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듣는 회사원 61화>
62. 그럼 내일 다시 오죠
남양주 창고 회의실.
테이블 위로 반품 들어온 3개의 상자가 나란히 개봉되어 있었다.
“이건가요?”
내 질문에, 물류 팀의 직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예. 오신다고 해서 미리 꺼내 놨습니다. 저희가 잘 처리했어야 하는데…….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 부장님.”
“네?”
“택배 기사 한 명이 본사로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누굽니까? 누가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드는 겁니까?”
“왜요?”
“말씀해 주시면, 그쪽 대리점에 강하게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일단 제품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상자가 놓인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상자의 겉면과 안쪽에 들어 있는 제품을 눈으로 확인했다.
제품에는 이상이 없다.
3건 모두 다, 개별 포장을 뜯은 흔적도 없었다.
손을 올려, 천천히 상자 구석구석을 훑었다.
<아싸 득템! 우선 70에 올려 보자.>
<그래서? 지들이 어쩔 건데?>
<말 나오면 돌려주지 뭐.>
처음부터 고가의 사은품을 노리고 접근한 블랙 컨슈머들.
모두 고의로 누락한 것이다.
예전에 일하던 원스몰에서도 이런 경험은 많았다.
이제 확신이 있으니, 증거를 찾아야 한다.
“뭐 하세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던 마성근 팀장이 물었다.
“지금 몇 시죠?”
“4시 30분이요.”
그때.
지이잉! 지이잉!
마성근 팀장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가 제품들을 살피는 사이, 다시 회의실로 들어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네요.”
“왜요?”
“택배 기사가 찾아가서 한바탕했나 봐요. 맘 카페에 우리 콜센터랑 택배 기사가 자신을 의심했다고 난리랍니다.”
“어디요?”
“인천이요. 부장님, 우린 여기서 빠지죠. 택배사랑 물류 팀에서 알아서 하게 두세요. 일단 이 회원들은 기존에 반품 건도 많으니까 블랙으로 잡아 둘게요.”
블랙 회원.
지속적인 반품이나 악의적인 클레임을 거는 회원이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일차적인 대응일 뿐.
다른 사람의 명의로 구매하면 똑같은 일은 반복이 된다.
“팀장님은 먼저 퇴근하세요. 전 인천에 좀 들렀다 가겠습니다.”
남들은 이런 날 오지랖이라고 놀린다.
하지만 이건 내 성격이다.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발 뻗고 못 자는 지랄 맞은 성격.
“인천이요?”
“택배 기사, 물류 팀, CS팀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이건 명백한 절도입니다.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해야죠.”
내가 몸을 돌리자.
마성근 팀장은 내 옆으로 바짝 붙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같이 가요.”
“왜요?”
“어떻게 부장님만 두고 갑니까? 차 막히기 전에 빨리 가요. 운전 자신 없으시면 키 주시고.”
나는 씩 웃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 * *
인천 부평의 아파트 단지.
702동 근처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재활용 센터 안에서 분주하게 쓰레기들을 뒤지는 40대 남자와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는 해진 택배의 이명진.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가 보죠.”
내가 재활용 센터를 가리키자.
마성근 팀장이 미간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저길 뒤지려고요?”
“네. 사은품을 받았으면 상자는 버렸겠죠.”
“어휴. 알았어요. 알았어.”
마성근 팀장은 팔을 걷고, 내 뒤를 따라왔다.
재활용이 쌓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이를 뒤지고 있던 이명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부장님?”
놀란 표정의 그는 다급히, 옆에 있는 여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상자 찾으시는 거죠?”
“네……. 끝까지 찾아봐야죠. 여긴 제 아내입니다.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굳이 나와서 찾아본다고 해서요.”
여자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셔츠의 팔을 걷었다.
“어디까지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저희끼리 하겠습니다.”
“한 명이라도 도와야 빨리 끝나죠.”
나는 말을 마치고, 구석에 상자가 접힌 곳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리고 마성근 팀장도 곧바로 내 옆에서 상자들을 살폈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나.
모든 상자를 확인했지만, 휴대용 인덕션의 상자는 찾을 수 없었다.
포장을 뜯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벌써 수거를 한 것인가?
나는 난간에 기대어 허탈한 표정의 이명진에게 물었다.
“기사님. 오늘 집에도 찾아갔었나요?”
“아니요. 경비실에만 말하고, 이쪽으로 바로 왔습니다.”
“흠, 그래요?”
나는 고개를 돌려 마성근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맘 카페에 글은 오늘 올라온 거죠?”
“네.”
“페이지 좀 보여 주세요.”
마성근 팀장은 휴대폰을 꺼내 이것저것 누르고, 내게 건넸다.
긴 클레임의 글.
누가 봐도 택배사와 우리 CS가 잘못한 것처럼 쓰여 있다.
댓글도 장난이 아니다.
마켓 프레시 불매운동을 하자거나, 택배 기사 신상을 공개하라는 등.
알지도 못하면서 댓글로 떠드는 키보드 워리어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나는 모두 확인을 하고, 고개를 들어 이명진에게 말했다.
“우린 703동의 재활용 센터를 찾아보겠습니다. 두 분은 701동으로 가 보세요.”
“예?”
“그럼 그냥 갈 겁니까? 하는 데까지 해 봐야죠.”
“아……. 네네.”
나는 마성근 팀장을 데리고, 703동의 재활용 센터로 들어갔다.
산처럼 쌓여 있는 상자들을 보고, 마성근 팀장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깜깜해서 보이지도 않는데, 그냥 내일 애들 보내죠.”
이미 해가 진 상태로.
재활용 센터의 작은 전등만으로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오른손의 장갑을 벗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금방 끝날 겁니다.”
상자가 차곡차곡 쌓인 곳의 옆면을 조심스럽게 훑었다.
<집에서 놀면서 재활용 좀 하면 안 돼?>
<이건 완전 과대포장이네.>
<재활용 좀 제대로 하면 안 되나?>
<이 박스는 뭐 이렇게 안 접혀?>
쌓여 있는 상자에서 들려오는 무수히 많은 기억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방법이 최선이다. 귀를 기울이고, 조금이라도 비슷할 것 같은 기억을 찾아야 한다.
“이거 냄새 다 배겠네.”
반대쪽 구석에서 상자를 뒤적거리던 마성근 팀장이 툴툴거렸지만.
나는 상자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기억에 집중했다.
그렇게 인근의 재활용 센터들을 전부 뒤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10시.
다른 곳을 뒤지던 이명진과 그의 아내가 다가왔다.
“주변은 다 뒤졌는데……. 없습니다.”
실망한 표정의 그는 고개를 떨구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기 수거는 언제 하는지 아세요?”
“목요일마다 한답니다. 아까 경비한테 확인했어요.”
“그럼 내일 다시 오죠.”
“내일 또요?”
마성근 팀장이 놀란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 분명 이곳에 버릴 겁니다. 찾아야죠.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어휴…….”
“내일은 저만 나올 테니까 팀장님은 업무 보세요.”
“아니요. 제가 어떻게 부장님만 보냅니까? 같이 가요.”
“진짜요?”
“네. 쓰레기를 뒤집어쓰니까, 오기가 생기네요. 누가 이기나 해 보죠.”
마성근 팀장은 씩씩대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 맞다. 팀장님. 내일 출근하시면, 연두 씨한테 중고 거래 사이트들 확인하라고 얘기 좀 해 주세요.”
“예. 저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씩 웃고, 옷에 달라붙은 먼지들을 털어 냈다.
* * *
이튿날.
그리고 그다음 날.
나와 마성근 팀장은 퇴근 후에 똑같은 장소를 뒤지고 또 뒤졌다.
<내일 캠핑 가서 써야지.>
<상자는 빨리 버리라니까.>
<뭔 놈의 박스가 이렇게 많아? 아 몰라.>
캠핑이라면 혹시?
나는 허겁지겁 쌓인 상자 더미를 걷어 냈다. 그리고 그렇게 찾던, 휴대용 인덕션 상자를 확인했다.
“찾았다. 팀장님! 찾았습니다!”
내 말에, 마성근 팀장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정말요?”
“네. 이거 맞죠?”
마성근 팀장은 휴대전화 플래시를 비추며 상자를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네. 맞아요. 결국 찾았네요. 이제 이놈들을 그냥!”
“올라갑시다. 가서 뒤집어 버리죠.”
“잠깐만요. 부장님!”
마성근 팀장이 내 앞을 막아섰다.
“네?”
“경찰관 불러서 CCTV 확인 먼저 해요. 절대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류와 창고에서 오래 일한 마성근 팀장.
역시 그만의 노하우도 있는 법이다.
“그게 좋겠네요.”
마성근 팀장은 씩 웃고,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경찰관 둘이 아파트의 관리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린 그들과 함께 재활용 센터 앞의 CCTV를 확인했다.
오후 3시.
민소매 차림의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인덕션 상자를 재활용 센터 안에 대충 던져 놨다.
“잠깐, 스톱!”
나는 CCTV를 멈추도록 하고, 고개를 돌려 경찰관을 바라봤다.
“확인하셨죠?”
CCTV를 함께 보던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혹시 모르니 녹화분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함께 올라가 보실까요?”
이 시간을 기다렸다.
나와 이명진은 경찰관과 함께 702동 404호로 올라갔다.
이명진이 벨을 누르자.
- 또 왜요?
신경질 가득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사은품으로 나간 인덕션의 포장 상자를 찾았습니다.”
- …….
조용해졌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인터폰의 불빛이 꺼지고, 다시 벨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대부분이 이렇다.
자신의 잘못이 밝혀지면, 어떻게든 숨으려 한다.
쾅쾅쾅!
성질이 급한 내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고객님! 마켓 프레시에서 나왔습니다. 고객님!”
아파트 복도에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를 치고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 자꾸 왜요?
짜증이 섞인 목소리의 여자가 대꾸했다.
“마켓 프레시에서 나왔습니다. 잠깐 나와서 얘기 좀 하실 수 있을까요?”
- 할 말 없어요!
“이러시면, 저희는 그대로 손해 배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도와 명예훼손에 대한 책임을요.”
- 내가 뭘 훔쳤다고 그래요?
“그건 법원에 가서 말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제가 돌아가면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마지막 통보다.
그리고 이 정도로 겁을 주면 누구나 달려 나올 수밖에 없다.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단발머리의 40대 여자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미간을 구겼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우선 제품을 구매하셨으니까, 값을 지불하셔야죠. 그리고 카페에 올린 글은 지우시고, 정식으로 사과문도 올려 주세요.”
“…….”
“못하시면, 저희가 올리도록 하죠.”
나는 주머니에 있던 USB를 꺼내 그녀에게 보이도록 했다.
“분리수거 하실 때 대충 던져 버리던 그분이 남편분이신가요?”
“…….”
“요즘 CCTV들은 화질이 좋아서 모공까지 보이더라고요. 아 그리고, 걱정 마세요. 눈에 이렇게 검은색으로 가려는 드릴 테니까.”
“계좌번호 줘요!”
“제가 아니라, 여기 기사님에게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회원님 덕분에 기사님이 배상하셔야 할 판이라서요.”
여자는 이명진에게 계좌번호를 요구했다.
나는 한발 뒤로 물러나 팔짱을 끼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입금이 완료된 것을 확인하고는 여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앞으로 1시간 안에 사과문 올려 주세요. 제가 1분마다 새로고침 하면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