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듣는 회사원 175화>
176. 너 오늘 생일이라면서?
* * *
새벽 3시.
띠리링! 띠리링!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아내가 깨지 않도록 재빨리 알람을 껐다.
새벽 배송을 위해서 일어나야 하는 시간.
오늘은 물량이 많은 화요일이라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
나는 택배 기사다.
하루 평균 15시간을 일하고 1,270여 개의 층을 오르내린다.
기사들끼리 농담으로 그런다.
살아서 만나자고…….
그리고 나에겐 정말로 살아야 할 큰 이유가 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화장실에서 세수를 마치고 나온 내 앞으로 여섯 살 딸아이와 아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 초가 꽂힌 케이크를 든 채로.
“생일 축하해.”
오늘은 내 스물네 번째 생일.
전셋집을 얻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이기도 하다.
“왜 일어났어? 더 자지.”
“오빠 생일, 제일 먼저 축하해 주고 싶어서.”
환하게 웃어 보이는 아내.
아무것도 모르는 열여덟의 나이에 지금의 딸아이를 낳았다.
그때 내 나이는 겨우 열아홉.
세상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소중한 딸이 생겼다.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그동안 꿈만 꾸던 철부지 학생들에게 벅찬 세상이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새벽 배송.
마켓 프레시는 학벌과 경력을 보지 않는 곳이라 취업할 수 있었다.
또한, 하는 만큼 수당이 붙어 욕심만 내면 한 달에 400만 원 이상을 벌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 일을 시작한 지는 벌써 2년.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힘이 든다.
“하아…….”
딸아이는 엄마가 깨워 억지로 일어났나 보다.
눈을 비비고 크게 하품을 하며 내게 안겼다.
“우리 채윤이 방에 가서 잘까? 아빠가 침대까지 안아 줄게.”
“우웅.”
나는 딸아이를 번쩍 안아 방에 눕혀 주고 현관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 아내는 주방으로 가서 작은 보온병을 들고 와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미역국이야. 이따 점심시간에 꼭 같이 먹어.”
“그래. 고마워.”
“운전 조심하고, 바쁘다고 밥 이상한 거 먹지 말고. 꼭 식당 가서 챙겨 먹어.”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선영아. 우리 쉬는 날에 채윤이 데리고 어디 놀러 갈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면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아니야. 일요일에는 오빠도 쉬어야지. 그냥 우리 집에서 맛있는 거 해 먹자.”
일주일 중 내가 쉬는 날은 단 하루.
일요일뿐이다.
그렇게 고된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해 주는 아이와 아내.
나는 이들과의 미래를 위해 내 시간을 바치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일단 생각해 봐.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와. 그리고 혹시…….”
“혹시 뭐?”
“아……. 아니야.”
씁쓸한 표정으로 애써 미소를 짓는 아내.
나는 궁금한 마음에 되물었다.
“뭐? 말해 봐.”
“혹시 오늘 같이 식사할 수 있을까? 좀 늦어도 괜찮은데…….”
어렵게 말을 꺼내는 아내.
오히려 내가 더 미안했다.
전세 대출 이자를 빨리 갚기 위해, 지난 몇 달간 외식한 적이 없었으니까.
“오늘 화요일이잖아. 미안. 주말에 먹자.”
“그래. 알았어. 신경 쓰지 말고.”
실망의 말이나 불평을 할 만도 한데…….
아내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 * *
“잠깐만요, 기사님!”
현관문을 빼꼼히 여는 60대의 여자.
매일 우리 마켓 프레시의 제품을 배송하는 고객이다.
상자를 내려놓고 사진을 찍으려던 내가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깨신 건가요? 다음엔 더 조용히…….”
“아니요. 원래 일찍 일어나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여자는 내가 내려놓은 상자를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종이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이거 가져가세요.”
“반품은 미리 말씀해 주셔야…….”
“아니. 아침에 토스트를 좀 구웠는데, 좀 많아서요. 따뜻할 때 드세요.”
따뜻한 토스트와 200mL의 우유가 담긴 종이가방.
가끔 이렇게 간식과 음료를 주시는 분들 덕분에 힘이 난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네. 수고해요.”
여자는 내게 손을 흔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방의 손잡이 끈을 손목에 걸고, 재빨리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조수석에 종이 가방을 내려놓고, 차의 뒤로 향했다.
시간이 없다.
30분 이내에 이쪽 단지 배송을 완료하고 다음 단지로 바로 넘어가야 한다.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틀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새벽.
귓가에 들려오는 잔잔한 노랫소리가 나를 더 집중하게 하였다.
그때,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두현아! 이거 먹고 하지?”
이 아파트에서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마켓 프레시 본사의 원지훈 이사.
“이사님?”
“누군가 꽤 정성껏 싸 준 거 같은데.”
“시간이 없어서요.”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
나는 피식 웃고 화물칸에 있는 짐들을 내렸다.
“배고프면 이사님이 드세요. 새벽부터 또 무슨 일이에요?”
“나? 조깅 중.”
“일 잘하나 감시하려고 내려온 건 아니고요?”
“뭐. 그런 것도 좀 있지.”
원지훈 이사는 매번 저런 식이다.
내가 장난을 치면, 더 심한 장난으로 대응한다.
그는 종이 가방 안, 토스트의 포장을 벗겨, 내 입에 억지로 넣어 줬다. 그리고 우유를 뜯어, 내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너한테 준 건데 내가 왜 먹냐. 일단 먹어. 여기 이 물건들은 내가 올려다 놀 테니까.”
“할 줄 알아요?”
“마프 달빛 배송을 만든 사람이 나야.”
“근데, 이사님이 왜 그걸 날라요?”
“운동한다고 했잖아.”
“그냥 두세요. 그러다 다쳐요!”
“너 모르는구나? 내가 너보다 힘은 더 좋을걸?”
그는 내가 내려놓은 짐들을 들고 아파트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씩 웃고, 화물칸 끝에 걸터앉아 토스트를 입안에 넣었다.
무선 이어폰에서 평소 좋아하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볼륨을 올렸다.
그러자 노래가 아닌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새어 나왔다.
오래된 물건이라 그런지 가끔 그런다.
소리를 키우면 잡음이 커져서 아예 들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나는 미간을 구기고 이어폰을 귀에 빼냈다.
아침 공기가 상쾌한 오늘.
노래가 없어도 괜찮다.
생일이라는 핑계로 아내와 아이를 보고 나왔으니까.
잠시 후.
“다 먹었어?”
아파트 라인 하나를 끝마친 원지훈 이사가 내 옆에 걸터앉았다.
“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그럼 나는?”
“한 조각밖에 없었거든요.”
“와, 콩 한 쪽도 나눠 먹으라는 말 몰라? 앞에 보온병 있던데. 그건 뭐야?”
“미역국이요. 이따 점심 때 같이 먹으려고요.”
“생일이야? 제수씨가 싸 준건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화물칸의 짐을 내렸다.
그러자 원지훈 이사는 팔을 걷고 바짝 붙어 일을 도우며 말을 이었다.
“저쪽 7~8라인 있지? 그쪽만 내려 줘. 내가 거기까지만 해 줄게.”
“왜 그러세요. 오늘?”
“그냥 운동하는 거라니까?”
나는 씩 웃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냥 두세요. 이건 제 일입니다.”
“그냥 심심해서 하는 거야.”
“그러다 진짜 허리라도 다치면……. 어휴. 내가 그 꼬장을 어떻게 받아요.”
“어쭈. 미쳤냐? 이게 이제 막 맞먹으려 하네?”
나는 원지훈 이사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다음 라인으로 올라갈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러자 옆에서 함께 짐을 내리던 그가 주머니에 있던 무언가를 상자 위에 올려놨다.
“뭡니까?”
“블루투스 이어폰인데, 내가 쓰던 거야.”
“네?”
“생일 선물 준비를 못해서. 그냥 이거라도 해.”
하얀 블루투스 이어폰.
노이즈 캔슬링이 된다는 제품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가장 가지고 싶던 것이었다.
“이거……. 진짜 저, 주시는 거예요?”
“그래. 그냥 너 해. 이번에 3세대 나와서 하나 더 샀거든.”
“와…….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뭘. 쓰던 거라니까.”
“이거 중고마을에 팔아도 돈 좀 돼요.”
“그거 케이스 봐라. 완전히 오래됐잖아. 요즘 그런 거 팔면 욕먹어.”
“케이스 5천 원짜리 그냥 사다 끼면 되는데요. 뭐.”
“그럼 그렇게 해서 너 써.”
나는 신이 난 마음에 충전기 케이스 뚜껑을 열어 안의 이어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금방 알았다.
무선 이어폰 끝.
투명한 테이프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마치 새것처럼.
“이사님. 이거 진짜 쓰던 거 맞아요?”
“맞다니까. 한 1년 넘게 썼을걸?”
“진짜 맞아요?”
“아, 맞아! 이 자식이 속고만 살았나. 내가 너한테 미쳤다고 새 걸 선물하겠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원지훈 이사.
그는 이런 사람이다.
종종 뜬금없이 나타나 선물을 주고 무심한 듯 툭 말을 내뱉고 간다.
저번 아이 생일은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에게 주라며 새로 나온 스낵 한 상자를 줬었는데.
또 내 얘기는 어디서 들었는지…….
정말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이어폰을 케이스 안에 넣고, 그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이거 못 받습니다.”
“왜?”
“다 알아요. 이어폰 밑에 테이프 그대로 붙어 있어요.”
“…….”
“30만 원이 넘는 건데, 어떻게 받아요? 그냥 이사님 쓰세요.”
내 말에, 원지훈 이사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야! 신두현. 그냥 좀 모르는 척하고 받으면 어디가 덧나냐?”
“제가 어떻게 그래요.”
“그냥 받아. 너 음악 좋아하는데, 지금 이어폰 망가졌잖아.”
“아닙니다. 그냥 제가 사서 쓸게요.”
“참, 네가 사겠다. 그냥 줄 때 가져가. 선물 받은 건데 나 딴 거 있단 말이야.”
“아니에요. 다른 사람 주세요.”
나는 고개를 저은 후, 차에서 내린 짐을 양손으로 들고 걸어갔다.
그러자 원지훈 이사는 내 조끼 주머니에 이어폰을 넣어 주고 재빨리 달려가 버렸다.
“아! 이사님!”
“그냥 써. 나 필요 없는 거니까. 형이 주는 건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받는 거야.”
“이사님!”
“오늘은 퇴근하면 아내랑 맛있는 것도 좀 먹고. 알았어?”
내가 두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자, 원지훈 이사는 손을 흔들고 달려가 버렸다.
나는 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 * *
오후 6시.
배송을 마치고 돌아온 물류센터.
“두현아! 너 오늘 분류 작업 들어가지?”
“네. 과장님.”
“일 좀 적당히 해라. 그러다 한 번에 훅 간다.”
“젊을 때 더 벌어야죠.”
“그래. 수고하고 먼저 들어간다.”
손을 흔들고 가는 최동연 과장님.
BO 푸드에서부터 물류 일을 하신 분으로 일산 센터의 최고 선임자다.
나는 원지훈 이사가 선물해 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볼륨을 높였다. 주변의 잡음이 차단된 음악은 내게 신바람을 불어넣어 줬다.
“흐흠흐흐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류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어폰의 음악을 끄고 고개를 돌렸다.
“너 오늘 생일이라면서?”
빨간 코팅이 된 장갑을 끼고 있는 최동연 과장.
분명 조금 전에 퇴근을 한다고 했는데.
“아……. 네.”
“오늘은 들어가 봐. 내가 대신해 줄 테니까.”
“아닙니다. 전세 대출 이자 내려면 더 해야 해요.”
“오늘은 그냥 가서 아내랑 아이랑 외식이라도 좀 해.”
“과장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장갑을 벗고 나가려는 순간, 최동연 과장이 나를 급하게 불렀다.
“야, 두현아!”
“네?”
“이거 가져가라.”
작은 봉투를 건네는 최동연 과장.
나는 그 봉투를 받아 들고 다시 물었다.
“이게 뭔가요?”
“앞으로 여기 직원들 생일에 외식 상품권 준다더라.”
“네?”
“본사에서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가.”
“누가 그래요?”
“MD 사업부 뭐더라? 하여간 무슨 이사라던데. 아침 일찍부터 각 센터 직원들 생일들 다 정리해서 보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보냈더니 오늘부터 이렇게 상품권 준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오늘이 네 생일인 거 알았잖아.”
“…….”
“하여간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내일 보자.”
지난 6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는 가족을 위해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그런 나를 위했다.
가끔 아이가 투정을 부릴 때면 방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엄하게 혼낸 적도 있었다.
그랬던 아내가 오늘 아침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같이 외식을 할 수 있겠냐고.
너무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말인데 그걸 그렇게 어렵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빨리 가. 마음 변하기 전에.”
“네. 과장님. 제가 내일…….”
최동연 과장은 내 어깨를 잡고 강제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엉덩이를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