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듣는 회사원 133화>
134. 까짓 거 한번 해 봅시다!
“덕산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나를 제외한 여섯의 시꺼먼 남자들이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송민호 부장과 간단한 식사만 하고 헤어지려 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우린 자연스럽게 소주를 한 병 주문했고, 그때 포프와 황링이라는 덕산의 외국인 근로자 둘이 합류했다.
그리고 이들의 전화로 황규연 부장이라는 사람까지 술자리에 합류했다. 또, 황규연 부장이 전화로 두 명이 더 불러내, 어느새 이 자리에는 나를 포함한 일곱이 앉아 있게 됐다.
이들은 국내 스낵 회사들의 뒷얘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나눴다.
누가 무슨 제품을 베껴서 출시했고, 누가 외국의 스낵을 모방해서 대박을 쳤으며.
또 누가 연구비가 많이 들어간 프로젝트를 말아먹었다는 등.
이런 류의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인지 헛소문인지 모르지만, 영화 같은 이야기에 푹 빠져 나도 어느새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래서 삼종이 아니라 덕산이 호떡을 만들었다는 거죠?”
“맞아요! 이제야 이사님이 좀 이해를 하시네.”
“근데 왜 가만있었던 겁니까? 그거 완전 대박 쳤잖아요.”
“힘없으니까 찌그러진 거죠. 이 판이 참 웃긴 게, 살짝만 바꾸면 금방 똑같은 걸 찍어 낼 수 있어요.”
“하긴, 레시피 자체를 단순히 만들려 하니 그렇겠네요.”
“맞아요. 맞아.”
“근데, 그건 저희도 똑같습니다. 커머스들도 괜찮은 서비스 하나만 생기면 바로 따라 하는데요. 뭐.”
“어휴……. 이사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자, 한잔해요.”
황규연 부장은 나와 은근 죽이 잘 맞았다.
그와 대화를 할 때면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하게 말이 튀어나왔다.
“이사님. 예전에 문방구에서 팔던 아메바라고 알아요?”
얇은 빨대 안에 분말 주스 반죽을 넣어 판매하는 아메바.
그 당시 인기가 많았던 아파치라는 제품을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기억난다.
“아! 아파치 짝퉁이요?”
“아닙니다. 아메바가 원조입니다.”
“에이. 거짓말. 아메바는 아파치 풀리고 한 1년 후에나 봤어요.”
“하……. 그게 사연이 좀 있어요.”
“무슨 사연이요?”
“이사님, 아파치가 바론 제품이란 거 아셨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식품회사 바론.
이들은 제과, 스낵 부분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회사다.
“아니요. 몰랐는데요.”
황규연 부장은 자신의 잔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그리고 한입에 털어 넣으며 미간을 구겼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송민호 부장이 황규연 부장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형님. 술맛 떨어지게 그 얘기는 왜 또 하세요.”
“크으……. 그때 양호가 안 넘어갔으면 지금 우리가 이 꼴은 아니었을 거야.”
“그 인간 얘기는 그만하시죠.”
“양호 씨가 누굽니까?”
내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어 질문하자,
황규연 부장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아메바 들고 바론으로 넘어간 개새끼.”
“근데 왜 덕산의 아메바가 먼저라면서 출시가 늦어진 건가요?”
“늦어지긴요. 우리가 먼저 풀었는데, 바론이 사흘 만에 똑같은 거 찍어 내서 전국 문방구에 싹 돌린 겁니다.”
“아……. 마케팅을 잘한 거네요.”
“마케팅은 개뿔. 바론 그 새끼들은 도둑질로 시작한 놈들이라는 겁니다.”
황규연 부장은 소주잔을 급하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사님. 담배나 하나 태우러 갑시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었다.
“제과 회사들도 참 치열하네요.”
“아까 이사님이 말씀하셨죠? 이 바닥은 솔직히 맛보다는 마케팅 싸움입니다. 누가 얼마나 더 돈을 들여서 시장에 풀고, 광고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아메바가 짝퉁 소리를 듣는 것처럼.”
“…….”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마프에 사활을 거는 갑니다.”
사실 이들의 제품과 이를 만드는 사람들은 참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그들의 재정 상태.
도대체 빚이 얼마고, 이자가 얼마길래 20억으로 석 달을 버틴다는 걸까?
그런 이들의 제품을 사들이는 것은 아마 미친 짓일 것이다.
내가 별다른 답 없이 쭈그려 앉자, 황규연 부장은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앉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사님. 술도 좀 들어갔겠다. 이제 슬슬 속 얘기 좀 해 줘요.”
“네?”
“어떻습니까? 우리 포테이토 세븐.”
포테이토 세븐이 제품명이었나?
제품 포장도 없었고, 제안서도 없었기에 제품명은 몰랐었는데…….
차라리 모르고 넘어갈걸.
촌스럽다.
지금까지 들어 본 제품명 중에 손을 꼽을 정도로 촌스럽다.
“포테이토 세븐이 제품명인가요?”
“네, 왜요?”
“누가 지은 겁니까?”
“제가요.”
“하아……. 갈 길이 멀군요.”
내 말이 재미있었는지,
담배 연기를 깊게 마신 황규연 부장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하하하, 그렇죠? 콜록. 갈 길이 좀 머네요.”
“네. 아주 먼 것 같네요.”
“이사님. 그래서 말인데 좀 도와주십시오. 덕산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포장지에 마켓 프레시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도 좋습니다.”
“…….”
“민호 놈은 이거 만든다고 거의 한 달 동안 집에 안 들어갔습니다. 무너져 가는 회사 어떻게든 살리겠다고요.”
“후…….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좀 어지럽네요.”
나는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옅은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이사님! 벌써 술판을 벌인 겁니까?”
식당의 앞으로 걸어오는 정진택 차장.
내 연락을 받고 이곳으로 온 그는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주는 어떻게 됐어요?”
“당연히 잘됐죠. 근처에 배 농장 세 개나 계약하고 왔습니다.”
“잘하셨네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규연 부장이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덕산의 황규연입니다.”
“네. 마켓 프레시 정진택입니다! 그 과자 아주 죽이던데요? 이름이 뭡니까?”
“포테이토 세븐입니다.”
“와……. 세상에. 춥네요. 자자, 빨리 들어가죠. 세븐은 좀 이따 얘기하시고.”
재빨리 화제를 돌리는 정진택 차장.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양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밖이 춥다는 행동을 보였다.
“네. 가시죠. 여기 홍어가 예술입니다.”
“오! 홍어! 좋죠!”
정진택 차장이 합류하고 술판은 2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나는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장식된 술병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일일이 그 병들을 손으로 쓸어내며 이들의 기억을 들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끝이야.>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님, 공자님, 세종대왕님 제발……. 이번만 도와주십시오,>
<고생한 우리 민호. 내가 아니면 누가 돕겠어.>
간절한 바람들.
나는 이들의 바람을 들어 줄 수 있을까?
“송 부장님.”
“네. 이사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송민호 부장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내게 답했다.
“덕산의 부채가 얼마나 됩니까?”
“…….”
“제품만 좋다고 저희가 계약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점들도 알아야…….”
송민호 부장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답을 했다.
“200억이 좀 넘습니다.”
“그럼 밀린 임금은요?”
내 말에, 술자리의 분위가 급격히 냉랭해졌다.
송민호 부장은 술잔의 술을 한입에 털어 넣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왜요? 그런 것도 알아야 합니까?”
“네, 알아야 합니다.”
차분한 내 말투에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송민호 부장은 긴 한숨과 함께 길었던 정적에 마침표를 찍었다.
“후……. 10억이 좀 넘을 겁니다.”
“사입비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밀린 임금이 처리되겠군요.”
“아마도요.”
“그럼 추가 생산을 할 수도 없을 것이고.”
“아닙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킵니다. 추가 물량에는 절대 이상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급하게 답하는 송민호 부장.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묻어 있었다.
“대표이사님을 뵐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이들은 대표이사에 대한 말을 꺼낸 적이 없다.
내가 알기엔 덕산 창업주의 장남이 회사를 물려받았다고 들었는데…….
“아니요. 어디서 술 처먹으면서 카드나 치고 있겠죠.”
“카드요?”
그래서 이런 중요한 자리에 대표이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구나.
내가 증오하는 두 부류.
하나는 도박에 미친놈, 또 하나는 약 빠는 놈.
나는 그놈들과는 절대 거래를 하지 않는다.
“돌아가신 회장님이 얼마나 열심이셨는데……. 후…….”
“대표이사가 그 모양인데, 도대체 왜 회사에 붙어 있는 겁니까?”
“우리 회사니까요.”
“…….”
우리 회사…….
그 단어에 언성을 높아지던 나도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다시 또 이어진 정적.
옆에서 듣고 있던 황규연 부장이 허공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낡았지만, 공장 설비와 철제 책상들을 들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아십니까? 저나 여기 이 친구들은 회장님의 밑에서 일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손때가 묻은 이곳을 떠날 수는 없더군요.”
나도 이럴까?
우리 회사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오면 나도 이들처럼 회사를 떠나지 못할까?
나는 술잔을 비우고 고개를 저었다.
“대표이사가 그 모양이면, 이제 가능성이 없는 거 아닌가요?”
“…….”
“회사가 아니라 가족을 생각하셔야죠.”
“지금의 가족을 만들어 준 게 바로 덕산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회사를 배신하겠습니까? 누가 그러더군요. 인생은 끊임없는 반복이고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공하는 거라고요. 매번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우린 잘해 왔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끊임없는 반복에 지치지 않는다.
그 말이 내 가슴속에 진한 울림을 줬다.
나는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송민호 부장과 황규연 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 앞을 막아섰다.
“가시는 겁니까?”
“네. 오늘은 이만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그런 것이다.
이들의 기억을 읽었고, 이들의 표정을 살폈으며, 이들의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들었다.
이들에게 지금이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설 수는 없다.
돈이 아닌 사람을 믿는다지만, 지금의 경우까지 이를 대입할 수는 없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이사님. 다음에 소주나 한잔 더 하시죠.”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황규연 부장.
새하얀 그의 머리의 앞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미안함을 표했다.
“오늘 잘 먹었습니다. 좋은 답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밖으로 나오자, 언제부터 왔는지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설도 지났는데, 눈이 오네요. 그것도 광주에.”
정진택 차장은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실망이네요.”
“네?”
“이사님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포기한 것이다.
저들에게 미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번 프로젝트가 망가지면 저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그리고 덕산이라는 100년이 넘은 회사도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글쎄요. 저분들에게도 미래가 있을까요?”
“그래서 저렇게 간절한 거겠죠. 이번이 마지막 기회니까.”
“제품과 사람은 욕심이 나지만, 지금 사입 비용이 들어가면 분명 사고가 터질 겁니다. 아깝지만 그만 포기하시죠.”
내 말에, 정진택 차장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씩 웃었다.
“이사님. 그럼 쉽게 가면 어떨까요?”
“네?”
“아주 쉽게 갈 방법이 있는데.”
“그게 뭡니까?”
“사죠. 아예 덕산을 사 버리죠.”
“……!”
“제품은 사람이 만드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좋은 사람이 있는데 뭘 망설입니까? 이사님 스타일대로 밀어붙이세요. 저를 포함해 이사님을 도와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덕산식품을 산다.
100년 역사와 그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는 직원이 있는 회사를 사 버린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나는 정진택 차장의 뺨을 잡아 봐 주고, 재빨리 등을 돌렸다.
“뭐…… 뭐하는 겁니까?”
“고마워서요.”
“네?”
그리고 술집으로 다시 들어가, 술자리를 마무리 짓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좋습니다! 해 봅시다! 까짓 거 한번 해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