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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듣는 회사원-16화 (16/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16화>

17. 목요일에 찾아온 인연

매주 목요일.

이날은 회사 전체가 시장처럼 변하는 날이다.

한 달 만에 커머스 순위 5위까지 올라온 마켓 프레시는 제품을 입점하려는 영세 제조사와 벤더들이 줄을 섰다. 또한, 매일 걸려 오는 전화와 이메일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에 MD 사업부에서는 신제품 발굴을 위한 실무자 미팅을 목요일 하루에 몰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이게 말이죠. 불맛이 장난 아닙니다. 끝에 쏘는 알싸함이 그냥……. 캬 죽입니다. 죽여!”

땀을 뻘뻘 흘리는 남자가 팔팔 끓는 짬뽕을 일회용 용기에 담아줬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앙증맞은 턱받이를 한 김대성이 짬뽕을 받아 들고 군침을 삼켰다. 그리고 옆에 앉은 나를 보고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먼저 드실래요?”

“그럼, 당연하지!”

김대성은 일회용 젓가락을 뜯어 짬뽕 그릇에 푹 담가 내게 밀어 줬다.

“자! 드세요! 마음껏 드세요.”

“땡큐.”

나와 팀원들은 창고 사건 이후로 더 끈끈해졌다.

업무 중에 농담도 많이 했고, 퇴근 이후에도 자주 뭉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곤 했다.

나는 이들과 지금처럼 지내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일의 능률도 올랐고, 무엇보다 회사에 다니는 맛이 나서 좋았다.

씩 웃으며, 짬뽕 한 젓가락을 입 안에 넣었다. 김대성은 곧바로 다음 짬뽕을 받아 진공청소기처럼 면발을 빨아들였다.

“후……. 하…….”

많이 매웠는지.

김대성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로, 혓바닥을 내밀어 손부채질을 했다.

“쓰읍, 하……. 사장님, 이거 진짜 맵네요.”

“덩치는 산만 한 분이 이것도 못 드세요?”

“덩치랑 매운 게 무슨 상관입니까? 근데 이거 계속 땡기네요.”

“우리 대한민국 민족이 어떤 민족입니까? 매운 거 하나는 그냥 기똥차게 잘 먹는 민족 아닙니까! 하하하.”

“이 매운맛 마라죠?”

“네, 맞습니다. 요새 마라 인기가 좋잖아요.”

영세 제조업체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선택해 주길 바라며 최선을 다해 제품을 홍보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직접 조리를 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성은 물로 입을 헹구며 남자에게 물었다.

“오픈마켓은 들어가 보셨어요?”

“예.”

“성적 괜찮았죠? 이 정도면 먹혔을 텐데?”

“아니요. 별로 재미 못 봤습니다.”

“왜요?”

“이쪽 카테고리 광고비가 꽤 비싸서요.”

오픈마켓들의 수수료는 10~12%.

우리 마켓 프레시의 수수료는 25~35%.

수수료만 놓고 본다면 당연히 오픈마켓에서 판매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두 커머스의 정책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오픈마켓은 누구나 상품을 등록하고, 판매 수수료와 판매자의 상위 노출 광고비로 수익을 낸다. 그와 달리 우리는 선정한 제품을 사들여서 오로지 판매 수수료만으로 수익을 낸다.

영세 제조업체나 벤더들은 어느 커머스의 시스템을 더 좋아할까?

그건 당연히 우리의 시스템이다.

선지급 결제방식, 안정적인 공급 계약, 창고 비용 절감, 재고 위험성 방지 등등

우린 오픈마켓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해 줬다.

“사장님, 이거 소비자가는 얼마나 생각하세요?”

내 질문에, 짬뽕을 끓이던 남자가 방긋 웃으며 답했다.

“600g짜리 한 봉에 2,700원 생각합니다.”

“2,700원이요? 흠……. 제안서 좀 주시겠어요?”

컵라면 용기가 아닌 인스턴트 짬뽕의 경우.

비싸면 5천 원까지도 간다.

그리고 이 정도의 퀄리티면 솔직히 그 이상을 받아도 팔 수 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짬뽕 국물을, 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가 건네는 제안서를 받았다.

<입점하면 아연이 옷이랑 가방 사줘야지.>

<아연이 신발이 다 해졌네. 속은 깊어 가지고…….>

<아연아, 일찍 철들지 않아도 돼. 아빠가 꼭 다 해 줄 테니까.>

<이번 달 직원들 급여는 또 어떻게 주지?>

<사카르 어머니 수술하셨다고 했지? 이번 달부터 월급 올려 줘야 하는데…….>

제안서를 통해 들려오는 수많은 생각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짬뽕을 끓이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장님, 오징어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요? 일부러 샘플에만 많이 넣으신 건 아니죠?”

“아닙니다! 제 딸아이를 걸고 맹세합니다. 거기 성분표 보세요. 오징어 길게 슬라이스해서 팍팍 때려 넣었습니다.”

“요새 오징어 비쌀 텐데 어떻게 그 단가에 맞췄어요?”

“짬뽕에 오징어가 빠지면 되겠습니까? 마진을 줄여서라도 때려 넣어야죠.”

나는 제안서를 한 장 넘겨, 조리법을 확인했다.

“조리법도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네. 요거! 마지막에 넣는 유성 수프가 마라와 불 맛의 비결입니다.”

“그렇군요.”

제안서를 내려놓고, 남자를 바라봤다.

수건으로 땀을 닦는 그는 여전히 짬뽕을 끓이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사장님.”

“예 팀장님.”

“즉시 납품 가능한 수량은 얼마나 될까요?”

“……!”

남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김대성이 마시던 물을 가로채 입을 헹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사장님이 빨리 말씀 안 하시면 저 다른 회의실로 갑니다.”

“600g짜리 12개 세트로 2만 박스 정도 생산해 둔 것 있습니다.”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국자를 내려놓고 다급하게 말했다.

“겨우 그게 다예요? 조만간 공장 늘리셔야겠네.”

“예?”

“저희 판매 수수료는 들으셨죠? 제품 생산일 확인증만 보내 주시면, 바로 계약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소비자가는 3천 200원에서 3천 800원 선으로 맞춰 주세요. 요새 소비자들은 싸면 오히려 믿질 못해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이렇게 좋은 제품 만들어 주셔서요. 따님 예쁜 옷이랑 좋은 가방 사주세요.”

“네?”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늘 정말 잘 먹었습니다. 지금의 마음 변치 마시고 지금과 같은 좋은 제품 만들어 주세요. 앞으로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영세 제조업체들이 오프라인 마켓을 뚫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온라인 오픈마켓에 도전해 보지만, 그 또한 대형 브랜드들 사이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이 남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단가를 낮추고 품질을 올렸지만, 이 제품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공장을 놀릴 수 없으니, 제품은 쌓여 가고 계속 부채만 늘어났을 것이다.

나는 남자에게 명함을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팀장님! 팀장님!”

일회용 접시를 두 손으로 든 마성근 과장이 호들갑을 떨며 회의실 문을 벌컥 열었다.

“네?”

“이거 드셔 보세요. 대박입니다. 대박!”

마 과장은 완자같이 생긴 것을 젓가락으로 집어, 내 입 앞에 들이밀었다. 나는 고개를 틀어 그의 젓가락을 피하며 물었다.

“뭐예요?”

“이거 진짜 대박이라니까요! 와,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지?”

“그게 뭔데요?”

“선지 튀김이요. 와, 진짜 식감이 예술입니다.”

“선지? 그걸 튀겨요?”

“네! 깨끗한 해바라기유에 바삭바삭하게 튀겼는데, 겉바속촉! 진짜 이건……. 완전 끝판왕입니다! 얼마 전에 치킨 껍데기 대박 난 거 기억나시죠?”

“네, 알죠.”

“이건 그거 이상 갈 겁니다. 와 진짜……. 대박이야 대박.”

이날은 신기한 제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작은 제조사나 벤더들의 창의력은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마성근 과장은 내가 미간을 구기자, 젓가락으로 잡고 있던 선지 튀김을 자신의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와, 진짜 대박. 대박이야. 대박.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다 했대? 와 진짜…….”

그는 계속해서 대박이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이 있던 회의실로 돌아갔다.

나는 회의실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모니터 화면을 보던 하연두가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말했다.

“팀장님! 3번 회의실에서 손님 기다리세요.”

“오케이. 연두 씨도 같이 볼래?”

“그래도 될까요?”

“그럼 당연히 되지, 준비해서 들어와요.”

“예, 알겠습니다.”

*   *   *

3번 회의실 안.

한 남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와 하연두가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고래식품의 김민…… 어라? 너!”

툭 튀어나온 배, 도수가 높은 돋보기안경.

어깨에 비듬이 눈처럼 떨어진 그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네?”

“너 원지훈이지?”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이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이면 더더욱 말이다.

“누구시죠?”

“나야 나! 김민우! 광승 고등학교 3학년 2반 김민우라고!”

기억난다.

고등학교 동창인 김민우.

그 당시 이 친구는 깡마르고, 외모에 신경을 쓰던 아이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김민우? 네가 진짜 민우야?”

“그래 인마! 잘 살았어?”

“그럭저럭 살았지 뭐. 근데 너 졸업하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김민우는 자신의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먹고 살다 보니까 뭐 이렇게 됐네. 하핫.”

“너무 많이 먹고 산 거 아냐?”

“하하하! 여전하구나! 너.”

“넌 너무 여전하지 못한데? 근데 여긴 무슨 일이야?”

김민우는 휴대용 버너에 팔팔 끓고 있는 냄비를 가리켰다. 그리고 세상을 다 가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제품 좀 소개하려고.”

“계속 식품 쪽 일했던 거야?”

“아니. 한 달 전에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을 물려받았어. 그래서 아직은 잘 몰라. 우리 실장이 올 텐데, 잠깐만 기다려 봐.”

“아, 그래.”

나는 자리에 앉아 김민우가 떠주는 김치찌개를 받아 들었다.

그의 김치찌개는 평범했다.

고기를 너무 잘게 썰어 보이지도 않았고, 가끔 떠다니는 참치는 맛을 내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나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살짝 떠먹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때?”

내 표정을 살피며 묻는 김민우.

솔직히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제품은 너무 평범해서, 당장 생산을 멈추고 제품 연구부터 다시 하라는 말을…….

그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짧은 단발머리를 반만 묶은 그녀는 유난히도 새하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쌍꺼풀이 없는 눈과 오뚝한 코.

길에서 봐도 한 번쯤 뒤를 돌아볼 정도의 여인이었다.

“고래식품의 서보미라고 합니다.”

그녀는 나와 하연두에게 차례로 명함을 건넸다.

나는 그녀의 명함을 받아 들고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은 내 명함을 전달했다.

“원지훈입니다.”

“원스몰의 원지훈 팀장님.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제품은 시식해 보셨나요?”

“네. 방금요.”

“어떤가요?”

“이게 음……. 음…….”

“그냥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연구와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발로 뛴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희 제품 너무 별로야’라는 말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나마 김민우는 고등학교 동창이었기에 쉽게 해 주려 했는데…….

이 여자의 얼굴을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을 열었다.

“너무 평범합니다. 저희가 판매하기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하아……. 그런가요?”

“네. 돼지고기는 너무 잘게 썰어놔서 식감이 안 느껴지고, 참치가 떠다니는데 너무 작아서 이물질 같은 느낌입니다. 또…….”

서보미 실장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참치요? 지금 참치라고 하셨어요?”

“네. 참치요.”

“이상하다. 참치가 들어갈 리가 없는데?”

그녀는 재빨리 끓고 있는 냄비를 확인했다. 그리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 김민우를 보고,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사장님! 혹시 여기 있던 김치찌개 끓이셨어요?”

“……응?”

“이걸 왜 가져 오셨어요? 김치찌개는 아직 개발도 안 끝난 제품이잖아요.”

“그래? 난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던데?”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팀장님, 10분만 시간을 좀 주세요. 사장님이 실수로 다른 제품을 끓이셨네요.”

“네. 그러죠.”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서보미 실장은 빈 냄비에 물을 붓고 부대찌개의 포장을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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