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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귀의 퀘스트 종결 (53/57)

만사귀의 퀘스트 종결

혁무기는 건에게 죽어 무공의 성취도가 내려가는 바람에 천상지애의 촬영은 물론, 천지회를 이끌어 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 중에 방각 역시 호면객에게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각과 만남을 가졌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잖아."

혁무기는 방각에게 천연회를 치자고 제안했다. 천지회와 천마회가 함께 치고 들어가면 그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방각 역시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각은 선뜻 혁무기의 말에 동조할 수 없었다. 둘은 같은 호면객을 겪었지만 사람이 달랐다. 혁무기는 호면객이 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각은 호면객이 현수도, 건도 아닌 천연회 전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쳐서 이긴다고? 우리의 성취도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잖아."

"뭐야? 그럼 넌, 건이 무서워서 복수하지 않을 거란 말이야?"

방각은 혁무기의 말을 듣고 조금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복수라……. 정정당당한 대결에서 진 것이 아닌가?"

분명 호면객은 이들에게 도전장을 보냈고 이들은 호면객에게 걸린 상금에 욕심을 내고 호면객과 싸웠던 것이다. 그런데 복수라고 말하니 혁무기가 조금은 못나 보였다.

"그래, 난 그들에게 겁을 먹고 있는 거야. 특히 현수에게……."

"호면객은 건이야. 현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천지회와 천마회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그들을 깨부수고 무한척살에 들어가면 그들이 날고뛴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숙이고 들어올 수밖에 없어."

방각은 혁무기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틀림없이 계획대로만 되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현수에게는 황제가 있다. 그걸 어떻게 막을 생각이야?"

"황궁은 무림의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해. 현수가 황군을 이끌고 나온다면 그다음부터는 무림이 황제를 노릴 것이니 현수는 황군을 움직이지 못해."

방각은 잠시 고민을 했다. 그래도 두려운 상대였다. 차라리 자신도 호면객이 건이라고 생각했으면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자신과 싸운 사람은 건이 아닌 현수였다. 이미 10대 무공 중 3개가 현수에게 무너졌다.

특히 10대 무공 중 최강이라는 자신의 천마신공이 현수에게 무너진 것이다. 다시 천마신공의 성취도를 끌어 올려도 방각은 현수에게 자신이 없었다.

"미안하다. 난 이대로 물러서야겠다."

"뭐야? 씨팔……. 그럼 우리 동맹은?"

"동맹하고는 다른 거야. 넌 아직 그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몰라. 넌 모르겠지만, 이번 이벤트가 빨리 끝난 것도 우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개입했기 때문이야. 솔직히 현수 혼자 천마회를 친다고 하면 우리는 현수를 막지 못해. 넌 건을 호면객으로 알고 있지만 난 호면객이 건도, 현수도 아닌 천연회의 그 인간들 전부라는 것을 알아. 나와 싸운 사람은 건이 아닌 바로 현수였으니까. 넌 베타 시절에 현수에게 크게 당한 경험이 없으니 잘 모르지? 하지만 현수에게 당한 이들은 현수라는 이름의 멍에를 벗을 수가 없어."

방각이 속에 있는 말을 하자 혁무기가 흠칫했다.

"뭐야? 그러니까 너와 싸운 놈이 건이 아니라 현수라는 말이야?"

"그래. 그리고 천연회와 우리의 전력을 비교해도 우리가 크게 앞서지는 못해. 그들에겐 10대 무공을 익힌 사람이 3명이나 있다. 그리고 너도 눈치 채고 있겠지만 악령이와 윤석이지. 그들을 받치고 있고 정보에서는 하오밀문이 버티는 그들과 싸우다 한 번은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다음은? 아마 다른 문파들이 각 성과 도시를 다 먹을걸? 우리는 그들과 싸워 점점 지쳐 갈 거야. 결국 손해는 우리가 본다는 말이야. 넌 건에게 그런 간단한 것도 배우지 못했냐?"

방각의 잔소리에 혁무기는 인상을 썼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물러서려니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 난 물러선다. 나 혼자가 아닌 한 문파의 수장으로, 문파를 위해서……."

혁무기는 인상을 썼다.

"좋아, 알았어. 그럼, 천마회의 동맹은 더 이상 없던 걸로 하자. 각자 알아서 갈 길 가는 거다."

방각은 혁무기가 참으로 어리석어 보였다. 기분으로 한 문파의 미래를 좌우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알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둬! 내가 동맹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네가 거부했다는 것을……!"

방각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혁무기는 화가 나는지 방 안의 벽을 주먹으로 강하게 쳤다.

천지회만으로는 천연회에 복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혁무기는 이 모든 책임을 방각에게 넘겼다.

"그래, 방각이 넌 후회할 일을 한 거야."

* * *

현수는 일반 NPC들을 찾아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환희영생교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신녀라는 자를 찾아 죽여야 한다.

살황의 일기장의 추적술을 사용해 그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현수는 지하 비밀 통로를 통해 빠르게 움직였다.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로 봐서는 이미 비밀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간 듯했다.

"만사귀는 뒤에서 잘 오고 있는지 모르겠네."

현수는 통로의 끝에 서서 만사귀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 만사귀가 현수에게 왔다.

"어떻게 됐어?"

"없어. 일단 밖으로 나간 것 같은데 혹시 모를 위험 때문에 널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나갈까?"

현수와 만사귀는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어서 오십시오."

밖으로 나가자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현수는 만사귀를 보고 뒤로 빠져 있으라고 말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신녀님께서 만나기를 청하십니다."

"나를?"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사귀는 현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만나러 가 볼까. 앞장을 서지."

그는 현수의 말을 듣고 몸을 돌려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간 곳은 사찰이었다.

중원의 일반 불교 사찰이 아닌 그들이 믿는 탄드라 밀교의 사찰이었다. 옷을 벗고 있는 불상이 사찰의 중앙에 세워져 있고 곳곳에 춘화가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어서 와라, 현수."

현수와 만사귀는 신녀를 보고 흠칫했다. 다름 아닌 영취 공주와 함께 괴한에게 잡혀간 난화 공주였기 때문이다.

"신, 현수가 난화 공주님을 뵙습니다."

"평민, 만사귀가 난화 공주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은 난화 공주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했다.

"그대와 나의 악연을 끊기 전에 대화를 나누고 싶어 그대를 불렀다."

악연!

난화 공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변화가 현수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기에 충분히 악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현수는 그런 난화 공주를 보자, 그녀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을 가진 그녀가 이렇게 타락한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었다.

현수는 자신이 일으킨 일이 천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구미호를 만나지 않았다면……. 현수는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전 공주님과 나눌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

"제가 맡은 바 일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되어 눈앞에 나타났지만, 결코 후회하거나 잘못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 그대의 말이 맞다. 그대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대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역모를 계획한 나의 오라버니가 잘못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늘이 정한 사람만이 천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3황자님께서 하늘이 정한 분이시라면 필시 천자의 자리에 올랐을 것입니다."

난화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의 말이 맞다. 하늘이 정한 인물. 그래서 천자라 칭하는 것이다.

"그대는 하늘이 스스로 그대를 정했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나?"

현수는 난화 공주의 속셈이 궁금했다.

"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 역시 친우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필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주 마마."

"난 그대가 원한다면 황제 자리에 올려 줄 수도 있다. 어떠냐? 나와 결혼해서 오라버니들을 죽이고 그대가 황제가 되어 보는 것이?"

그랬다. 황자들이 다 죽으면 황제의 자리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은 영취 공주와 난화 공주 그리고 두 사람의 부마들뿐이었다. 난화 공주는 현수에게 참으로 달콤한 제의를 하는 것이었다.

"마마! 저는 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흥! 그래서 나의 제안을 거부한다는 말이냐?"

"마마! 서장에서, 1황자님께서 중원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마마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 그것은 한낱 꿈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마!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음을 돌리십시오."

현수의 말을 듣고 화가 났는지 난화 공주의 손이 움직였다.

퍼억!

"현수야!"

현수는 손으로 만사귀에게 괜찮다고 표시했다.

"감히 네놈이 날 훈계하는 것이냐?"

"마마!"

현수는 난화 공주가 이렇게 변한 것이 전부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난화 공주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꼈다.

"마마, 더 이상 제가 황족들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해 주십시오."

"흥! 이미 네놈의 손에 죽은 나의 오라버니가 살아온다면 내가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현수는 용천검을 빼 들었다. 그러고는 난화 공주에게 검을 겨누었다.

"신, 이현수는 오직 마마의 그 아름다운 모습만을 생각하겠습니다."

"오냐, 끝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신단 말이지. 여기서 악연을 끝내자꾸나."

공주의 말이 끝나자, 환희영생교의 포교원들이 두 사람에게 검을 겨누는 것이었다.

"현수야? 괜찮겠어."

자리를 피하는 난화 공주를 보며 만사귀가 물었다. 언젠가 한 번 들은 적이 있는 나비효과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 이게 네가 말한 나비효과라는 건가 보다. 내 손으로 시작했으니, 내 손으로 일을 끝내야지."

현수는 살황묵혈소 역시 함께 들었다.

"넌 퀘스트를 찾아봐!"

"아니, 나중에 찾자. 지금은 함께 싸울 때다."

현수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 포위된 상황이면 먼저 움직여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고, 지금같이 만사귀가 함께 있다면 만사귀가 마음 편하게 부적을 사용할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었다.

깡!

현수가 휘두르는 검을 손으로 막아 내는 포교원들이었다. 그들의 손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소수마공!"

만사귀는 그들의 무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현수는 만사귀의 말을 듣고서야 난화 공주가 소수마공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때, 제조상궁까지 죽였어야 했는데.'

현수는 후회했다. 1명이 소수마공을 사용하면 별것이 아니지만 200명이 다 사용하면 힘들 수밖에 없다.

싸움에서 무기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면 무기를 들고 있는 것보다 버리고 그냥 싸우는 것이 더 유리하다. 몸으로 부딪쳐 올 이들을 떠올리며 현수는 환술과 뇌전파천황으로 선기를 잡고 빠르게 끝낼 생각이었다.

"만사귀, 내가 최대한 빨리 끝낼 테니 혼자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

"알았어, 조심해라. 소수마공은 내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상대하기 힘든 무공이니……."

"알아, 굳이 손을 공격할 필요는 없지. 그냥 몸뚱이를 바로 두 동강 내 버리면 간단하니까."

"환락군천무!"

뾰족한 여자의 목소리에 여자 포교원들이 어지럽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한 두 사람이었다.

겉옷을 벗어던지는 여자 포교원들의 모습은 실로 뇌쇄적이었다.

다행히 전투 중이라 화면은 어두워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보기에는 낯 뜨거운 모습이었다.

쇄이이이익!

그들의 틈에 숨어 두 사람을 노리는 남자 포교원들. 그들의 창이 두 사람에게 쇄도해 날아왔다.

"천밀밀!"

퍼엉!

현수와 만사귀의 이마에서 땀이 맺혀 흘렀다.

시선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틈만 보이면 두 사람을 노리는 창이 날아왔다.

"젠장……."

만사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연방 '젠장'을 외쳐 대고 있었다.

"환영사사연혼술!"

-부적의 힘으로 환술의 사용이 제한되는 곳입니다.

현수는 순간 당황해하며 날아오는 창을 피해 몸을 회전하며 만사귀의 허리를 잡고 허공으로 솟아올랐다가 내려왔다.

"부적의 힘으로 환술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현수는 만사귀에게 환술을 사용할 수 있게 그 부적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제마수호령부?"

만사귀는 현수의 말을 듣고는 제마수호령부를 생각했다.

"그 퀘스트?"

"몰라. 부적의 힘으로 환술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모산의 제마수호령부와 배교의 환마령부뿐이야. 그런데 환마령부보다는 제마수호령부에 있을 확률이 높지."

"그럼, 힘을 부술 수밖에 없다 이거네."

현수는 만사귀의 말을 듣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무엇보다 환술을 사용하지 못하면 몸을 그만큼 많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체력 소모가 많아질 뿐만 아니라 뒤에 만나는 적과 싸울 때 필히 영향을 끼칠 것이 당연했기에 현수는 운중비록의 보법만을 이용해 용천검과 살황묵혈소의 날카로움을 무기로 싸울 생각이었다.

"부적으로 날 지원해 줘!"

"그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포교원들은 두 사람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현수는 만사귀를 한쪽으로 밀어 버리고 자신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중비록의 운중난화무를 밟고 포교원들 사이로 스쳐 지나가며 검을 휘둘러 그들에게 공격하는 현수였다. 하지만 무기의 날카로움으로 상대를 빠르게 제압하는 것은 무리였다.

"현수야, 놈들의 몸 역시 호신부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 같다."

만사귀의 외침이 들려오자, 현수는 만사귀에게 대처 방법을 물었다.

"그럼, 부적을 찾아내야 하는 거야?"

"그래."

현수는 그들의 공격을 피해 가며 자세히 살폈지만 부적이나 문신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없는데?"

"있을 거야, 잘 찾아봐!"

"소수마공!"

허공에서 미염공을 펼치고 있는 여자 포교원들이 일제히 만사귀를 향해 하얀 손을 휘둘렀다.

"젠장!"

만사귀는 수십 명이 한 번에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어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뇌전류!"

순간 현수는 만사귀가 구르고 있는 쪽을 보고 검을 휘둘렀다.

"커억!"

"고맙다."

만사귀는 가슴 안쪽에서 부적을 꺼내 허공을 향해 던지고는 자신의 중지를 깨물어 피를 낸 다음,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그렸다.

"분노의 술! 혈우!"

순간 거짓말처럼 사찰의 안이 붉은색으로 변해 갔다. 지붕으로 덮인 건물 안에 비가 온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정말, 붉은 비! 혈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악!"

분노의 술, 혈우라는 술법에 살상력은 없었다. 하지만 상대에게 공포를 심어 주는 술법이었다.

현수는 혈우를 맞으면서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혈우……. 그리고 살황!

"만사귀, 정말 멋진 술법이다."

마치 붉은색으로 염색을 한 듯 전신이 붉게 물든 현수의 신형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운중난화무에 화려함이 있다면 운중무영보에는 은밀함이 있었다.

운중무영보를 사용하는 현수는 귀신의 움직임처럼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보였다를 반복하면서 환희영생교의 포교원들의 약점을 찾았다.

'젠장! 설마…….'

현수는 그들의 약점을 찾을 수가 없어 그들이 걸치고 있는 옷을 검으로 잘라 버리고는 마지막 한 곳을 보았다.

'시팔! 무슨 게임이 이렇게 추잡스러워! 메인 컴퓨터가 진짜 변태 아니야.'

그들의 약점이 있는 곳을 확인한 현수는 가상현실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를 욕했다.

만사귀 역시 조금은 난감한지 고개를 돌렸다.

"현수야, 부탁한다."

"젠장."

그래도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을 제압해야 한다. 현수는 인공지능 컴퓨터를 욕하며 그들의 약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커억!"

약점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건 아닌 듯했다. 그렇게 검을 휘둘러도 충격을 받지 않던 포교원들이 약점을 공격하니 너무도 쉽게 쓰러졌다.

"아수라파멸장!"

"천밀밀!"

자신들의 약점을 들킨 포교원들은 순간 공격 일변도의 자세를 취해 현수와 만사귀를 압박해 들어왔다.

"귀혼참!"

만사귀 역시 그들의 약점을 안 이상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다만 현수는 사방을 움직이면서 포교원들을 공격하고 수비했지만 만사귀는 오는 이들만 수비하고 공격했다.

포교원들은 마치 하나의 심령으로 연결된 듯 같은 공격으로 현수를 향해 쌍 장을 앞으로 뻗었다.

처음 손바닥 모양의 장풍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현수에게 다가올 때 현수의 키보다 이미 더 커져 있었다. 마치 파리채로 파리를 잡는 그런 모습이었다.

"운중비록, 운중광속신형보!"

현수는 빠르게 움직이며 포교원들의 공격을 피하고는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운중비록, 운중탄영신!"

앞으로 나가던 현수는 순간 벽을 밟고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다음, 몸을 돌려 포교원들을 보았다.

"소소천강밀수!"

"뇌전파천황!"

허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자 포교원들이 현수를 향해 일제히 수강을 뿌렸다. 백색의 강기 덩이들이 휘몰아쳐 오자 현수는 자신이 지닌 최고의 무공으로 강기 덩이들을 가르면서 그녀들을 향해 회전하며 쇄도해 날아갔다.

"아아악!"

아무리 부적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도 10대 무공의 파괴력은 견딜 수가 없는 듯 허물어지는 여자 포교원들이었다.

"뇌전탄검!"

현수의 손에서 또 하나의 검인 용천검이 아래에 있는 남자 포교원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컥!"

"커억"

용천검이 날아오는 힘을 이기지 못한 4명의 남자 포교원들은 마치 꼬치에 꽂히듯 용천검과 함께 벽에 박혀 버렸다.

현수는 돌아오는 살황묵혈소를 잡고는 허공을 밟으며 용천검이 꽂혀 있는 벽으로 다가가 그것을 뽑아 들었다.

"사망유희!"

만사귀는 죽은 혼령을 불러 쓰러진 환희영생교의 남녀 포교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현수야, 넌 난화 공주를 찾아봐. 그녀가 내 퀘스트인 제마수호령부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야."

"괜찮겠어? 아직 조금 남았는데?"

현수는 3/1 정도 남은 포교원들을 보며 만사귀에게 말했다. 비록 만사귀의 술법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의 공격력은 미비해서 자칫 잘못하면 만사귀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저들의 약점을 알고 있는 이상, 내가 무조건 이긴다. 걱정 말고 난화 공주를 찾아가."

현수는 만사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게 말하는 만사귀. 그가 무엇인가 따로 계획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현수는 그 자리를 떠나 난화 공주의 뒤를 쫓았다.

많은 혼령수로 인해 포교원들의 행동이 조금씩 제약을 받을 때, 만사귀는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러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한편 난화 공주를 찾아 나선 현수는 사찰을 뒤지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작은 사찰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학교 운동장처럼 커 보였다.

현수는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살황의 일기장의 추적술과 탐지술을 함께 사용해 적이 숨어 있는지 확인하는 한편, 난화 공주의 흔적을 찾았다.

'없다.'

현수는 사찰 안에서 난화 공주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럼, 또 비밀 통로가…….'

현수가 비밀 통로를 찾아 움직이려고 할 때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환희영생교의 무사들이 아니었다.

일반 NPC들었다.

마치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현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현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기보다는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 역시 천 안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현수였기에 생명을 한낱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난화 공주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있어야 할 검은 동자는 보이지 않고 온통 하얗게 보였다.

"킥킥킥!"

현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놈 짓이냐?"

"킥킥,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지."

현수는 그 역시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이미 안은 마을 사람들로 가득 차 버린 상태였다.

"킬킬킬! 저놈의 피를 가져와라."

괴인의 말이 끝나자, 안에 있는 사람들이 현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몸으로 부딪쳐 오는 것이었다.

하나, 현수는 그런 그들을 공격할 수가 없어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놈이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 몰라도 이들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놈을 제압하면 사람들에게 걸린 주술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기 바쁜 현수였다.

"헛!"

이미 안을 가득 메운 마을 사람들 때문에 움직일 곳이 없을 정도였다.

"킬킬, 네놈이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현수는 허공으로 솟아올라 웃고 있는 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화르르륵!

순간 불꽃이 일어나더니 현수의 공격을 막아 버렸다.

조금은 난처한 입장이 되어 버린 현수는 다시 그를 향해 공격해 보았지만 역시 불꽃이 일어나 현수의 공격을 막아 버리는 것이었다.

"뭐지?"

"킬킬! 밑에 조심해라."

현수는 괴인의 말을 듣고 밑을 보니 일반 NPC들이 자신을 쳐다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일반 NPC들을 죽일 수도 없고…….'

현수는 한 일반 NPC의 어깨를 밟고 다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현수를 놓친 일반 NPC들은 아깝다는 듯 밑에서 아우성을 쳤다.

현수는 빠르게 NPC들의 포위망을 뚫고 사찰 안을 벗어나려 했다. 아무래도 막힌 곳이 없는 사찰 밖이라면 행동의 제약을 덜 받을 수 있고 또 놈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현수는 주먹으로 일반 NPC들을 쓰러트리며 사찰의 입구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쓰러진 NPC들은 다시 일어나 현수를 향해 달려왔다.

현수가 입구로 가까이 가자 괴인의 손에서 부적이 하나 타 올랐다.

"킬킬, 어림없지. 강시 소환술!"

순간 입구 앞에 3구의 강시가 소환되어 현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현수는 강시가 뇌전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 모산에서 강시를 사냥한 적이 있었기에 강시들을 향해 뇌전류를 사용했다.

팅!

"헉!"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뛰어올라 강시의 어깨를 밟고 다시 운중탄영신을 사용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런 다음, 허공에서 운중광속신형보를 밟아 괴인을 향해 쇄도하며 용천검을 던졌다.

"뇌전출검!"

괴인 역시 이번 공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불꽃이 일어나 막는 것이 아니라 강신술을 사용해서 현수의 공격을 막아 냈다.

퍼어엉!

현수는 괴인의 무지막지한 방어력에 고개를 흔들었다.

"킬킬, 이번에는 조금 아팠다. 나도 널 때려야지. 바람의 술, 풍력, 불의 술, 폭염!"

현수가 나아가는 진행 방향에서 강한 맞바람이 불어 현수의 신형을 늦추는 동시에 허공에서 불꽃이 터졌다.

콰앙!

현수는 그의 공격을 피하기는 했지만 바닥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러자 괴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현수는 지금의 상황을 몸에 맡기고 체력의 소모를 최대한 줄이는 한편, 괴인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했다.

현수는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일반 NPC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현수가 NPC들 사이를 피해 다니는 것이 재미있는지 괴인은 혼자서 낄낄거리더니 현수를 손가락질하며 웃고 있었다.

"킬킬!"

"웃지 마! 이리 와서 정정당당하게 한판 붙고 끝내."

"내가 미쳤다고 너와 싸우냐? 나를 대신해서 싸워 줄 사람도 많이 있는데."

괴인은 현수의 신경을 건드리며 약을 바짝 올렸다.

"윽!"

약을 올리는 괴인에게 신경을 쓰다가 일반 NPC들에게 한 방 맞았다.

마치 해머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현수는 사찰 안의 바닥에서 굴러야 했다. 비록 무공을 익히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었지만 주술적인 힘 때문인지 그 충격은 심했다. 순간 몰려드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현수의 신형이 여러 개로 늘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갈팡질팡할 뿐이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을 못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현수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운중비록, 운중광속신형보! 뇌전류!"

괴인에게 최대한 빠르게 접근해 괴인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부적 한 장에 의해 막혀 버렸다.

"킬킬, 재미있는 재주다."

현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곤 살수를 사용해 접근해서 놈을 끝장낼 생각이었다.

"불의 술! 폭염! 현수가 사라진 자리에서 불이 타올랐지만 현수는 그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괴인은 빠르게 자리를 떠나며 허공에 부적 두 장을 태웠다.

괴인이 있던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현수였다.

현수는 진짜 괴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완전 천하무적의 NPC 몬스터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나타날지, 또 무엇을 할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다만 현수의 신형이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기에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이름이나 알자. 난 이현수! 넌?"

"킬킬……. 난 취라고 하지."

"그래! 취! 정말 대단한 놈이다. 이제부터 긴장해도 좋아. 지금껏 보아 왔던 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니까."

현수는 운중난화무를 사용해 일반 NPC들의 공격을 피해 취를 향해 쇄도해 갔다.

슈우웅!

일반 NPC들의 손과 발길질에서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이 들려왔다. 현수는 그들의 주먹과 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모든 초점을 괴인 취에 맞추고 있었다. 현수의 몸은 일반 NPC들의 공격을 피해 가며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취는 현수의 모습을 보고 더욱 호기심이 일어났다.

"현천파열권!"

몸을 뒤로 피하던 취는 부적을 꺼내 자신의 몸에 붙였다.

"강신술!"

순간 취의 몸이 더욱 빨라졌다. 마치 무공의 고수가 된 것 같아 보였다.

"이거 완전 사기잖아."

마을 사람들의 공격을 피해 가며 계속해서 괴인 취를 공격했지만 현수는 한 번도 괴인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킬킬! 이제 나의 차례군!"

괴인 취의 움직임이 이제껏 보아 왔던 것이랑 확연히 차이가 났다.

사기 같은 부적술을 볼 때마다 현수는 만사귀에게 넘겨준 모산의 비급을 아까워했다.

괴인 취의 공격을 피하던 현수는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벌렸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꺼지는 듯 사라지는 현수의 신형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지만 괴인은 정확하게 현수가 나타나는 곳을 향해 공격해 왔다.

"윽!"

"킬킬! 단순한 놈!"

"악!"

취의 주먹에 중심을 잃은 현수는 연속해서 마을 사람들의 주먹을 허용했다.

순간 현수의 체력은 반이나 떨어져 있었다. 급히 벽곡단을 먹어 체력을 채우는 한편, 다시 허공을 밟아 일반 NPC들과 거리를 두었다.

"야! 취, 도대체 너 부적술로 못 하는 것이 뭐냐?"

"킬킬! 없다.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현수는 그의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 분명 다시 살아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럼 놈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살황의 일기장의 탐지술을 사용했다.

정말 취에게서는 맥박의 박동수와 체온 그리고 체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그럼 최고수라는 말이잖아.'

현수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 다시 괴인 취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앞에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 현수는 입을 꽉 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일반 NPC를 피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취를 이기기는 고사하고 자신이 이곳에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현수는 결심했다.

"나를 용서하십시오."

현수는 용천검을 빼 들었다. 그러고는 마을 사람들을 베어 넘겼다.

이들은 괴인 취와 달리 용천검에 의해 쉽게 쓰러졌다.

"킬킬! 이렇게 된 이상, 넌 관아의 추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취의 속셈이었다.

현수는 다시 입을 물었다.

'어차피 시작한 것이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자. 예전의 나로 돌아가자. 예전의 나로 돌아가자.'

마치 강한 암시를 하는 것처럼 현수는 계속해서 되풀이하며 말하고는 마을 사람들을 베어 갔다.

-레벨이 올랐다.

"앗!"

레벨이 올랐다. 현수는 다시 생각했다. 일반 NPC들을 죽이면 경험치가 올라가지 않는다. 경험치는 몬스터와 몬스터 NPC 그리고 유저들에게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몬스터구나. 그럼, 더 이상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지.'

그때부터 현수의 눈에 일반 NPC들이 모두 경험치로 보이기 시작했다.

괴인 취의 눈이 번쩍였다. 현수의 검이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현수는 오직 공격해 오는 일반 NPC들만 베어 넘길 뿐이었다.

"헉, 헉!"

-레벨이 올랐습니다.

참으로 레벨 업 하기가 편해졌다. 벌써 2레벨을 올렸다. 물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일반 NPC들을 베었는지 셀 수 없었다. 현수는 지칠 때쯤이면 어김없이 레벨 업을 해서 새로운 힘을 되찾곤 했다.

현수가 세 번째 레벨 업을 할 때 일반 NPC들은 더 이상 두 발로 서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제야 현수는 취를 보고 웃었다.

"이제 너만 남았구나."

취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박수를 쳤다.

"킬킬! 수고했다. 그럼 다시 시작해야지."

괴인 취의 손에서 떠난 여덟 장의 부적은 허공에서 맴돌았다.

"사망유희!"

화르륵!

순간 현수는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현수의 검에 죽은 마을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는 것 아닌가?

만사귀가 사용하는 부적술이랑 똑같았다.

"시팔! 이건 사기야."

다시 용천검을 고쳐 쥐는 현수는 괴인 취를 향해 욕했다. 그때 사찰 안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여덟 장의 부적이 현수의 앞을 막았다.

"수호강신술!"

화르륵!

현수의 앞에서 불타는 부적들이었다. 한데 그 부적들은 타고만 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현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

"만사귀!"

현수는 기뻐 만사귀를 불렀다. 만사귀는 현수의 옆으로 내려섰다.

"뭐야? 이곳에서 막혀 있었어?"

만사귀는 지금쯤이면 현수가 난화 공주를 잡고 있을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래! 내가 저놈 때문에 아주 미치겠다."

취는 만사귀를 보고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네놈은 모산파와 무슨 관계냐?"

"이봐! 식귀! 이제 그만 하지?"

만사귀는 취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현수는 그 모습에서 만사귀를 다시 보았다.

취와 만사귀는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일반 NPC들은 현수에게서 만사귀로 목표물이 바뀌었는지, 만사귀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모산파의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살려 줄 수 없다."

취의 말에서, 현수는 지금까지 장난처럼 말하는 것과는 달리 엄청난 살기를 느꼈다.

"도대체 저놈의 정체가 뭐야?"

"식귀! 죽기 전에 몸에 부적을 심어 그 부적의 힘으로 생명을 연장하지. 하지만 저놈은 이미 죽은 놈이야."

"그래도 저놈의 부적술은 장난이 아니던데."

"알아! 식귀니까. 살아 있는 몸과 달리 부적술에서 받는 페널티가 전혀 없으니까, 부적으로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봐야지."

현수는 취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제한이라는 것이 궁금해서 만사귀에게 물어보았다.

"제한도 있어?"

"어! 많아. 저놈은 지금 강신술이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지. 그 강신술이라는 것이 생명을 갉아먹어. 유저는 1레벨 다운되고, 강신술이 풀릴 때는 체력의 10%밖에 남지 않아 위험한 술법이지만 그 위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그 외에도 많아. 실제적으로 유저들이 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몇 안 돼."

현수는 취가 부러운 듯 보았다. 그 눈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저놈 돈 덩어리다.'

일반 NPC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현수는 긴장을 하고 있었지만 만사귀는 그렇지 않았다.

"고작 이런 강시들로 나를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킬킬!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나에게 소리를 치는지는 몰라도 오늘 네놈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모산의 도사들이 될 것이다."

현수는 모산이라는 말에 분노하는 취를 보고 무엇인가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어디 그 알량한 실력을 보여 봐라, 식귀!"

"저들을 공격해라."

일제히 마을 사람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제혼귀천술!"

만사귀는 손가락의 중지를 깨물어 흘러나오는 피를 허공을 향해 뿌렸다. 순간 만사귀의 피가 불타고 있는 부적에 옮겨지자, 타고 있는 부적에서 불덩이들이 쏘아졌다.

강시가 된 마을 사람들은 그 불덩이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 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단하구나. 제혼귀천술이라니! 넌 모산의 4대 원로 중에서 누구에게 사사했느냐?"

모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괴인 취였다.

"넌 알 필요가 없다. 그냥 이제 육신에서 벗어나 사라져라. 혼천령!"

딸랑딸랑!

만사귀의 손에는 어느새 방울이 들려 있었다. 방울에서 울리는 소리에 괴인은 귀를 막았다.

"크아악!"

현수는 신이 났다. 처음으로 괴인 취에게서 나온 비명이었다.

"크악! 모산파의 장문령이라니. 네놈이 모산의 장문인이란 말이야?"

만사귀가 차기 장문인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아직 장문인은 아니다. 그런데 모산의 장문령이라고 할 수 있는 혼천령이 만사귀의 손에 있다는 것은 이미 모산의 장문인이라는 말과 같았다.

현수는 만사귀를 보았다. 하지만 만사귀의 얼굴에서 많은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크아악!"

급하게 부적 두 장을 꺼내 귀를 막는 취였다. 그러자 비명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헉, 헉!"

일어나는 만사귀는 그 모습을 보고 흠칫했다.

"넌 누구냐?"

"내가 누구냐고?"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현수는 만사귀를 보았다.

"내가 누구냐고!"

콰과과과광!

주위가 크게 흔들렸다. 만사귀는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취를 다그쳤다.

"말해라! 어떻게 제마수호령부가 너에게 있는 것인지."

제마수호령부는 모산의 부적술의 최정화였다. 만사귀는 전 장문인에게서 제마수호령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퀘스트를 받아 찾고 있는 중이었다.

퀘스트의 물품이 나타나 좋았지만 내색은 할 수 없는 만사귀였다.

"크크!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순간 만사귀는 흠칫했다. 제마수호령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70년 전에 사라진 취라 불리는 모산의 반도뿐이라는 것을 전대 장문인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네놈이 모산의 반도 취란 말이냐?"

"그렇다."

만사귀는 현수를 보았다. 현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현수야, 넌 난화 공주를 찾아. 이건 나의 퀘스트와도 관련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모산의 일이다. 그러니 넌 난화 공주를 찾아."

"그래, 조심해! 저놈 장난이 아니야."

"걱정 마라. 난 모산의 차기 장문인이다. 부적술로 나의 상대는 배교의 교주뿐이다."

자신감 넘치는 만사귀를 보니 마음이 놓이는 현수였다.

"그래! 좋아, 그럼 나중에 보자."

현수는 취에게 중지를 치켜세우고는 난화 공주를 찾아 자리를 떠났다.

콰앙!

들려오는 굉음에 현수는 고개를 돌렸다.

"괜찮겠지."

취와 싸우는 만사귀의 신형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흥! 고작 그 알량한 실력으로 모산을 벌한다 했느냐?"

만사귀는 손에 수인을 빠르게 맺고는 취의 품으로 파고들어 가 손바닥을 뻗었다.

퍼엉!

취는 만사귀의 손을 피하지 못하고 멀리 날아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크악!"

현수의 공격을 맞았을 때와 다르게 취는 충격을 받았는지 입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엇 때문에 모산을 배신했는지는 모르나 내 오늘 너를 벌하여 모산에 입은 은혜를 갚겠다."

취 역시 지지 않고 만사귀를 쏘아붙였다.

"흥! 위선자가 가득한 모산이 무슨 정인군자들의 모임인 줄 아느냐. 강신술!"

빠르게 부적을 몸에 붙이고 일어나 만사귀를 향해 주먹을 뻗는 괴인 취였다.

"흥! 나에게 부적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나 보구나. 제령술!"

만사귀 역시 부적을 꺼내 취를 향해 날렸다.

슈슈슛!

취는 부적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만사귀의 코앞까지 붙었다.

"잘 가라! 포박령!"

포박령에 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만사귀를 향해 발을 올려 허리를 가격하는 취였다.

"큭!"

만사귀는 충격을 받았는지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이런 잡귀신 주제에!"

만사귀는 입술을 깨물어 자신의 머리 위로 피를 뿌렸다.

"캬아아아악!"

만사귀의 몸에서 귀령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곧 조용해 졌다. 취는 만사귀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노려보고만 있을 뿐, 더 이상 공격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실질적으로 취에게 물리적인 공격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보일 수 있는 것을 다 보여라. 모산에게 가르쳐 준 것을 다시 거두어 가마."

"흥! 모산이 너에게 어떻게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넌 모산에게 속고 있다. 인면수심의 간악한 모산을 넌 아직 모르고 있다."

만사귀는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엽전으로 만든 검이었다.

"흥! 헛소리,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사문을 배신하고 수많은 모산의 형제들을 죽인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개소리 마라!"

취는 강시를 소환했다. 자신이 소환할 수 있는 3구의 강시를 모두 소환한 것이었다.

"파령술!"

부적이 하늘에 떠올라 타 버리자 강시들은 더욱 포악하게 으르렁거렸다.

"흥! 강시 소환술을 포기할 만큼 모산에 원한이 그리도 깊었더냐?"

파령술은 소환 강시의 체력과 물리 공격력 그리고 물리 방어력을 4배로 올려 주는 부적술이었다. 하나, 한 번 사용을 하고 나면 두 번 다시 강시를 소환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었다.

"내 모산을 박살 내고 세상 모든 인간들을 부적의 노예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불쌍한 놈!"

만사귀는 소리치는 취를 보고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이제껏 행한 너의 악행을 다시 태어나서 꼭 갚도록 하라."

강시들은 만사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은 현수에게 보였던 것과는 또 달랐다.

강시들의 기세는 실로 무서워 보였다. 파공성과 함께 강시들의 주먹이 날아왔고 만사귀의 검을 피하는 것 또한 날렵했다.

"인간도 아닌 강시 주제에."

만사귀는 검을 피해 자신을 공격해 오는 강시들의 주먹과 발을 피하며 검을 내리쳤다.

"단혼참!"

모산 단혼도법이 만사귀의 손에서 풀려 나왔다. 이화에게 주었던 단혼도법을 만사귀는 모산에서 다시 배울 수 있었다.

카가강! 캉!

강시들의 몸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만사귀의 검 역시 부적으로 항마 처리를 한 검이었다.

캬아아악!

"귀령강신술!"

괴인 취의 부적이 다시 한 번 하늘로 타 올랐다.

"끝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강시의 공격을 피해 괴인 취에게 가려고 했으나 그 앞을 막는 강시가 있었다. 또 다른 움직임이었다.

"너는 누구냐?"

막아선 강시를 보고 묻는 만사귀의 눈에서 분노가 일어났다.

"난 혼세마왕이라고 하지."

놀랍게도 강시가 입을 열어 말하고 있었다. 어느새 3구의 강시가 만사귀를 포위해 버렸다.

"클클클! 모산의 어린 장문인! 넌 아직 더 배워야 한다."

취는 만사귀를 비웃었다.

"어리석은 놈! 고작 이런 놈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취는 귀령강신술을 사용해 원혼령들을 소환한 다음, 강시들에게 넣어 버린 것이었다.

결과 강시들은 원혼령이 가지고 있는 무공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 또한 말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이 1시진이라 그 이상이 지나면 강시들은 소멸해 버리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모산의 장문인을 죽일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생각을 한 취였다.

만사귀는 강시들의 공격을 막았지만 검에 전해져 오는 떨림은 상상 이상이었다.

만사귀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만사귀 역시 부적술에는 능하나 무공에는 조금 약한 편이었다. 모산의 무공인 단혼도법은 일류에 조금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가강 캉!

"파혼참!"

"크아악!

죽을 듯 비명 소리가 들렸지만 강시들은 곧장 공격해 오고 있었다.

"포박령!"

취는 만사귀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또 하나의 부적을 태웠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헉!"

포박령에 의해 잠시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에 강시들의 공격에 나가떨어졌다.

"커억!"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젠장! 모산의 차기 장문인이라는 내가 고작 포박령에 당하다니."

쓰러진 만사귀를 향해 달려오는 강시들은 그대로 짓밟아 버릴 기세였다.

"뿌우우!"

만사귀의 입에서 피가 솟아져 나와 강시들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포박령 또한 만사귀의 몸에서 떨어졌는지 만사귀는 땅을 굴려 뒤로 물러나 일어났다.

"킬킬, 장문인! 실로 대단한 나려타곤의 신법이었소."

비웃는 괴인 취를 보고 만사귀는 그를 가볍게 본 것을 자책했다.

"젠장!"

"클클!"

다시 강시들의 움직임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만사귀는 품에서 부적을 꺼내 자신의 몸에 붙였다.

"강신술!"

만사귀는 페널티를 감수하고 강신술을 사용했다.

"증장천왕이시여, 이 몸을 빌려 강신하여 눈앞에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당신의 종을 거두어 가시옵소서."

만사귀가 부른 것은 다름 아닌 수미산 중턱의 남쪽에 있는 '유리'라는 지방을 관장하는 천왕이었다.

자꾸 늘어난다, 확대된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한문으로 증장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증장천왕은 그의 권속인 굼반다와 프레타를 부릴 수 있는데 굼반다는 욕심이 매우 많은 아귀라고도 하고 또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귀신이라고도 한다.

또한 프레타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부리며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을 떠돌아다니는 아귀를 의미했다.

만사귀의 강신술에 취는 몸을 떨었다. 어떻게 보면 취 역시 증장천왕의 한 권속인 아귀였기에 증장천왕의 강신을 보고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만사귀가 현수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만사귀는 수미산의 4대 천왕을 모두 강신할 수 있었다.

물론 한 번에 1명이지만 부적을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절대 대항할 수 없는 무적 강신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나, 이것 역시 단점이 있었다. 무인들에게 크게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사귀는 취를 보았다. 아니 만사귀가 본 것이 아니라 증장천왕이 보았다고 해야 옳았다.

"왜 너는 이곳에 있느냐?"

"천왕이시여! 육신의 한이 가슴에 맺혀 이렇게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증장천왕은 으르렁거리는 강시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강시들은 마치 자석이 당기는 것처럼 끌려와 움직이지 못했다.

"돌아가라!"

증장천왕의 말 한마디에 강시들은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바람에 모래가 흩어지듯 이내 강시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증장천왕이 다시 취에게 손을 뻗으려 할 때 취가 입을 열었다.

"천왕이시여, 불쌍한 이놈의 말을 한번 들어 주십시오."

증장천왕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취를 돌아보았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취는 고개를 숙였다.

강신술의 제한 시간이 다 되자 증장천왕은 만사귀의 몸에서 소환 해제되었다. 만사귀 역시 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취 역시 증장천왕이 소환 해제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인지 그는 계속해서 말을 잇고 있었다.

"그게 뭐가 잘못입니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모산에 바친 공을 생각해서 죽지도 살지도 않는 이런 몸으로 만든 것이, 어찌 가혹한 벌이 아니겠습니까? 그녀 역시 나의 모습을 보고 나를 떠나갔습니다. 난 모산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세상을 말입니다."

모산에서 수많은 형제들을 죽이고 빠져나온 취는 은거해 부적술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던 중 이 저주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찾았습니다. 만화극염화의 열매를 먹고 나의 귀에 심어져 있는 부적을 제거하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 만화극염화의 열매를 찾기 위해 70년간 세상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소뇌음사의 만사신군이 놈을 처리해 주면 만화극염화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것은 분명 만화극염화의 열매였습니다."

"그래서 나의 친구를 핍박했느냐?"

"그렇습니다. 더욱이 그의 피에도 만화극염화의 열매 냄새가 났습니다.

만사귀는 현수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영약을 먹었는지 궁금해졌다.

적룡의 영약이 바로 만화극염화의 열매였다.

'그 좋은 걸 혼자 꿀꺽해!'

"소장문인! 이것이 나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모산의 잘못입니까?"

만사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도사가 이성을 사랑하면 안 된다. 하나, 그것은 수행에 방해될 뿐이라 그런 것이지 크게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만사귀는 생각했다. 자신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만사귀는 취를 식귀로 만들어 버린 모산의 처사가 너무 과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취를 벌할 권리는 만사귀에게 없었다. 모든 것이 모산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포기해라."

"하지만 전!"

"넌 그를 이길 수 없다. 지금은 혹시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의 친구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지금 시련을 겪고 있을 뿐이다. 어린 용 또한 용이다. 이무기가 용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만사귀의 말에 취는 고개를 흔들었다. 70년, 70년을 기다렸다. 그 세월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나를 따를 생각이 있느냐?"

취는 만사귀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나 역시 잘난 놈은 못 된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산까지 팔아먹을 수도 있는 놈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약속할 수 있다. 나를 믿는 놈은 나 또한 끝까지 믿는다. 어떠냐? 나를 믿고 따라오겠느냐?"

취는 만사귀의 눈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소장문인을 따르면 나에게 무엇을 주겠습니까?"

"크게 줄 것은 없다. 하지만 내 친구의 피 정도는 한 사발 줄 수 있다. 놈의 피에 만화극염화의 열매의 기운이 있을 터, 너 역시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사귀의 말을 듣던 취가 웃었다.

"킬킬! 그렇군요. 내 장문인을 따르리다."

취는 품에서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이것은 나의 부적술을 적어 놓은 것입니다. 주군께 드리는 저의 선물입니다. 아마 모산의 장문인 역시 이것 때문에 소장문인을 세상에 보냈을 것입니다."

만사귀는 사양치 않고 책을 받았다.

-퀘스트를 완수하였습니다.

-NPC 취의 소유권은 만사귀 님에게 있습니다.

-모산의 전 장문인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만사귀는 떠오르는 알림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었다.

"사숙님! 그동안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만사귀는 취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주공! 사숙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아닙니다. 사숙님, 저 역시 이제 갓 무림에 출도한 햇병아리입니다. 많은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취는 만사귀를 보고 영원히 모산에 복수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사귀는 모산이 취에게 행한 잘못을 함께하며 갚으려 했다.

"사숙님! 이제 친구의 피 한 사발을 마시러 함께 가시지요."

만사귀가 끝까지 사숙이라 우기는 바람에 취는 만사귀를 주공이라 부르고 만사귀는 취를 사숙이라 부르는 이상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한편 현수는 난화 공주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방에서 술상을 차려 놓고 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현수가 자신을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군!"

난화 공주의 말이 부드러워졌다. 현수는 그런 난화 공주를 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지 말고 앉으세요."

현수는 난화 공주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눈은 맑고 깨끗했다. 자신을 원망하는 눈이나 저주하는 눈이 아닌 마치 사랑하는 정인을 보는 듯한 그런 눈이었다.

쪼로로록!

난화 공주는 말없이 현수의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따랐다.

"드세요."

현수는 그녀의 말에 술잔을 들어 입 안으로 털어 넣고는 다시 술잔을 내려놓았다.

"제가 독을 탔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런 의심 없이 그렇게 그냥 드십니까?"

"마마의 눈을 보았습니다. 결코 독을 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난화 공주는 다시 현수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에도 술을 따랐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군!"

현수는 난화 공주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난화 공주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 조금 마시고 다시 내려다 놓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가 생각납니다. 군을 처음 만났을 때 말입니다."

현수는 그때를 떠올렸다. 3황자 궁의 정자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군, 다시 저를 위해 시를 한 수 읊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수는 술잔을 들어 조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수가 읊는 시를 감상하듯 눈을 감고 있는 난화 공주였다. 끝난 후에도 난화 공주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현수는 조용히 난화 공주의 몸을 안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사찰의 땅을 파고서 난화 공주를 그곳에 고이 놓아두었다.

"죄송합니다, 마마!"

현수는 그 한 마디만을 하고는 다시 흙을 묻었다.

술에는 독이 없었지만 난화 공주의 잔에는 독이 발려 있었다. 현수 역시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난화 공주의 행동을 저지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맑고 깨끗한 눈은 이미 삶을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한동안 무덤에 가만히 서 있었다.

"현수야."

만사귀는 취와 함께 현수를 찾아왔다. 현수는 만사귀와 함께 있는 취를 보고 조금 의아했다.

"퀘스트!"

만사귀는 짧게 말을 하고는 현수를 보고 웃었다.

"그런데 네 피 한 사발이 필요하다."

"피?"

"꼭 있어야 되는 것이라……. 친구를 위해서 한 사발만 주라."

현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사귀가 취를 보고 알아서 해라는 눈짓을 보내자, 취는 부적을 이용해 현수의 팔에서 피를 뽑아냈다.

"윽!"

피가 순식간에 빠져나가자 잠시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현수는 잠시 난화 공주의 무덤에 기대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누구의 무덤이냐? 설마 난화 공주?"

"어, 내가 찾았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어.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황족의 묘로 옮길 건데 일단 이곳에 묻었어."

현수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만사귀와 취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부적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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