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듣는 회사원 37화>
38. 나도 공유해 줄 수 있어요?
“진성 대리! 제품 확인해!”
“최석현! 마케팅팀에 구좌 요청한 거 컨펌 떨어졌어?”
“김태하 팀장님 파일 보내드렸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부서원들.
MD 사업부는 평소와 같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점심시간.
의자에 걸어 둔 상의를 걸치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숨을 헐떡이는 마성근 팀장이 양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다들 스톱! 오늘 점심은 수원에서 직접 공수해 온 왕 갈비탕을 쏩니다!”
다른 엘리베이터들의 문이 열리고.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들이 커다란 통을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들의 뒤로는 김경일 대리와 플래딧 마케팅의 김재열 이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금세 퍼지는 달달한 냄새.
냄새만으로도 심미옥 사장의 왕 갈비탕임을 알 수 있었다.
MD 사업부 직원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에 크게 당황한 듯했다.
모두가 멍하니 서서 아주머니들을 바라보자.
마 팀장이 사무실 가운데로 걸어가 크게 소리쳤다.
“저희 팀 김경일 대리가 야심 차게 준비한 신제품이 나와서 이렇게 대접하게 됐습니다. 자! 줄을 서시오!”
뽀글뽀글 파마에 짙은 화장.
금붙이들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심미옥 사장이 마 팀장의 옆으로 다가갔다.
“부담 갖지 마시고 한 그릇들 해요. 오늘 특별히 특A급 갈빗대로 가져왔으니까, 남기지 말고 다 드세요!”
나는 김경일 대리의 옆으로 다가가,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이게 뭡니까?”
“저랑 김 이사님은 말렸는데, 하도 막무가내 셔서…….”
오늘은 갈비탕 레토르트의 1차 생산이 완료된 날이다.
고급스러운 포장지와 심미옥 사장이 강조하던 조리법.
간편하게 만들어진 과립형 수프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는 식당을 운영하는 심미옥 사장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녀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가져온 뚝배기에 국물을 담기 시작했다.
어찌나 환하게 웃는지…….
마치, 장사를 끝내고 정산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들! 빨리 와서 깍두기 담아! 뭘 그렇게 멀뚱멀뚱 보고 있어?”
“아……. 알았어.”
“거기 김 대리도 와서 일 좀 돕지? 사람이 뭐 그렇게 눈치가 없어? 그래서 어디 장가나 가겠어?”
“아……. 또 장가 얘기네.”
나와 대화를 나누던 김 대리가 팔을 걷고 후다닥 달려갔다.
MD 사업부 직원들은 뜨끈한 갈비탕을 하나씩 받아서, 회의실이나 자신의 자리로 가서 먹기 시작했다.
“와! 국물 죽이네요.”
“사장님 너무 맛있어요!”
“레토르트 대박 나겠는데?”
여기저기 터지는 탄성들.
마 팀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사업부 직원들을 바라봤다.
“내일부터 사이트에서 판매하니까, 직접 사 드셔 보세요. 지금 이 맛이랑 똑같을 겁니다.”
“마 팀장님! 정말 맛있어요.”
“당연하지! 우리 김 대리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데.”
“대박 나는 거 아닙니까?”
“이거 몰라? 에이마켓에서 하루에 100개씩만 판매하던 거잖아! 이번에 우리는 초도 물량만 1만 팩이 넘게 찍었어!”
“와!”
김경일 대리는 갈비탕 레토르트의 런칭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채소와 각종 양념은 일일이 심미옥 사장에게 확인을 받았고, 김재열 사외이사가 소개해 준 고깃집에서 최상급 갈빗대를 공급받았다.
또한, BO푸드의 생산 설비 지원으로, 목표치 이상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심미옥 사장은 멀찍이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갈비탕 한 그릇을 담아 왔다.
나는 그녀가 내미는 갈비탕을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이러시면 안 돼요. 요즘 우리 껌 한 통이라도 얻어먹으면 바로 내사 들어와요.”
“내가 좋아서 이러는 건데. 뭐? 자식 같은 놈들 갈비탕 한 그릇도 못 먹여?”
“그래도 이건……. 하여간 꼭 계산하고 가셔야 합니다.”
“허 참……. 계산은 무슨 계산. 이거 얼마 안 돼. 팔팔 끓여 줘야 하는데 다 식은 거 줘서 미안해 죽겠구먼.”
“아닙니다. 꼭 정산하고 가셔야 합니다.”
“이 정도로 뭘.”
“그러다가 김 대리랑 저 잘려요!”
“깐깐하긴, 김영란 법인지, 뭔지 때문이지? 그럼 이따 기름값만 받아갈게.”
“사장님!”
“하, 거참 부장 달고 더 깐깐해졌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십 원 한 장 안 틀리게 받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기나 해!”
나는 그제야, 갈비탕을 받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특판팀 식구들이 나를 보고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김대성은 후다닥 빈 의자를 꺼내며, 두 손으로 공손히 가리켰다.
“여깁니다. 부장님!”
“땡큐.”
“아니 뭘요. 국물 어떠세요? 괜찮죠? 저도 이거 레토르트 몇 번 먹어 봤는데, 정말 죽이더라고요. 지금 이거랑 완전 똑같아요.”
먹어 보기는커녕, 아직 자리에 앉지도 못했다.
“나 아직 안 먹었거든?”
“하핫, 제가 좀 급해서.”
갈빗대 자체에 양념이 배어 있어서, 국물은 달달한 것 같으면서도 정갈한 느낌이 났다. 또한, 깊이 우러난 육수와 탱글한 당면이 조화를 이뤘다.
식을 대로 식었지만, 이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아. 좋다.”
“그죠? 이번에 대박 치겠죠?”
“응. 마케팅 플랜은 짰어?”
“예. 이번에 연두 씨가 그것 때문에 고생 좀 했어요.”
“연두 씨가?”
하연두는 숟가락을 입에 물고, 브이를 그려 보였다.
나는 씩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어려운 거 없었어?”
“넵! 김 대리님이랑 대성 선배님이 알려 주셔서 쉬웠습니다.”
“나는? 나는 왜 빼?”
옆에 앉은 이우진이 하연두의 어깨를 밀치며 툴툴댔다.
“아 우진 선배님은……. 도와주신 게……. 없는데요?”
“무슨 소리야? 내가 전에 연두 씨 야근할 때 초밥 사다 준 거 잊었어? 거기 소문난 집이라, 30분이나 줄 서서 사 온 거야!”
“그래요?”
특판팀은 그대로다.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쳤고, 가족처럼 정말 친해 보였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나는 마성근 팀장과 함께 커피를 받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정신 안 차려?”
“…….”
“그러니까 맨날 재고만 생기지! 언제까지 그럴래? 응? 또 폐기할래? 응?”
잔뜩 화가 난 정진택 팀장이 자신의 팀 도재문 대리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끝이야? 이거 어떡할 거야? 당장 손해 난 거 어쩔 거냐고!”
“어떻게든 복구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복구? 네가 무슨 수로 복구를 해?”
마 팀장은 멀찍이서 그들을 보며,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정 팀장이 또 애 하나 잡네요.”
“왜 저래요?”
“도 대리가 또 실수했나 보죠.”
“실수요?”
“글쎄……. 이걸 실수라고 해야 하나,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하나. 도 대리가 재고 관리를 못 했나 봐요. 일종의 징크스나 머피의 법칙 같은 건데, 이상하게 도 대리 물건만 사고가 터져요.”
“흠…….”
“하여간 운이 더럽게 없는 놈이에요. 내가 전에 굿 한번 하자고 했는데.”
“굿이요?”
“네. 베리 굳! 아 유 오케이?”
마 팀장의 개그 퀄리티는 여전하다.
그는 내게 엄지를 펴 보이며, 킥킥거렸다. 그리고 담배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저 있어요.”
주머니에서 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잠시 후.
도 대리를 혼내던 정진택 팀장이 씩씩대며 우리의 앞으로 다가왔다.
“마 팀장님! 담배 하나만 얻어 핍시다.”
“없는데요?”
조금 전에 나에게 담배를 건넨 마 팀장이었는데…….
그는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물건을 절대 남과 나누지 않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 그러지 말고 좀 줘요. 내가 이따 한 갑 사줄 테니까.”
“있으면 내가 주지. 없어요. 없어!”
“아니, 내가 줄게요.”
나는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정 팀장에게 건넸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마 팀장님은 좋겠습니다.”
“뭐가요?”
“김경일이처럼 일 잘하는 팀원도 있고.”
“에이. 우리 팀은 겨우 다섯이잖아요. 정 팀장님네 팀원은 열둘인가?”
특판팀은 다른 팀에 비해 인원이 적다.
관리해야 하는 상품이 적고, 클레임이나 문의가 적기 때문이다.
“열둘이면 뭐 합니까? 김경일 만한 놈이 없는데.”
“도 대리도 운이 좀 나빠서 그렇지, 문서나 통계는 잘하잖아요.”
“마 팀장님은 모릅니다. 내가 걔 일하는 거 보면 진짜 속이 터집니다. 혼자 뭘 그렇게 하는지, 진짜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놈이에요.”
정진택 팀장은 고개를 돌려, 바깥쪽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고 나를 바라봤다.
“부장님.”
“네?”
“김경일이랑 도재문이 바꿔 주시면 안 돼요?”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내가 답하려 하기도 전에 마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 팀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시네.”
“뭐가요? 방금 도재문이도 일 잘한다고 하셨잖아요!”
“도재문이 걔는 굿을 좀 해야 합니다.”
“굿이요? 무당 나와서 막 그 굿?”
설마…….
하지 마라. 제발 하지 마라.
속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마 팀장은 역시 마 팀장이다.
“베리 굿! 아임 쏘 해피!”
“…….”
엄지를 자신 얼굴 옆에 붙이고, 앙증맞은 표정을 짓는 마성근 팀장.
분위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정진택 팀장은 담뱃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거 안 웃겨요? 개콘에서 빵빵 터지는 건데?”
나는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걸어갔다.
“부장님! 부장님!”
* * *
늦은 저녁.
밖에서 식사하다가 두고 간 파일이 있어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불이 꺼진 사무실.
한쪽 구석에 작은 스탠드가 켜져 있었다.
“누구? 도재문 대리?”
내가 부르자, 도 대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부장님!”
“금요일인데 좀 일찍 들어가지.”
“거의 다 끝나갑니다.”
“뭔데? 좀 봐도 돼요?”
나는 그의 뒤에서 모니터 화면을 바라봤다.
신선식품의 짧은 유통기한에 맞게 이벤트 플랜을 세우는 것 같았다.
유통기한 5일 남았을 때는 20% 세일.
4일 남으면 30% 세일 등
나름 유통기한에 맞는 최적의 공식을 세우고 있었다.
“뭔가요?”
“신선식품들 유통기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채소나 육류, 유제품 같은 경우는 유통기한이 다 다를 텐데, 어떻게 하려고요?”
“그래서 생산일 기준으로 유통기한이 똑같은 제품들끼리 묶고 있습니다. 데이터만 완성되면, 재고 없이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의 말이 맞다.
마켓 프레시에서 판매하는 신선식품은 대략 3만 종.
유통기한이 짧아서 폐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할인 이벤트나, 상단 노출로 재고를 쳐 내지 못한 것이다.
이해는 간다.
한 명의 MD가 많은 상품을 컨트롤해야 하기에, 이런 실수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도 대리의 생각처럼, 모든 상품의 데이터를 정리한다면?
그래서 자동으로 할인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다면,?
당연히 폐기하는 상품의 수를 줄이고, 사들일 수량을 예측할 수도 있다.
“좋네요. 그거 다 되면 나도 공유해 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도재문 대리가 해맑은 표정으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