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146화 (146/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146화>

147. 콜라보를 하시려는 거군요

* * *

“이사님! 어제 장난 아니던데요?”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김명진 부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이래? 부끄럽게.”

“어제 댓글들 보셨어요? 마프가 아니라 이사님 칭찬으로 완전 도배던데요? 역시 사람은 좀 생기고 봐야 하는 건가?”

“명진 부장까지 놀리는 거야?”

나는 그에게 씩 웃어 보이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오! 이사님!”

“축하드립니다!”

“이사님! 어제 방송 잘 봤어요.”

김태하 차장과 다른 직원들이 나를 맞이했다.

왜들 그리 호들갑인지…….

혹시 기다렸던 것인가?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내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입구에 있던 이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제 방송 잘 봤습니다.”

“예나 씨까지 이럴거야?”

“왜요? 실물보다 훨씬 더 잘 나오셨던데요?”

가볍게 농담을 하는 이예나.

그녀는 내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택배 안에 넣어 놨습니다.”

“택배?”

나는 회사로 물건을 주문하지 않는다.

그냥 내 사생활을 너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대신 받아 주는 직원에게도 미안하기 때문이다.

“응? 예나 씨. 나한테 온 거 맞아?”

“네, 맞아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놓은 상자 여섯 개.

가장 큰 것을 먼저 뜯어 봤다.

그리고 그 안에는 커다란 곰 인형과 작은 메모가 함께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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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잘봤습니다.

마음이 참 따뜻하신 분 같더군요.

010-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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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선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입가에 새어 나오는 미소.

겨우 방송에 10분 정도 출연한 게 전부인데…….

연예인들은 이런 기분으로 살까?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곰 인형의 코를 툭 치고 메모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밖에 있던 김태하 차장이 들어왔다.

“하루 만에 유명인사가 다 되셨네. 이렇게 선물도 받고 말이야.”

곰 인형을 보고 피식 웃는 김태하 차장.

그는 테이블 위의 노란 메모지를 집어 들고 소리 없이 읽어 내려갔다.

“뭐야, 이거. 벌써 팬이 생긴 거야? 얼레? 전화번호도 있네. 전화했지?”

“아니야. 아침부터 무슨 전화를 해.”

“그럼 이따 오후에 하게?”

“그럴까?”

내가 장난을 치자, 김태하 차장은 내 책상에 걸터앉으며 씩 웃었다.

“이따 한 2시쯤 시간 돼?”

“왜?”

“찬동식품 오는데, 시간 되면 이사님도 같이 보자고 해서.”

찬동식품.

대한민국 식품회사 매출 3위.

바론과 BO 푸드의 후발 주자로 7년 전 혜성처럼 나타난 회사다.

그들이 처음 출시한 레인지용 카레는 실로 놀라웠다.

유명 식당에서 방금 만든 것 같은 퀄리티와 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겨우 1년 만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카레의 성공 이후 짜장, 하이라이스, 참치 김치덮밥, 불고기 덮밥 등.

다양한 메뉴도 모두 성공을 거두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에 김태하 차장은 찬동의 제품을 가져오기 위해 노력했고, 마켓 프레시에 그들의 제품을 진열한 지는 이제 막 두 달이 지난 상태였다.

“같이?”

“응. 나도 이유는 잘 몰라.”

“그래. 알았어. 일단 약속 없으니까 오면 여기서 보자.”

“오케이.”

김태하는 씩 웃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멀뚱멀뚱 앉아 있는 곰 인형의 콧잔등을 툭 치고 밖으로 나갔다.

* * *

오후 2시.

김태하 차장은 찬동에서 온 두 명의 직원을 데리고 내 방으로 왔다.

그들은 방 안의 집기들을 둘러보며,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넸다.

“오영진입니다.”

오영진 부장.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방금 바버숍을 다녀온 것 같이 말끔한 모습이었다.

멋스럽게 손질한 수염과 포마드로 한껏 힘을 준 머리.

광이 나는 얼굴에 움푹 파인 보조개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김동민입니다.”

김동민 차장.

40대 초반의 남자로 보통의 회사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화사한 넥타이에 짙은 회색 슈트.

최근에 살이 쪘는지, 안에 입은 셔츠의 단추가 힘겹게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원지훈입니다. 앉으시죠.”

나는 그들을 회의 테이블에 앉도록 했다.

잠시 후, 이예나가 차를 가져왔고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이예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오영진 부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 방송 잘 봤습니다. 화면보다 실물이 더 좋으신데요?”

“하……. 아닙니다.”

내가 손사래를 치자, 오영진 부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어제 방송 보고 김태하 차장님 졸라서 이사님 소개해 달라고 한 겁니다.”

“아……. 그런가요? 겨우 10분도 안 나왔는데요. 뭐.”

“그 10분의 임팩트가 컸죠.”

“아닙니다. 방송에서 편집이 잘돼서 그런 겁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김동민 차장은 테이블 밑에 내려 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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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제품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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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제품이라…….

나는 제안서의 표지를 넘겨 안의 내용을 살폈다.

그러자 김동민이 빠르게 제안서의 내용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음 달 7일은 찬동이 해외 진출한 지 1주년이 되는 해로, 이에 맞는 특별한 행사를 준비해 보려 합니다.”

1년 전, 찬동식품은 국내가 아닌 해외 진출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들이 개발한 일부 레토르트 제품이 미국과 중국, 일본, 태국, 호주, 인도 등에 출시됐고 K푸드 열풍 덕분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남들은 K푸드의 열풍에 어부지리로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나라별 입맛과 소비성향을 분석했고, 제품의 모델과 포장 디자인까지 차별화를 둔 것이 성공한 것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조금의 변화를 가져가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콜라보를 하시려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대한민국의 우수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들과 저희 제품을 섞어 볼까 합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제안서를 확인했다.

콜라보레이션.

한 마디로 제품을 섞자는 것이다.

카레에 튀김이나 소시지를 추가하고, 짜장에 삼겹살을 추가하는 등.

제안서에 적힌 기발한 레시피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찬동의 제품 개발팀이 강력하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이렇게 적극적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왜 우릴 찾아온 것일까?

이런 콜라보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면 당연히 제조사를 찾아가야 하는데.

나는 제안서를 넘기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각각의 제조사를 찾아가시지, 왜 저희를 찾아오신 겁니까?”

“수많은 제조사를 일일이 만나고 검증하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저희보다는 경험이 많은 커머스에 요청하는 겁니다.”

환하게 웃으며 답하는 김동민 차장.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을 이었다.

“이미 검증을 마친 회사들도 많을 텐데요? 예를 들어 바론이나 BO 같은 회사요.”

“처음엔 저희도 그들에게 제안해 볼까 했습니다. 근데 어제 방송을 보고 저희 부장님이 방법을 다르게 가자고 하시더군요. 어제 이사님이 하셨던 말씀 기억나세요?”

재빨리 답을 하는 김동민 차장.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글쎄요. 뭘 말씀하시는지…….”

“대한민국에 우수한 생산자나 기업이 많은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요. 그 일을 마켓 프레시와 같은 커머스에서 하고, 소비자에게 믿을 수 있는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그 말. 기억 안 나십니까?”

기억난다.

대충 그때 상황에 맞게 말한 것인데, 그 말이 이들에게 뭔가 영향을 줬나 보구나.

“기억납니다.”

“그래서 이사님을 뵙고 이번 프로젝트의 도움을 요청드리고 싶었습니다.”

김동민 차장은 말을 마치고 해맑게 웃어 보였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오른손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넷이 함께 공유하는 회의 테이블.

이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기억을 내게 실시간으로 들려줬다.

<우리가 제품을 선별해 주면, 뭘 주겠다는 거야?>

우리의 이익을 우선 생각하는 김태하 차장.

<마켓 프레시라면 검증된 제조사들을 좋은 조건으로 들고 올 수 있을 거야.>

우리에게 믿음이 강한 김동민 차장.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책임자인 오영진 부장의 기억은 이들과는 달랐다.

<바론이나 BO는 절대 단가 못 맞춰.>

<마프랑 손잡으면 단가랑 퀄리티는 알아서 맞춰 오겠지. 그리고 잘못돼도 마프에 다 떠넘길 수도 있고.>

그랬구나.

값이 싸고, 좋은 제품, 문제시 책임까지 떠넘길 회사를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구나.

아마 바론이나 BO와 했다면, 그들은 그냥 공급가만 조율하고 끝냈을 것이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김태하 차장이 입을 열었다.

“좋은 제안 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여기서 저희의 입장이 모호합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잘되면 우린 무엇을 얻습니까?”

“생산된 콜라보 제품의 국내 유통은 마프에서만 하겠습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통틀어서요?”

“네. 물론이죠.”

나는 김태하 차장과 오영진 부장의 대화를 들으며, 지금까지의 생각을 정리했다.

책임을 떠넘긴다라…….

이건 우리가 문제없는 회사를 컨택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우리 MD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걸리는 문제는 하나.

만약 제품이 히트를 치고, 이를 찬동이 단독으로 생산한다면?

그럼 낮은 단가에 공급을 유도한 우리와 제조사는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저 부장님.”

“네?”

“콜라보 상품의 소비자가는 어떻게 조정하실 생각이십니까?”

“소비자가는 조절하지 않을 겁니다.”

단호한 표정의 오영진 부장.

기존 제품에 다른 제품이 추가되는데 단가를 조절하지 않는다라……

다른 회사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찬동의 제품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일단 소비자가도 낮고, 요즘 원재료의 가격 상승으로 절대 마진율을 줄일 수 없다.

“가능할까요?”

“네. 저희 마진을 줄여서라도 일단 맞춰 볼 생각입니다.”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래서 이사님을 찾아온 거죠.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품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요.”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짓는 오영진 부장.

그리고 테이블에서는 그의 조금 전 기억이 들려왔다.

<그럼 BO나 바론에서 던져 주는 공급가나 조절해야지. 내가 미쳤다고 여기까지 찾아왔겠어?>

그는 외모처럼 꽤 치밀하고 계산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 이곳까지 온 이유도 공급가를 못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가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계산하는 것을 다 들었다.

“저희에게는 정말 감사한 제안입니다. 욕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원하시는 정확한 단가를 알지 못하면 저희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일단 의지가 있다면 방법은 찾을 수 있겠죠. 동의해 주시면 저희가 픽스한 레시피와 필요한 품목과 단가는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럼 리스트를 보고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죠.”

과연 이들은 어느 정도의 예산으로 움직이려는 것일까?

그것을 알기 전에는 이 제안을 수락할 수 없다.

당장 뛰어들기에는 리스크가 있으니까.

나는 제안서를 넘겨보며, 그들과 천천히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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