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191화 (191/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191화>

192. 댓글 부대를 쓴다는 말이 들리던데

3일 후.

[여러분 직매입이 뭔지 아세요? 제품을 미리 사서 창고에 보관하고 이를 직접 배송한다는 말입니다. 창고는 그냥 창고인가요? 아니죠. 냉장, 냉동까지 완벽해야 하니까 비용이 꽤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가끔은 후가공도 해요. 마프에서 판매하는 껍질 제거한 수박 슬라이스 제품 있죠? 그건 마프 공장에서 후가공을 한 겁니다.]

이정우 이사 소속사에 속한 먹방 BJ.

그는 자신의 영상을 보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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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프레시, 공격적인 직매입으로 소비자가를 낮춘다

- 연합토픽

같은 제품 5% 이상 싼 마켓 프레시, 이유는 직매입

- 이커머스데일리

100% 직매입, 판매자에게 광고를 요구하는 오픈마켓과 다르다

- 내일경제

마켓 프레시, 직매입으로 어려운 농가를 살린다

- 이코노믹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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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팀과 외주 홍보 대행사들.

그들은 반박 기사를 내기 위해 수많은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돌렸다.

“직매입이 뭔가요?”

“쉽게 말씀드려서 일정 수량을 미리 사들이는 겁니다. 저희가 판매할 수 있는 수량을요.”

“그럼 재고가 생길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재고 예측 시스템은 저희가 가장 자랑하는 시스템이지만, 사실 100%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저희가 폐기한 제품으로 무려 70억가량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큰 손실을 보고도 직매입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유통의 과정을 줄여 단가를 낮출 수 있기에 이런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그저 많은 돈을 낸 제조사의 제품이 상위로 올라가는 시스템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저희는 100여 명의 MD가 소비자가 원하는 바른 먹거리만 선별해서 판매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마켓 프레시의 제품들이 신선했던 거군요. 마켓 프레시의 물류 센터도 자랑거리 아닙니까?”

“네. 현재 전국 5개 지역에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늘려 나갈 예정입니다.”

시사 프로그램의 인터뷰를 요청한 김지영 대표.

오늘 하루만 벌써 3번째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우린 그렇게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미 성이 난 여론을 돌리기에는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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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업체들은 손 빨아라 이건가?

oper****

돈 지랄 했다는 말이잖아. 역시 있는 놈들만 잘 나가지.

byem****

재래시장이 백화점한테 뭐라고 하는 거랑 똑같넹ㅋㅋ

sksk****

마프 욕 많이 먹는데? 곧 망하겠어 ^^

haya****

마프가 왜 새벽 배송하는데 ㅋㅋㅋ 경쟁업체 다 죽이고 난중에 독식하겠다는 거 아녀

ed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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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회의실.

“70여 개의 대형 바이럴 대행사들을 뒤졌는데,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후…….”

말을 마치고 긴 한숨을 내쉬는 최구열 이사.

김지영 대표는 그런 그를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채플이라는 대행사는 확인해 보셨나요? 그쪽이 정치권 여론 조작을 주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채플뿐 아니라, 규모가 있는 곳은 전부 다 확인했습니다.”

역시 흔적을 찾을 수 없구나.

디몰이 움직였다는 흔적만 찾으면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인데…….

답답할 노릇이다.

아무리 언론에 해명하고 손을 쓴다 해도 돌아오는 것은 비난의 댓글뿐이니까.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최두영 이사를 만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디몰에 가신다고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최구열 이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오라고 하면 안 올 게 뻔하니까 제가 가야죠.”

“그쪽에서 만나 주겠습니까? 무슨 대책은 있어요?”

“아니요. 이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하아…….”

최구열 이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답이 없을 땐 무턱대고 들이대 보는 것.

이게 바로 내 방식이다.

그렇게 이사회의가 끝나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지훈아!”

나를 부르는 김지영 대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바론 홍보 팀이 조금 이상해.”

“홍보 팀이?”

“응, 디몰 인수하면서 홍보 팀 인원이 두 배로 늘었어. 그리고 일주일 전부터는 절반 정도가 재택 근무를 한다고 하더라고.”

홍보 팀의 절반이 재택 근무를 한다라…….

그것도 새로 들어온 인력들이.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IP와 포털의 아이디가 필요한 법.

포털의 아이디는 불법으로 거래할 수 있고, IP 또한 판매하는 곳이 많다.

불법적인 일을 버젓이 회사에서 할 수 있을까?

아니.

보는 사람이 많아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비밀 보장이 가능한 사람만 재택으로 돌린다면?

그리고 예전부터 별도의 팀을 운영했다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말인가?”

“맞아. 우리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돌아오는 반응이 변하지 않잖아.”

“어떻게 알았어?”

“푸드 홍보 팀장에게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 홍보 팀에 바론 출신이 몇 있어서 말이야.”

“그래서 재택 근무하는 직원을 찾아보자는 거지?”

“응. 비밀은 없는 법이니까.”

“알았어. 알아볼게. 최구열 이사에게는 말했어?”

“회의 전에 따로 말했어.”

“그래. 잘했어.”

나는 김지영 이사의 팔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회사의 밖으로 나갔다.

* * *

바론의 사옥 앞.

디몰은 바론 건물의 3개 층을 쓴다.

처음 우리가 그렇게 시작했던 것처럼 이들도 바론의 사옥을 임대해 쓰고 있었다.

건물의 꼭대기를 올려다보던 나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디몰의 최두영 이사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로비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약속하셨나요?”

“아니요.”

“죄송합니다. 약속되어 있지 않으면…….”

“그럼 지금 약속을 잡죠.”

나는 등을 돌려 데스크에 몸을 기댄 채로 전화를 걸었다.

“원지훈입니다.”

- 아, 원 이사님. 오랜만이군요.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여기 로비에 있거든요.”

내 말에 잠시 멈칫하는 최두영 이사.

아마 내가 직접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아……. 이거, 어쩌죠. 회의가 있어서 지금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기다리죠. 언제 끝납니까?”

- 글쎄요. 회의 끝나고 또 미팅이 있어서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미팅은 언제 끝납니까?”

- 아……. 글쎄요. 중요한 미팅이라……. 그러지 말고 오늘은 돌아가시고, 다음에 미리 연락을 주세요.

“미리 연락드리면 만날 수 있을까요?”

- 많이 급하신가 보죠? 하핫.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

즐기는구나.

그는 아마 내가 똥줄이 타서 달려왔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마음껏 만끽해라. 곧 뒤집어 줄 테니까.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기다리겠습니다.”

- 흠…….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그냥 돌려보내실 생각인가요?”

잠시 망설이는 최두영 이사.

나와 그가 만난 것은 딱 세 번.

그동안 들은 수많은 기억으로 그의 성격을 파악했다.

지고는 못 사는 성격.

저번에 딸기 대란 때, 꽤 분해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던 그 기억을.

그리고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성격.

아무것도 모르는 스타트업 기업들 앞에서 특히 더 그런다.

또한, 지금 내 얼굴을 직접 보고 싶을 것이다.

회사의 위기에 당황한 내 얼굴을…….

- 그래요. 그럼 올라오셔서 기다리세요. 회의 끝나면 잠깐, 그러니깐 10분 정돈 시간을 내 드리죠.

“네. 그러죠.”

나는 데스크에서 방문증을 받아, 엘리베이터의 19층을 눌렀다.

* * *

19층 최두영 이사의 사무실 안.

역시 자리에 없다.

회의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나를 더 비참하게 하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리게 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그게 승리한 자가 부릴 수 있는 여유니까.

하지만 이는 나에게 더 유리한 상황만 줄 뿐이다.

나는 비서의 안내를 받아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비서가 나간 틈을 타, 소파 앞 테이블에 있는 물건들을 빠르게 훑었다.

<쓸모없는 놈들. 뭐 이렇게 많이 쳐 받아가? 이번에 절반은 줄여야겠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렇게 불만이 많던 사람이었나?

나는 피식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꽂이에 있는 책들과 진열된 장식품들에서 기억을 들었다.

그렇게 그의 책상 위 필기구를 만지는 순간.

“거기서 뭐 하십니까?”

최두영 이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연필꽂이에 꼽힌 볼펜을 내 보이며 답했다.

“제가 볼펜을 안 가져와서요.”

“…….”

“혹시 종이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급하게 와서 노트도 준비 못했네요.”

최두영 이사는 내 앞으로 걸어와,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바론이라는 상호가 박힌 다이어리를 꺼내 내 손에 쥐여 줬다.

“이거 쓰세요. 새것이니까 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최두영 이사는 내 인사를 무시한 채로 소파의 상석에 앉았다.

“자. 이제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입니까?”

“이사님도 아시죠? 요새 수수료 때문에 여론에 엄청 뚜드려 맞고 있다는 거요.”

“네.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반박 기사를 내고, 인터뷰에 방송까지 해도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요?”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최두영 이사.

나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꽤 힘드네요.”

“그렇겠죠. 여론이란 게 함부로 만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맞아요. 이사님 정도는 돼야 만질 수 있겠죠.”

“……!”

“아닌가요?”

“그 말……. 무슨 뜻입니까?”

최두영 이사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자극했다.

“심지어 디몰에서 댓글 부대를 쓴다는 말이 들리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이가 없군요. 화풀이하러 오신 겁니까?”

“화풀이라뇨.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합리적? 뭐가 합리적이라는 겁니까?”

“우릴 음해해서 얻을 것이 많은 회사. 그게 바론과 디몰 아닙니까?”

“참기 힘들군요. 경비를 부르겠습니다.”

최두영 이사는 소파 옆 테이블의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나는 재빨리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개며 씩 웃었다.

“장난입니다. 장난.”

“…….”

“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그때, 인터폰에서 들려오는 기억.

<아무런 근거도 없이 떠드는 꼴이라니. 어려서 그런가? 예의가 없구나.>

근거라…….

의심을 해 볼 만한 단어이긴 하지만, 아직 확실치는 않다.

“그럼 디몰의 짓은 확실히 아니라는 거죠?”

“원 이사님!”

정색하며 소리를 지르는 최두영 이사.

나는 재빨리 잔뜩 미안한 표정을 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 실수. 실수입니다. 제가 생각을 바로 입 밖으로 꺼내는 놈이라서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던 소파의 팔걸이 끝을 바라봤다.

반들반들한 것이 자주 만졌나 보다.

생각할 때, 저곳을 만지는 것이 습관인가?

나는 볼펜을 돌리다 일부러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재빨리 허리를 숙여 볼펜을 줍고, 그가 만지작거리는 팔걸이의 끝을 스쳤다.

<저놈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저번에도 그렇고……. 혹시 이번에도 뭔가 알고 있는 건가? >

<혹시 모르니까, 서준이는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해야겠어.>

빙고. 찾았다.

서준이, 분명 서준이라는 기억이 들렸다.

서준이라는 그 사람은 아마 홍보 팀의 인원이겠지?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뭐요?”

“볼펜이랑 노트요.”

“…….”

“볼펜이랑 노트. 오늘 기념품으로 좀 가져가도 되겠죠?”

“그러세요.”

“10분 지났네요. 그럼 이만 가 보죠.”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의 최두영 이사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진으로 들어가 하나의 근거를 찾았다.

바로 서준이라는 이름, 이게 키워드다.

시간이 없다.

최대한 빨리, 이 이름 하나로 남은 퍼즐들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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