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73화 (73/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73화>

74.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BO푸드의 주가는 매일 최고치를 경신했고.

이에 김상만 회장이 직접 회의를 소집했다.

마켓 프레시의 대회의실.

BO푸드의 김상만 회장과 김지욱 상무.

커머스의 정근영 대표, 최구열, 김지영, 이정우 이사.

김재열, 장상익 사외이사와 고동수 부장까지.

나를 포함한 주요 임원 10명이 앉아 있었다.

김지욱 상무는 PPT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고.

간단한 브리핑을 마무리 지었다.

“BO푸드의 주가는 커머스의 PB 상품 출시에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업을 통해 커머스의 상장을 기대하는 주주들이 더 많이 늘었습니다.”

그는 김상만 회장의 큰아들이자 후계자로.

인상이 좋고 말투 또한 상냥했다.

하지만 그를 보는 정근영 대표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상무님, 이렇게 쉽게 인정하실 수 있을 것을 저번에는 왜 그렇게 아니라고 우기셨습니까?”

둘은 BO푸드 시절부터 심하게 대립했다.

김상만 회장은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 했고, 당시 전무이사였던 정근영 대표가 유일한 걸림돌이었다. 결국, 김상만 회장은 정근영 대표를 커머스의 대표로 좌천시켰고, BO푸드의 경영권 승계는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승자의 여유인가?

김지욱 상무는 구김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은 저번과 다르게 명백하니까요.”

“커머스의 오픈과 달빛배송, TV 광고 때도 명백했습니다.”

“글쎄요. 그때는 BO에 새로운 제품들이 나왔던 시기입니다. 또한, 주주들도 커머스에 대해 많이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정근영 대표는 인상을 구기고, 고개를 돌려 김상만 회장에게 물었다.

“회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김상만 회장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가만있던 최구열 이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장님. 제가 먼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해 보세요.”

꽉 다물고 있던 입을 연 김상만 회장.

최구열 이사가 자세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바론에게 20%를 올린 금액으로 다시 제안할 생각입니다. PB가 단기의 성과를 냈다고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더 좋은 조건으로 매각하시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구나.

정근영 대표가 재빨리 얼굴을 붉히며 대응했다.

“최구열 이사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표님. 냉정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지금이 바론에게 가장 많은 금액을 요구할 기회입니다.”

“반대로 우리도 상장에 한 발 더 다가갈 좋은 기회입니다!”

“아니요. PB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최구열 이사의 답에, 김지영 이사가 열을 내기 시작했다.

“최 이사님! 그건 너무 억지십니다. 커머스의 PB 제품으로 BO푸드의 주가까지 움직였다고 모두가 인정하는데, 왜 이사님은 그걸 부정하십니까?”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주가가 움직인 것에 대해서는 저도 인정합니다.”

“그럼 뭐가 문제라는 말입니까?”

“소비자가를 낮추기 위해서 PB 제품들의 마진을 너무 낮춰 놨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화려해 보이겠지만, 영업이익이 공개되면 기대감은 더 큰 실망으로 반영될 것입니다.”

최구열 이사의 말이 일부는 맞는다.

PB 제품의 마진율 20% 정도로 낮춰 놨지만.

이는 소비자가 때문이 아니다.

내가 대화에 끼어들려는 순간, 김지영 이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보카도 퓌레의 판매량은 일주일 만에 40%나 상승했습니다. 우유와 물만두 또한 단기간에 20% 이상 상승하면서, 제품의 퀄리티에 만족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생산량만 늘리면 자연스럽게 이익도 높아질 것이고, 이는 크게 우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봅니다.”

“과연 주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매출에 비해 낮은 영업이익에 오히려 실망감이 클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건 너무 억지십니다!”

“그리고 PB 제품은 근본적으로 큰 문제가 있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자신의 브랜드도 아닌 제품에 언제까지 제조사가 정성을 쏟아 줄 거라 보십니까? 단기로 볼 때는 PB가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브랜드를 달지 못하는 제품들이 문제를 야기할 겁니다.”

최구열 이사는 PB 사업의 고질적인 문제점까지 꼬집으며.

지금의 성과가 단기일 뿐이라 주장했다.

물론, 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브랜드를 버린 제조사들은 위생이나 재료 선정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중앙에 앉아 있던 김상만 회장은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으며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 이사님의 말이 옳습니다. PB는 품질은 보장할 수 없는 시한폭탄과도 같습니다.”

“회장님! 저희가 만든 PB는…….”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정근영 대표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그러자 김상만 회장은 한 손을 올려 그의 말을 끊어 내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입니다.”

“……!”

“최구열 이사님. 당장 바론과의 협상을 멈추세요.”

“회장님. 지금을 놓치면 안 됩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얻기 힘듭니다.”

궁지에 몰린 최구열 이사가 열을 냈다.

하지만 김상만 회장은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가장 끝에 앉은 나를 바라봤다.

“원지훈 부장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최 이사님의 말처럼 제조사들에 10%의 이윤을 더 책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 가격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요?”

“제조사들의 품질을 보장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PB들의 계약서를 보시면, 모두가 담당자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각 제품의 담당자들은 자신이 관리하던 제조사들에 제안을 했고, 제품의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도록 책임질 것입니다.”

“그런가요?”

“이사님이 우려하시는 점이 뭔지는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 PB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 모두가 자사 브랜드를 운영하는 제조사들입니다. 물론 저희 마켓 프레시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요. 만약 PB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제품군도 문제가 될 것이기에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겁니다.”

“볼모를 잡아놨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예. 비슷합니다.”

김상만 회장은 씩 웃고, 고개를 돌려 최구열 이사에게 물었다.

“이제 답이 됐습니까? 최 이사님?”

인상을 구기는 최구열 이사.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 사이, 김상만 회장은 앉아 있는 임원들을 둘러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지훈 부장은 BO푸드 주가를 20% 상승시키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이제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입니다. 최구열 이사님. 바론과의 얘기는 그만하도록 하죠.”

“예…….”

김상만 회장은 최구열 이사의 어깨를 툭 치고 회의실을 나갔다.

그리고 모두가 돌아가려는 순간.

최구열 이사가 급하게 정근영 대표를 불렀다.

“대표님!”

“네.”

“바론과의 협상은 바로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MD 사업부를 좀 더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체계적이요?”

“네. PB와 앞으로 늘어날 신규 카테고리들을 관리할 새로운 사람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구열…….

다음을 위해서, 내 손발을 조금이라도 끊어 놓을 생각이구나.

회의실에 남은 커머스 임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김지영 이사가 이를 반대했다.

“이사님! 잘 돌아가고 있는 MD 사업부를 굳이 왜 나누려 하십니까?”

최구열 이사는 김지영 이사의 말을 무시하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잘 돌아간다고요? 원지훈 부장님, 맞습니까?”

아니라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며칠 전, 베이커리 TF의 황영익은 혼자서 일을 거의 다 했고 나는 PB를 준비하느라 대처가 늦었다.

만약 빨리 알았다면,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최구열 이사가 말을 이었다.

“PB에 집중하느라 베이커리 카테고리의 오픈이 늦어졌죠. 안 그렇습니까?”

누군가 고자질을 했구나.

MD 사업부의 팀장들은 내 사람이라 자부할 수 있지만.

87명 모두가 내 사람은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맞습니다.”

“원지훈 부장 혼자서 100명에 가까운 부서원들을 모두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앞으로 카테고리들이 늘어나면 더더욱 그러겠죠.”

“사업부의 부장은 차장과 팀장을 관리하는 겁니다. TF의 직원이 실수를 한 것이라면, 팀장이 관리를 했어야죠!”

김지영 이사의 말에, 최구열 이사가 미간을 구겼다.

“그건 팀장들이 제 몫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TF의 장인 장수민 과장이 다른 직원들에게만 일을 떠넘겼다는 겁니다! 원 부장님 제 말이 틀립니까?”

누굴까?

누가 최구열 이사에게 이렇게 상세히 고자질한 것일까?

“맞습니다.”

내가 답을 하자, 최구열 이사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수민 과장의 징계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고동수 부장에게 원 부장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티켓 사업을 준비했던 고동수 부장.

사업이 무산되면서, 이를 준비했나 보다.

그는 최구열 이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출력한 문서를 임원들에게 나눠 줬다.

그리고 문서를 잡는 순간.

<원지훈이 관리하는 인원이 너무 많아.>

<이제 장선영이까지 대들고, 이대로 두면 그룹폰 애들도 전부 다 원지훈이 쪽으로 붙겠어.>

그의 너무도 뻔한 기억이 들려왔다.

고동수 부장은 나눠 준 문서를 읽으며, 임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설명이 끝나자, 최구열 이사가 곧바로 나에게 물었다.

“원 부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MD 사업부를 둘로 나눠서 경쟁을 시키려는 겁니까?”

“뭐 그런 의미도 있죠. 건강한 경쟁은 회사를 성장시키는 법입니다.”

환한 미소를 짓는 최구열 이사.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반대할 것으로 생각했던 임원들은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최구열 이사는 나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수락하시는 겁니까?”

“네. 대신, 한 가지 약속해 주십쇼.”

“뭔가요?”

“경쟁에는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고 부장과 저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십쇼.”

“……!”

하나를 내주면 둘을 얻는 것이 기본.

나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이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것이다.

다시 또 조용해진 사무실.

나와 손발을 오랫동안 맞춰 온 김재열 사외이사는 자신이 나설 차례를 잘 알고 있었다.

“제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

김재열 사외이사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도 답을 안 하시니 허락했다고 생각하고 떠들어 보겠습니다. MD는 커머스의 생명입니다. 그들이 어떤 제품을 가져오고 판매하는지에 따라 커머스의 색깔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 원 부장과 고 부장은 각각 1%의 지분을 가진 주주로, 더 많은 권한을 가질 자격이 충분합니다. 장 이사님. 제 말이 틀립니까?”

“아……. 그, 그야 맞죠.”

장상익 사외이사가 마지못해 답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사실. 커머스라면 MD 사업부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맞기는 하죠.”

김지영 이사가 동의하자, 눈치를 보던 이정우 이사까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동의했다.

정근영 대표는 임원들을 둘러보다 끝에 있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모두 동의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부 안에 대해서는 다음 인사 회의 때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내 목표에 더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최구열 이사는 조만간 자신의 얄팍한 수에 제 발등을 찍은 것을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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