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듣는 회사원 193화>
194. 디몰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경찰은 경쟁 회사의 여론을 조작하는 현장을 직접 덮쳐, 책임자 두 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현장에 나가 있는 정성연 기자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강남에 위치한 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 경찰이 문을 열자, 스무 명의 남녀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미리 출력한 문서를 기계에 넣고 파쇄하기 시작하는데요. 마치, 이런 상황을 미리 준비한 것처럼 보입니다.]
회의실 안.
김지영 대표와 다른 이사들이 스크린의 뉴스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1분가량의 짤막한 뉴스가 끝나고, 다음 뉴스가 이어졌다.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 이사님. 영상은 또 언제 찍어서 방송국에 보낸 겁니까?”
“이 정도는 해야죠.”
“전 상상도 못했습니다.”
“자기들이 거꾸로 여론의 공격을 맞아 봐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짓을 못하죠.”
언제 영상을 찍은 것인지…….
최구열 이사는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을 TV 방송국에 그대로 보냈다.
덕분에 생생한 현장 영상이 가감 없이 방송을 탈 수 있었다.
방송에서 해당 기업의 이름을 직접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네티즌 수사대가 누구인가?
그들은 겨우 10여 분 만에 디몰의 이름을 찾아냈다.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된 디몰.
심지어 어마어마한 동시 접속자로 인해, 사이트가 먹통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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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디몰이 마프 잡으려 한 거지? 맞지?
naga****
진짜 썩어빠진 인간들…….
kdhh****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댓글이랑 언론이 이상하게 마프만 잡으려고 난리더라.
luck****
아주 주댕이를 찢어 버리고 싶다. 글케 돈 벌어서 머할래 쓰레기들아.
hj73****
이제 디몰도 안녕이구나. 거기 옷만 팔 때는 괜찮았는데. 그나저나 디몰 불매운동은 안 함?
seoj****
어쩐지……. 전 그래서 직접 써 보고 알아서 판단합니다
jy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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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
여론의 화살은 우리가 아닌 디몰에게로 향했다. 뿐만 아니라 꼭꼭 숨어 있던 우리를 옹호하던 여론도 하나둘 고개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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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에 말했지? 마프는 직매입해서 수수료가 센 거라고.
jinw****
물류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디몰 조작질에 홀랑 넘어간 거냐?
hany****
마프로 많이 사는 편인데 만 원짜리도 무료 새벽 배송 너무 좋아요.
powe****
마프는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는 좋은 기업이다. 기업과 업체들 짬짜미로 이득 공유해서 소비자에게 부담 전가하는 디몰이랑은 태생이 다르다.
yo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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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우리와 거래를 해 온 제조사와 벤더들.
그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메인에 우리를 옹호하는 공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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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양지푸드입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마켓 프레시의 수수료에 대해 투명하게 밝히려 합니다.
저희는 지난 2년간 마켓 프레시와 거래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공급과 유통의 과정에 조금의 이견도 없었습니다.
마켓 프레시는 모든 제품을 직매입합니다.
저희가 생산하는 제품의 60%가량이 마켓 프레시에서 판매하며, 이를 통해 줄일 수 있는 물류 비용은 연 20억 상당입니다.
이에 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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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은 양지푸드.
나와 5년 넘게 거래해 온 함중식 대표가 가장 먼저 공지를 올렸다.
그리고 청년 고기를 포함해 장호, 삼신, 익전, 스위트홈, 덕산 등등.
100여 개가 넘는 제조사들이 홈페이지 전면에 우리를 옹호하는 뜻을 밝혔다.
비록 그들의 홈페이지 접속자가 얼마 되지 않아 직접 보는 사람은 적었겠지만, 이런 꾸준한 움직임에 가만있을 언론이 아니었다.
포털 메인에 위치한 기사들.
여론은 순식간에 우리와 제조사들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또한, 직접 농장을 운영하는 생산자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입소문을 전파했다.
소문은 더해서, 지역 카페와 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다시 돌아온 MD 사업부 사무실.
“이사님! 이사님!”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김명진 부장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왜? 또 무슨 일 있어?”
“금일 프로모션 제품이 완판됐습니다. 겨우 3시간 만예요.”
“그래?”
“정기 구독도 5%나 늘었고, 회원 가입도 지난주보다 더 폭발적입니다. 하루 만에 180도 변해 버렸네요.”
흥분한 표정의 김명진 부장.
여론은 금방 끓어오른다.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이 단 하루 만에 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가 아닌 겨우 세 시간 만이다.
디몰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성난 여론.
제조사와 벤더, 생산자들의 의견을 듣고 우리를 옹호하는 여론.
이 모든 것들이 한 번에 터지면서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김명진 부장의 어깨를 툭 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근데 여기서 뭐 해. 빨리 제품 확보해야지. 프로모션 제품들 그냥 빈칸으로 둘 거야?”
“제가 누굽니까? 그건 이미 손 써 놨습니다. 디자인 페이지 나오면 바로 교체할 겁니다.”
“그래. 잘했어.”
나는 김명진 부장의 어깨를 감싸며 씩 웃었다.
* * *
며칠 후,
우린 평소와 똑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니, 평소보다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매출은 10% 이상 상승했고, 주가도 15% 이상 올랐다. 지주회사인 BO푸드의 주가도 5% 이상 상승하며, 연일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디몰.
그들의 홈페이지 메인엔, 며칠째 사과 공지가 떠 있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고, 끝에는 홍보팀 임원의 단독 행동이라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누가 믿겠는가?
안에서 반품과 재고, 계약 파기 등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그들이 훤히 보였다.
두 번째로 바론.
주가가 기업의 현재 상태를 반영하고 있었다.
무려 15% 하락한 그들의 주가는 최근 5년 이내에 가장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디몰과는 다른 회사라 선을 그었지만.
잘되겠는가?
바론이 디몰을 운영하겠다는 광고를 TV, 라디오, 인터넷 등에 그렇게 뿌려 댔으니.
“이거 오래가겠네요. 이번엔 꼬리가 아닌, 머리를 쳐 내야 할 거 같은데요? 히히.”
회사 옥상.
휴대전화를 보던 정진택 차장이 키득거렸다.
나는 등을 돌려 난간에 팔을 기대고 먼 곳을 보며 물었다.
“최두영 이사, 움직임은 있나요?”
“아니. 전혀요. 며칠째 출근도 안 한다고 하던데요? 지가 무슨 낯짝으로 나오겠어요? 최두영은 이제 무너졌다고 봐야죠.”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이렇게 여론이 크게 반응하는 지금,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군요. 혹시 다른 소식 들리면 전해 줘요.”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다시 생각해도 대박이었습니다. 어떻게 거길 혼자 쳐들어가실 생각을 하신 겁니까?”
“그냥 닥치니까 한 거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하하하. 저라면 죽어도 못했을 겁니다.”
정진택 차장은 크게 웃고, 재떨이에 담배를 껐다.
그때, 울리는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
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황급하게 사무실로 내려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대고 있는 이예나.
그녀는 다급히 내 옆으로 다가와 내 사무실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에 계십니다.”
“그래.”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최대한 당당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회의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노파.
김선녀 여사다.
새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넘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랜만이군요. 원. 지. 훈, 이. 사. 님.”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
짧은 인사로 지금의 심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네. 회장님. 잘 지내셨죠?”
“아니요. 덕분에 잘 못 지냈습니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너무 솔직하시군요. 몸은 좀 어떠세요?”
내 질문에, 김선녀 여사는 아무런 대꾸 없이 자리에 앉았다.
나는 맞은편 자리에 앉아, 말을 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상대방의 허물을 찾아 무너트린다라……. 이번에 아주 감명 깊었습니다.”
“칭찬, 고맙습니다.”
“잘했으면 당연히 칭찬을 받아야죠. 덕분에 우리 쪽 손실이 갈수록 커지네요.”
“커머스가 다 그렇습니다. 덩치가 커질수록 한 순간 실수로 적자는 커지기 마련입니다.”
김선녀 여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무슨 생각인가?
그녀의 새까만 동공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때, 공유한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기억.
<마켓 프레시가 받아들일까? 그것도 원지훈이 저놈이?>
<더 커지기 전에 발을 빼야 해.>
발을 뺀다고?
그렇다면 설마, 디몰에서 빠지겠다는 소리인가?
나는 그녀의 닫힌 입술을 보며 질문을 이었다.
“그냥 칭찬만 하러 오신 건 아닌 것 같고……. 뭘 원하십니까?”
“그럼 속 시원하게 말하죠. 다시 나와 손을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네?”
“말 그대로예요. 처음에는 최구열 이사나 여기 대표를 찾아가 볼까 했는데, 그들보다는 원 이사가 더 영향력이 클 것 같아서 이리로 왔습니다.”
김선녀 여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손을 무턱대고 잡을 수 없다.
나는 잘 안다.
그녀가 내민 손에는 언제나 치명적인 독이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잘 못 찾아오셨네요.”
“들어 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겁니까?”
“들어 보면 뭐가 달라질까요?”
내 질문에, 옅은 미소를 짓는 김선녀 여사.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투자한 돈을 찾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약속드리죠. 내가 투자한 돈만 회수하면 이곳에서 빠지겠습니다.”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김선녀 여사.
지금 그녀의 표정과 들려오는 기억은 어떤 힌트도 주지 못했다.
“빠지신다라……. 그거 아주 군침이 도는 제안이군요.”
“그렇게 내가 싫었어요?”
“아니요.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회장님. 제가 그 제안을 받는다면 저에게는 뭘 주시겠습니까?”
“디몰을 드리겠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말이다.
바론이 무려 2천억 이상을 투자한 디몰.
그들이 겨우 여섯 달 만에 발을 뺀다고?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김선녀 여사의 지분이 많다고 해도 이런 제안을 할 수는 없다.
“…….”
“마켓 프레시에 디몰의 패션 카테고리가 더해지면, 충분히 대한민국 1등이 될 거 같은데요? 원 이사님 꿈 아니었습니까?”
“디몰에 회장님의 지분이 많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내가 가진 지분은 32%. 우리가 손을 잡으면, 충분히 다음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다음 그림이요?”
“네. 원 이사는 내 투자원금을 찾아주겠다는 약속만 하면 됩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김선녀 여사는 소문난 기업 사냥꾼.
그런 그녀가 원금만 회수하고 빠질 리가 없다.
나는 테이블을 오른손으로 훑으며 그녀의 기억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하나의 단서를 찾아냈다.
<바론의 주식이면 강석호를 움직일 수 있어.>
바론 강중영 회장의 차남 강석호 전무이사.
유일한 후계자 재목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또 경영권 승계를 미끼로 그의 지분을 사들일 생각인가?
아니. 아닐 것이다.
바론은 강석호 전무의 입지가 탄탄해, BO 푸드와 달리 경영권 승계가 너무도 당연시되고 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차분한 표정으로 답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네. 그러셔야죠. 시간을 오래 드리진 못합니다. 다음 주 같은 시간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