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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듣는 회사원-189화 (189/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189화>

190. 출시까지 맞출 수 있겠어?

* * *

호텔 밖.

아까부터 시끄럽게 울리던 전화를 받았다.

- 뭐래? 맞지? 내 말이 맞지?

조급하게 묻는 김재열 이사.

이곳에 오기 전, 리우 포에 대해 강하게 의심을 했던 그였다.

“네, 맞습니다. 대충 떠봤더니, 바로 꼬리를 내리더라고요.”

- 거 봐. 네가 뭐랬어. 중국 애들 정말 단순하다니까. 지훈아, 나 아무래도 돗자리 깔아야겠지? 하하하

“작두를 타시죠?”

- 작두라……. 그거 아프려나?

김재열 이사와 대화는 매번 이런 식이다.

조금이라도 추켜세워 주면 좋아서 어찌할 줄 몰라 한다.

“그나저나 어떻게 아셨어요?”

- 얼마 전에 라운딩 갔다가 살짝 주워들었지. 알바오가 은근 한국 기업에 꽌시를 요구하고 다닌다고 말이야. 근데 이상하잖아. 거의 미국 기업이나 다름없는 알바오가 꽌시를 요구한다고 하니까……. 그래서 리우인지 뭔지가, 장난질 치는 거라고 의심했던 거지.

“이번에도 이사님 신세를 졌네요.”

- 그래, 다음에 꼭 신세 갚아라. 그리고 지훈아. 너도 빨리 머리 올려야지? 그래야 이런 정보들을 직접 받지?

머리를 올리라는 말은 골프를 배우라는 말.

아직은 시간이 없다.

해야 하는 실무가 차고 넘친다.

“다음예요.”

- 그럼 항상 똑같다니까. 골프를 쳐야 더 높은 사람을 만나고, 만나야 정보를 얻는 거야. 현대는 정보화 시대라고 내가 누차 얘기…….

맨날 이 소리를 한다.

나는 김재열 이사의 말을 재빨리 끊어 냈다.

“알겠어요. 다음에, 진짜 다음에 이사님 따라가서 배울게요.”

- 그래. 꼭이다. 난 삼종 대표님이 기다려서 가 봐야겠다.

“좀 쉬엄쉬엄하세요.”

- 오냐.

김재열 이사는 나와는 다른 분야로 바빴다.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시고…….

가끔은 마작이나 카드 게임 같은 것도 하면서 정보를 얻으러 다녔다.

정보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면서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할 정도였다.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바로 걸려 오는 전화.

이번엔 마성근 팀장이었다.

- 이사님. 뭘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뭐가요?”

- 알바오요. 조금 전에 리우 포에게 전화가 왔는데, 이번 제품들이 좋다고 하던데요? 그대로 진행하겠답니다.

이렇게 빨리 전화를 하다니…….

협박이 제대로 통했구나.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몬도나는요?”

- 당연히 취소했죠.

“그리고 또 다른 말은 안 합니까?”

- 미안하다고 하던데……. 이사님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 콧대 높던 놈이 어떻게 이렇게 변해요? 그것도 이사님 출동하고 몇 시간 만에?

“그냥 진상 좀 피웠죠. 아주 개진상을.”

- 네?

“팀원들에게는 절대 비밀입니다. 개진상 친 거 알면 쪽팔리잖아요.”

- 아…….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사님.

자신의 기획과 자신이 컨택한 제품으로 알바오를 만족하게 했다는 자신감이 이들을 더 성장시킬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내 기획과 제품이 통한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었고, 그 자신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뒤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던 김재열 이사의 노고도 모르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원스몰 당시, 그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를…….

그리고 그 노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이들에게 김재열 이사와 같은 선임이 될 것이다.

“이번엔 그냥 저만 알고 넘어가는데, 다음에 또 이런 일 만들면 가만 안 있을 겁니다.”

- 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유난히 밝은 목소리로 답하는 마성근 팀장.

나는 씩 웃으며 액셀을 밟았다.

* * *

며칠 후, 마켓 프레시 대회의실.

각 팀을 대표하는 팀장, 과장, 사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건 나홀로족을 위한 수박입니다. 슬라이스가 된 상태로 포장되어 있어서 뒤처리도 깔끔합니다. 기존보다 30% 높은 실적을 예상하며, 함안, 창원, 합천, 의령, 진천등의 72개 생산자와 사전 계약을 마쳤습니다.”

신선 식품 팀의 이재훈 팀장이 직접 이번 여름 시즌 상품을 소개했다.

이번 컨셉은 나홀로족을 위한 1인용 상품.

세상은 변했다.

가격이 조금 더 비싸도 1인을 위한 제품이 더 잘나갔다.

큰 제품을 사서 버리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 소비자의 가치관이 변한 것이다.

“블루베리는 떠먹을 수 있는 일회용 숟가락을 포함했고, 제철 과일 믹스 상품은 모두 슬라이스 제품들로 했습니다. 또한,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파티팩은 그린키워, 블루베리, 딸기, 파인애플, 샤인머스켓, 체리를 6등분한 특별한 용기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제품들을 테이블 위에 꺼내 놓는 이재훈 팀장.

내 옆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짓던 정진택 차장이 고개를 살짝 틀어 내게 속삭였다.

“이번 과일 매출,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그래요?”

“네, 대부분이 1인 과일 팩이라서 가격이 좀 올랐어요. 이전에 후가공 설비를 추가한 게 이렇게 빛을 보네요.”

1인용 과일 팩을 만들기 위해서는 후가공 설비가 필요하다.

수박을 매번 사람이 썰 수도 없고, 생산지에서 넘어온 블루베리를 사람이 대충 넣을 수도 없는 법이니까. 이에 정진택 차장은 시설비 투자를 건의했고, 우린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번 7월부터 처음 판매되는 1인용 과일들.

높은 매출을 예상하는 정진택 차장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재훈 팀장! 이번 시즌 목표치는 수정했지?”

“네. 차장님 조언대로 작년보다 20% 이상 상향 조정했습니다.”

1인용 과일은 아무래도 비쌀 수밖에 없다.

후가공 비용도 그렇지만, 슬라이스 한 과일의 유통기한이 더 짧아지기에 로스분에 대한 것을 미리 염두 해 둬야 한다.

나는 손을 살짝 들어, 설명하는 이재훈 팀장에게 물었다.

“포장 용기는 또 플라스틱인가요?”

“네.”

플라스틱 용기의 인체 유해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지금.

아쉽다.

이렇게 신선식품에도 플라스틱 용기를 써야 하는 현실이.

정진택 차장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그는 미간을 구기며, 의자에서 엉덩이를 살짝 뗐다.

“재훈 팀장. 아예 비닐로 가는 건 어떨까?”

“환경 호르몬 문제라면 비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비닐로 포장하면 배송 중에 모양이 망가질 수 있어서요. 현재는 플라스틱 용기만 한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흠…….”

매번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이런 회의가 이어진다.

사소한 것 같지만, 슬라이스 된 과일을 포장하는 용기에 따라 신선도와 매출이 달라지기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우린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또 찾았지만…….

결국은 플라스틱으로 돌아왔다.

제품의 외형에 손상이 가지 않는 포장법은 결국 플라스틱 용기뿐이었으니까.

“BF는? 거기 단가는 확인해 봤어?”

친환경 플라스틱 용기를 생산하는 BF.

워낙 단가가 비싸, 우리가 이 회사의 용기를 사용하는 건 정말 힘들었다.

“확인해 봤습니다. 기존 플라스틱 용기보다 300원이나 더 비쌉니다.”

“허……. 뭐 그렇게 비싸? 우리 이번에 수량 많잖아. 그래도 그래?”

“네. 그거 고려해서 그 가격인 겁니다.”

“하……. 도둑놈 새끼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정진택 차장.

나는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입을 열었다.

“BF 말고 다른 업체는 없나요?”

“로하스와 KCF가 있는데, 두 업체 모두 단가는 비슷합니다.”

이번에도 그냥 플라스틱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일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끝에 앉아 있던 한 직원이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팀장님. 투비팩은 어떨까요?”

가공식품 팀의 김준위.

엉뚱한 발상을 자주 하는 그는 우리 사업부의 아이디어 뱅크다.

그리고 그 엉뚱함이 때로는 큰 도움이 된다.

“투비팩?”

“네. 삼면을 투비팩으로 싸고, 한쪽 면만 투명한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포장하면 어떨까요? 그럼 안에 내용물도 보이고, 과일이 배송 중에 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만, 신선도 유지에도 크게 도움이 될 거 같은데…….”

제품의 신선도를 더 오래 유지해 주는 투비팩.

우유나 유제품의 포장에 주로 쓴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우유나 유제품의 신선도를 높일 수 있다면, 당연히 수분이 많은 과일에도 적용할 수 있다. 또한, 김준위의 말처럼 한쪽 면을 비닐이나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포장하면 소비자의 만족도까지 충족시킬 수 있다.

“준위 씨가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투비팩은 얇은 플라스틱 코일이 있어서 액체 보관에 유용한 거야. 과일과 같은 제품의 보관에는…….”

“아니요. 투비팩은 코일이 격자형이라서 이전의 테트라팩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응?”

“한 열이 아니라 격자로 더 촘촘하게 있어서 거의 평평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리 공부를 좀 했구나.

이는 이재훈 팀장도 자세히는 모르는 사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김준위와 이재훈 팀장의 대화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 와서 용기를 다 뒤엎겠다고?”

“그건……. 우유 공장에 설비가 있고 이를 테스트해 보면 답이 나올 거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 테스트를 하겠다는 건데? 당장 낼모레 출시해야 하는 제품들인데.”

지금 와서 준비한 제품의 포장 용기를 바꾸겠다는 것에 화가 난 이재훈 팀장.

그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바꿀 건 바꿔야 한다.

“잠깐! 팀장님 잠깐만요.”

나는 손을 들어 이재훈 팀장의 말을 끊어 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김준위에게 물었다.

“준위 씨. 테스트해 봤지?”

“네. 사실……. 해 봤습니다.”

김준위는 이런 성격이다.

확실하기 전에는 말을 꺼내지 않는 성격.

여러 차례 그의 기억을 읽은 나는 이미 그를 잘 알고 있다.

“어땠는데?”

“100% 만족은 아니어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플라스틱 용기보다 신선도도 오래 유지됐고, 배송 시 손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

“단가를 떨어트릴 수 없습니다.”

“준위 씨가 예상한 단가는?”

“176원가량이 될 것 같습니다.”

컵 모양의 플라스틱 용기의 단가는 대략 132원.

이는 친환경 플라스틱이나 유리 용기의 값에 비할 수 없는 단가다.

또한, 신선도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

나는 고개를 돌려, 이재훈 팀장에게 물었다.

“재훈 팀장님. 용기 단가는 176원으로 단가 맞춰서 손익 계산을 다시 해 주세요.”

“투비팩으로 결정하신 건가요?”

“아니요. 일단은 해 봐야죠! 로스율을 줄일 수 있다면 그 정도 단가는 문제없습니다. 안 그래요? 재훈 팀장님?”

“아……. 그건 그렇지만, 지금 용기를 교체하기에는 시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하는 이재훈 팀장.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고개를 돌려 김준위를 바라봤다.

“준위 씨. 출시까지 맞출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일주일 남았는데?”

“네. 어차피 신선식품이 한 번에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할 겁니다.”

“시뮬레이션 해 봤어?”

“네. 도재문 팀장님께 부탁해서 해 봤습니다.”

“좋아. 그럼 BO식품 연구실로 가서 정확한 신선도를 정확히 체크를 해 줘. 상온과 냉장의 정확한 수치가 필요해.”

“알겠습니다.”

“정진택 차장님은 이해용 대표와 함께 투비팩 설비의 개조에 대해 협의해 주세요. 준위 씨가 말한 것처럼 한 면을 플라스틱으로 변경한 샘플을 내일까지 받아봤으면 좋겠네요.”

“문제없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포장도 변하는 법.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포장 팩에 의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만약 이번 포장재의 변경이 성공한다면.

투비팩은 유제품과 음료가 아닌,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도 가능해질 것이다.

“자자! 시간이 없습니다. 이번에 바꾸면 다음부터는 좀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빨리 움직이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직원들을 독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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