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152화 (152/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152화>

153.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회사 인근의 펍.

김경일 팀장의 단톡방 메시지에 특판 팀 대부분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술에 취한 마성근 팀장.

그는 30분이 넘도록 자신의 지난 무용담을 쏟아 내고 있었다.

“이번에 한 시간 만에 완판 난 즉석밥 있지? 그거, 내가 삼호식품 이사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서 힘들게 받아온 거야!”

“팀장님. 진짜 이번 타이밍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때 하필 핫딜에서 제품 빠지면서 마프로 완전 몰렸잖아요.”

김대성이 맞장구를 치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다 계산했지.”

“진짜요?”

“응, 그거 사실은 핫딜로 들어가는 제품이었는데 내가 중간에서 가로챈 거야.”

“와, 역시 우리 팀장님 영업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여간 우리 특판 뜬 거 보고 핫딜 놈들 아마 무지 놀랐을 거다. 하하하.”

핫딜.

소셜커머스로 시작한 그들은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커머스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에이마켓이 최고였지만, 핫딜은 빠른 배송과 온라인 최저가를 무기로 겨우 두 달 만에 최고의 커머스로 올라섰다.

우린 핫딜과 에이마켓의 뒤를 이은 3위.

이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심지어 대형 식품 제조사인 바론까지 커머스를 준비하면서 우리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마 팀장님. 요즘 제조사들 핫딜에서 많이 빠져나오는 거 같던데 들으신 것 좀 있어요?”

내 질문에, 마성근 팀장은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말했다.

“제 친구가 완구 회사에 있거든요. 이사님도 저팔계라고 아시죠?”

“네, 알죠.”

저팔계는 아이가 없는 나도 알 정도의 큰 완구회사다.

“거기 이사로 있는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 핫딜이랑 거래를 끊었다네요.”

“왜요?”

“핫딜 놈들 매출 1위 찍고 갑질이 심해졌나 봐요. 일시적으로 단가 낮춰서 특판 때리는 건 참겠는데, 그 단가를 365일 유지하라는 건 좀 심했죠.”

“그래요?”

“네, 조만간 언론이 달려들면 좀 시끄러워질 겁니다.”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지난 몇 달간 상장과 매출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회사들은 신경 쓰지 못했다.

내가 관심 있는 표정을 짓자, 김경일 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영도 실업은 아예 소송까지 걸겠다고 나섰습니다.”

“영도면 명품 수입하는 회사지?”

“네, 맞아요.”

“거긴 또 왜?”

“이번에 핫딜에서 특판 진행한 게 있는데, 이탈리아 본사에서 그걸 문제 걸고넘어갔나 봐요.”

“얼마나 할인 들어갔는데?”

“자세히는 모르는데, 실시간 검색까지 올라갔던 거 보면 꽤 했을 겁니다.”

“30%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해외 직구인 줄 알았는데, 배송 오는 거 보니까 영도에서 오는 거였습니다.”

가만 얘기를 듣고 있던 하연두까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네. 사실……. 이 큰맘 먹고 산 백도 거기서 샀거든요.”

하연두는 빈 의자에 올려 둔 가방을 보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명품 브랜드가 30%나 할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하연두가 들고 이탈리아 브랜드의 저 루이스는 할인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거 루이스지?”

“네, 맞아요.”

“에이, 초록이 그거 가짜 아니야? 루이스는 절대 세일 안 하잖아.”

“그래서 저도 냅다 질렀어요.”

“그래?”

게슴츠레 눈을 뜬 마성근 팀장은 라이터를 꺼내 들고 가방을 만지려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하연두가 재빨리 가방을 뒤로 숨겼고, 김경일 팀장이 마성근 팀장의 양쪽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마 팀장님 취하셨습니다.”

“아니야. 내가 뭘 취해. 초록 씨 좀 줘봐. 내가 짝퉁인지 아닌지, 확인해 줄게.”

“그만 드세요.”

나는 씩 웃고, 닭 다리를 잡고 뜯는 김대성을 불렀다.

“대성 씨.”

“네?”

“이번에 핫딜 물류 센터에 친구 있다고 했지?”

“과로사한 거요?”

“응.”

“저도 뉴스 보고 놀라서 전화해 봤는데, 좀 심했더라고요. 어떻게 한 달 내내 20시간 이상 근무를 시킵니까? 바쁘면 사람을 좀 더 뽑든가.”

“그럼 그 뉴스가 진짜였던거야?”

“네. 핫딜에서 특근 수당 올려 주면서 대놓고 야근을 유도를 했더라고요.”

우리보다 반년 먼저 오픈한 핫딜.

그들은 부동의 1위인 에이마켓을 이기기 위해 빠른 배송과 온라인 최저가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매출은 빠르게 올라갔고, 소비자들의 인지도 또한 높아졌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 노력에 대한 부작용이 터져 나오고 있다.

빠른 배송이라는 목표 아래 일하던 노동자들은 지쳤고, 가격을 놓고 다투던 제조사들은 하나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흠……. 핫딜이 이번엔 좀 힘들겠는데?”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조사들이 제품 빼는데 커머스가 어떻게 이기겠어요. 진짜 아무리 봐도 우리 같은 커머스는 없어요.”

이우진은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내 잔에 조심스럽게 소주를 따라줬다.

핫딜과 우리의 가치관은 시작부터 달랐다.

식품만 취급한 우리는 제조사에게 사입이라는 카드를 내밀었고, 낮은 단가가 아닌 믿을 수 있는 식품이라는 것으로 소비자를 설득했다.

반면, 소셜 커머스에서 종합 커머스로 발전하면서 핫딜.

그들은 모든 제품군을 다루며, 최저가와 빠른 배송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좋은 단가의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제조사를 설득했다.

나는 식품 외의 다른 카테고리를 접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른 카테고리를 만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기회다.

핫딜을 등진 제조사를 잡을 절호의 기회.

“마 팀장님 내일 출근하시면, 저팔계 쪽 미팅 좀 잡아 주세요.”

“거기 완구 회사인데요?”

“네, 알아요. 그리고 경일 팀장은 영도 실업 쪽 미팅 좀 잡아 줘.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거 같아.”

김경일 팀장은 내 말을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다음 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자리에 앉아 있던 김경일 팀장이 다가왔다.

“오전 11시에 미팅 잡았습니다.”

“오늘?”

“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셨잖아요.”

“글쎄. 예나 씨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그건 제가 확인했습니다. 오전에 특별한 일정 없으셔서 오전 11시로 미팅 잡아 놨습니다.”

역시 김경일 팀장이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경일 팀장은 나 쉬는 꼴을 못 보지? 오전에 좀 쉬려고 했더니.”

내 말에, 씩 웃어 보이는 김경일 팀장.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내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영도에서 수입 중인 브랜드들입니다. 오프라인 판매 중인 매장 수와 지역, 판매량 등은 제가 별도로 표시해 놨습니다.”

영도에서 다루는 명품 브랜드는 총 13개.

그리고 누구나 아는 브랜드도 5개나 있다.

나는 그가 건네 준 문서를 천천히 넘겨 보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언제 이걸 다 준비한 거야?”

“어제요.”

“어제 술 좀 마셨잖아?”

“오히려 술이 들어가니까 정신이 또렷해지더라고요.”

“경일 팀장 참 못 말린다. 그냥 쉬지 이걸 또 준비한 거야?”

“저도 이사님처럼 욕심이 많습니다.”

“내가 뭐할 줄 알고?”

“MD가 벤더를 불러들이는 건 뻔한 거잖아요.”

맞다. 너무도 뻔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방으로 걸어가며 답을 했다.

“그래. 이따 오시면 마 팀장님이랑 같이 내 방으로 좀 와.”

“알겠습니다.”

오전 11시.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 김경일, 마성근 팀장과 영도 실업의 김도만 이사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김도만 이사.

베이지색 레인코트에 명품 로고가 박힌 스카프를 한 40대 초반의 그는 남다른 패션 감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찢어진 청바지에 긴 부츠.

멋지게 손질한 콧수염과 색이 들어간 안경은 조금 과할 정도로 보였다.

“이렇게 직접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자, 김도만 이사는 재빨리 내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닙니다. 마켓 프레시가 부르는데 당연히 와야죠.”

외국에 오래 살다 왔나?

마켓 프레시를 발음이 너무도 낯설다.

“앉으시죠.”

“네.”

이예나가 차를 가져오자, 그는 혀를 잔뜩 굴리며 땡큐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김경일 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김도만 이사의 행동을 대신 설명했다.

“김도만 이사님은 제가 미국에 있을 당시 만났었습니다.”

“맞아요. 경일이랑은 다운타운에서 꽤 재미있게 놀았죠.”

“아…….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김도만 이사는 발밑에 내려 두었던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그 안에서 브로슈어 같은 책자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경일 팀장에게 대충 얘기 들었습니다. 저희 쪽 특판을 생각하신다고요?”

“네, 맞습니다.”

“루이스 아시죠?”

루이스라는 브랜드 나도 잘 알고 있다.

길거리에 다니는 여성들 절반 이상이 이 로고가 박힌 핸드백을 들고 다니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루이스 이번 SS 브로슈어입니다. 이번 제품들은 컬러와 패턴이 더욱 화려해졌습니다. 추상적인 드로잉이 돋보이는 아트 백, 패턴이 돋보이는 토트백은 심심한 룩에 활기를 더 불어넣어 줄 것으로 보입니다.”

“아……. 네.”

역시 들어도 잘 모르겠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내민 브로슈어를 넘겨봤다.

<이번 시즌도 역시 미니백이 대세야.>

<데일로백이나 토트 같은 건 계속 이어질 거고, 스퀘어백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인지.

미니백은 작은 가방을 말하는 거 같고…….

데일로나 토트, 스퀘어는 브랜명인가?

이거 공부를 좀 해야겠구나.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렇군요.”

“루이스 정식 수입 업체는 국내에 저희뿐입니다. 그건 아시죠?”

“네.”

“그럼 앞뒤 다 자르고 제시하겠습니다. 이번 SS를 제외하고는 최대 7.3%까지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경일 팀장 봐서 핫딜 정도의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핫딜은 어땠나요?”

내 입에서 핫딜이라는 말이 나오자, 김도만 이사는 미간을 구기며 한 손을 허공에 휘휘 저었다.

“그 양아치 새끼들은 말도 꺼내지 마세요.”

“왜요?”

“지네 멋대로 온라인에 다운시켜서, 우리가 이탈리아 본사에 얼마나 난처했는지 아세요?”

“협의가 끝난 단가가 아니었나요?”

“그거 지네 멋대로 다운시킨 단가입니다. 알 만한 놈들이 왜 그런 것인지 진짜…….”

“루이스는 소비자가 절대 다운 못하나요?”

영도 실업의 브랜드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것은 루이스.

이 제품에 어느 정도 할인만 한다면 회원들은 알아서 몰려 올 것이다.

“무조건 안 됩니다. 7.3% 드리는 것도 저희 마진을 드리는 거지, 소비자가를 이에 맞춰 다운하시면 문제가 됩니다.”

“그럼 카드 할인은요?”

내 질문에, 김도만 이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카드 할인가 먹여서 가격 비교 사이트에 최저가로 나가도 문제 됩니다. 이탈리아 애들 깐깐해서 절대 안 넘어갑니다.”

“그럼 가격 비교에 안 나가면요?”

“그럼 제가 이탈리아 본사에 문의를 해 보겠습니다.”

“네, 잘 부탁합니다.”

나는 김경일 팀장과 마성근 팀장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마 팀장님은 특판 페이지랑 일정 준비하시고, 경일 팀장은 이사님이랑 같이 제품들 선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리보다 매출이 훨씬 높은 핫딜과 에이마켓.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식품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핫딜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김도만 이사가 건넨 브로슈어를 넘겨 보며 그의 지난 기억을 꼼꼼히 확인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