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74화 (74/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74화>

75.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걸 잘하는 사람

MD 사업부는 노력의 결과를 만끽했다.

회사를 지켜 냈다는 생각에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고, 자신감은 바로 실적으로 이어졌다.

높아진 매출과 신규 상품 소싱, 그리고 꼼꼼한 재고 관리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담배 하나 피우러 가실래요?”

웬일인지.

말수가 적은 김경일 팀장이 아침 일찍부터 나를 찾아왔다.

“담배 안 피우잖아.”

“그냥요.”

무슨 할 얘기가 있나 보다.

나는 김경일 팀장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손을 내밀며, 자신에게도 담배 한 개비를 달라고 했다.

“담배 안 피우잖아?”

“가끔은 핍니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그에게 건네고 불을 붙여 줬다.

김경일 팀장은 담배 연기를 깊게 마시고,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그리고.

“콜록, 콜록.”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마치 담배를 처음 피우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 처음이지?”

김경일 팀장은 피우던 담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별로 맛은 없네요.”

“진짜 너 처음이야?”

“네.”

“흡연자의 경험으로 말하는데, 담배는 처음부터 안 배우는 게 좋아.”

나는 그의 담배를 가로채, 재떨이에 버렸다.

그 순간 들려오는 그의 기억.

<고동수……. 고동수…….>

고동수 부장의 이름을 진지한 목소리로 여러 번 되뇌었다.

아직 고동수 부장이 MD 사업부의 절반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는데…….

설마 누구에게 들은 것인가?

“들었어?”

내 질문에, 먼 곳을 보고 있던 김경일 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어제 고 부장님께 들었습니다.”

“그랬구나.”

“언제부터입니까?”

“글쎄. 내년 이후가 될 거야.”

“겨우 한 달이요?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뭐가 너무해?”

“고 부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리틀 최구열 이사라고 불리는 고동수 부장.

그는 그룹폰을 매입한 새로운 회사로 넘어가 마지막까지 인수인계를 해 준 인물이다. 최구열 이사가 가장 아끼는 MD였기에, 1%라는 지분도 쥐여 주면서 데려온 것으로 안다.

그리고 매사에 자신의 실리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 또한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알지.”

“근데 왜 그러신 겁니까? 지금 사업부 분위기 좋잖아요.”

“내가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

“네?”

“사업부 하나가 더 생기면, 더 많은 차장과 팀장들이 생기겠지. 그럼 지금 우리 부서원들은 더 높은 직급으로, 더 많은 권한과 더 많은 급여를 받게 될 거야.”

당분간 외부 인력을 데려올 계획은 없기에.

회사는 현재 인원들을 데리고 새로운 팀을 만들 것이다.

그럼 지금의 팀장은 차장이 되고, 과장은 팀장이 되며, 대리는 과장이 될 수 있다.

내 생각을 이해한 김경일 팀장은 긴 한숨을 내쉬고, 난간에 등을 기댔다.

“그래도 고동수 부장은 아닙니다.”

“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생각하는 폭도 좁고, 절대 남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업무 능력도 최악입니다.”

“그것도 알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걸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지.”

“그러다 괜히 사업부 분위기만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덕분에 능력 있는 친구들이 더 잘 보일 거야.”

내 답에, 김경일 팀장이 머뭇거렸다.

나는 담배를 끄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베이커리 TF의 중간 점검을 했는데, 엉망이더라고. 내가 관여를 좀 더 해 줬어야 했는데, PB 만든다는 핑계로 신경을 못 썼어.”

“그건 각 팀장이 잘해야죠. 어떻게 부장님이 전부 다 신경을 씁니까?”

“그래도 신경 못 쓴 건 사실이잖아.”

“…….”

“나는 이번에 좀 더 체계적으로 조직이 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

“하지만 고동수 부장은…….”

김경일 팀장이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 무슨 목적으로 오는 건지. 근데 하나를 내주면 둘을 얻는 게 내 스타일이야.”

“…….”

“지켜보자. 내가 다 생각이 있으니까.”

김경일 팀장은 내 눈을 물끄러미 보다가, 믿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무실 안.

어딘가 다녀온 김태하 팀장이 성큼성큼 내 옆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무언가를 떠먹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부장님. 점심 안 먹었지?”

“응.”

“그럼 탕비실에 가서 같이 먹을까?”

탕비실로 가겠다는 것은 제품을 테스트하거나, 컵라면을 먹자는 소리다.

“뭔데?”

“준위가 제품 하나 들고 온 게 있어서.”

몇 달 전, 신선식품팀 인턴 김준위는 노부부의 레토르트를 돕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단번에 그 회사의 제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따숨인가 거기지?”

“아네?”

“응. 전에 같이 미팅했었어. 쓸 만해?”

“아주 쓸 만해. 나만 먹기는 좀 아쉬운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 가자.”

탕비실로 가자 검은색 컵라면 용기에 3개의 제품이 올려져 있었다.

김준위는 나를 보고, 고개를 재빨리 숙이고는 천천히 제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순두부, 육개장, 설렁탕입니다. 그리고 한 달 전에 레토르트를 들고 왔던 따숨의 제품들입니다.”

“이번엔 스티로폼 용기로 만들었네?”

“네. 컵라면처럼 뜨거운 물만 부어서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단 편리성은 합격이다.

검은 스티로폼 용기는 불룩 튀어나온 것이 뚝배기의 모양을 생각하고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김준위의 기억을 찾았다.

<이번엔 통과할 수 있을까?>

<순두부는 정말 잘 나왔는데. 부장님 마음에도 들어야 하는데.>

나는 씩 웃고, 질문을 이었다.

“용기는 뚝배기 모양인가?”

“네. 다른 제품들이랑 조금 다르게 해 봤습니다.”

“형틀을 벌써 제작한 거야?”

“아니요. 형틀은 아직 만들지 않았고, 샘플만 찍어 본 겁니다.”

“예상 단가는?”

“단가는 일반 스티로폼 용기보다 20원 정도 더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비닐 팩이랑 비교하면?”

“170원 정도 차이 납니다.”

이 정도면 제법 큰 차이다.

과연 맛은 어떨까?

이 정도로 외관을 꾸밀 가치가 있을까?

나는 궁금한 마음에, 소파에 앉아 일회용 숟가락을 뜯었다.

그리고 김준위가 자신 있어 하던 순두부찌개 먼저 한 숟가락 떠먹었다.

“음…….”

국물에서는 진한 고기 육수의 맛이 느껴졌고, 순두부 또한 양념이 잘 배어서 먹기 좋았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인공적으로 동그랗게 잘라놓은 순두부가 아닌, 숟가락 같은 것으로 무심하게 툭툭 썰어 놓은 비주얼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시골집에서 할머니가 끓여 준 순두부찌개처럼 말이다.

“밥 없어?”

내 말에.

김준위가 전자레인지 안에서 뜨거운 즉석밥을 꺼내 왔다.

나는 즉석밥의 포장을 뜯어, 순두부찌개에 모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크게 한 숟가락 떠먹었다.

“이거 밥 말아 먹기 딱 좋은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스티로폼 용기를 제안했습니다.”

흥분한 표정의 김준위가 마치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좋아했다. 나는 순두부찌개를 한두 숟가락 더 떠먹고, 옆에 앉아 있는 김태하에게 물었다.

“태하 팀장님은 어때?”

“나야 당연히 좋았지. 그래서 부장님 모셔 온 거잖아.”

나는 고개를 돌려 김준위에게 다시 물었다.

“준위 씨. 이거 정말 따숨 제품 맞아?”

“네. 맞습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그 형편없던 순두부가 이렇게 좋아진 거야?”

내 칭찬에, 김준위는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웃었다.

나는 다른 숟가락의 포장을 뜯어, 육개장과 설렁탕을 차례로 떠먹었다.

“음…….”

설렁탕은 밋밋하고.

육개장은 여전히 지나칠 정도로 매웠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김준위에게 말했다.

“설렁탕은 아무런 맛이 안 느껴져. 오히려 순두부에 고기 육수가 깊게 느껴지는데, 이건 수정해야 할 것 같아.”

김준위는 내 말을 작은 수첩에 적으며 눈을 반짝였다.

“예. 알겠습니다.”

“육개장은 아직도 매워. 또 캡사이신이 넣은 건 아닌 거 같은데? 뭘 넣은 거야?”

“이번엔 베트남 땡초를 조금 넣어 봤습니다.”

“땡초? 전혀 땡초 향이 안 느껴지는데? 넣을 거면 팍 넣고, 넣지 말 거면 아예 넣지 말던가. 애매하면 없는 것보다 못해.”

“알겠습니다. 다시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준위는 내가 말하는 것들을 꼼꼼히 받아 적고 밖으로 나갔다.

김태하 팀장은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 내가 먹던 순두부찌개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바보처럼 웃어 보였다.

“순두부 괜찮지? 이거 완전 내 취향이야.”

“응. 괜찮더라.”

“순두부는 먼저 준비해 보라고 했어. 괜찮지?”

“이 정도면 훌륭하지. 근데 용기 말이야. 이대로 갈 거야?”

“왜? 난 좋은데?”

“170원이면 좀 세지 않나?”

“좀 그렇긴 하지. 그래도 따숨이라는 회사가 유명한 회사도 아니고, 이 정도 오버는 해 줘야 팔릴 것 같아서.”

“그래. 알아서 소비자가 계산 잘해서 내놔.”

“당연하지.”

나는 김태하 팀장이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다른 제품들의 국물을 다시 떠먹었다. 순두부찌개를 떠먹던 김태하는 배가 불렀는지,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불렀다.

“지훈아!”

“응?”

“고동수 부장 MD 사업부로 온다면서?”

김태하 팀장 역시 미국 그룹폰에서 고동수 부장과 함께 일했다.

그래서 김경일 팀장처럼 반대하려는 건가?

“어떻게 알았어?”

“고 부장이 어제 직접 얘기해 줬어.”

고동수 부장.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니는구나.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김태하 팀장에게 물었다.

“너한테도?”

“나 말고 누가 또 알아?”

“김경일.”

“흠……. 이 인간이 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나 보네. 경일이한테도 말했다면, 장선영 팀장이나 김민정 팀장한테도 떠들었을 거야. 어쩌면 밑에 있는 과장이나 대리 애들까지 전부 다 떠들었을지도 몰라.”

“입이 좀 싸구나.”

“어디 입만 싸? 설레발도 장난 아니야. 나한테는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조만간 최구열 이사는 부사장으로 올라가고, 자기가 MD 사업부 이사가 될 거니까, 미리 자기한테 붙으래.”

여전히 어린애들처럼 붙어라, 말아라 놀이를 즐기고 있구나.

나는 피식 웃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자신감 넘치고 보기 좋네.”

“자신감? 푸훗.”

김태하 팀장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았다.

“에이. 입맛 다 떨어졌다. 부서가 쪼개지건 뭐건 난 신경 안 써. 근데 너나 내 팀원들이 고동수 부장 때문에 난처한 일이 생기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어이구 든든하네. 우리 태하 다 컸네?”

“넌 지금 농담이 나오냐? 고동수 그 인간 장난 아니라니까!”

“그럼 울까?”

“차라리 울던가. 그리고 원래 똥은 피하는 거야.”

“그래서 언제까지 피할 건데? 최구열 이사는 티켓 사업을 말할 때부터 계속해서 고동수 부장을 밀어 넣으려고 했잖아. 이번에 반대해도 또 다른 명분을 들고 올 거야.”

내 말에, 김태하 팀장은 뭐라 반박을 하지 못했다.

“흠…….”

“난 오히려 이번이 기회라고 보는데. 사업부를 더 확장할 수 있는 기회.”

“아 몰라. 하여간 우리 팀 그쪽 고동수 부장 밑으로 넘기면 나 사표 쓴다!”

“그래.”

탕비실 밖으로 나오자.

박대영 차장과 마성근 팀장, 정진택 팀장이 나를 회의실로 납치하듯이 데려갔다.

역시 소문은 빨랐다.

그들 역시, 고동수 부장의 소문을 듣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으며, 당장 우리에게 좋은 면만 보자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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