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듣는 회사원 82화>
83. 이 사진 잘 나왔네
며칠 후.
유정이의 번호로 진호라는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힘들다며 변호사 선임을 부탁했고.
정진택 팀장은 친구들을 총동원해 국내 최고 로펌을 가장 낮은 비용으로 섭외해 줬다.
역시 대형 로펌은 이름값을 했다.
그들은 외주 홍보팀을 섭외해, 유정이 사건을 세상에 공개했다.
단, 유정이의 신상을 보호하면서 말이다.
순식간에 기사가 퍼져 나가면서 여론이 들끓자.
결국 유정이 엄마는 소송을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고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유정이 엄마의 신상이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다시 한번 여론이 들끓었다.
“쯧쯧 이 여자 한동안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겠네요. 소문에는 보험 회사에서도 쫓겨나고, 계약했던 건들도 해지 문의가 장난 아니라던데.”
“일부러 하신 거죠?”
“아뇨! 전혀요. 제가 무슨 악마도 아니고.”
정진택 팀장은 정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입가의 미소는 지우지 못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나 한잔해요.”
“그러죠.”
옥상으로 올라와 담배를 물자,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네 이사님!”
- 지훈아. 너 어디야?
다소 격양된 목소리의 김재열 사외이사.
그가 이렇게 전화를 하는 이유는 회사에 문제가 있거나, 뭔가 큰돈이 될 만한 것을 잡았다는 것이다.
“회사인데요?”
- 나 지금 네 자리 앞인데?
“아, 옥상입니다.”
- 골초 새끼. 뒈지기 싫으면 담배 좀 줄여라.
“걱정해 주는 겁니까?”
- 시끄럽고, 옥상으로 올라갈 테니까, 거기 그대로 있어.
옥상으로 올라온 김재열 사외이사는 정진택 팀장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에게 구석으로 가자는 손짓을 했다.
“뭔데요?”
“잠깐이면 돼. 정 팀장님, 잠깐 원 부장 좀 빌려 가겠습니다.”
“아……. 예.”
그는 정진택 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데리고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내게 담배를 달라고 했다.
“끊으셨잖아요?”
“오늘은 좀 피워야겠다.”
손을 부들부들 떠는 김재열 사외이사.
나는 담배를 건네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너 돈 얼마나 있어?”
이 질문에, 나는 단번에 알았다.
어딘가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는 것을.
“돈은 왜요?”
“너 주식으로 돈 좀 만진 거 알아. 이번에 다 끄집어내나 봐.”
김재열 사외이사의 말이 맞다.
나는 주식 투자로 제법 큰 돈을 불린 상태였다.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살이 되던 해.
사람의 기억을 듣는 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던 나는 친구와 함께 증권 거래소를 찾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쳐 간 의자와 화장실 등에서 그들의 기억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주식을 시작한 돈은 100만 원.
그리고 월급이나 성과급을 받은 돈들을 꾸준히 투자해 와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40억 정도의 돈이 주식 계좌에 들어가 있다.
내가 매사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능력도 있지만, 이 능력으로 언제든 돈을 불릴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왜요?”
“이번에 공모주 청약이 떴는데, 경쟁률이 2.3대 1이야.”
처음 상장하는 회사의 주식을 미리 판매하는 공모주 청약.
잘하면 대박이지만, 못하면 묶여 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시장이다.
특히 요즘은 100대 1의 넘는 경쟁률이 있는 종목들도 많아서, 2.3대 1의 경쟁률이라면 손을 안 대는 것이 맞다.
“2.3대 1이요? 그런 걸 왜 건드려요?”
“내가 확실한 소스가 있으니까 그렇지. 이건 정말 아는 사람 얼마 없어.”
“음…….”
“너 얼마나 있어? 까 봐!”
“싫어요.”
“이 새끼 생각보다 부자인가 본데?”
“얼마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미소를 지으며 묻자.
김재열 사외이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2억.”
“얼추 비슷하네요.”
김재열 사외이사는 잘됐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럼 전부 다 박으면……. 아니다. 대출도 당겨서 박아. 너 이번에 성과급 한 5천 가까이 나올 텐데 그것도 박고. 그럼 한 4억 박는다고 치면, 2억 정도는 살 수 있겠네.”
공모주 청약은 돈이 있다고 전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률이 10대 1에 한 주당 주가가 1만 원이면, 1억으로 1,000주를 살 수 있다.
1,000주의 가격은 1,000만 원.
남은 9,000만 원은 이틀 정도 후에 환급된다.
한마디로 현금이 많을수록 더 많은 주식을 살 수 있기에.
공모주 청약은 부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전부 다요?”
“응.”
“종목도 말 안 해 주고, 그냥 박으라고 해요?”
“아. 내 정신 좀 봐. 내가 너무 흥분했나 보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고,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한 손을 올려 입을 가리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법인명은 에스로직, 에스페이라고 이게 구글 플레이에 들어갈 거야.”
김재열 사외이사의 말이 맞는다면, 이건 정말 대박이다.
이름도 들어 보지 않은 간편 결제 시스템 회사가 전 세계적인 구글 플레이의 모듈로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다.
하지만 그는 헛소문을 듣고 와서 설레발을 친 적도 많기에.
무조건 믿을 수는 없다.
“어디서 들으셨어요?”
“내가 에스로직 대표랑 스크린 치다가 술을 좀 많이 마셨어.”
“에이, 그럼 그렇지. 술자리에서 나온 얘기를 어떻게 믿어요?”
“진짜라니까! 이번엔 100% 확실해!”
“제가 어디 한두 번 속아요?”
“진짜야. 오늘 난 주식 다 팔고, 현금 마련하고 오는 길이야!”
“얼마나 하시게요?”
“30억. 전 재산 몰빵할 거야.”
사이비 종교에 홀린 것 같은 눈을 하는 김재열 이사.
나는 이 믿기지 않는 사기 같은 소식에 그가 걱정됐다.
“그 돈, 현금으로 돌아오는 데 3일 정도 걸리죠?”
“응.”
“알았어요. 저도 좀 알아볼게요.”
“이건 확실한 소스라니까. 내가 너니까 주지, 다른 놈한테는 입도 뻥긋 안 했어.”
“…….”
“너도 BO커머스 상장 전에 주식 확보하려면 현금이 필요하잖아. 그러니까 이번에 좀 불리라는 거야.”
그의 의도는 잘 안다.
하지만 너무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야기라 믿기지 않는다.
“알았어요. 일단 제가 알아볼게요.”
“그래. 네 맘대로 해.”
* * *
사무실로 내려와.
에스로직의 홈페이지와 기사들을 검색해 봤다.
보안이 훌륭하고 사용이 간편하다고는 하지만, 무릎을 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퍼져 있는 뉴스들에서도 구글과의 연관성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김재열 사외이사가 걱정돼서, 반차를 내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에스로직의 사옥.
그들은 가산 디지털단지 아파트형 공장 8층을 통으로 쓰고 있었다.
그럼 직원은 대략 300여 명 정도.
홈페이지에 두 개의 주소가 적힌 것을 고려하면, 500명이 조금 넘을 것이다.
나는 직원들의 생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
화장실로 향했다.
가산의 아파트형 공장은 별도의 확인 없이 맘대로 회사의 복도를 활보할 수 있기에 이럴 때는 편했다.
한 층에 화장실은 총 두 개.
좌변기는 화장실에 6개씩 들어가 있으며 총 12개가 있다.
나는 첫 번째 빈 칸으로 들어가,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검지를 내밀어 변기 시트에 대고 기억을 찾았다.
정말 이 짓은 하기 싫었는데…….
파파파팟!
옆 칸에서 전쟁을 치르는 소리에, 절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렇게 어렵게 들은 기억.
<이번 휴가 때는 전화기 꺼 버려야지.>
<보안 테스트 마저 하고, 마무리 지으면 되겠다.>
<어휴 속 쓰려>
<국카스댕이 하연수라고? 대박. 어쩐지 노래 잘하더라>
<김흥민 이번엔 레알 좀 가자.>
영양가 있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
나는 코를 틀어막고, 다른 칸으로 들어갔다.
다시 오른손 검지를 살짝 가져가자, 다양한 기억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역시 꽝.
마지막 온기가 남아 있는 시트에 손을 가져갔을 때는 정말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게 첫 번째 화장실에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이 나왔다.
“후…….”
정신을 차리기 위해 긴 한숨을 내쉬고, 다른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변기 커버에 검지를 가져갔다.
6개의 남은 칸에서 모두 기억을 들었고, 어렵게 하나의 단서를 찾았다.
<구글 로고 박힌 방문자 스티커는 기념품으로 간직해야지.>
<딸기 스무디도 진짜 맛있었어. 이 사진도 올리고.>
<이 사진 잘 나왔네.>
캘리포니아에 있는 구글 본사를 다녀온 것인가?
그리고 올린다고 했다.
나는 SNS를 검색해 봐야겠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꺼내 최근에 올라온 구글 본사 방문기를 찾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인스타그램의 게시글을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1월 6일.
어제 올라온 글이다.
그리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구글 사옥을 활보한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제 이 s_shinminjoo 라는 아이디를 쓰는 30대 초반의 남성이 에스로직에 근무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 흡연실로 향했다.
담배를 물고, 천천히 그의 SNS 사진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진 한 장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조금 전 내가 있던 복도.
커다란 에스로직이라는 로고가 그려진 벽 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있다.
대충 연관성은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이 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휴대전화에서 연락처를 확인하며, 이번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찾아냈다.
“동남아. 바빠?”
이동남.
종종 연락하는 동생이면서, 구글링에 능숙하다.
내가 원하는 정보나 사람에 대해서는 귀신같이 찾아내는 신통방통한 놈이다.
- 저야 항상 바쁘죠.
“회사는 어때?”
- 죽을 맛입니다. 내일 당장 사표 쓸 겁니다. 근데 왜요?
“이번엔 사람 좀 찾아줘야겠다.”
- 뭐 해 주실 건데요?
이놈에게 공짜는 없다.
술이나 돈, 전자제품 등등 뭐든 가져간다.
그리고 저번에는 냉동 만두 세 상자를 보내 준 적도 있다.
“뭐 필요한 거 있어?”
- 요즘 마프에서 나온 물만두 맛있다고 하던데……. 제가 돈이 없어서.
“아, 우리 PB? 알았어. 전화 끊고 바로 보낼게. 주소 그대로지?”
- 예압! 이제 말씀해 보세요.
“s_shinminjoo 라는 인스타를 하는 남자인데, 이 사람 지금 어느 회사 다니는지만 알아봐 줘.”
- 너무 간단한데요?
“응?”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들리고, 이동남의 웃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형님. 혹시 이분한테 관심 있어서 그러는 거예요? 이거 스토킹인데.
“아니거든, 그 사람 남자야!”
- 아……. 취향 참.
“딴생각하지 말고 그냥 찾기나 해.”
- 오케이! 접수!
전화를 끊고, 5분도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 왔다.
- 형님 신민주라는 그분 에스로직? 거기 다닌다는데요?
겨우 5분 만에 전화를 찾아내다니…….
나는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 헤드헌팅 회사인 것처럼 DM 보냈더니 술술 얘기하더라고요.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물만두 한 상자를 괜히 뜯긴 기분이다.
“그래? 근데 이직하겠대?”
- 아뇨. 절대 안 하겠다네요.
“뭐라고 보냈는데?”
- 신민주 님, 에스로직에 근무하시죠? 저희는 알파 헤드헌팅입니다, 라고요.
“그러니까 뭐래?”
- 에스로직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랍니다.
영리한 놈.
상장을 앞둔 회사가 직원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이런 술수를 쓰는 경우가 있다고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다.
얻어걸린 것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수는 제대로 먹혔다.
지금까지 신민주라는 사람이 에스로직에 근무하고.
최근에 캘리포니아 구글 본사에 방문했다는 사실은 파악했다.
이제 완벽히 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하나만 확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