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142화 (142/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142화>

143.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사님.”

걱정스러운 표정의 정진택 차장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알아봤어야 하는데……. 유기산 활성 처리제를 구매한 거래 명부만 보고 판단했습니다.”

“아니요. 작정하고 속이려 했으니, 알아내긴 힘들었을 겁니다.”

“근데, 이사님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저기 쌓여 있는 플라스틱 용기가 너무 오래전 것이더군요. 그리고 아주머니들 일당도 조금씩 밀렸고.”

“일당이 밀린 거로 어떻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정진택 차장이 뒷말을 흐렸다.

나는 물에 젖은 생김을 담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마 유기산 활성 처리제를 썼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임금이 밀렸을 겁니다. 약품의 단가가 비싸니까요. 근데 여긴 길어야 일주일이더군요.”

“그게 왜요?”

“대부분의 김 양식장은 매일 유기산 활성 처리제를 구매합니다. 비싸서 한 번에 대량으로 구매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일당이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하지만 무기산을 쓰게 되면 다릅니다. 약품의 단가가 비교적 낮아 몇 달치를 한 번에 사 둘 수 있습니다.”

“아……. 그래서 며칠 전에 무기산을 대량으로 들여 와서 일당이 밀렸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네. 걱정이나 불만 없이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보니까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던 거 같더군요.”

“이사님 혹시 탐정이세요?”

정진택 차장은 피식 웃고 먼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해남에 이 정도의 양을 재배하는 곳은 없는데…….”

“단가가 올라가고, 물량이 줄어든다 해도 우리의 처음 생각대로 이어 갔으면 합니다. 스스로 타협하게 되면 다음에도 또 그렇게 될 겁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진택 차장은 씩 웃고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예, 그래야죠. 여기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해남 인근의 해양수산부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전화를 받은 해수부 소속의 단속반이 왔고 사무실에 안에 있던 양식장 사장이 밖으로 나와 그를 맞이했다. 그것도 너무 반갑게.

“우리 동생 왔어?”

“네, 형님 무슨 일입니까? 형님은 무기산 안 쓰셨잖아요.”

“아, 몰라. 여기 마프에서 오신 분들인데 다짜고짜 우기잖아.”

“그래요?”

둘은 한참 동안 무언가를 숙덕거리다가, 설명을 다 들은 단속반의 남자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해수부 양식산업과 김승만입니다.”

“원지훈입니다.”

“정진택입니다.”

김승만 과장.

수더분하게 생긴 그는 커다란 돋보기안경 뒤의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진택 씨가 신고하신 분이죠?”

“네, 제가 했습니다.”

정진택 차장이 앞으로 나서자, 김승만 과장은 아래위로 그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증거라도 있나요?”

“저기 쌓여 있는 약품 페트병들 유통 기한 좀 확인해 보세요. 8년이나 지난 것들이 그대로 쌓여 있습니다.”

“그게 다인가요?”

차갑게 말을 끊는 김승만 과장.

그는 양식장의 사장이 제출한 서류를 넘겨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장부에는 활성 처리제 구매 일자와 금액, 배송일까지 정확히 적혀 있어요. 사장님 말로는 폐기물을 최근 것만 가져가고 예전 것은 못 가져갔다고 하던데……. 이 설명은 들으셨죠?”

“해수부는 겨우 거래 장부만 보고 판단합니까?”

“해수부에서는 매월 1회 이상 새벽에 불시 점검을 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그때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럼 CCTV를 돌려 보죠. 약품이 배송됐다면, 분명 아침에 배송 차량이 왔을 겁니다.”

“이분 참 답답하시네. 우리가 수사 기관도 아닌데, 어떻게 CCTV를 확인합니까. 그리고 그건 메뉴얼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양식장의 편에 서는 해수부 공무원.

이러면 둘 중 하나다.

철저하게 모두를 속였거나, 아니면 입을 미리 맞췄거나.

나는 우선 전자에 무게를 뒀다.

둘이 입을 맞췄다면, 이는 너무 참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우선 제품을 가져가서 검사해 보죠. 유기산이 들어갔다면 가공이 완료된 김에도 산의 성분이 남아 있을 겁니다.”

내 말에, 김승만 과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조미된 김은 소금을 뿌려서 산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말리는 과정에서도 산이 포함될 수도 있고.”

“그러면 막 가져온 생김을 가져가면 되겠네요. 저희도 샘플 일부 가져가겠습니다.”

“그것도 정확한 방법은 아닙니다. 바다에서 건지는 과정 중에…….”

“그래서 안 하겠다는 겁니까?”

내가 눈을 쏘아보자, 김승만 과장은 한발 뒤로 물러나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럼. 뭐. 일단 가져는 가 보죠. 근데 국과수에 보내면 시간이 좀…….”

답답한 말을 연속으로 잇는 김승만 과장.

그는 해수부 단속반의 신분으로 양식장의 편에만 섰다.

“이래도 산이 들어간다. 저래도 산이 들어간다. 그럼 도대체 왜 유기산을 못 쓰게 하는 겁니까?”

“그야……. 메뉴얼대로.”

“메뉴얼! 메뉴얼! 도대체 누가 그런 메뉴얼은 누가 만든 겁니까?”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변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양식장의 사장이 박수를 치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브라보!”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돌려 깔깔대며 웃는 양식장의 사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우리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이사님. 처음에는 몰랐는데 참, 시원시원하신 분이네. 진짜 누가 이따위 메뉴얼을 만든 겁니까? 무기산이나 유기산이나 별다른 차이도 없는 거 다들 알면서.”

“…….”

바다에서 막 건져 낸 김을 가져가서 조사하면 산의 성분이 나온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국과수에서 분석하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랬을까?

양식장의 사장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사님 그거 알아요? 아예 공업용 염산을 희석해서 쓰는 놈들도 있다는 거. 그놈들이 재배한 김은 그럴싸한 포장지로 싸매서 버젓이 식탁에 올라가고 있어요.”

“그렇다고 사장님의 잘못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농약 친 쌀을 사 먹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에 산을 뿌리는 거랑 이게 뭐가 다릅니까?”

“인식의 차이입니다. 그동안 농약이 인체에 해롭다는 지속적인 홍보 덕분에 유기농 쌀들이 나왔고, 시장에서 꾸준히 판매되고 있습니다.”

“인식이요?”

“네. 어떤 제품이 좋고, 어떤 제품이 나쁜지를 소비자가 직접 판단할 수 있는 인식이요.”

보통의 사람들은 벼에 농약을 뿌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친환경 쌀을 찾고, 그런 제품의 단가가 더 높아도 구매한다.

하지만 김과 같은 해조류는 다르다.

산을 뿌려 재배한다는 것을 모르고, 이런 제품들에 얼마나 많은 독성이 들어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는 홍보의 차이다.

친환경 쌀이 좋다는 것이 지속해서 홍보됐지만, 산을 치지 않은 김이 좋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는 양식장의 사장.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천천히 답을 했다.

“알지. 알아. 근데 나라고 좋아서 그랬겠어요? 다들 단가는 빼 달라고 하지, 매일 약 뿌려 대는 노동자들은 힘들어 죽으려고 하고…….”

정부는 매년 새로운 김 활성 처리제에 관한 연구에 용역을 주고 있다.

하지만 성과는 거의 없었다.

벌써 5년이 지났지만, 대체 약품의 개발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김 양식장에서 산을 쓰지 않으면, 수확량은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손이 들어가야 하기에 원가는 더 오를 수도 있다.

나와 정진택 차장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김승만 과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양식장의 사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정말 유기산 쓰셨어요?”

“그래, 썼다. 왜! 남들 다 써서 나도 썼다. 왜!”

놀란 표정의 김승만 과장.

다행이다. 미리 입을 맞춘 것은 아닌가 보다.

“형님……. 유기산을 쓰시면 어떡합니까? 제가 그건 정말 조심해 달라고 했잖아요.”

“그럼 어쩌라고! 다들 그렇게 하는 데 왜 나만 쓰레기 같은 거 매일 사다 뿌려야 하냐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메뉴얼에는…….”

“야! 김승만! 그 빌어먹을 메뉴얼 소리 좀 그만 못해?”

“벌금이 나올 겁니다. 어쩌면 양식장 폐쇄까지도…….”

양식장 사장은 바닥에 있는 갈색 고무대야를 발로 걷어차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폐쇄? 하라고 해! 이제 더러워서 이 짓도 못해 먹겠으니까!”

팔짱을 끼고 뒤로 돌아선 양식장 사장.

나는 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예 산을 안 치면 어떻겠습니까?”

내 말에, 양식장 사장은 뒤로 돌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요? 그럼 반도 못 건질 텐데,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그 조건이라면 저희가 계약하겠습니다.”

“……!”

“계약 금액과 수량은 사장님이 정하세요.”

내 말에, 양식장 사장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봐요. 책상 앞에만 앉아 있어서 잘 모르나 본데, 1년에 장흥 무산 김이 얼마나 생산되고, 얼마나 팔리는지 알아요?”

“알아야 합니까?”

“헐……. 이 양반 아직 세상 물정 모르네. 거긴 조미도 안 된 김 열 장이 이천 원이 넘는다고!”

산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장흥 무산 김.

정말 유기농으로 만들어진 퀄리티 높은 김인데도 두 배나 비싼 가격 때문에 소비자는 쉽게 구매하지 못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가격 때문에 쉽게 고르지 못하는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래서 소비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산을 뿌려 댄 김을 먹으라는 겁니까?”

“그러면 내가 바다에서 건진 생김을 킬로에 이천 원 달라고 하면 줄 겁니까?”

“네. 드리죠. 정말, 산을 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하시면 드리겠습니다.”

할 말을 잃은 양식장의 사장.

그는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왜 그러는 겁니까?”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

“마켓 프레시는 800만 회원이 가입한 커머스입니다. 아직은 작지만, 우리가 산이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김을 알리면, 언젠간 답이 돌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소비자도 선택할 권리를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우유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우유 PB를 내놓기 전에 국내에 무항생제 우유는 없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어떤가요? 다들 무항생제 우유라고 광고하고 있잖아요.”

내 말을 듣고 있던 양식장의 사장은 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좋수다. 해 봅시다. 내가 얼마를 부르건 계약하겠다고 했죠?”

“네. 산을 쓰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간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죠. 그렇게 하죠.”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좋은 김, 나쁜 김을 우리의 잣대로 나누면서 김 양식을 하는 업체들이 크게 반발할 것이다. 그동안 편한 양식법에 길든 그들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이대로 계약을 한다면.

이번 PB 제품으로 많은 이득을 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과정에서 생산되는지 누군가는 알리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마켓 프레시의 가치관이고, 나는 이 가치관에 많은 소비자가 박수를 쳐 줄 것이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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