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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49/57)

계약

현수는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BS의 창업 전담 팀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BS 그룹에서는 현수의 편의를 봐주어서인지 현수가 정한 오페라 하우스에서 약속 장소를 잡았다.

"이현수 씨?"

"안녕하세요."

현수가 늦게 간 것은 아니지만 BS 그룹에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BS 그룹에서 천의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는 신형욱이라 합니다."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꺼내 현수에게 내밀었다.

"네, 그런데……!"

현수는 내심 당황했다. 자신이 만날 사람은 BS 그룹의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업 지원을 담당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니터링이 불가한 현수였기에 창업 지원을 미끼로 모니터링 불가를 해제하는 조건을 걸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앉으세요. 창업 지원 팀에서 사람이 오려면 조금 기다려야 할 겁니다. 제가 먼저 만나 뵙기 위해서 그들에게 시간 양해를 구한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현수 씨에게 조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아, 네에."

"사실 현수 씨에게 궁금한 점이 참 많습니다. 제가 천의 모니터링을 맡은 후로 가장 많이 듣는 이름이 바로 현수 씨였습니다. 그래서 언제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있어 실례인지 알지만 이렇게 왔습니다."

현수는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그래도 필요한 놈이 참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였다. 그래도 말 한마디로 창업 팀에서 들어줄 것 같으면 그룹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인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일마 이현수……. 처음 들었을 때가 천에서 무공 도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그때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물론 현수 씨에 대해서 말한 분이 수빈 씨였지만 말입니다."

수빈이라는 말에 인상을 쓰는 현수였다. 현수에게는 수빈이라는 이름이 결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네……. 수빈 씨라면 어쩌면……!"

"어떠십니까? 달라진 천과 예전의 천을 비교하면……. 사실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 저는 예전의 천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조금은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베타 시절 최고수라 칭하던 현수 씨가 차이점을 말해 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음!"

예전의 천과 지금의 천은 바뀌기는 했지만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현수는 느낀 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혹시나 지금 이 사람이 창업 팀에 잘 말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없지는 않았다.

"솔직히 바뀌었다고 하지만 기본 틀은 그대로입니다. 이미 예전에 천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만큼 천에 대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부나 무공 그리고 아이템. 초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일정한 레벨이 오르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흔히 말하는, 사냥에 득이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NPC 몬스터나 유저들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좋은 사부를 만나 강한 무공을 얻고 좋은 아이템을 얻으면 그만큼 빨리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는, 천에서 현실감을 너무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녹슨 칼이라도 상대는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목이나 심장에 충격을 줄 정도의 힘만 있으면 언제든지 상대를 죽일 수 있습니다. 베타 시절처럼 일정한 충격을 받아 체력을 깎아 내려 상대를 죽이는 방법이라면 좋은 사부, 강한 무공 그리고 좋은 아이템이 효과를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이나 심장을 관통시켜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지금의 천에서는 그 무엇보다 실전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을 따져 보면 베타를 경험한 사람들은 베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유리한 편입니다."

형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에 현수가 왜 죽음을 찾아다니는 기행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현수가 그 이유 때문에 사신낭객이라는 호칭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초기에 죽기 위해 다니신 거군요."

현수는 흠칫했다. 혹시 자신이 모니터링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형욱은 현수의 생각을 읽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수 씨는 모니터링이 불가하니까요. 워낙 많이 듣는 이름이라 나름대로 조사해 보았습니다."

"네……!"

"공성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너무 빠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문파들이 이제 공성 체제로 돌아간다는 말을 천의 메인 컴퓨터에게 들었습니다."

형욱은 현수의 생각을 바탕으로 다시는 사사혈천의 이벤트와 같은 고생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도와주십시오. 사실…… 전 아직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공성에 대해서 말인가요?"

"네! 아니,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는 유저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현수는 잠시 생각했다. 이것에 대해 말하려면 한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까지 이야기해야 한다.

"저 역시 룸넷을 하는데 형욱 씨께서 도와주시리라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수는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협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컴퓨터 게임이 발달하고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이 개인의 재산에 들어간다는 법원 판결이 난 후로, 이 온라인 게임을 직장으로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온라인상에서 친목을 다지기 위해 모였지만, 점점 돈이 목적이 되는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형욱은 현수의 말에 집중했다. 자신이 모니터링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생각의 차이였다.

"그러한 목적을 가진 모임들이 생각한 것이 바로 게임 머니였습니다. 하지만 사냥으로는 힘들었기에 성을 차지하면 고정적인 세금이 들어오는 것을 이용해 공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형욱은 현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저는 잘 모르지만 1990년대 리니지라는 컴퓨터 온라인 게임이 있었습니다. 성을 차지하고 1달에 들어오는 수입을 현금으로 계산해 보면 대충 천만 원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많았습니까?"

1990대의 물가를 계산해 보면 1달에 천만 원은 상당히 많은 돈이었다.

"물론 그 게임의 모든 성이 그런 것이 아니라 거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성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 성 하나를 거래하는 데 6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형욱은 혼자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때부터 다크 게이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크 게이머?"

"그것은 게임의 아이템을 위해서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죽이고 아이템을 빼앗는 게이머들을 말합니다."

형욱은 다크 게이머와 부르주아 백수들을 생각했다. 둘 다 게임으로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 차이점을 알 수 없었다.

"차이가 있습니까? 다크 게이머와 부르주아 백수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부르주아 백수들이 생겨난 것이 바로 다크 게이머들에 의해서입니다. 흔히 게임상의 용어로 먹자라 칭하는 다크 게이머들의 행패를 참지 못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또 다크 게이머들을 공격하고 아이템을 얻어 생활하는 게이머들이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을 부르주아 백수들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들은 다크 게이머들과 싸우기 위해 아이템을 장만하려고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우습게 여기며 게임을 위해 썼습니다."

참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는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나라라고 생각한 형욱이었다.

"많은 돈으로 아이템을 사서 무장을 한 부르주아 백수들에게 다크 게이머들이 밀리면서 그들은 자연적으로 음지로 숨어들어 갔습니다. 다크 게이머들이 숨어들자, 생계 수단이 없어진 부르주아 백수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성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의 게이머들이 온라인 게임을 시작하면 공성이라는 전제가 깔리게 된 것입니다."

그제야 형욱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음! 그럼 천도 그렇게 흘러가겠군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형욱이 질문하고 현수가 대답하는 형식이었지만 현수도 나름대로 얻는 것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언 하나 해 주십시오."

현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형욱에게 말했다. 야의 말을 빌려 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그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조언해 주었다.

"그냥 흘러가게 놓아두시면 됩니다. 그럼 NPC들과 유저들, 유저와 유저들이 가장 이상적인 체계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처음 마을과 마을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도시와 도시가 모여 나라를 이루며 체계를 만들어 가듯, 천 역시 그냥 흘러가게 놓아두시면 체계를 잡아 갈 것입니다.

현수가 말하는 도중에 BS 그룹의 창업 지원을 담당하는 사람이 오고 있었다.

"저기 사람들이 오는군요."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BS 그룹의 창업 담당 부서 사람과 악수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건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지하를 보기 위해 오페라 하우스를 나섰다.

"백화점 지하를 얻기가 힘들었을 텐데……!"

"친구의 아버님이 하시는 백화점이라 그리 힘들지 않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넓은 평수의 지하였다.

"접속기를 얼마나 생각하고 계십니까?"

현수는 건이 아버지와의 약속도 있고 해서 70∼80을 말했다. 야 역시 그 정도가 관리하기에도 편하다고 했다.

"150대까지는 가능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창업 담당자가 말하자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백화점입니다. 백화점의 이미지에 맞게 여유 공간을 많이 확보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곳을 룸넷이라 생각하기보다는 백화점의 한 휴식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도 70∼80대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형욱은 현수를 보았다. 30대 초반! 아니, 그냥 보기에는 이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현수였다. 생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형욱은 현수가 마음에 들었다.

'회장님께서 이 친구를 마음에 들어 한 이유가 있었구나.'

"알겠습니다. 인테리어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도 저희가 지원합니다. 인테리어 부담금의 30%를 대신 지불해 드리지만 저희가 선정한 업체가 들어와서 인테리어를 시공해야 합니다."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30%라면 비용이 많이 절감되지만 그들에게 마음대로 주문을 할 수는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인테리어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접속기 대여비를 싸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올라가서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이미 현수가 룸넷을 운영하는 문제에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는 결정이 난 상태였다. 물론 그 결정에는 수빈의 입김이 작용했지만 그것을 모르는 현수는 생각보다 쉽게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백화점의 커피숍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현수는 계약서를 살펴보고 있었다.

"임대비가 1대당 월 25만 원, 5년 이후 점주 소유가 된다는 조항은 인테리어 지원금 대신 월 20만 원에 5년 이후로 수정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조금 더 싸게 안 됩니까?"

"40대 이하라면 조금 더 싸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80대라고 하면 1달에 400만 원, 1년이면 4천108만 원입니다. 그리고 5년이면……."

그렇게 계산하니 1대당 5만 원이 내려가는 것이지만 5년 동안 계산하면 상당히 큰돈이었다.

현수는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할 수 없는지 다른 계약 조건들을 살펴보았다.

"저기, 여기에 '화재나 기타 사유로 인해 손해를 입었을 때 조사관의 조사 결과에 따라 그 책임을 달리한다.'고 했는데 이 조항은……."

"주인의 과실로 인해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주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계약 만료 기간을 따져서 남은 기간의 임대비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소방 설비만 제대로 갖추면 크게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백화점이니 그 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백화점의 소방 설비 관련 지침은 매우 엄격하니 말입니다."

"음!"

현수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언제부터 기계들을 임대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계약서를 작성한 시점부터, 그러니까 오늘부터 1년 안에 신청을 하시면 언제든지 임대해 드릴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영광입니다. 그래도 천에서는 현수 씨가 최고니까요. 저 역시 천을 하는 유저로서 현수 씨를 존경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현수와 형욱은 창업 담당자의 말에 멍해졌다.

"실장님은 안 그렇습니까?"

"난 천을 하지 못하잖아요."

형욱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계약을 마친 현수는 백화점의 사무실로 향했다. 건의 아버지는 현수가 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그래, 이야기는 잘되었니?"

"네! 다름이 아니라, 계약금 지불 문제에 대해 상의를 드리고 인테리어 업체를 소개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래, 인테리어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조금 주세요. 계약금을 지불하면 인테리어 대금이 조금 부족하니 1달만 기다려 주시면 그 안에 드리겠습니다."

건의 아버지는 현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볼수록 마음에 드는 친구였다. 끊고 맺음이 확실해서 더 좋았다.

"공사 금액은 공사가 들어가기 전에 선금 30%. 그리고 중간에 30% 공사가 끝나고 1달 안에 나머지를 주면 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정도는 내가 먼저 계산해 주고 너에게 받으면 되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이미 구상은 다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내부 시설물들의 위치를 그린 그림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토대로 도면을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야가 구상한 것으로, 현수도 보기에 만족한 내부 설계였다.

"그래, 그렇게 하마. 도면을 제작하는 비용이 따로 들어가는 것은 알고 있지?"

"네."

"그리고 기타 위생 시설과 소방 시설 등등, 안전 관리 설비는 백화점 기준으로 하는 것도 알고 있지?"

"네. 이미 그것들을 다 고려해서 내부 설계를 했습니다."

정말 아들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 일단 시작했으니 열심히 해야 한다. 힘들면 나에게 말해라. 난 너를 남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야."

현수는 건의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말했다.

"건이가 너의 반만 돼도 걱정이 없겠다마는 그렇지 못하니, 쩝."

"하지만 건이는 곧 사법 고시를 준비할 테니 결과적으로는 저보다 건이가 훨씬 나을지도 모릅니다."

건의 아버지는 그래도 자식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자, 자! 나가서 밥이라도 함께 먹자."

"감사합니다."

건의 아버지와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현수는 야를 찾았다.

"야! 룸넷 내부 설계한 거 건의 아버지에게 보내 줘."

-알겠습니다. 이야기는 잘되었습니까?

"어, 인테리어 지원비 대신 접속기 대여비를 깎았어. 그리고 5년 뒤에는 우리에게 준대."

야는 빠르게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괜찮군요. 그럼 이제 천을 정리해야겠군요.

"어, 참! 그리고……."

현수는 방각과 혁무기를 잡아 현상금을 더 올릴 생각을 말했다. 물론 건과 만사귀가 함께하기로 했다는 것까지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창업 자금이 필요할 것이니 말입니다. 빨리 일을 끝낼수록 유리합니다.

"그래, 빨리 끝내야지. 방각이나 혁무기를 손봐 주고 바로 소뇌음사에 들어가서 1황자와 대학사를 죽일 거야."

-알겠습니다. 전 설계 도면을 건의 아버님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수진 님께서 현수 님 들어오시면 잠시 아래층에 다녀가라고 했습니다.

현수는 야의 말을 듣고 궁금한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오세요? 가신 일은요?"

"어, 그럭저럭. 그런데 왜 불렀어?"

수진은 현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 오빠 왔어요."

"그래."

현수는 순간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앉게나."

수진은 부모님에게 현수와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 상태였다. 수진의 부모님도 크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2년이라는 시간 때문에 현수를 부른 것이었다.

"왜 2년인가?"

역시나 현수의 예감이 맞았다.

"그것은……!"

"2년 동안 다른 여자를 만날 생각인가?"

"아닙니다."

수진은 현수의 옆에서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자네, 우리 딸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지?"

현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했다.

"저 역시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가 없어, 무엇이 수진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렇다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아갈 만큼 여유롭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가 어머니께 배운 사랑을 수진이에게 해 줄 자신은 있습니다. 그리고 수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해 줄 자신은 있습니다."

수진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진을 보니 그마나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알겠네. 결혼은 빨리 했으면 좋겠네. 상대가 정해지니 이제 손자 볼 생각이 급한 늙은이의 마음이라 생각하게."

현수는 말이 없었다. 수진의 아버지는 수진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란 말로 상견례를 끝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수진의 어머니는 조금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수진의 아버지를 보았다. 너무 쉽게 딸을 준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냉장고에 있는 술이나 한 잔 주구려."

수진의 어머니는 간단하게 술상을 내와 수진의 아버지 앞에 말없이 내려놓으며 앉았다.

"자네 마음도 알아. 그런데 이미 둘이 좋다고 하는데 이것저것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래도……."

"괜찮아. 옆에 있는 우리 수진이 보지 않았는가.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참 보기 좋지 않은가."

수진의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좋은 사람 만났으면 보내는 것이 당연하지. 나도 현수라는 친구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네, 이 사람아."

"당신이 뭘 알아봤다고 그래요."

"그럼, 딸을 시집보내는데 사람 하나 데리고 왔다고 그냥 덥석 주겠는가?"

수진의 어머니는 비어 있는 잔에 술을 따르며 수진의 아버지의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내 동창 녀석이 하나 있지. 그놈이 그러더군. 저 현수라는 사내를 자신의 사위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네에?"

"왜,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가끔 집에 놀러 와서 '제수씨 술이 다 되었습니다.' 하고 외치는 놈 말이야."

수진의 어머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남루한 행색을 한 그는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잊을 만하면 찾아와 남편과 술을 마시면서 술 떨어졌다고 소리치는 사람이었다.

"그 술주정뱅이요?"

"허허! 그래, 그 술주정뱅이 친구 말이야. 그 친구로부터 알게 되었네. 현수라는 친구에 대해서 말이야. 이제껏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 괜찮아. 최소한 수진이를 불행하게 만들 놈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지. 아니면 뭣 하러 대그룹의 회장이 현수 저 친구를 사위 삼을 생각을 했겠는가?"

그 남루한 행색을 한 사람이 대그룹의 회장이라는 말이 믿기지가 않는 듯 수진의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대그룹의 회장요? 그 주정뱅이…… 헙!"

"그래, 그 친구가 BS 그룹의 회장이지."

수진의 어머니는 말을 할 수가 없는지 멍하니 수진의 아버지만을 보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술이나 한 잔 더 따라 주게나."

"이제 조금 있으면 손주를 보겠구먼. 허허, 손주만 보면 이제 세상 다 살았지. 손주 재롱 한 5년만 보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야."

오늘따라 마치 해탈한 것처럼 말하는 수진의 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수진의 어머니였다.

한편 현수와 함께 올라온 수진은 현수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의논을 하고 부모님께 말했어야 하는데 자신의 결정으로 그냥 이야기해 현수가 많이 당황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오빠, 미안해요. 오빠에게 상의하지 않고 먼저 집에 이야기한 것……!"

현수는 수진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고 한 번은 있어야 할 일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오늘 계약했어. 다음 달부터 백화점에 인테리어를 시작할 거야."

"네. 제가 도울 일은 없어요?"

"없어. 그냥 이렇게 날 지켜봐 준 것처럼 앞으로도 지켜만 봐 줘. 그리고 내가 잘못할 때는 말해 주고. 그것만 해 주면 돼."

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현수의 말을 듣고 수진은 현수를 쳐다보았다.

"뭐가요?"

"우리 집 형편을 알면서도 날 좋아해 줘서……."

수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 눈웃음으로 현수의 말에 답해 주었다. 수진은 쉬라고 말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수는 생활의 기반이 잡히는 대로 수진이와 결혼할 생각이었다.

다음 날 일어난 현수는 천에 접속해서, 천연장에서 건이 접속하기를 기다렸다. 건에게 호면을 빌려 줄 생각이었다.

"실명인은 모습을 드러내라."

팟!

은자림의 림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넌 은자림을 동원해서 천마회의 방각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아봐라. 쓸데없는 충돌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실명인에게 명을 내리고는 소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소운은 어머니와 대장금과 함께 있었다.

"어때?"

"어? 아! 이제 많이 나았어. 유저들이랑 달라서 NPC들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네."

대장금의 말을 듣고 현수는 소운이를 보았다.

"소운이는 뭘 먹고 싶어? 아저씨가 시전에 갈 일이 있는데 맛있는 것 사다 줄까?"

소운이는 어머니를 보았다.

"괜찮아. 아저씨가, 소운이가 착하니까 그러는 거야."

"소운이는 만두가 제일 맛있어요."

소운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지난날 자신에게 주기 위해 들고 온 만두가 생각난 것이었다.

"그래. 아저씨가 소운이 좋아하는 만두 많이 사 올게. 또 먹고 싶은 거 없어?"

"당과. 누나와 오빠가 당과를 좋아해요."

누나와 오빠는 미령의 동생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장금도 소운이가 귀여운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도 이런 딸 하나 낳고 싶다. 오빠는 그런 생각 안 들어?"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건이 접속해서 현수를 찾아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건이 오빠도 일찍 왔네."

"그래, 현수와 시전에 갈 일이 있어서. 다녀올게."

두 사람은 천연장을 벗어났다.

현수는 건에서 호면을 빌려 주었다.

"다녀올게."

"자신 있는 거야?"

걱정이 되는지 현수가 건에게 물었다. 건은 웃으며 자신이 일황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혁무기를 찾아 강소성을 떠났다. 현수 역시 건의 뒤를 따라갔다. 검황과 도황의 싸움이다. 이번 기회에 건의 확실한 실력을 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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