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170화 (170/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170화>

171. 최성진 씨가 왜 책임을 집니까?

마켓 프레시 경력 사원 면접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유형.

“핫딜에서 근무할 때도 전 카테고리에서 매출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경력을 근거로 자신감을 내세우는 유형.

“셀링 포인트를 짚어 내는 것이 진정한 MD라고 생각합니다. 마프는 리드 타임(발주부터 납품처의 입고까지의 시간)을 줄인 것에 매력을 느꼈고, 회원들을 대상으로 MOA(최소 주문 단위)를 높이면 더 높은 매출을 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자신만 아는 것처럼 말하는 유형.

경력자 면접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몰렸다.

5명을 뽑는 자리에 총 300여 명이 지원했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을 표현했다.

“다음이요.”

뻔한 얘기와 스펙에 다소 지친 김명진 부장이 맥이 빠진 목소리로 다음을 외쳤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진지한 표정의 지원자가 들어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면접관들에게 일일이 나눠 준 후, 중앙에 서서 크게 소리쳤다.

“이영학입니다!”

우린 고개를 숙여 그가 나눠 준 종이를 확인했다.

엉성하게 만든 나이트클럽 전단 같은 종이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말들과 자신의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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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최강 이영학.

전 세계 모든 음식을 다 먹어 볼 예정인 이영학.

살짝만 찍어 먹어 봐도 모든 맛을 다 아는 절대 미각 이영학.

상사의 말에 달까지 따올 수 있는 이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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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과한 거 같지만, 나름 귀엽다.

그리고 이제 막 군대를 다녀온 것 같은 앳된 얼굴의 그는 경력자로 보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였다.

“올해 나이가 스물일곱인가요?”

“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해서 7년간 MD 생활을 해 왔습니다.”

김명진 부장의 질문에 그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럼 대학은…….”

“사회에서 실무를 배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임에도 대학을 가지 않은 것입니다. 못 믿으실까 봐, 고등학교 성적 증명서를 첨부했습니다.”

김명진 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이력서를 넘기며 질문을 이었다.

“LS마켓, 테스몰, 프리미엄 한우몰 총 세 군데 근무하셨군요. 이직이 잦은 거 같은데 이유가 있을까요?”

“배울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배울 게 없어요?”

“작은 회사라 그런지, 배울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과감하게 마켓 프레시로의 이직을 생각했습니다.”

“흠……. 그래요?”

김명진 부장은 실망의 표정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 표정의 의미를 눈치챈 이영학은 재빨리 답을 했다.

“저는, 이해와 적응력이 남들보다 뛰어납니다. 또한, 업무에 관련한 실수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제가 성공을 예측했던 상품은 모두 최고 매출을 찍어 냈습니다.”

“안목이 좋다는 말인가요?”

“네! 제품을 보는 안목. 그건 타고난 제 능력입니다.”

지금까지 틀에 박힌 말만 하는 지원자들에게 지쳤을까?

다소 건방지지만, 면접관들은 그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가 나눠 준 종이에 담겨 있는 기억을 들은 나는 씩 웃으며 질문을 했다.

“마켓 프레시에서 눈여겨본 제품이 있었나요?”

“아니요. 없었습니다.”

“그럼 다른 커머스에서 눈여겨본 상품이 있었나요?”

“네. 핫딜에서 판매 중인 생향 훈제 오리 슬라이스는 언젠간 대박을 칠 거라 보고 있었습니다.”

“그게 맛이 좋았나 보죠?”

“아니요. 맛은 그냥 그렇게 평범했습니다.”

“그럼 왜 성공할 거라 보신 거죠?”

“첫째, 생향은 40년 동안 오리만 다뤄 온 회사입니다. 이는 어떻게 하면 오리의 맛이 풍부해지는지 잘 아는 회사라는 말입니다. 둘째, 생향은 오리구이집에 공급되던 부분을 모두 끊었습니다. 사실 끊은 것이 아니라 화정식품에 밀린 것입니다. 이에 회사 매출은 40% 이상 급감했고, 생향은 이제 온라인 판매가 마지막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칙칙하던 포장 디자인이 바뀐 것이 이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단가입니다. 화정식품에 비해 15%나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 중입니다. 이는 식품에 납품하던 가격을 그대로 소매에 녹였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소비자에게 외면받고 있지만 언젠간 이들의 오리가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이영학.

미리 달달 외운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나눠 준 종이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기억이 들렸으니까.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맛이 아니라 배경을 보고 판단하신 거군요.”

“네. 맞습니다. 맛은 그들이 가진 배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근에 생향의 담당자와 만난 적이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럼, 책상에 앉아서 그런 판단을 했다는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뉴스와 SNS의 글들로 현재 상황을 모두 읽어 냈습니다. 진정한 MD는 그런 자료들로 맛을 예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맛을 예상한다라……. 신기하네요. 그게 가능해요?”

“네! 저는 가능합니다.”

이영학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마, 자신의 면접 전략이 먹혔다고 생각했나 보다.

“최근에 생향의 제품을 먹어 본 적이 있나요?”

“한 달 전에 구매해서 먹어 봤습니다.”

“이상한 점 못 느끼셨나요?”

“잡내가 사라지고, 맛이 더 깊어졌다고 느꼈습니다.”

“자, 그럼 영학 씨가 틀린 점에 대해 말씀드리죠. 첫째, 생향은 식당에 납품하는 납품가가 아닌, 정육을 바꿔서 단가를 낮춘 겁니다. 슬라이스의 단면적이 이전보다 작아진 것이 눈에 확실히 보입니다. 오리의 크기는 자란 환경과 계절 등에 좌우됩니다. 지금 쓰는 정육의 등급이 낮기에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는 겁니다.”

“…….”

“둘째, 안이 살짝만 보이는 투명한 포장지로 바꾼 것은 하단에 붙인 방부제가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기존보다 큰 사이즈를 썼기에 이를 가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셋째, 식당의 납품이 끊겼다는 것은 맛이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더 많은 마진을 위해 제품을 바꿨기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내 말이 끝나자, 이영학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나는 면접관들을 둘러보며, 그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말한 사실은 여기 면접관들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영학 씨가 거쳐 온 회사의 MD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배울 게 많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내 말이 끝나자, 김태하 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영학 씨는 앞으로 많이 배우셔야 할 거 같네요.”

“……기회를 주십시오. 배우겠습니다. 마켓 프레시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여기는 학교가 아닙니다. 더 배우고 싶다면, 학교나 학원을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김태하 차장은 냉정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이에 풀이 죽은 이영학이 밖으로 나가고, 김태하는 그가 나눠 준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저런 기본도 안 된 놈들이 지원을 다 하고. 마프에 눈여겨본 상품이 없어? 참 나 어이가 없어서. 그따위로 시선만 끌면 될 거로 생각했나 보지?”

“그러게. 이거 신입보다 경력자 뽑기가 더 힘드네.”

김태하 차장의 불만에 정진택 차장이 동의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지막 면접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본 나는 씩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안녕하십니까. 최성진입니다.”

최성진.

일전에 박람회장에서 만났던 에이마켓의 MD다.

침착하고 차분했던 행동에 호감이 갔고, 뭐든 꼼꼼히 따지고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체인마켓에서 함께 일했던 이진성 차장은 그를 보고 씩 웃으며 질문을 했다.

“최성진 씨. 에이마켓에서 퇴사하신 사유가 뭡니까?”

“단순 영업이 아닌 MD가 되고 싶어서입니다. 소싱부터 기획, 판매, CS까지 모든 것을 하는 MD가 되고 싶습니다.”

“바로 직전에 근무하신 에이마켓에서는 뭘 배웠습니까?”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많은 제조사를 상대하면서 그들의 배경이 맛과 단가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배경이 맛과 단가를 만든다라…….

나는 테이블 위에 깍지를 낀 채로 그에게 질문했다.

“너무 철학적이라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예를 좀 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사골 베이스의 분말을 제조하는 회사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하나의 제품을 만들 수는 없지만, 라면과 각종 레토르트에 그들의 분말을 납품하면서 자신들의 제품을 갖기를 꿈꿔 왔습니다. 하지만 전체 직원 열둘에 작은 공장으로는 시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네. 제 능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사골 분말을 만들며, 주변 업체들의 원가 절감 요구에 맞춰서 2명의 인원을 감축했습니다.”

“어떻게 해 볼 생각이었나요?”

“경쟁력이 있는 그들만의 레토르트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마켓 프레시는 그렇게 개발한 제품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능력이 있지만, 돈이 없거나 사람이 없어서 못한 제조사들이 자신만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김태하 차장이 고개를 저었다.

“회사의 시스템으로 자선 사업을 하겠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최성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들고온 가방에 있는 종이를 꺼내 김태하의 앞에 내려놓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

“통계입니다. 그 회사의 분말을 사용한 회사의 재구매율과 고객의 후기 등을 비교한 자료입니다.”

김태하는 자료를 빠르게 넘겨 보고, 곧바로 나에게 넘겨 줬다.

나는 그가 내민 두툼한 자료들을 천천히 넘겨 보며 기억을 살폈다. 그리고 내가 기억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김태하가 다시 질문을 이어 갔다.

“겨우 이 통계만 가지고 그렇게 판단한 것입니까?”

“아니요. 저와 제 지인들이 느끼는 맛의 차이도 통계와 일치했습니다. 분말을 쓴 회사의 제품이 훨씬 더 감칠맛이 더했습니다.”

“그 분말을 만드는 회사가 어딥니까?”

“테이플 식품입니다.”

김태하는 테이블 위의 손가락을 까닥였다.

생소한 이름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MD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테이플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제조사라면 분명히 기억할 텐데…….

아무도 테이플이라는 말에 나서지 않았다.

김태하는 눈썹을 추켜세우고, 최성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처음 듣는 회사군요. 어느 제품에 테이플의 조미료가 들어갔습니까?”

“BO 푸드, 생경식품, 화정식품, 성진식품의 일부 레토르트에 들어갔습니다.”

“BO의 제품예요?”

“네. 대부분은 표기되지 않아 모릅니다. 제품의 뒷면에는 쇠고기 분말이라고만 표기할 뿐, 테이플의 이름은 명시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최성진 씨는 어떻게 알았나요?”

“BO 푸드의 생산 공장을 견학하다가 제품이 입고하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작은 조미료 회사까지 확인했구나.

생산 공장을 견학하는 대부분은 쉽게 놓치는 부분이다.

나는 그의 눈을 보며, 김태하를 대신해 질문을 했다.

“쇠고기 분말은 제품에 1%도 들어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일부분을 만드는 회사가 과연 레토르트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네. 가능하다고 봅니다. 제품의 비중에는 1%도 차지하지 않지만, 제품의 맛에는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조미료입니다.”

“최성진 씨는 경력직이니 하나의 제품이 개발되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 줄 알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의 확신이 있기에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확고한 그의 눈빛에 더 궁금해졌다.

나는 씩 웃으며 질문을 이어 갔다.

“그 이유로 마켓 프레시에 입사 지원을 한 것입니까?”

“네. 마켓 프레시는 단순한 상품의 판매가 아닌 제조까지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제품이 잘못된다면 책임을 질 마음으로 하겠습니다.”

“책임을 진다라…….”

“네. 비용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질 수는 없겠지만, 퇴직금이나 상여금 같은 것을 걸어서라도 책임지겠습니다.”

“최성진 씨가 왜 책임을 집니까?”

“그야 제가…….”

“다른 곳에서는 그래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긴 아닙니다. 이곳의 MD들을 설득하세요. 그럼 자연스럽게 소비자도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최성진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MD 분들 입맛이 꽤 까다로울 텐데?”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가 면접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김태하 차장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 이사님. 저 친구 우리 가공에 주는 거죠?”

“무슨 소리야! 말도 잘하고 진중한 것이 신선에 딱 맞구먼.”

“두 분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특판에 인원 부족하신 거 아시잖아요!”

정진택 차장과 마성근 팀장의 말에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곳에 보내 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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