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57화 (57/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57화>

58. 저희 MD 사업부 신입 AMD들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온 인턴들.

그들은 벽에 붙은 자신의 팀을 확인하고 각자의 자리로 갔다.

“우리 귀염둥이 왔어? 내가 준위 씨 잡으려고 열심히 부장님한테 비벼댔는데, 보람이 좀 있네?”

김태하 팀장은 머쓱한 표정의 김준위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저…….”

“뭐?”

“면접 때 혹시.”

그래도 신경은 쓰였나 보다.

김태하는 팔짱을 끼고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

“왜, 준위 씨가 생각해도 심했지?”

“절반은 사과드리고, 절반은 사과 못 드리겠습니다.”

“뭐? 사과 못 하는 절반이 뭔데?”

김태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절반이 뭔지, 김준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했다.

“거짓말하셨잖아요. 다 아시면서 일부러 저 떠보려고.”

툴툴대는 김준위.

역시 사회 경험이 부족한 풋내기구나.

나는 씩 웃고, 의자 뒤에 걸린 상의를 걸쳐 입었다.

“김태하 팀장님. 김준위 씨 데리고 제가 좀 나갔다 올게요.”

“예! 그러세요.”

김태하는 씩 웃으며, 김준위의 옆구리를 찔렀다.

“준위 씨, 오늘 고생 좀 하겠네.”

“네?”

“아니야 그런 게 있어.”

내가 걸어가자, 김준위가 내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를 물었지만,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특판팀의 마성근 팀장을 바라봤다.

“마성근 팀장님. 특판팀 인턴 한 명 제가 데리고 나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부장님, 첫날인데 너무 빡시게 돌리지 마세요.”

“김미나 씨! 따라오세요.”

“네?”

긴장한 표정의 김미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   *   *

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양지푸드.

이곳은 몇 달 전의 허름한 컨테이너를 사무실로 쓰던 공장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존의 냉동제품과 새로운 레토르트들로 제법 돈을 벌었다.

이사했다는 소식에 화분만 보냈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사한 사무실을 찾는 것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양지푸드의 점퍼를 입은 남자가 나와 인턴들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어디서 오셨나요?”

“마켓 프레시의 원지훈입니다. 사장님 계신가요?”

“약속은 하셨나요?”

“아니요.”

“잠시만요. 사장님께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그는 나와 인턴들을 밖에 세워 놓고 천천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같은 점퍼를 입은 서보미 실장이 나를 발견하고 급하게 달려왔다.

“어머 부장님!”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왜 여기 이러고 계세요?”

“아까 저분이 사장님한테 물어보신다고 해서.”

“아……. 저 친구 신입이라 부장님이 우리 회사 프리 패스인 건 잘 몰라요. 가시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인턴들.

그들은 어미를 쫓아다니는 새끼 오리처럼 쫄래쫄래 내 뒤를 따라왔다.

양지푸드의 대표이사실.

함중식 사장은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맨발로 달려왔다.

“우리 사위! 사위 왔어?”

나는 등을 돌려, 그를 피하며 미간을 구겼다.

“이건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응? 뭐가?”

“아……. 진짜 일정은 매일 늦으시고.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재미없습니다!”

함중식 사장은 피식 웃고, 긴 회의용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난 원래 재미없었거든?”

“수량 맞춰 주신다면서요? 지금 갑질하시는 겁니까?”

“이사하느라 좀 바빴어. 그리고 지금 갑질은 사위가 하는 거 아니야?”

“됐고요. 일주일 안에 수량 빵구 난 거 메워 주세요. 마성근 팀장이 요새 아주 죽으려고 합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쳇. 내가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더러우면 그만하시던가요?”

“그만하면 손가락 빨라고?”

“더럽게 손가락은 왜 빱니까?”

“뭐가? 나 손 씻었고, 화장실 갔다 오면 소독도 해!”

아마 처음 보는 사람이 봤으면 싸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턴 둘도 그랬다.

그들은 놀라서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어찌할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씩 웃고, 함중식 사장의 옆에 걸터앉았다.

“근데 사무실은 좋네요. 돈 좀 들였겠는데요?”

“그지? 돈으로 처발라 봤어.”

내 말에 함중식 사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제야 뒤에 뻘쭘하게 서 있는 김준위와 김미나를 발견했다.

“뒤에 젊은 친구들은 누구야?”

“저희 MD 사업부 신입 AMD들입니다.”

“그래? 특판팀 직원도 있나?”

“네. 여기 김미나 씨요.”

내가 김미나를 가리키자, 그녀는 허리를 숙이며 함 사장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마켓 프레시의 김미나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양지푸드 함중식입니다. 특판팀이면 우리 직원들이랑 자주 전화나 미팅하겠네요.”

“아……. 네네.”

“사위, 이렇게 새로운 식구들도 왔는데, 식사나 함께하지.”

“먹었어요. 지금이 몇 신데.”

내가 말하자, 함중식 사장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난 여기 선짓국 정말 잘하는 집 있어서 우리 사위 꼭 먹이려고 했는데.”

“그렇게 맛있어요?”

“내가 먹어 보고 완전 감동이었다니까.”

함중식 사장의 말에, 김미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장님. 혹시 송림식당이요?”

“오! 젊은 친구가 거길 어떻게 알아요?”

“거기 겉절이랑 섞박지, 마늘장아찌 반찬으로 나오는 데 맞죠?”

“맞아요! 와……. 나 같은 아재들만 가는 가게인데, 이렇게 젊은 아가씨가 섞박지도 다 알고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면접 때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라고 했던 김미나.

그녀는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며, 입맛을 다셨다.

나는 함중식 사장과 김미나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사장님. 여기서 멀어요?”

“차로 3분이면 돼.”

“그럼 제 차로 가죠. 밥 먹고 바로 넘어가야 해서요.”

“오케이! 가자고!”

“둘 다 또 먹을 수 있죠?”

점심을 먹은 지 한 시간이 막 지났다.

김준위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고, 김미나는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준위 씨는 차에 있어요. 함 사장님이 추천하는 건 꼭 먹어 봐야 하거든요. 저분이 저래 보여도 이 바닥에서 소문난 절대 미각입니다.”

“아닙니다. 그럼 국물이라도 맛보겠습니다.”

“국물? 저분은 음식 남기는 사람 제일 싫어해요. 아마 이 바닥 사람들이 다 그럴걸? 예전에 누가 밥 남겼다가 거래 끊어 버린 적도 있어요.”

얼굴이 금세 새파래진 김준위.

그래도 김미나에게 지기는 싫었나 보다.

그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의지가 불타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 먹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식품 MD는 목구멍까지 음식이 차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파는 제품에 떳떳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둘을 번갈아 보고 씩 웃었다.

그리고 점퍼를 입고 콧노래를 부르는 함중식 사장의 뒤를 따라갔다.

*   *   *

식사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향하는 중.

조수석에 앉은 김준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부장님. 결혼하셨어요?”

“아니? 왜요?”

“양지푸드 대표님이 사위라고 부르셔서요.”

“아. 그거? 함 사장님 원래 그래요. 딸이 일곱 살이야. 근데 그냥 맞춰 주는 거지.”

“아…….”

“원래 장난치는 거 좋아하시는 분이거든요.”

“그렇군요.”

“그리고 준위 씨, 지금 참식품에 가는데, 거기 오덕훈 이사가 좀 별나요. 닭가슴살 소시지 공급가 450원에 받아야 하는데 한번 해 볼래요?”

“예. 해 보겠습니다.”

김준위는 주먹을 불끈 쥐고 패기 넘치는 표정으로 답했다.

MD는 하루의 절반을 사람을 상대하는 데 소비한다.

그래서 상대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 목적지는 참식품.

이곳의 냉동식품을 담당하는 오덕훈 이사는 참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다.

차가 주차장에 들어서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오덕훈 이사가 앞으로 걸어왔다.

“딱 시간 맞춰서 오셨네요. 제가 방금 내려왔거든요. 부장님 오늘 머리에 힘주신 거 같은데? 하하하.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자자, 다들 올라가시죠. 뒤에 두 분은 누구시지?”

“저희 인턴입니다.”

“오! 제가 인턴 때의 기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네요. 그때 부장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데리고 다니면서 끌어 주시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습니다. 하하하. 두 분 복 받은 겁니다. 요즘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젊어서 말도 잘 통하고.”

바람에 날릴 것처럼 가벼운 말투와 표정.

진짜 대화를 하기가 힘든 사람이다.

언제나 얘기하다 보면 삼천포로 빠져 있다.

우린 한참을 떠드는 오덕훈 이사의 뒤를 따라, 건물의 3층 옥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사방이 뻥 뚫린 옥상.

편의점에 있는 간의 테이블이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다. 골초인 오덕훈 이사는 이곳에서 미팅하는 것을 좋아한다.

“담배 하나 드릴까요?”

오덕훈 이사는 담배를 꺼내 보이며, 뒤에 있는 인턴 둘에게 물었다.

“아……. 아니요.”

“안 핍니다.”

둘이 대답을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내게 손짓을 했다.

“부장님 빨리 앉아요. 앉아. 내가 어디까지 말했지?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부장님도 담배 하나 피워요. 음료수는 뭐 드릴까? 커피 어때요?”

“괜찮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오덕훈 이사는 회사 얘기, 제품 얘기, 심지어 TV 프로그램의 얘기에 연예인들 얘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화는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했다.

5분쯤 지났을까?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인턴들은 좀이 쑤시는 듯했다. 김준위는 이를 참지 못하고, 패기가 넘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참푸드 닭가슴살 정말 좋아합니다.”

상대방을 칭찬하고, 새로운 제품을 받아보려는 생각인가?

어설픈 전략은 오덕훈 이사에게 먹히지 않는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올라간 내 입꼬리를 숨겼다. 입에 단내가 나게 떠들던 오덕훈 이사는 김준위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죠? 이번에 스테이크 디자인으로 나온 제품이 있는데, 이거 예술입니다. 한 번 먹어 본 사람은 꼭 재주문을 합니다. 아 맞다. 마켓 프레시에서도 잘 나가니까 아시겠구나. 하하하. 닭가슴살 제조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게 모양인데요. 사람은 일단 눈으로 먹고…….”

김준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끝나지 않는 그의 말을 끊어 냈다.

“아……. 저 이사님. 닭가슴살 소시지도 판매하시죠?”

실수한 거다.

보통 그와 같은 스타일의 사람은 대화가 끊기면 화를 내곤 한다.

오덕훈 이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요? 내 얘기가 재미없습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소시지는 저희 마켓 프레시에서 판매 안 하는 것 같던데. 혹시 생각 없으십니까?”

“네.”

“네는 생각이 없다는 건가요? 있다는 건가요?”

오덕훈 이사는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장님. 제조원가 370원 나오는 걸 어떻게 450원에 넘깁니까? 인건비에 우리 기계들 대출 이자는 생각도 안 해요?”

“이사님. 불 좀 빌립시다.”

오덕훈 이사는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테이블 위로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그는 김준위가 자신의 말을 끊은 것부터가 불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라이터를 오른손으로 집어, 빙글빙글 돌리며 고개를 숙였다.

<소시지 많이 찍었는데, 마프 말고는 사입해 가는 데가 없잖아.>

<480원만 맞추자. 어떻게든 480원만.>

<맞다. 마프는 제조 일자 3개월 넘으면 안 받아준다고 했지?>

제조 일자 3개월 근처까지 온 제품을 들고 있구나.

오덕훈 이사는 참 여우 같은 인물이다.

언제나 자신의 속내는 숨기기 위해 상대방을 조급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적은 김준위는 그의 전략에 말려서 협상의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나는 씩 웃고, 라이터를 그에게 다시 건넸다.

“여기 담배 안 피우는 사람도 있는데 피우기 좀 그러네요.”

“부장님. 그럼 줄담배 핀 제가 뭐가 됩니까? 가만 보면 부장님은 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시는 데 재능을 타고나신 분인 거 같아요. 하하하.”

“이사님, 주말에 복면가왕 보셨어요?”

“네?”

“돌아온 닭가슴살 누구 같아요? 전 처음에 참푸드에서 PPL 하나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못 봤는데요?”

“아이돌은 일단 아닌 거 같은데, 노래하는 목소리에 탁성이 좀 나오더라고요. 잘 맞추던 김구라도 모르는 것 같은데, 미나 씨는 누구 같아요?”

“네? 글쎄요.”

나는 인턴들을 부추겨 내 주제의 대화에 끼도록 했다.

그리고 주로 TV와 연예인 얘기들로 오덕훈 이사가 잘 모를 법한 이야기들만 늘어놨다.

그렇게 10분, 20분, 30분이 지나고.

공감대가 없는 얘기를 듣던 오덕훈 이사가 지루했는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나는 손목의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사님이랑 있으면 너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미팅 또 있는데……. 내일 또 올게요. 괜찮죠?”

“아……. 저……. 저야 고맙죠.”

“아 참! 제가 딴 얘기만 했네요. 430원. 그 이상은 절대 못 드립니다.”

“네? 전에는 450원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때죠. 요즘 다른 회사들도 닭가슴살 소시지 만들잖아요. 회사에서 왜 참식품이랑만 거래하냐고 난리입니다. 제가 리베이트 받냐는 소리도 들으면서 나온 겁니다.”

오덕훈 이사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는 그와 헤어지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정말 내일 또 여기로 와요?”

김준위의 질문에 씩 웃으며 답했다.

“아니. 내일 오전에 전화 올 거예요.”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나는 풀이 죽어 있는 김준위를 보고 말했다.

“수고했어요. 준위 씨.”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아까 여우 같은 오덕훈 이사 말하는 거 끊었잖아.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그……. 그런가요?”

“아까 오덕훈 이사 표정이 얼마나 재미있었는데. 하하하.”

“…….”

“앞으로 참식품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할 텐데, 상대할 수 있겠죠?”

“네. 해 보겠습니다.”

“그래. 무조건 처음 목표한 것만 잃지 않으면 됩니다.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