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40화 (40/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40화>

41. 오늘 런치데이잖아요

점심시간.

식사하는 방법은 팀마다 차이가 있다.

“오늘 뭐 먹을까?”

마성근 팀장의 질문에 김대성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길 건너 중국집 어때요? 오늘의 메뉴 유산슬 밥인데.”

“기름이 너무 많아. 좀 가벼운 거 없어?”

“그럼 냉면은 어때요?”

“날도 추운데 무슨 냉면이야? 이 시려.”

“백반집, 요즘 메뉴 좋던데.”

“집에서도 먹는 백반, 나와서까지 먹어야 해?”

김대성이 포기하자, 이번엔 이우진이 메뉴를 고른다.

“햄버거 어떻습니까? 맥도날드 신메뉴 존맛이랍니다.”

“양키 고우 홈!”

“부대찌개는 어떠세요? 라면 사리 무제한인 곳을 찾았습니다.”

“아 유 솔져?”

“회전 초밥집요? 점심 특선 인당 9천 원입니다.”

“쇼우 미 더 머니!”

이우진이 나가떨어지자.

하연두가 살포시 손을 들고 물었다.

“제육볶음은 어떠세요?”

“그래! 그거지! 뭐 해? 빨리들 준비해!”

전형적인 답정너 스타일.

마 팀장은 아마도 제육볶음이라는 선택지가 나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식사들 하고 와요!”

전형적인 혼밥 스타일 김태하 팀장.

사실 정확히 말하면 혼밥은 아니다. 그는 점심시간에 이은지와 데이트를 즐기니까.

“최 대리, 오늘의 메뉴 뭐야?”

“보쌈 정식입니다.”

“음, 그래 가지.”

한 달 치 식단을 미리 정해 놓는 건강식품 팀.

그들은 열량과 영양소를 확인해 가면서 진지하게 식단을 짠다.

나는 부서원들을 둘러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부장님. 약속 있으세요?”

가전제품의 이진성 팀장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건강식품 팀을 따라가서. 보쌈 정식을 먹으려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보쌈이 땡기네요.”

“에이, 맨날 먹을 수 있는 보쌈은 버리시고 오늘은 저랑 같이 가시죠. 특별히 오늘 부장님은 제가 보쌈해 가겠습니다.”

“어디 가는데요?”

점심시간에 가장 피해야 하는 인물이 바로 이진성 팀장이다.

그 이유는…….

“어죽 칼국수 괜찮으시죠?”

“그건 또 어딘데요?”

“영등포요.”

“하…….”

사무실에서 영등포까지는 빠르면 30분, 막히면 1시간이 걸린다.

먹고 왕복으로 왔다 갔다 하면 최대 2시간이라는 소리인데…….

“식품 MD라면 진정한 맛을 찾아다녀야죠. 오늘 런치데이잖아요.”

일명 런치데이.

회사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점심시간을 두 시간으로 늘려, 서울 경기권의 맛집들을 찾아다니도록 했다. 이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 봐야 잘 판다는 취지였고, 이런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이진성 팀장이었다.

“이 팀장님은 가전이잖아요.”

“요새 장작불 피워서 요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가전제품도 당연히 요리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건 또 그러네요.”

“가시죠. 가스 불로 팔팔 끓인 어죽 칼국수 먹으러!”

이진성 팀장은 내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밀어 넣고 강제로 끌고 갔다.

*   *   *

다행히 길은 막히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30분 만에 영등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팀장은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식당으로 뛰어가 번호표를 받아왔다.

“운이 좋아요. 앞에 열일곱 팀밖에 없어요.”

잔뜩 설레는 표정의 이진성 팀장.

그는 대충 찢어 놓은 종이에 적힌 118이라는 숫자를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열일곱 팀이요?”

“이건 짧은 겁니다. 주말에는 서른 팀이 넘어서 1시간이나 기다렸어요.”

“테이블이 몇 개인데요?”

“일곱 개인가?”

그럼 세 바퀴를 돌아야 한다는 말인데.

내 마음을 모르는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이진성 팀장은 나를 보고 기대에 찬 미소를 지었다.

“왜요?”

“아닙니다. 그나저나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 동네는 빠삭합니다. 돌아갈 때는 20분 한번 찍어 보겠습니다.”

하긴, 올 때도 골목골목을 누비며 30분 만에 왔다.

전국 맛집 투어를 다니는 이진성 팀장.

그는 사업부 내에서도 지름길을 잘 아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때.

“지훈 씨?”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펑퍼짐한 힙합 스타일에 스냅백을 사선으로 빗겨 쓴 남자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나는 다가오는 그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까지 알아보지 못했다.

“진짜 반갑네요. 이게 얼마 만인가요?”

“누구신지…….”

“저 기억 안 나요? 와……. 나 이거 급 섭섭해지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렌즈를 안 껴서.”

물론 나는 렌즈나 안경을 끼지 않는다.

지금 이 사람이 서운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렌즈 꼈었어요?”

남자는 스냅백을 벗으며,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리고 그제야 기억이 났다.

김종환.

원스몰 이전, 처음으로 취업했던 작은 쇼핑몰에서 내 사수로 있던 사람이다. 같이 근무한 기간이 3개월을 넘지 않았고, 딱히 대화를 나눈 기억도 없다.

“종환 대리님?”

“네. 잘 지냈어요?”

“저야 뭐 똑같죠. 대리님은 잘 지내셨어요?”

“얼마 전에 작은 쇼핑몰 오픈했어요.”

김종환은 주머니에 있는 명품 명함 지갑을 꺼내, 명함 한 장을 건넸다.

튜나월드 대표이사 김종환.

테두리에 금장한 것이 꽤 힘을 준 명함이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에요? 칼국수 드시러 왔어요?”

“예.”

“회사가 근처인가 봐요?”

“아니요. 조금 멀어요.”

“그래? 어딘데요?”

“강남이요.”

“강남? 와 강남에서 여기까지 투어를 온 거예요? 그것도 점심시간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김종환은 음식을 먹을 기대에 부푼 이진성 팀장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둘이 온 거면, 다음이 우리 차례인데 같이 먹을까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우연한 인연으로 생각보다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됐다.

“그럼 저희야 고맙죠. 팀장님은 어떠세요?”

“당연히 감사하죠. 하하하!”

이진성 팀장도 기분이 좋았는지, 크게 웃었다.

김종환은 자신의 옆에 키가 작고 초라한 한 남자를 툭 치며 나에게 소개를 했다.

“여긴 우리 회사 천필규 팀장님입니다. 에이마켓에서 빼 온 초 엘리트예요.”

“천필규입니다.”

남자가 재빨리 명함을 들이밀었고.

나도 상의 주머니에 있는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는 두 손으로 내 명함을 받아 들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마켓 프레시에 계세요?”

“네.”

김종환은 천필규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되물었다.

“마켓 프레시?”

“네.”

김종환은 재빨리 천필규가 들고 있는 명함을 가로챘다. 그리고 나와 명함을 번갈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지훈 씨 마켓 프레시 다녀요? 그것도 부장님? 남다르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로 잘나가고 계실지는 몰랐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에이……. 대리님은 이제 사장님이잖아요.”

“마켓 프레시랑 우리 같은 구멍가게를 어떻게 비교해요?”

“아닙니다. 저희도 별거 없어요.”

“원 부장님 저도 명함 한 장만 줘요.”

그는 내 명함을 받아 한참을 보다가 명함 지갑에 넣었다.

김종환은 식사 내내 참치에 관해 이야기만 했다.

쇼핑몰은 B2B를 위해 만든 것이고, 주력은 참치 횟집에 납품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참치의 생명은 온도라며.

이동 차량의 온도, 창고의 온도 등등.

온도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역사에 관해 설명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진성 팀장이 김종환 대표에 관해 물었다.

“얼마나 같이 일하셨어요?”

“한 3개월?”

“음, 좋은 분 같던데요?”

“솔직히 잘 기억도 안 나요.”

다시 돌아온 사무실.

신선식품팀이 뒤집혀 있었다.

정진택 팀장은 이미선 과장을 죽일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며, 소리를 질러 댔다.

“미선 과장아! 내가 이거 신경 쓰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내가 진짜. 위에다가는 또 뭐라고 하냐?”

도재문 대리 사건 이후로 정 팀장은 한동안 화를 내지 않았다. 부하 직원들의 기를 살려 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정 팀장의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참, 휴 미치겠네요. 통영에서 가져오던 석화가 다 상했답니다.”

“얼마나 되는데요?”

“8톤 트럭 한 대 분량이 전부 다요.”

“왜요?”

“차량 냉장 시설이 고장이 났다네요. 그래서 그렇게 내려보내기 전에 확인하라고 했는데, 아 미치겠네요. 진짜.”

“지금 제품은 어디 있죠?”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린다.

“남양주 창고에서 폐기하고 있답니다.”

“가시죠. 일단 가서 상태 먼저 체크하시죠.”

“직접 가시게요?”

내가 대답도 없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정진택 팀장이 급하게 상의를 걸쳐 입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이미선에게 소리쳤다.

“뭐 해! 빨리 안 따라오고!”

*   *   *

남양주 공장.

지게차가 8톤 트럭에 있는 제품들을 내리고 있었다. 직원들은 굴이 상한 악취에 코를 막고 있었다.

“얼마나 된 겁니까?”

내 질문에, 창고를 관리하던 직원이 미간을 구기며 다가왔다.

“7시간 정도 운행했다고 하네요.”

밀폐된 공간에서 냉장 가동이 되지 않았다면, 전량 상한 것이 맞다.

그리고 당장 폐기를 하는 것이 맞다.

아깝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다.

나와 정 팀장이 지게차 가까이 다가가자.

60대로 보이는 노인이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차량 기사님이신가요?”

“네. 제가 분명 아침에 점검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정진택 팀장은 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봐요! 이게 얼마짜리 물건인지 알아요?”

“죄송합니다.”

“이 물건이 당신이 1년 버는 돈보다 더 많아!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고!”

긴장한 운전기사.

그는 벌벌 떠는 손으로 들고 있던 모자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내가 허리를 굽혀 모자를 집어 드는 순간.

<미역국은 먹었겠지?>

<이어폰이 필요하다고 했지? 일당 받으면 그거 사다 줘야지.>

<모처럼 일찍 일어났는데, 차 좀 점검해야겠네.>

<세차까지 하니까 말끔한데? 10년은 더 타겠어.>

누군가의 생일이었나?

기분 좋은 그의 생각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분명 차량을 오전에 점검하겠다고 했다.

나는 한 손을 올려 정 팀장의 말을 끊어 냈다.

“기사님. 오전에 장비는 체크하셨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딸아이 생일이라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점검했습니다.”

“적재물 책임보험은 들려 있죠?”

“예. 저번 달에 갱신해 놨습니다.”

“다행이네요.”

냉동, 냉장 장치 또는 설비의 고장이나 전기 공급 중단에 의한 온도 변화로 수탁화물에 생긴 손해는 보험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험사는 이 큰 금액을 주지 않기 위해 갖은 수를 쓸 것이다.

먼저 수탁 화물의 포장 상태, 그리고 처음부터 수탁 화물의 불량 여부.

이 두 가지에 대해 완벽히 확인해야 한다.

나는 지게차를 멈추라고 손짓을 하고 차량의 안으로 들어갔다.

상자의 포장은 문제가 없다.

그럼 제품은?

“미선 과장님! 제품에는 이상 없었죠?”

“네. 함께 움직인 다른 차량의 제품들은 아무 이상 없이 들어왔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때.

검은 뿔테 안경에 꼭 맞는 갈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걸어왔다.

한눈에 봐도 보험 조사관으로 보이는 그는 차량의 앞으로 걸어와 코를 틀어막으며, 정 팀장에게 명함을 건넸다.

“TC 손해 보험의 이종열 과장입니다. 여기 책임자십니까?”

“예.”

“일단 물건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는 지게차에 내려진 상자 하나를 가리키며, 창고 직원에게 말했다.

“이거 좀 뜯어 주시겠습니까?”

창고 직원이 상자를 뜯어 주자.

그는 손가락 두 개로 석화의 껍질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사진을 여러 장 찍고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제품이 원래 상했던 거 아닙니까?”

나는 차에서 내려,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다른 차량에서 들어온 제품은 이상 없었습니다.”

“흠……. 그럼 포장 상태 좀 점검해 보겠습니다.”

“차량에 냉각기만 돌려 봐도 알잖아요!”

“메뉴얼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그는 이번에 직접 다른 상자들을 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량 멀리서 남은 상자들 사진을 찍었다.

“포장 상태는 음…….”

저건 할 말이 없는 거다.

예전에 원스몰에서 근무할 때도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결과는 보험사로부터 손해 배상을 받았지만, 기간이 한 달 이상이나 걸렸다.

뭐 그리 조사할 것이 많은지…….

“이상 없으면 빨리 다음 메뉴얼대로 가시죠.”

“네?”

“기사님과 대화 녹음 떠서 꼬투리 찾으려 분석하고, 사진 보내서 문제점을 찾다가, 차량 점검일까지 체크하면 끝이죠?”

“…….”

“몇 번 당해 보니까 이 메뉴얼 너무 잘 알겠는데? 딱 2주만 기다리겠습니다. 또 시간 질질 끌지 마시고 빨리 가부 여부 결정해 주세요. 우리야 그렇다 쳐도 기사님 생각하셔야지.”

“흠…….”

배송 기사에게 이 기간은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만약 보험사에서 배상이 나오지 않으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이종열은 이에 무안했는지, 헛기침하고 운전기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려는 순간, 내가 소리쳤다.

“기사님! 사고 당일 피곤했다거나 그런 말 하시면 안 됩니다! 그거 하나로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피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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