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듣는 회사원-9화 (9/223)

<기억을 듣는 회사원 9화>

10. 마켓 프레시 오픈 D-DAY

회의가 끝나고.

나는 최종 상품 리스트를 출력해서 차 부장의 자리로 갔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 없었다. 쫄랑쫄랑 따라다니던 박대영 차장도 없는 것을 보니 둘이 대책 회의를 하러 간 것 같았다.

책상 위를 뒹구는 검은색 볼펜.

오른손으로 그 볼펜을 움켜잡았다.

<김지영……. 그년은 어떻게 눈치챈 거야?>

<현금으로 받아 두길 잘했네.>

<이제 누굴 잘라 내야 하나…….>

고스란히 들리는 더러운 생각들.

조금 전까지 이 볼펜을 들고 오만 가지 생각을 했나 보다.

그때.

“원 팀장! 무슨 일이야?”

차 부장이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왔다.

나는 볼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옆에 끼고 있던 파일철을 건넸다.

“이벤트 상품 최종안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MD 사업부에 원 팀장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부장님. 김 이사님 말이 사실인가요?”

“뭐가?”

“이번 제품 사입 과정에서 청탁이나 리베이트 같은 게 있었나요?”

정곡을 찔려서 그런지, 차 부장은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게 왜 궁금하지?”

“저도 MD 사업부니까요.”

“무슨 생각인지 알겠는데, 미안해서 어쩌지? 난 아니야.”

“…….”

“이번 상품 준비한 팀장, 과장, 대리들 조사를 할 생각이야. 만약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먼저 쳐낼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원 팀장 팀에는 대상자가 없으니까.”

차 부장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그의 손을 피해 냈다.

멋쩍은 표정의 차 부장.

그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헛기침을 했다.

“흠……. 그래. 수고했어. 바쁠 텐데 가서 일 봐.”

그는 이번 일로 자신의 꼬리를 잘라 내려 할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틀렸다.

나는 꾸준히 MD 사업부 사람들의 물건으로 기억을 들어 왔고, 체인마켓 출신들이 차 부장을 믿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번에 누가 지목될지는 모르지만, 차 부장은 아마도 더 큰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자리로 돌아왔다.

*   *   *

마켓 프레시 오픈 D-DAY.

모든 준비가 끝났다.

30분 후면 드디어 마켓 프레시의 시작 화면이 공개된다.

그리고 오후 1시부터는 네이버 타임 이벤트 광고와 오프라인에서의 각종 프로모션들이 진행된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 팀원들은 각자의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마성근 과장은 심심했는지, 고개를 돌려 김경일 대리를 불렀다.

“김 대리야!”

“예.”

“우리 내기 하나 할까?”

“싫습니다.”

“그러지 말고 하자. 타임 이벤트 걸린 상품 중에 어떤 게 반응이 제일 좋을 것 같아?”

“전부 다 좋을 겁니다.”

“그래도 하나만 골라봐.”

마 과장은 자신의 의자를 끌어서 김 대리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리고 김 대리의 팔뚝을 잡아당기며, 아이처럼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하자고. 응?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관심 없습니다.”

“김 대리! 너 진짜 이럴 거야?”

우리 특판 팀은 20여 개의 상품만 준비하면 됐기에 다소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1만 개가 넘는 상품들을 최종 검수해야 하는 다른 팀들은 상황이 좋지 못했다.

“최 대리! 빨리 확인해.”

“김이현 씨! 공급가 틀리게 넣었잖아! 빨리 수정해!”

“박창연! 너 또 틀렸어! 다들 정신 안 차려?”

여기저기서 들리는 고성에 사무실 전체가 시끄러웠다.

그때.

“원 팀장!”

다급한 표정의 김태하가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응?”

“너희 팀원들 시켜서 좀만 도와주라. 검수해야 하는 제품들이 산더미다.”

“미리미리 했어야지!”

“어떻게 미리 해? 이 관리자도 겨우 30분 전에 열어 줬잖아.”

모든 커머스가 오픈 전에는 항상 이럴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를 수정하고…….

30분 전에나 최종 관리자 페이지를 받아 다시 상품들을 점검하고.

“좀 더 공손하고, 간절하게 부탁해 봐.”

“장난해?”

“장난으로 보여?”

“원 팀장님. 팀원들 지원 좀 부탁합니다. 김 대리 30분만 빌려주시면, 정말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오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마 과장님, 식음료 팀 제품 리스트 받아서 최종 검수 좀 도와주세요.”

“예? 제가요?”

“돕고 살아야죠. 오픈이 30분 남았는데, 그전에는 절대 안 끝날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김 대리는 가공식품, 대성 씨는 신선식품, 우진 씨는 가전, 연두 씨는 건강식품으로 갑니다.”

“예, 알겠습니다.”

우리 팀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지시대로 움직였다. 나는 자리에 남아 우리 팀이 등록한 제품들을 다시 한번 살폈다.

오후 12시.

드디어 마켓 프레시의 첫 화면이 공개됐다.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에서는 실시간으로 접속자의 수가 카운팅 되기 시작했다.

[1725, 3265, 4177, 5259]

순식간에 불어나는 방문자의 수가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방문자 1만 넘었습니다!”

어느 팀의 누구인지 모르지만 격양된 그 목소리가 기름을 부었다.

“팀장님! 내기 안 하시겠습니까?”

마 과장은 계속해서 내기 타령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이 앉아 있는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5만 원짜리 지폐 하나를 꺼내, 가운데 원탁에 올려놓았다.

“오후 3시에 판매하는 에어 프라이어에 5만 원 겁니다.”

그러자, 마 과장이 재빨리 지갑의 돈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저는 1시에 배달 앱!”

“오후 8시, 골드 키위에 겁니다. 그 시간이면 식사를 마친 주부들이 몰려올 겁니다.”

“전 양지 군만두요. 양지는 무조건 5분 컷 하는 브랜드잖아요.”

“저는 김옥순 김치요.”

하연두까지 5만 원을 내려놓자, 김 대리가 마지못해 지갑에 있는 5만 원짜리 지폐를 내려놓았다.

“배달 앱에 겁니다.”

김 대리의 말에 마 과장이 재빨리 그를 끌어안았다.

“야! 이건 내가 먼저 걸었잖아. 넌 딴 거 걸어야지.”

“싫습니다.”

“자자! 만약 배달 앱이 이기면 마 과장이랑 김 대리에게 똑같이 상금을 드릴게요. 물론 제 돈으로요.”

내가 중재하려 하자, 김 대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팀장님이 왜요?”

“당연히 내가 베팅한 에어 프라이어가 이길 거니까.”

“풉…….”.

김 대리는 손을 올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했다.

“얼레? 김 대리도 웃을 줄 아네?”

“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처음 봤다.

표정이 없는 김 대리가 이렇게 웃는 것은 말이다.

“자자, 누가 이기건 오늘 딴 돈으로 삼겹살 쏘는 겁니다.”

“콜입니다. 콜!”

오후 1시.

네이버의 메인 배너가 변하며, 우리가 준비한 타임 이벤트가 시작됐다.

첫 번째 메인에 걸린 상품은 마 과장이 가져온 배달 앱.

관리자에 빠르게 판매 수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3분 13초가 되었을 때, 1만 장의 판매가 완료됐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빠른 매진이다.

나는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는 하연두에게 소리쳤다.

“연두 씨! 나머지 9만 장 지금 시간대에 다 풀어 버리세요.”

“예?”

“초반에 기세를 몰고 나가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하연두는 관리자 페이지의 숫자를 변경해, 총 9만 개의 상품을 추가로 풀었다.

다시 쿠폰의 판매가 이어졌고, 숫자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5만4천……. 6만……. 6만8천…….”

하연두는 관리자 페이지를 보며 신이 나서 판매 수를 세기 시작했다.

그렇게 13분이 지나.

“끝났습니다. 매진입니다.”

“좋아 잘했어요!”

나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모니터를 확인했다.

15분 내의 총 방문자 26만 명.

오픈 이벤트와 각종 프로모션들 때문에 사이트에 접속자가 몰렸다.

“우진 씨, 각 포털 실검 확인해요!”

“대성 씨는 이벤트 참여자의 다른 카테고리 상품 구매 수량과 판매 금액 실시간으로 체크하세요.”

“알겠습니다.”

“김 대리는 AD 서버에서 CTR(Click-through rate, 클릭률)이랑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자본 대비 수익률) 실시간으로 확인해요!”

“예. 하고 있습니다.”

3만 원짜리 상품을 100원에 파는 이벤트.

이것으로 수익을 낼 생각은 아니었다.

이벤트 상품이 팔리고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들은 얼마나 팔려 나갔는지 체크하는 것이 맞다.

잠시 후, 흥분한 목소리의 이우진이 크게 소리쳤다.

“마켓 프레시 타임 특가가 네이버 3위, 다음은 1위입니다.”

“좋아. 대성 씨 다른 카테고리 판매는 어때?”

“가공식품이랑 유아동 쪽이 크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거의 다 받아가는 거 같은데요?”

“금액은?”

“11억3천……. 11억4천……. 11억5천…….”

“김 대리, ROI는 좀 어때요?”

“DA 소재가 좋았나 봅니다. CTR은 1.2%를 넘습니다. ROI도 450%를 넘었습니다. 판매 수는 계속해서 올라가니까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1위 커머스의 연 매출은 10조.

이를 일 매출로 환산하면 대략 200억~300억 수준이 된다.

시작이 좋다.

오늘 어쩌면 200억을 훌쩍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마케팅을 시작한 지 겨우 20여 분.

좋은 반응에 MD 사업부 전체가 시끌벅적했다.

다른 팀들도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보며 박수를 치거나 환호를 내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따르릉!

CS팀에서 걸려 오는 전화에 다시 또 시끄러워졌다.

“네 특판 팀 하연두입니다.”

“특판 팀 김대성입니다.”

“상품은 10만 개가 전부입니다. 더는 팔 수가 없어요.”

모든 것이 준비한 매뉴얼대로 흘러갔다.

우리 팀원들은 단 한 치의 오차 없이 준비한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나는 그런 팀원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후 6시.

퇴근 시간이지만 자리를 뜨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다들 매출 그래프와 자신의 카테고리 상품 판매 수를 정리하며 신이 나 있었다.

“총 매출 160억 넘었습니다.”

하연두의 흥분한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다른 팀들에게까지 전달됐다. 그 소리에 김태하가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퇴근 안 해?”

“응. 이따 팀원들이랑 삼겹살 먹기로 했어.”

“그래? 그럼 나 먼저 간다.”

“너희 팀은 회식 안 해?”

“이 꼰대 같으니라고, 직원들은 원래 회식 싫어하거든? 이렇게 나처럼 먼저 퇴근해 주는 게 더 좋은 상사야.”

“너나 그렇게 해라.”

나는 팀원들을 대충 둘러보고, 크게 소리쳤다.

“자, 삼겹살에 맥주 한잔하러 갑시다. 내일부터 다시 바빠질 테니까 오늘은 간단하게 1차만 하고 갑니다.”

“예!”

*   *   *

회사 근처의 삼겹살집.

팀원들은 모바일로 관리자 페이지의 매출을 확인하기 바빴다.

“팀장님. 180억 넘었어요. 이대로면 200억 정도 가겠는데요?”

김대성이 환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움켜쥔 빈 잔을 내민다. 나는 그의 잔에 맥주를 따라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체크했어요?”

“네, 물론이죠.”

하연두가 가방에 있던 작은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수첩에 적어 둔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배달 앱 3분 13초, 김옥순 김치 5분 16초, 군만두 4분 22초, 에어 프라이어 2분 5초입니다. 그리고 골드 키위는 아직 대기 중이고요.”

“하하하 골드 키위는 보나 마나일 텐데, 그럼 제가 이겼네요?”

“어떻게 아신 겁니까?”

미간을 구긴 김 대리가 물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팀원들을 번갈아 봤다.

“이전 시간대에 군만두, 다음 시간대에 김치 있었잖아요.”

“그럼 팀장님은 제품 스펙보고 고른 게 아닙니까?”

“물론 스펙 보고 골랐죠. 그래서 처음에 시간대를 조정할 때 스펙이 가장 떨어지는 에어 프라이어를 중간에 넣은 겁니다.”

“이거 완전히 사기네요.”

나는 팀원들을 둘러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김치찌개랑 달걀찜 나왔습니다.”

삼겹살집 직원이 갑자기 뚝배기들을 들이밀었다.

“이거 안 시켰는데요?”

마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러자 삼겹살집 직원이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쪽에 계신 여자분이 시켜 주신 겁니다.”

언제 왔는지.

비서실 직원들과 함께 온 김지영 이사가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나와 팀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고, 김 이사가 빨리 먹으라는 손짓을 보내왔다.

“계산서는 새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더 주문하실 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네?”

“저 여자분이 지금까지 드신 것 계산 다 하셨습니다.”

“캬! 역시 이사님이야. 팀장님, 라인은 정리하신 겁니까? 하하하.”

마 과장은 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라인이라…….

나는 비서실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 이사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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