”
“…….”
“욕심나지 않아요? 더 많은 기획으로 더 좋은 제품들을 판매할 욕심이요.”
“그야…….”
“과장님의 기획이 맞는지, 틀린지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MD라면 욕심이 나는 게 정상이겠죠.”
“그야 그렇지만…….”
“과장님의 욕심이 살아나길 기다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으로 소비자를 설득하고 싶은 그의 욕심이 나에게 전화를 걸도록 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