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VS 혁무기
-서장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천의 뜻밖의 말에 수빈은 또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서장이 움직이다니. 아직 그들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려면 더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1황자가 서장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황자가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1황자는 버그와 같은 존재입니다.
버그와 같은 존재라는 말에 수빈은 더 당황했다. 버그는 있을 수가 없었다.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완벽하게 프로그램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설명해 주세요."
-본시, 황궁의 난으로 인해 1황자는 죽거나 천금뇌옥으로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3자의 개입으로 인해 그가 살아났고 또한 악마록을 얻었습니다. 악마록은 파라극이 얻어야 했지만 결국 파라극은 1황자에게 제거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강소성에서 금정산사가 봉황산정의 낭인들에게 무너졌습니다. 중원에 기반을 잃은 소뇌음사의 1황자가 그렇게 결정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전체가 움직이는 건가요?"
-아닙니다. 환희영생단이라는, 소뇌음사에서 키운 이들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환희영생단이 중원에 기반을 마련하면 소뇌음사는 서장의 세력을 이끌고 중원으로 들어올 것 같습니다.
형욱이 들어오다 수빈과 천의 대화를 들었다.
"현실을 강조했기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겠죠? 천!"
-그렇습니다.
"형욱 씨."
형욱은 수빈을 향해 웃었다.
"뭐, 하루 이틀 겪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호면객도 있고 또 일마와 일황이 있으니……."
마치 달관한 듯 말하는 형욱이었다. 형욱은 현수와 대화하고 난 후, 한국 사람들이 가지는 게임의 의미를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코 부르주아 백수나 다크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남에게 줄 정도로 호락하지 않는 인물들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잘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욱은 수빈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천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보다 환희영생단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천!"
-환희영생단은 음양의 교합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탄드라 밀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뇌음사의 한 단체입니다. 사사혈천의 이벤트가 끝나고 그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그와 같은 교리를 설파하여 신도들을 모을 생각이고 그 영향력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 소뇌음사가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음! 음양 교합으로 영생을 얻는다. 좋은 말이군요. 안 그렇습니까? 수빈 씨!"
수빈은 형욱의 말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게 무슨……."
"아닙니다. 현수 씨와의 대화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얼마 가지 못해 무너질 것입니다."
다크게이머들과 싸우기 위해 수천만 원씩 투자하는 부르주아 백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결코 그들은 소뇌음사의 움직임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한 형욱이었다.
형욱의 확신에 찬 말을 듣고 수빈은 왜 그런지 물었다.
"현수,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노리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물론 게임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과 서장의 움직임과는……."
"그런 말도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공성을 생각하고 게임을 한다고 말입니다. 피해 지역에 있는 문파들이 결코 그들을 반기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그 지역을 차지할 수 있는데 환희영생단이 들어와서 활개 치게 놔두지 않을 것이란 말이죠."
수빈은 형욱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수빈은 흠칫했다. 혹시 자신이 영취 공주로 생활한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요, 계속해서 천을 주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형욱 씨는 저와 이야기 좀 해요. 현수를 만나 보니 어때요?"
"친구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제가 나이가 조금 많지만."
수빈은 형욱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아버지도 반한 사람이니 형욱이야 오죽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룸넷은요?"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더군요. 우리가 따로 나서서 이것저것 챙겨 주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하더라구요."
"수고했습니다."
"별로 한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수빈은 그 말을 듣고 수고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파일을 열어 보았다.
비어 있던 첫 장이 채워져 있었다.
현수에 관한 정보들이었다. 이번 룸넷의 일로 인해 현수에 관한 것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호면객이야. 그가 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지만 좀처럼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수빈은 호면객에 대해서 한참 동안 생각했다.
* * *
건은 혁무기가 있는 섬서의 장안에 도착했다. 객점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창을 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천지회에 숨어들어 가기에는 현수처럼 은밀함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부수고 정면으로 쳐들어가기에는 조금 위험했다.
그때 건에게 전음이 들려왔다.
-주공.
술잔을 기울이는 건의 모습은 여전히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말하라.
잔을 내려놓으면서 전음으로 대답하는 건이었다.
-감숙성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감숙성에서?
-먼저 108도객들을 감숙으로 보내 자세한 사항을 알아보라고 전했습니다. 주공께서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보고드립니다.
108도객!
도황이 자신의 후예에게 남긴 단체였다. 도황은 제석천의 도법을 이어받은 인물이었다. 건은 수메르 산에서 도황의 유전을 얻을 때 세상에 악마록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만사신군을 막는 퀘스트를 받은 대가로 108도객을 얻었다. 그리고 108도객들은 모두 서장에서 신분을 숨긴 채 활동하고 있는 것을, 건이 모두 불러 거두었다.
-환희영생교라는 신생 종교가 급속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강한 섭혼술과 미염술로 신도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데 그 세가 감숙성 전체로 확장되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건은 잠시 생각했다. 분명 소뇌음사나 아니면 환희천궁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에피소드 3과는 별개라는 말이었다.
-방심하지 마라. 그리고 지켜만 보라. 혹시라도 환희영생교에 사람을 침투시킬 생각은 하지 마라. 세상에 해악이라고 판단되면 그냥 쓸어버리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건은 혁무기의 일을 빨리 마무리 지을 생각으로, 혁무기에게 호면객의 이름으로 전서구를 보냈다.
한편 건을 따라온 현수 역시 은자림의 실명객에게 건과 비슷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소뇌음사가 움직이기 시작했군."
현수의 말을 듣고도 실명인은 반문하지 않았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야. 방각에 대해서 조사한 것은 어떻게 됐지?"
"죄송합니다, 접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현수는 실명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전진을 이은 자를 상대로 아무리 은자림의 고수라 해도 그에게 접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단 말이지? 수련이 부족했던 모양이군."
현수의 한마디에 실명인은 흠칫했다. 이것이 다 살황을 시험한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숙성의 각 문파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라. 소뇌음사의 수작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리고 감숙성의 문파들과 그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현수는 실명인을 보았다.
"그리고 은자들을 키워 나중을 대비하라. 은자들의 수는 50명으로 모두 특급 은자의 실력을 갖추도록 노력하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수의 명이 끝나자 실명인은 모습을 감추었다. 훗날 자신이 빠진 천연회의 힘이 되고자 살수들을 키우라 명한 것이었다.
현수는 건에게 향했다.
"뭐 하냐?"
"왜? 계속 숨어서 쫓아오지."
건은 현수가 뒤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말했다.
"전서구를 보내는 것 같던데 위험하지 않을까? 혁무기, 그놈 생각보다 음흉한 놈이거든."
"일이 생겼어. 그래서 할 수 없이 혁무기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일?"
현수는 건의 앞에 놓인 술을 한 잔 따라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비밀 퀘스튼데, 좌우지간 골치 아픈 일이다."
"너도 그거 받았냐?"
건은 현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때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전서구가 날아왔다.
두 사람은 함께 전서구를 읽어 보며 인상을 썼다. 만사귀에게서 온 전서구로, 환희영생교에 대한 일이 적혀 있었는데 만나자고 했다.
"만사귀에게 온 거지?"
"그래. 만나자는데 그럼 이리로 오라고 해야지. 우리는 둘이니까."
현수는 만사귀에게 전서구를 보내고 장안에서 만사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너, 정말 혁무기에게 이길 자신이 있는 거야?"
현수의 말에 별 걱정을 다 한다는 표정으로 보는 건이었다. 건 역시 확신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질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다만 혁무기가 혼자 나올지, 아니면 떨거지들을 데리고 나올지가 문제지."
방각이라면 몰라도 혁무기는 틀림없이 자신의 수하들을 데리고 나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는 베타 시절부터 확실한 싸움이 아니면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렇다고 싸움을 회피하지는 않을 거야. 호면객에게 걸린 현상금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무기 그 녀석은 떨거지들을 데리고 나올 거야. 그들에 대한 대비를 해야지. 내가 그 떨거지들을 처리해 줄까?"
건은 현수를 보고 웃었다.
"그것도 좋겠지. 그런데 아마 무기와 싸우면 호면객이 우리라는 것을 알아 버릴지도 몰라. 아니, 지금도 호면객이 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무기는 호면객이 현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도 현수를 그냥 두는 것은 그 이름이 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약 호면객이 건이라고 생각했다면 무기는 건을 잡기 위해서 움직였을 것이다. 건은 강해도 뒤끝이 깨끗한 반면에 현수는 뒤가 문제였기에 현수를 잡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관없지. 무기는 나에게 칼을 겨누지 못하니까. 알잖아, 베타 때 그놈이 나에게 찾아와서 무릎 꿇고 빌었잖아. 2달도 안 걸렸어."
"하하! 하긴 그때는 너도 참 무식했지."
장안에서 하루를 보낸 두 사람에게 만사귀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야?"
"나 좀 도와주라."
보자마자 도와 달라는 만사귀였다. 만사귀는 이들에게 모산파의 장문인이 될 수 있는 퀘스트를 말해 주었다.
"모산의 제마수호령부를 찾아야 돼. 오래전에 모산의 반도가 제마수호령부를 훔쳐 달아났어. 그런데 이번 환희영생교에서 그 단서를 찾았어."
현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 환희영생교는 소뇌음사의 환희영생단의 화신이었다. 그리고 환희영생단은 틀림없이 소뇌음사의 비전과 환희천궁의 비전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현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제마수호령부와 관련이 되었다니 만사귀의 말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렸다.
"이상하잖아. 제마수호령부가 어떤 것인지 잘은 모르지만 항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야? 환희영생교와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있어. 분명 환희영생교에 제마수호령부가 있어. 그리고 항마력이 있는 제마수호령부가 맞기는 하지만 그 항마력을 무마시킬 수 있는 방법이 악마록의 술법 중에 있어. 그런 것을 보면 환희영생교가 만사신군의 악마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어."
"음, 악마록이라……!"
건은 자신이 처리해야 할 퀘스트를 생각했다. 만사신군을 죽이는 것이었다. 현수는 건을 보고 건이 악마록과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 자. 솔직히 말하지. 건의 표정을 보니 건이 말한 그 비밀 퀘스트가 악마록과 관련된 것 같은데……."
건을 보며 말하는 현수는 먼저 건에게 이야기해라고 했다.
"좋아. 사실 난 도황의 무공을 얻으면서 만사신군을 죽이라는 퀘스트를 받았어. 이번 혁무기의 일을 끝내면 놈을 잡으러 갈 생각이다. 현수, 넌?"
"난 황궁에서 도망간 1황자를 잡아 무림과 황궁의 충돌을 막는 퀘스트를 받았어. 그리고 1황자가 만사신군의 악마록을 얻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나 역시 방각의 일을 끝내면 놈을 잡으러 갈 생각이었지."
만사귀는 우연이 겹쳐도 이렇게 겹칠 줄은 몰랐다.
"음! 그럼 우리 3명이 악마록이라는 것에 연관이 있는 퀘스트를 받은 것이잖아."
3명은 뜻하지 않게 일을 쉽게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일마와 일황의 협공을 만사신군이 견딜 수 있을까?"
만사귀는 마치 이미 퀘스트를 풀었다는 듯 말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모르지. 3황자한테도 간신히 이겼는데, 악마록은 금황신공보다 더 무서운 무공이니……."
하지만 그때의 현수와 지금의 현수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문제는 혁무기와 방각을 어떻게 잡느냐에 있어. 방각이 천마의 무공을 얻었잖아. 천마의 무공은 10대 무공 중에 최강이라는 말이 있어."
만사귀의 말에 현수는 웃었다. 방각이 익힌 천마의 무공이 10대 무공 중에 가장 강하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상대는 바로 그 누구도 아닌 현수였다.
"걱정 마라. 내가 누구냐, 바로 이현수다. 방각이 그놈은 나에게 이미 30% 지고 싸움을 해야 해. 나와 싸우면 틀림없이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 테니. 그리고 나 이현수가 바로 살황이다. 천에서 그 누구도 나의 살수를 피해 갈 수 없어."
확신에 찬 현수의 말을 듣고 만사귀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모습이 바로 일마의 모습이었다.
"화화가 걱정을 하던데, 점점 옛날의 모습을 찾아가는 널 보고……."
"하하! 뭐, 필요하다면……!"
앞으로의 일은 앞으로의 일이고, 지금은 기분이 좋은 세 사람이었다.
"좋아, 그럼 현수와 만사귀가 혁무기의 떨거지를 처리하고 난 먼저 혁무기를 잡는다. 그리고 방각을 잡은 후, 감숙으로 가서 환희영생교를 잡고 마지막으로 1황자를 잡으면서 우리 셋의 천의 여정은 잠시 접기로 한다. 어때?"
"좋지. 이왕이면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지. 혁무기나 방각을 어중간히 손봤다간 애들이 힘들어질 테니 말이야."
만사귀의 말에 두 사람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객잔을 나와 혁무기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후후! 호면객이 도전장을 보내다니……."
건의 전서구를 받은 혁무기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생각지도 않은 돈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호면객을 잡으면 무려 4억이라는 돈이…….
"하지만 호면객은 사실상 사람들에게 제일인이라 불리고 있어. 괜찮겠어?"
부문주인 혁준이 혁무기와 함께 있었다.
"혼자라면 위험하겠지. 하지만 난 확실히 이기지 못할 싸움 따위는 하지 않아. 그리고 이번 기회에 현상금으로 설영이에게 점수를 얻어야겠어. 그래야 다음에 영화를 찍을 때 작은 배역이라도 얻을 수 있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애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야?"
혁무기의 생각을 읽었는지 혁준이 말을 이었다.
"그래, 각 당주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야. 몰래 숨겨 놓고 호면객이 나타나면 일시에 협공으로 끝낼 생각이야. 4억 중에 내가 1억을 갖고 애들에게 2억 그리고 문파를 위해 1억을 나눈다고 하면 불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너의 생각은 어때?"
"좋은 생각이지만 소문이 문제지. 도전했는데, 비겁하게 협공을 했다고 소문이 나면 우리의 위신에도 문제가 생기잖아."
하지만 혁무기는 그런 소문에 개의치 않았다. 발뺌을 하면 그만이었다. 당주들만 입막음하면 그만이었다. 아직 자신은 정파에서 신임을 받고 있으니 천하 공적인 호면객의 말보다는 자신의 말이 더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상관없어. 항상 시기하는 무리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치부하면 그만이야. 문제는 호면객이 진짜 현수인지, 아니면 다른 놈인지야."
"현수라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혁준이 역시 현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1명이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 하지만 죽으면 무공의 성취도가 떨어진다. 두 번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하지. 만약 호면객이 현수라면 찾아서 철저하게 죽이면 그만이야. 지금 천지회의 영향력은 강소성을 제외한 다른 지역까지 발휘되니까."
"알아서 해. 애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
"호면객을 잡은 뒤에 한 번 더 만나 보고 안 되면 그들도 처리해야지. 그냥 두기에는 솔직히 두려운 애들이니까. 그리고 짭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복하는 것으로 하고……."
짭새가 천지회를 탈퇴했다는 사실에 혁무기는 언짢았다. 그에게 들인 돈에 비하면 그가 한 것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말은 자신을 배신했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했다. 혁무기는 그런 짭새를 결코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지금 떠날 거야?"
"그래, 먼저 가서 애들이 숨어 있을 곳을 찾는 것도 좋겠지. 그리고 다른 애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해. 데리고 갈 애들은 내가 입단속 할 테니 말이야."
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 있게 말하는 혁무기를 보고 왠지 불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호면객이라고 해도 당주들까지 데리고 다니는데 당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약속 장소는 칭링 산맥의 단층애였다.
칭링 산맥의 단층애는 그 경사가 급격해서 떨어지면 쉽게 올라올 수 없는 그런 지역이었다.
건과 현수 그리고 만사귀는 지형을 먼저 살펴보았다. 혹시나 혁무기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숨길 수 있으니 그 장소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었다.
"고수라면 충분히 숨어 있을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리고 지형을 고려해서, 떨어지면 죽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혹시 모르니까, 아래에 안전장치를 해 두는 것이 좋겠다."
현수의 말에 만사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곳에 은신하고 있을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건을 도울 테니까."
"알겠다. 조심해라."
만사귀는 단층애에서 뛰어내렸다. 급속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부적의 힘으로 바람을 불러 자신의 몸을 받치게 하여 내려가는 것이었다. 만사귀가 아래에서 자리를 잡자 현수가 모습을 감추었다.
건은 그런 현수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다.
'저런 은밀함이 나에게 있다면 이런 위험을 사서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야. 그나저나 살황이라……. 좋군. 일마에서 살황으로 바뀌는 건가? 내가 일황에서 도황으로 바뀐 것처럼…….'
건은 현수가 준 호면을 꺼내 한번 보고는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완벽하게 호면객이 되어 버린 건이었다. 하지만 건이 혁무기에게 죽임을 당해도 호면객에 걸린 현상금은 지급되지 않을 것이다. 호면객은 바로 현수이기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건의 시선에 한 사람의 모습이 잡혔다.
'후후, 오는가? 너 역시 검황의 전진을 이었겠지. 검황과의 대결이라…….'
건은 흥분되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숨어 있던 현수도 혁무기를 보았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다 멈추는 이들 역시 보았다.
-역시나 떨거지들을 데리고 왔다. 난 그들을 처리할 테니까, 조심해.
현수는 건에게 전음을 보내고 이동했다. 건은 자신의 앞에 내려서는 혁무기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하는 짓이 베타 때와 다른 점이 전혀 없었다.
"네놈이 호면객인가?"
건은 말없이 도를 꺼내 들었다.
'도?'
분명 호면객은 검을 쓴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도를 자신에게 겨누는 것을 보고 혁무기는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승천룡, 최건!
"도라……. 현수가 아닌 건이었냐? 이제까지 검을 쓴 이유는 자신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이었나?"
혁무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검을 쓰는 호면객과 도를 쓰는 건, 그들 사이에 연관성은 찾을 수가 없다. 현수에게 혐의를 두고 자신은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한다. 참으로 멋진 생각이라 느꼈다.
"후후! 모두를 속였군. 역시 일황 최건다워!"
"말이 많군. 내가 누구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오늘 네가 여기서 죽는 것이 문제다."
건의 말에 안면 근육을 움직이는 혁무기였다. 아직까지도 자신을 무시하는 건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은밀하게 움직여 두 사람 근처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천지회의 당주들을 보고 현수는 비웃었다. 아마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한 번에 공격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현수는 그들이 자리를 잡자, 은신술을 사용해서 그들에게 접근했다.
"후후! 역시 혁무기는 꼼수에 강해. 뭐, 이 정도도 생각하지 못할 우리도 아니지만……!"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는 천지회의 당주 중 한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보았다. 자신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커억!"
"걱정 마, 다른 애들도 다 보내 줄게."
호면을 벗고 유저를 죽여서 그런지 현수의 눈이 조금은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현수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당주의 모습을 하고 또 다른 당주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자리를 지키라고 문주님이 말했잖아."
"뭐! 보아하니 지금 싸울 것 같지도 않고 서로 알아보는 것 같은데, 뭐."
목소리가 조금 다르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대를 보고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허억! 왜……?"
"두 사람의 싸움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면 안 돼지. 안 그래? 그래도 명색이 도황과 검황의 싸움인데 말이야."
"비겁하게……!"
상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현수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를 처리해야 했다.
"이봐! 누군가 있어. 저쪽에 숨은 청룡당의 당주가 조용한데?"
"청룡당의 당주? 커억!"
"천지회는 청룡당이 없어?"
태연하게 묻는 현수를 보고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상대였다.
"너는……!"
"잘 지냈지."
현수를 알아본 그는 자신의 심장 쪽을 내려다보았다. 현수의 검이 심장을 관통한 상태였다.
"지석아, 오늘 일은 혁무기에게 숨겨라. 만약에 혁무기가 알게 되면 내가 필히, 네가 게임을 접게 만들어 줄 테니까. 방금 봤지? 내가 너를 쉽게 죽이는 거."
지석은 현수의 말에 인상을 썼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만 알려 주는 비밀인데 사실 호면객은 저놈이 아니야. 바로 나지."
지석은 현수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그럼…… 저 사람은?"
"건이야. 나와 건은 손을 잡았지. 그러니까 앞으로 복수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참고로 혁무기가 복수할 생각을 한다면 말려 주기 바란다."
지석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현수는 변용술을 이용해 상대를 방심시킨 후에 빠르게 심장이나 목을 관통시켜 천지회의 당주들을 죽였다. 그들은 죽는 순간에서야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이들이 누군지 알았다.
"커억!"
"네가 마지막이다."
현수는 숨어 있는 6명을 모두 죽이고 두 사람의 대결을 마음 편히 지켜보기로 했다.
혁무기는 자신이 데리고 온 당주들이 현수에게 죽은 사실을 모르는지 호기롭게 건에게 말하고 있었다.
-건아, 다 잡았다.
-수고했다.
건은 미소를 지었다. 호면에 가려진 건의 미소를 보지 못하는 혁무기였지만 그는 검을 꺼내 들어 올렸다.
그것이 바로 신호였다. 하지만 당주들 중에 움직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뭣들 하는 거지?'
"함께 온 이들은 벌써 문파로 돌아갔다, 무기야."
건은 호면을 벗으며 혁무기에게 말했다. 모두 돌아갔다는 말에 혁무기는 건 역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흠칫하며 인상을 썼다.
"언제……!"
"애들에게 날 죽인다고 했다면서. 어디 그 실력이나 한번 보자."
건이 도를 움직이려고 할 때 혁무기는 손을 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널 죽인다고 말한 적이……."
"후후! 믿었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서 발뺌하는 거냐? 아까의 그 호기는 다 어디로 간 거냐! 설마, 지금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아니……. 무슨 오해가!"
확실히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혁무기는 건과의 싸움을 피할 생각이었다.
"맹룡강천!"
건이 먼저 움직였다. 더 이상 말하면 혁무기가 추해 보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베타 시절 자신의 밑에 있던 놈이었기에 현수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싫었다.
건의 도기가 땅을 가르며 혁무기에게 쇄도해 왔다.
"오해……. 이런! 파검세!"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도기를 보고 급하게 막는 혁무기였다. 혁무기의 검기가 건의 도기와 부딪치며 폭음이 일었다. 사방으로 돌멩이와 흙무더기들이 흩어졌다.
"그렇게 검을 들고 싸워라.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건은 혁무기에게 다가가며 도를 휘둘렀다.
캉앙!
검과 도가 부딪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겼다. 건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혁무기는 서서히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 검황의 무공을 이은 자신이었다. 생각이 바뀌자 혁무기는 건을 향해 선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파검세!"
혁무기의 검기가 건의 전신 요혈을 향해 빠르게 쇄도해 날아왔다.
"맹룡강천!"
콰아아아앙!
또 한 번 검기와 도기의 부딪침으로 인해 단천애가 흔들리는 착각을 받았다.
지켜보는 현수의 관심은 건에게 있었다. 아마도 호적수라 생각되는 건이었기에 그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알려고 하는 마음이 동해서였다.
"죽어라."
"어림없다, 혁무기. 한 문파의 수장이 고작 그 정도로 실력으로 자만하고 있었던 것이냐."
자신의 공격을 막으면서 자신을 가르치려고 하는 건이 혁무기는 싫었다. 그래도 정파에서 제일가는 문파의 수장이 바로 자신이었다. 아직까지 베타 시절 자신의 똘마니로 생각하고 잔소리하는 건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착각하지 마라, 건! 난 누가 뭐래도 천에서 최고수다. 너와의 관계는 옛날 일이다. 날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난 다름 아닌 검황 혁무기다. 검천탄강!"
순간 혁무기의 검에서 검강이 쏟아져 나와 건을 압박했다. 건도 혁무기의 검강을 보고 도를 앞으로 뻗었다.
"승천도세!"
콰르르르릉!
검강과 도강이 충돌하면서 그 여파로 인해 단천애의 한쪽이 허물어져 버렸다. 현수는 빠르게 자리를 이동했다. 정직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이들의 공격 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저렇게 싸워, 언제 끝내."
현수는 빠르게 이동하면서 투덜거렸다. 내심, 혁무기에게 접근해서 확 암살하고 끝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이번 싸움은 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에 현수는 지켜만 볼 뿐이었다.
카앙!
무공을 사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라 그런지, 검과 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단천애를 가득 메웠다.
혁무기의 검이, 허리를 숙여 피하는 건의 머리 위로 스쳐지나갔다. 건의 발이 혁무기의 다리를 공격하자 발로 막는 혁무기였다.
두 사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떨어지면 어김없이 무공을 사용하였다.
"낙룡멸천하!"
떨어지는 순간, 건의 도가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도강이 허공에서 폭발해 마치 뇌전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혁무기의 주변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천검유성만파식!"
혁무기 역시 검을 움직여 검강의 다발을 건에게 쏘아 보냈다. 혁무기는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도강의 파편들을 피하면서 건을 향해 공격한 것이었다.
건이 조금 손해였다. 혁무기는 떨어지는 검강의 파편을 피하면 되지만 자신은 혁무기의 공격을 피할 처지가 못 되었다.
"승천파멸도!"
건은 자신의 마지막 초식을 사용했다. 건의 손을 떠난 도는 도강의 보호를 받으면서 날아오는 검강을 쪼개어 나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천단애의 수모였다. 이미 두 사람의 싸움으로 천단애는 처음의 그 모습을 잃어버렸다. 건의 도가 손에서 떠나는 것을 보고 혁무기는 미소를 지었다.
"끝이다, 건! 천검광폭멸절식!"
혁무기의 외침이 천단애를 울렸다.
강한 빛을 내기 시작한 혁무기의 검은, 순간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그 검의 파편들은 건을 향해 강한 빛을 동반하며 빠르게 쇄도해 날아왔다.
"헉!"
순간 현수는 놀라 소리쳤다. 건이 이번 공격은 막을 수 없었을 것 같았다.
팟팟팟!
"크하하하하! 내가 건을 이겼어, 하하하하."
승리의 웃음인지 혁무기는 천단애가 떠나갈 정도로 웃었다.
슈에에엑!
"크아아아악!"
하나 그것도 잠시, 건의 도에 의해 심장이 뚫리고 말았다.
혁무기는 믿기지가 않는지 자신의 심장을 보고 있었다.
"멋진 공격이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본 혁무기는 또 한 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건이 서 있었다. 죽었으리라 생각한 건이 살아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건은 혁무기의 마지막 공격에, 모든 내력을 끌어 모아 몸을 웅크리며 두 팔로 심장과 목을 보호했다.
그 덕분에 살 수는 있었지만 온몸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야! 괜찮아?"
현수가 건을 향해 달려왔다.
"괜찮아. 심장과 목을 보호해서 살 수 있었다."
혁무기는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내가!"
만사귀는 위가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부적의 힘을 이용해 다시 천단애로 올라왔다. 만사귀 역시 건의 모습을 보고 놀라 건의 곁으로 뛰어갔다.
"모두 함께……!"
혁무기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괜찮아."
"죽을 것 같다."
"엄살은……. 하오밀문을 통해 소문을 내고 현상금을 올려야지."
피를 흘리는 건을 보고 웃으며 말하는 만사귀였다. 건은 그런 모습을 보자 어이가 없는지 만사귀를 바라보았다.
"이제 방각이만 잡으면 되는 거야. 그나저나 혁무기의 마지막 공격은 예상 밖이었어."
"나 역시 놀랐다. 순간 검을 부숴 그 파편을 상대에게 보내는 무공이라……. 하지만 내가 이겼으니, 뭐!"
"그래, 빨리 방각이도 잡고 환희영생교을 치러 가자."
만사귀는 건을 부축했다.
천단애를 내려오는 세 사람은 밝게 웃었다.
* * *
환희영생교의 소문이 감숙성 전체로 퍼지면서 빠르게 그 세를 확장해 나갔다. 특히 남성 유저들과 남성 일반 NPC들과 NPC 몬스터들에게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절세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 음양 교합을 외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사사혈천의 난으로 인해 황폐해진 감숙성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그 세를 못 불리는 것이 이상했다.
타 버린 농경지를 복구하거나 부서진 마을을 보수하는 힘든 일보다는 음양 교합이 더 매력적인 일이었다. 유저들이야 호기심이 있으니 천에서 준비한 또 다른 즐거움이라 생각하겠지만 천의 NPC들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음양 교합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섭혼술과 미염공이었다. 무공을 가진 자라면 경계를 하겠지만 일반 NPC들은 그렇지 못했다. 또한 고수들 역시 환희천궁과 소뇌음사의 섭혼술과 미염술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음양영생교에 빠져 들었다.
"호호! 어리석은 중생들."
웃고 있는 사람은 한때 일국의 공주 신분이었던 난화 공주였다. 하지만 지금의 난화는 공주 신분이 아닌 음양영생교의 신녀라는 신분이었다.
그녀는 만사신군의 명으로 음양영생단을 이끌고 있었다. 감숙성으로 숨어들어 와 음양영생교라는 신흥 종교를 만들어 감숙성을 혼란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미 많은 유저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감숙성에 들어와 있었고 또한 그들 중에서 상당수가 음양영생교의 신도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마 유저들은 음양영생교에 실증을 느낄 때까지는 음양영생교의 신도로 활동할 것이다.
"상황을 보고하라."
"옛! 현재 포교의 수준은 만족할 만합니다. 하지만 남자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랬다. 남자들에게 빠르게 전해지는 것이 문제였다. 음양영생단의 여자 단원들은 100명이었다. 그들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음양영생단의 남자 단원들이 여자 NPC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여성 유저들이나 일반 NPC들 그리고 NPC 몬스터들은 결코 음양영생교를 좋게 보고 있지 않았기에 그들을 꺼려했다.
"음! 강제로라도 취할 수밖에……. 섭혼술로 상대의 이지를 제압해서 남성 신도들에게 던져 주면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건 그렇고 행방불명된 아나타와 금정산사를 무너트린 세력에 대해서는 알아 봤느냐?"
"죄송합니다. 마치 증발한 것처럼 아나타의 행적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금정산사를 공격한 세력에 대해서도 확실치가 않습니다. 하오밀문에서 일부러 그들에 대한 정보를 막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얼굴을 찡그리는 난화였다.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듯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박차를 가해라. 아나타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고 누가 금정산사를 무너뜨렸는지 알아내라. 하오밀문을 족쳐서라도 말이다."
뾰족한 난화의 음성에 고개를 숙이는 음양환희단의 부단주였다.
"알겠습니다, 신녀님!"
그녀가 나가고 고수로 보이는 NPC가 난화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마치 강력한 섭혼술에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호호! 이리 와 누워라."
난화의 말을 듣고 사내는 난화의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러자 난화는 부끄러움도 없이 사내의 하의를 내렸다.
"호호호호호!"
그것도 잠시, 사내는 난화에게 내공을 모두 빼앗기고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버렸다.
"현수, 네놈도 이렇게 만들어 줄 것이다. 호호호호호!"
마치 실성한 듯 웃는 난화였다.
* * *
천지회의 혁무기가 호면객에게 당했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천지회는 순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천지회로 사람들을 보내 소문의 진위를 확인했다.
방각 역시 혁무기가 호면객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혁무기는 상당히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호면객에게 당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방각은 혁무기에게 사실을 알려 달라고 전서구를 보냈지만 결국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다.
방각은 혁무기에게 답을 얻을 수 없게 되자, 그가 호면객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대답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후후! 무기가 당했단 말이지. 그럼 성취도 절반이 날아갔겠군."
"그런데 왜 호면객이 혁무기를 죽였을까?"
방각은 천마회의 장로들과 당주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천지회보다 우리 천마회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각 사냥터에서 천지회와의 다툼에서 우리가 피해를 보던 것을 만회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방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혁무기와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밖에 모르는 일이다. 그건 혁무기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두 사람의 생각을 모르는 이들이었기에 고수들의 사냥터에서는 사사로운 시비가 자주 붙었다.
"지금 천지회는 초상집 분위기일 겁니다."
당연히 각 당주들과 문주가 죽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직 이들은 각 당주들까지 죽은 것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사냥터에서 천지회를 밀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오대세가의 떨거지들이 합류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좁아진 사냥터입니다."
방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자존!
약하면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무림이다. 더구나 천지회는 문주가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으니 더욱 위축되었을 것이다.
"동영과 서장 그리고 탑리목 분지에서 천지회의 마찰이 있을 때는 사정없이 밀어내기로 한다. 그리고 우리의 정보 라인을 동원해서 감숙성의 환희영생교에 대해서 알아보고."
푸드드드득!
그때 방각에게 전서구가 날아왔다. 방각은 생각 없이 전서구를 보다 인상을 찡그렸다.
천지회의 회주인 혁무기가 나에게 당했다. 이제 남은 건 너뿐이다. 누가 과연 천하제일인인지 겨뤄 보자. 장소는 돈황의 월아천.
호면객.
내용은 간단했지만 호면객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방각은 전서구의 내용을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어보았다.
"제 생각으로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홍춘이가 먼저 말했다.
"이유는?"
"물론 이기면 그에게 걸린 현상금으로 많은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러지 못할 경우입니다."
홍춘의 말에 방각은 인상을 쓰지는 않았다. 분명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말이었지만 분명 홍춘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상대를 정확하게 알고 싸우는 것이 방각이 현수에게 맞아 가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상대를 알기 전에는 절대 가볍게 보지 않는 방각이었다.
"그럼, 회주가 호면객에게 질 것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상대를 더 알고 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건 홍춘이의 말이 맞다. 혁무기를 이긴 호면객은 지금 누가 뭐라고 해도 천하제일인이다. 물론 그와 싸워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자격이 있다."
홍춘의 말을 들고 흥분하는 장로들과 당주들을 진정시키는 방각이었다.
"호면객이 유저라면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현수겠지."
방각은 이미 홍춘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았는지 말을 끊었다.
"그래, 현수……. 여기에 그를 경험한 사람들도 있고 또 그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야."
방각의 말에 현수를 아는 듯한 사람들의 얼굴빛이 변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수는 서생에다가 황궁인입니다. 그가 호면객일 수는 없습니다."
말을 하는 이들은 현수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만약을 가정하는 거다. 만약 호면객이 현수라면……."
방각은 하던 말을 멈추고 모두를 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쿵!
듣는 사람들에게는 실로 놀랄 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결코 한 문파의 수장이 해서는 아니 될 말이었다.
"현수, 알고 있겠지만 그 이름이 주는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그에게 당한 사람들에 한해서지만 당시 그와 쌍벽을 이루었다는 건과는 또 다른 이름의 무게다."
그랬다. 일마 이현수, 이 다섯 자가 천에 끼치는 영향력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만약 누군가에게 현수가 한 번이라도 졌다는 말이 천에 떠돌았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아직까지 현수가 누구에게 졌다는 말은 천에서 들리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호면객의 활약상은 그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말하는 아가씨의 복수로 인해 이미 수천의 사람들이 사사혈천의 무사들과 함께 죽었다. 또 그는 서장에서 사사혈천을 도와주기 위해 온 원군을 단신으로 몰살시켰다.
그리고 이들은 모르지만 사사혈천의 광소를 자신과 혁무기의 손에서 빼앗아 달아났다는 것이다.
"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럼 각 문파의 유저들이 겁쟁이라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홍춘은 명예보다 실리를 택하여 말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실리보다는 명예를 택했다.
방각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호면객과의 승부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피하느냐.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받아들이려면 시간과 장소를 우리가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천지회의 고수들을 포진시켜 주위를 포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홍춘의 말에 방각은 고개를 저었다.
"좋은 생각이다만, 일대일의 승부에서 적에게 심적 타격을 줄 생각은 없다. 만약 싸운다면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싸울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 천마회가 가는 길이다. 비록 사파지만 정정당당하게 힘의 논리를 적용시켜 강자에게라면 져도 웃을 수 있고, 또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길이 나, 방각이 가고자 하는 마도의 길이며, 천마회의 나아갈 길이다. 호면객의 일은 나의 일이다. 다들 걱정해 주어서 고맙다. 홍춘이는 지역의 민심에 더욱 신경을 쓰고 감숙성에 있는 천마회의 지부를 통해 환희영생교의 실체를 파악하라고 전해라. 알고들 있겠지만 곧 공성이다. 늦어도 현실로 5∼6개월 뒤면 시작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지역 민심에 최대한 힘을 쓰며 내실을 다져야 한다."
"알겠습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방각의 모습이었다. 아마 현수가 이런 방각의 모습을 보았다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