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권-도약을 위한 준비 (48/57)

도약을 위한 준비

현수는 BS 그룹의 사람을 만나러 가기 전에 먼저 건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먼저 룸넷을 할 건물을 확보해야 BS 그룹에서 지원해 주는 창업 지원 물품들을 더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서 오너라. 그래, 결정을 했니?"

언제나 아들처럼 편하게 대해 주는 건의 아버지였다. 현수는 임대비 계약금의 일부를 건의 아버지에게 드렸다.

"네, 계약금은 10%라고 해서 먼저 계약금만 가지고 왔습니다."

건의 아버지는 현수가 룸넷을 하는 것이 아직도 못마땅한지 룸넷보다는 다른 것을 하면 어떻겠느냐며 다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젊은 현수가 룸넷을 한다는 것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저도 생각을 많이 해 봤습니다. 만약에 제가 다른 일을 배우고 그 일에 관련된 장사나 가게를 한다면 최소한 3∼4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야, 모아 둔 돈으로 어머니의 약값은 어떻게 된다 하더라도 나중에 장사가 잘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지금 경쟁이 적은 룸넷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몸을 빼기 힘들겠지만 후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 또 다른 것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음!"

건의 아버지는 현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그게 현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대 보증금은 5천만 원으로 하고 월 임대는 300만 원으로 해 주마."

"네?"

"친구 아들 아니냐? 친구 아들이면 나의 아들도 된다. 아비가 어찌 매정하게 다 받을 수 있겠나. 대신 나와 어머니는 룸넷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해 다오. 사실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 아! 그리고 우리 직원들은 사용료 10% 할인하는 조건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는 건의 아버지가 참으로 고마웠다. 하지만 현수는 부르주아 백수였다.

"직원들의 사용료를 10% 할인하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직장 마치는 시간이 6시니까 대충 문 닫는 시간까지 4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니 한 사람당 3만 5천 원을 빼야 하는데, 1달이면 100만 원이 넘습니다. 그리고 직원들 수가 30명이 넘는데……."

건의 아버지는 현수를 보았다.

"너, 계산 빠르다. 이 녀석아, 직원들이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2교대로 돌아가며 근무하잖아. 그런데 고작 그 정도도 못 해 주냐, 사람이 정이 있어야지."

건의 아버지는 계산이 빠른 현수를 보며 최소한 무슨 장사를 하더라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로 계산이 빠른 사람들이 장사를 잘하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는 시간제로 룸넷 사용권을 끊어 드리겠습니다. 50시간 100시간, 물론 선불로. 저 역시 그 돈으로 기타 마실 음료수라도 준비하게 말입니다."

"음! 시간제 사용권이라……. 근데 그건 싸게 주는 거지."

"네."

"내가 직원들에게 물어 보마. 그런데 인센티브는 없냐? 10명에 10시간 공짜 하는 거 말이야. 현수야, 이것도 일종의 영업이다."

"……!"

말이 없는 현수를 보자, 건의 아버지는 멋쩍은 듯 웃었다.

"농담이다. 개업하려면 내부 시설부터 바꿔야 하는데 언제 작업을 할 거냐? 우리도 알아야지. 그래야 백화점을 관리하기도 편하니까."

인테리어 공사로 인해 먼지가 날리면 백화점 측에서도 좋을 것이 없으니 서로 조율했으면 하는 말이었다.

"이번 금요일에 BS 그룹 관계자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구체적으로 세부 사항을 정해 먼저 인테리어부터 할 생각입니다. 금요일에 BS 그룹 사람과 이야기가 끝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결정을 했으면 빠르게 일을 추진하는 현수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드는 건의 아버지였다. 이건 건과 또 다른 현수의 모습이었다.

"그래? 남자는 힘들어도 어려워도 악이 있어야 해. 일단 하려고 마음먹은 일이니 열심히 해 봐라. 나도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마."

현수는 건의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백화점 관리부 사람과 임대 계약을 맺었다.

무엇보다 월 임대비가 내려갔다는 것이 현수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이벤트가 끝난 후, 또 다른 현실인 천의 세계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그동안 이벤트로 인해 접속하지 못한 유저들이 한 번에 몰리는 현상으로 인해 동시 접속자 수가 6만에 가까운 수를 기록했다는 것이 이색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눈치가 빠른 몇몇 방파들은 이벤트가 끝난 후에 빠르게 문파 운영을 공성 체제로 전환하고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문파들과의 교류에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벤트 전과의 일상과 똑같은 천의 세상이지만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NPC들이 유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이번 사사혈천의 난을 종식시켰다고 알려진 천마회의 방각이나 천지회의 혁무기는 NPC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와 반대로 호면객은 NPC들을 비롯해서 천의 유저들에게는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각 성이나 현의 NPC들은 자신들의 지역을 지켜 준 문파에 대해서는 보다 높은 친밀도를 나타냈고 이것이 성이나 현의 유지로 떠오를 수 있게 된 발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정도의 개방을 비롯해 중도의 하오밀문, 사도의 은천각은 이번 사사혈천의 난에서 보여 준 각 문파의 공헌도에 따라 문파들 간의 서열을 다시 정립시켰다.

구파일방이 이끄는 정도에서 천지회가 이끄는 정도로, 사왕천이 이끄는 사도에서 천마회가 이끄는 사도로 바뀌었다는 것이 이번 이벤트에서 가장 큰 변화였다.

물론 중도를 추구하는 이들의 무리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강소성의 모산파가 중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BS 그룹과의 의도와 달리 진행된 이벤트이기는 하지만 그 대립 구도가 확실하게 잡혀 가고 있는 중이었다.

* * *

"그러니까 1달에 300만 원을 준단 말이지."

말을 하는 사람은 역발산이었다. 그는 방각이 만나자는 이야기를 듣고 별 뜻 없이 만났다가 천에서 함께하자는 제의를 방각에게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좋은 조건이다. 어차피 너희들끼리는 성을 먹지 못하잖아."

방각은 이미 천연회에 소속된 사람들을 다 알고 있었다.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날지 모르나 수에는 어림없다는 뜻이었다.

방각의 말이 사실이었다. 건이나 현수라면 수에 구애를 받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많은 인원과 한 번에 싸울 수는 없었다.

역발산은 자신에게 함께하자고 제의한 방각을 보고 다른 이들에게까지 손을 썼으리라 생각했다.

"300만 원이라… 그런데 나만 만날 리는 없고 다른 애들도 만나기로 했냐?"

"너부터 만나고 계속해서 다른 애들을 만날 거야."

역발산은 그렇게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방각이 조금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타 시절 현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본 적이 없는 역발산이었다. 그건 방각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자신이 지금 다른 천연회의 사람들에게 조금 뒤처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고작 방각이 함께하자는 제의를 자신에게 해 올지는 몰랐다.

"현수도 만날 생각이야?"

방각은 고개를 저었다. 건이라면 몰라도 현수를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다. 아니, 솔직히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쓴다는 사실조차 현수가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비록 자신이 최고수이고 천마의 무공을 이었다고 해도 아직 현수는 두려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니, 솔직히 현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다 만날 생각이다."

현실이라면 몰라도 천에서는 영원히 보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바로 현수였다.

"그래? 그럼, 차라리 수고하지 말고 현수를 만나서 담판을 짓지 그래? 애들이 현수를 떠날 것 같아? 내가 볼 때는 못 떠나. 그 이유는 방각이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하지만 방각은 자신이 있었다. 역발산 역시 이렇게 말했지만 현실을 인식하면 자신에게 돌아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름 아닌 부르주아 백수니까…….

"시대가 바뀌었다. 현실을 직시하면 너를 비롯해서 애들 역시 부르주아 백수니까 당연히 돈에 움직일 것이라 생각을 한다."

방각의 말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하하, 그래, 시대가 바뀌었지. 이제 일마와 일황의 시대가 아닌 너와 혁무기의 시대란 말이지. 방각이 너, 많이 컸다."

방각은 눈살을 찌푸렸다. 결코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하나, 아쉬운 사람이 참아야 했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냐?"

"당연하지. 방각이 네가 비록 지금은 천에서 제일고수라고 해도 현수와 같다고 생각해? 넌 아직 현수를 몰라."

"너와 싸울 생각은 없다. 역발산, 선택을 해라. 300만 원에 나와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나와 싸울 것인가를……!"

역발산은 그런 방각이 조금은 어리석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부럽다. 미안하지만 난 현수를 배신할 수 없어. 아니 배신하지 못해. 이유를 아나?"

"……!"

역발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방각과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이야기를 더 하다 보면 자신이 방각에게 돌아설 것 같았다.

1달에 300만 원의 고정 수입을 버린다는 것은 부르주아 백수에게는 엄청난 손실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말해 두지. 베타 시절 현수를 경험한 애들은 결코 현수라는 두 글자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건 지금 최고수라고 칭함을 듣고 있는 방각, 너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래도 베타 시절에는 현수를 견제할 수 있는 건이 있었기에 그나마 나았지. 지금은 아니야. 두 사람이 손을 잡았거든. 천천히 생각을 다시 해. 그래도 아는 안면에서 충고하는 거다."

역발산은 방각을 두고 혼자 밖으로 나갔다. 방각은 역발산의 말을 듣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현수라는 이름의 망령이라고……. 후후! 좋아, 그렇다면 천에서 현수를 죽여 주지."

방각은 천에서 현수를 죽여 자신이 주도하는 천이 되었다는 것을 천연회에 확인시키리라 다짐했다.

한편 천지회의 혁무기 역시 화화공자를 만나고 있었다.

"싫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너 밑으로 들어가냐."

"생각 잘해 봐. 1달에 300만 원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천연회의 인원으로 성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혁무기 역시 방각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리고 무기야, 너 착각하고 있는데 천연회가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당장 너희와 붙어도 천연회가 이길 자신이 있다. 왜? 믿지 못하겠냐?"

아니,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베타 시절 하늘을 날아다닌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해도 인원수에서 벌써 백 배나 차이가 난다.

"쪽수로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마라. 그리고 너만 10대 무공을 이은 것은 아니다. 10대 무공이 10개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혁무기는 화화공자의 말을 듣고 흠칫했다.

"알고 있었나?"

"당연하지. 천상지애의 촬영으로 바쁜 네가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잖아. 그리고 넌 나를 만나기 전에 건을 만나야 했어."

"건을?"

방각이 현수를 만나기 싫어하듯 혁무기 역시 건을 만나기 싫었다.

"보아하니 방각이도 우리에게 손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건이나 현수가 알면 결코 좋아할 일은 아닐 거야. 베타를 경험한 사람들치고 두 사람의 이름에서 주는 무게를 가볍게 여길 사람은 없다. 너 역시 마찬가지겠지. 그렇기에 건을 만나기보다는 나를 먼저 만난 것이고. 안 그래?"

혁무기는 말이 없었다. 어찌 보면 화화공자의 말이 사실이었다. 비록 천에서 유저들이 혁무기를 정도 최고수라고 말하지만 베타를 경험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방각이나 혁무기의 이름 앞에 두 사람의 이름이 먼저 들어갔다.

일마 이현수 그리고 일황 최건!

이 둘이 주는 이름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후후! 건이라, 좋아. 건을 죽여 주지. 그다음에 선택을 해라. 단 조건은 바뀐다. 1달에 200만 원으로……."

방각이 현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것처럼 혁무기 역시 건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좋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공짜로 10년간 봉사해 주지. 넌 아직 건을 몰라. 그리고 현수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고……. 뭐! 난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으니……."

화화공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화공자가 나가자 혁무기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하는 동안 그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천에 접속을 한 현수는 천연장에서 소운이와 미령의 남동생에게 학문을 가르치며 소뇌음사의 1황자를 죽일 계획을 다듬고 있었다.

역발산은 접속을 하고 나서 곧바로 현수에게 달려왔다. 현수가 이미 역발산을 위한 무공서를 구해 놓았으니 당장 익혀서 방각이에게 한 방 먹이고 싶었다.

현수는 역발산이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는 두 사람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고 돌려보냈다.

돌아가는 두 사람은 역발산을 보고 인사를 했다.

"그래, 열심히 해라. 배워야 아저씨처럼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 거야."

"네!"

소운의 말에 조금은 섭섭한지 역발산의 입이 조금 나왔다.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지, 왜 그리 얼쩡거리고 서 있어!"

"현수야."

역발산이 손을 내밀자 현수는 어이가 없는지 인벤토리에서 무공서를 꺼내 주었다.

"고마워! 그리고……!"

"그리고?"

"애들이 손을 쓰기 시작했다. 1달에 300만 원을 준다는 미끼를 내걸었다."

현수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한 번쯤은 그들과 부딪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래서는! 그냥 너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헤어졌지."

현수는 그런 역발산을 보고 웃었다.

"잘했다. 그럼, 다른 애들 역시 같은 말을 들었겠군."

"아마!"

"그 문제부터 처리하는 것이 좋겠군."

현수는 소뇌음사의 1황자보다 방각이나 혁무기의 일을 먼저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자신과 건이 빠져도 천연회가 그들에게 당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날 천연회의 모두가 접속을 했는데 짭새 역시 천연회로 찾아왔다.

천연회의 회주인 악비가 회의를 주관했다.

"현수는 천연회의 문파원으로 등록되지 못했다. 황궁인은 무림의 문파에 가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만사귀 역시 빠졌다. 그는 모산파에 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해요?"

수금인은 걱정이 되는지 악비에게 물었다. 사실상 현수가 천연회 전력의 20%를 감당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또한 천연회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만사귀 역시 빠지면 상당한 전력 차이가 나게 된다.

"그 문제에 대해서, 강소성에서 우리와 연합한 문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변하는 것은 없다. 우리의 모든 계획은 만사귀가 알아서 할 거야. 그리고 강소성 연합은 앞으로 공성을 두고 현수에게 청부를 해 상대의 전력을 약화시키기로 결정이 났다. 그리고 앞으로 강소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오밀문에서 최대한 밖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을 거야."

"음! 그거 생각보다 괜찮네요. 서로가 동맹이라는 것이 표가 나지 않을 테니……!"

건은 괜찮은 생각이라 여겼다. 강소성의 문파들이 눈치를 채기 전에 강소성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은, 방각이랑 혁무기가 우리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손을 뻗히기 시작했다. 이미 화화와 역발산이 방각이와 무기를 만났는데, 그 둘은 현수와 건을 이겨 자신들이 천에서 최고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린 후, 우리에게 자신들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짭새가 악비의 말을 듣고 손을 들었다.

"방각이는 몰라도 혁무기는 진짜 강합니다. 그는 검황의 전진을 이었습니다."

모두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럼, 혁무기는 검황의 무공을 얻고 방각이는 천마의 무공을 얻었단 말이지?"

짭새는 악비의 말에 놀라 그를 보았다. 방각이 천마의 무공을 얻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함께 사냥을 해서 알아볼 수 있었어."

별거 아니라는 듯 현수가 말했다.

"그럼 혼자 나올 것인가, 아니면 문파원들을 끌고 나올 것인가가 문젠데……."

역시나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들 개개인의 문제도 그렇지만 문파원들까지 끌어들인다면 천연회로서는 고전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운이 없으면 모두 한 번은 죽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일단 한 번 만나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악비는 필요 없는 출혈을 피할 생각이었다.

"후후! 방각이가 천마의 무공을 얻더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군요."

현수의 한 마디에, 조용히 넘어갈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짭새는 현수를 알고 있었다. 현수가 얼마나 강한지……. 방각이 아무리 천마의 무공을 얻었다 해도 결코 호면객인 현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현수는 베타 시절 역시 최고였지만 지금도 최고다. 자신 역시 현수 앞에서 주눅이 든 것처럼 방각 역시 현수 앞에서 그럴 것이라 확신했다.

또한 현수는 목숨을 건 싸움을 수없이 해 본 사람이다. 상대가 수백이든 수천이든 상관치 않았다. 오직 목표를 정하면 끝을 보는 싸움을 했다.

그렇기에 그의 지독함에 또 잔인함에 고개를 흔든 것이다.

하지만 방각은 그러지 못했으리라. 천마의 무공을 얻고 나서 얼마나 많은, 목숨을 건 싸움을 했는지는 몰라도 현수보다는 적었을 것이다. 또 현수에게는 환술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짭새였기에 현수의 말에 공감했다.

"너무 조용히 있었던 것 같다. 고작 무기가 나에게 검을 겨눌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건 역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봐,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은 좋지 않아."

악비는 걱정이 되는지 두 사람에게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악비는 두 사람을 믿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곧 공성이라는 큰 먹이를 놓고 혹여 두 사람을 잃으면 천연회는 빛을 보기도 전에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결코 먼저 찾아가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먼저 검을 겨눈다면 그때는 한번 어울려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현수는 웃으며 말했다. 건 역시 미소를 지었다. 역발산과 화화공자는 속으로 뜨끔했다. 만약 300만 원에 팔려 갔더라면…….

생각하기도 싫은지 몸을 떠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해. 굳이 나서서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장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으면 한다."

"무슨 문제라도……!"

"문제는 없지. 우리가 있는 구룡현에서 서당과 의원 그리고 대장간과 포목점을 열 생각이다. 알고 있겠지만 의원은 장금이가 맡기로 했고 대장간은 순돌이 아빠가, 포목점은 앙드레김밥이 맡기로 했다. 그리고 서당은 현수가 맡아 주었으면 한다. 그래도 장원에 급제한 놈이니 말이야."

"네에?"

악비의 말에 현수는 악비를 보았다.

"지역의 공헌도를 생각하고 하는 일이니 싫다고는 하지 마."

지역의 공헌도!

어떻게 보면 NPC와 문파의 호감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개인이 NPC와의 호감도를 가지듯 문파 역시 지역의 공헌도가 높아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 또 앞으로 공성에서 지역을 차지하더라도 반란이나 세율 등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전 황궁인이라 황궁으로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모르고 또……!"

차마 구미호의 복수를 해야 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해."

강압적인 악비의 말에 고개를 숙이는 현수였다.

"강소성에서 필히 해결해야 할 문파가 2개 남았다. 하나는 만수문이고 또 하나는 금정산사다. 하오밀문에서 두 문파에 대해 조사한 것을 만사귀가 분석했다. 만사귀의 말이 끝나는 대로 우리는 공성 체제로 들어간다."

만사귀는 두 문파에서 대해서 자신이 분석한 것을 모두 이야기했다.

수아와 이화 그리고 혜련이는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러지 못했다. 빠른 진행에 잠시라도 놓칠까 싶어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만수문보다는 금정산사가 더 위험하다는 말이지?"

"그래. 아무래도 뒤에서 밀어주는 문파가 있는 것 같다. 그 문파가 서장의 소뇌음사 같기도 하고……!"

"음! 하긴 사사혈천의 간세가 심어진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겠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사사혈천의 이벤트를 시작해서 많은 문파들이 피해를 보았으니 공성의 패치가 되고, 그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고 서장을 불러들이면 그들은 손쉽게 천의 대륙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금정산사를 우리가 먼저 치잔 말이지?"

만사귀는 공성이 시작되기 전에 사전에 위험 요소들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봉황산정과 함께 금정산사를 치는 동안 솔악문과 진중파가 만수문을 견제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오밀문은 강소성에서 빠져나가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기로 이미 약조가 되어 있습니다."

하오밀문에서 정보를 차단시켜 주면 충분히 소리 없이 강소성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예상 피해는?"

"우리의 전력을 모두 보이면 금정산사를 잡는 데는 피해가 없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짭새까지 합류한 상태이니 베타 시절 때 사용하던 천마파멸진을 사용하면 빠르게 금정산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수는 천마파멸진이라는 말에 인상을 썼다. 만사귀가 말하는 천마파멸진은 오직 한 사람을 잡기 위해 만사귀가 직접 만든 2개의 검진 중의 하나였다.

그 주인공이 바로 현수였다. 현수는 이 진을 상대하다 거의 죽음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만큼 무서운 진이었다.

"현수 인상 봐라."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니까."

수아는 궁금한지 건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현수가 인상을 썼는지…….

"천마파멸진은 만사귀가 만든 검진인데 그 대상이 바로 현수였어. 현수는 그 진에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갔고 사력을 다해서 진을 피해 달아났지. 아마 현수가 싸움 중에 도망간 것은 그때가 처음일 거야. 물론 그 뒤에는 현수의 보복으로 인해 모두 현수에게 두 손을 들었지만 말이야. 진법 자체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수아는 궁금해졌다. 과연 일마 이현수를 도망치게 만든 진법의 위력이……. 하나, 그것 역시 곧 있으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좋아, 그렇게 해. 우리가 금정산사를 공격할 날짜를 먼저 알려 주고 연합 문파들에 준비하라고 일러두는 것으로 이번 회의는 마무리하지."

모두가 자리에서 떠나고 건과 현수 그리고 만사귀만이 남았다.

"할 이야기가 있을 텐데."

만사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다 알고 있어. 현모 때 화장실에서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제야 만사귀가 하는 말을 이해한 현수는 조금은 미안한지 만사귀를 보고 말했다.

"미안해,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야. 분위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어."

현수는 이들에게 미안했다.

"애들에게는 말하지 마라. 악비 형님께는 우리가 따로 말할 테니 말이야."

"사실 나 역시 너희들과 마찬가지야. 내년에 시간 강사로 강의를 해야 되거든.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천연회의 주요 전력이 다 빠지게 되었으니 말이야."

세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천연회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만사귀. 그리고 천연회의 오른손과 왼손이라 할 수 있는 건과 현수. 비록 세 사람일지라도 천연회의 전력에 있어 엄청난 손실이었다.

"2년만 버티면 복귀한다. 그 정도 버틸 수 있게 최대한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돼. 그리고 중간 중간 접속하니, 뭐! 괜찮지 않을까?"

건은 편하게 생각했다. 현수 역시 룸넷을 하더라도 접속을 할 생각이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룸넷이 어느 정도 안정될 때까지는 접속하지 못하겠지만…….

"야! 넌 그래도 시간이 남잖아. 너라도 버티고 있어야 우리가 복귀할 때 편하지."

"내가 문젠가, 애들이 문제지. 모두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받으면 어떻게 하지?"

만사귀는 조금 과장되게 몸을 떨었다.

"뭐! 힘으로 누르지. 그나저나 혁무기는 어떻게 할 거야?"

현수에게는 우선순위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금정산사를 방문하고 그다음 방각을 손본 다음, 구미호의 복수를 위해 소뇌음사로 갈 생각이었다.

건은 현수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형님은 참으라고 하지만 한 번 정도는 밟아 줘야지. 그래야 애들에게도 피해가 없을 것 같다. 너 역시 나와 같은 생각으로 아는데……."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 물어보자."

만사귀는 지금까지 궁금했던 것을 현수에게 물었다. 바로 호면객에 대한 질문이었다. 만사귀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수 말고는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 혹시 현수가 호면객이 아닐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현수, 네가 호면객이야?"

"어엉?"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NPC라고 생각하기에는 호면객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럽거든."

현수는 건을 보았다. 현수의 시선을 따라 만사귀 역시 건을 보았다.

"설마……!"

"아니다. 내가 아니라 저놈이 맞다."

호면객으로 오인을 할까 싶어 현수가 호면객이라 빠르게 말하는 건을 보고 현수는 인상을 썼다.

"휴! 내가 호면객 맞아. 짭새도 알고 있으니 뭐……. 그런데 역발산에게는 알리지 마라."

자신의 생각대로 현수가 호면객이 맞다고 하니 돈 문제부터 꺼내는 만사귀였다. 옛날 부적을 팔아 피 같은 돈을 애들과 나눈 것에 대한 보복의 일종이었다.

"그럼…… 현상금은 어떻게 나눌까?"

"미안한데 나에게 붙은 현상금은 창업 자금이라 너희들이 노리면 난 싸울 수밖에 없어. 악비 형님 말 들었지? 난 문파에서 빠졌다고……."

현수로서는 강수였다. 현상금이 아니면 룸넷을 하기에 돈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만사귀는 현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했는지 웃으며 말을 했다.

"대충 그렇게 나오리라 짐작했어. 그런데 호면객이라는 캐릭터는 정말 매력적이란 말이지. 이렇게 하자. 우리 셋이서 나누자. 지금의 현상금 40만 냥은 현수 네가 갖고, 건이 호면을 사용해서 혁무기를 손보면 현상금은 더 올라가겠지. 그리고 현수 너 역시 호면을 사용해서 방각을 손보면 더 올라갈 거야. 현수가 호면객이라는 것을 내가 알 정도면 방각이나 혁무기도 짐작은 하고 있겠지. 호면객을 이용해서 천연회의 모두가 호면객이라는 인식을 그들에게 심어 주면 그들은 천연회를 건들지 못할 거야. 그리고 건이 현수를 잡아 현상금을 타는 거야. 얼마나 올라갈지는 모르지만 일단 현수 너, 창업 자금 빼고 남는 돈은 셋이서 공평하게 나누는 것으로. 어때?"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정도와 사도의 최고수들이라 그 둘을 잡으면 얼마가 더 올라갈지 모르니 현수에게는 더 좋은 조건이었다. 현상금이 올라가면 인테리어를 더욱 깔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창업 자금을 뺀 나머지 금액이라 했기에, 아직 확실치 않은 금액이니…….

"좋아, 건이 넌 어때?"

"나야, 공돈 들어오는데 좋지. 그런데 짭새가 그냥 있을까?"

"짭새는 말 못 해. 나에게 한 번 밟혔거든. 그리고 짭새는 내가 알아서 따로 무엇인가 해 주면 되지."

이렇게 세 사람은 모종의 계획에 합의했다. 만사귀는 이들이 방각과 혁무기를 보다 쉽게 잡게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자신의 몫을 다할 생각이었다.

* * *

"크크! 고작 사사혈천의 광소가 무림의 떨거지들에게 당하다니……."

1황자의 모습을 한 만사신군에게는 재미있는 관심거리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다.

"합찰뇌!"

"네!"

파라극의 뒤를 이어 소뇌음사의 주지가 된 합찰뇌의 대답은 지극히 공손했다.

"아나타의 소식은?"

"호면객을 찾았다는 소식 이후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어쩌면 호면객에게 당했을지도……!"

조심스럽게 말을 줄이는 합찰뇌였다. 그만큼 그 역시 만사신군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음! 호면객이 그만큼 강하다는 말이로구나."

"하오나 대제님께서는 반딧불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만사신군이 이내 입을 열었다.

"크크! 좋아, 금정산사에 연락해서 강소성을 장악하라고 전해라."

"네! 알겠습니다."

합찰뇌는 빠르게 신형을 돌려 만사신군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만큼 마주하고 있기 두려운 존재였다.

"크크! 호면객이라……. 재미있군."

만사신군은 예전에 정빈이 사용하던 별채로 향했다.

"누님!"

영취 군주가 그곳에 있었다.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크크크!"

"이 금수만도 못한 놈! 난화를 어떻게 했느냐?"

"크크! 난화는 잘 있습니다. 그나저나 누님의 미모는 갈수록 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영취는 자신의 몸을 훑어보는 만사신군의 시선에서 모욕감을 느꼈다.

"크크! 누님의 미모가 더해 갈수록 누님을 취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듭니다, 크크크!"

"이, 이!"

영취는 몸을 떨었다.

"크크! 곧 그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크크크!"

몸을 돌려 나가는 만사신군을 보고 입술을 깨무는 영취 공주였다. 그리고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공……."

만사신군이 별채를 벗어나 간 곳은 소뇌음사의 지하 광장이었다. 옛날 환희영생단을 키우던 곳이었다.

"크크크! 황궁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참기 힘들군."

만사신군은 영취 공주를 만날 때마다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지하 광장으로 내려간 1황자는 새로 키우는 환희영생단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크크!"

"대제를 뵈옵니다."

만사신군을 보고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난화 공주였다. 그녀는 속이 비치는 나삼만을 입고 있었지만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크크! 난화야, 그래 어떠냐?"

"중원으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사신군은 난화 공주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아 자신을 향해 당겼다. 난화 공주는 못 이기는 척 그의 힘에 이끌려 품에 안겼다.

"크크! 환희영생교의 신녀로서 이 오라비를 실망시키지 말았으면 하는구나."

"으, 음……!"

처음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난화 공주의 모습이었다. 마치 잘 길들어진 애완동물처럼 순종하는 모습이었다.

"크크! 곧 현수 그놈을 잡아 너의 노리개로 만들어 주마."

"아, 감사합니다. 대제님!"

현수라는 말에 난화 공주의 눈에서 살기가 일어났다.

* * *

소뇌음사의 전서구를 받은 금정산사는 강소성을 차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솔악문과 진중파 그리고 만수문을 제외하면 크게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봉황산정이 이미 누군가에게 왕창 깨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라 봉황산정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하오밀문이 강소성에 자리를 잡았다고 들었지만 그들은 있으나 마나 한 문파입니다."

"음! 솔악문과 진중파라……!"

"그동안 알아본 결과, 솔악문의 문주는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진중파보다는 솔악문을 먼저 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암살자들에게 청부를 넣어 솔악문의 문주를 납치한 후에 협박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금정산사의 주지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사혈천의 난이 끝난 후, 강소성을 차지하기에는 지금이 적기였다.

사사혈천의 난이 있었지만 자신의 문파에는 전력의 손실이 없었다. 비록 강소성에는 진중파와 솔악문 그리고 만수문, 새로이 떠오르기 시작한 모산파가 있었지만 각개격파라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하오밀문이었다.

금정산사의 주지승은 하오밀문의 전력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정보력이 두려운 것이었다. 그들 역시 떳떳하게 강소성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면 분명 무엇인가 준비한 것이 있을 것이다. 또 자신들이 다른 문파를 치기 위해서 움직일 때 조용히 있으란 법도 없었다. 아무리 조용히 움직여도 하오밀문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먼저 움직이면 잡혀 먹는 그런 형상이었다. 어찌 보면 절대적으로 강한 문파가 없는 강소성의 특수성으로 인해 미묘하게 균형이 잡혀 있는 상태였다.

"크악!"

"적이다! 봉황산정의 낭인들이 쳐들어왔다."

금정산사의 주지승의 생각을 깨운 것은 다름 아닌 비명 소리였다. 회의를 열고 있는 장로들은 놀라며 밖으로 달려 나가 상황 파악에 나섰다.

"크아아악!"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금정산사의 무승들을 베고 있는 무인들은 다름 아닌 봉황산정의 낭인들이었다. 천연회는 먼저 봉황산정의 낭인들을 앞세워 혼란을 야기시킨 다음 순식간에 금정산사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이놈들!"

금정산사의 장로들은 분노에 몸을 떨며 봉황산정의 낭인들을 향해 쇄도해 나아갔다.

채에엥!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만이 늦은 밤의 금정산사를 깨우고 있었다.

"유마대수인!"

금정산사의 주지승 역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봉황산정의 낭인들에게 출수를 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기습으로 인한 탓인지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더니 장로들과 주지승의 합세로 인해 상황이 점점 변해 갔다. 결국 낭인들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맹룡강천!"

건의 도강이 금정산사의 한 무리를 강타했다. 승기를 잡아 가던 금정산사의 승려들은 갑작스러운 도강에 움직일 틈도 없이 무너져 버렸다.

콰아아아앙!

건의 공격을 시작으로 천연회의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끼어들기 시작했다. 다만 역발산은 무공을 익히는 중이라 빠져 있었다.

"팔검수화진검류!"

현수가 장로들과 장문인을 공격해 일반 승려들과 떼어 놓았다.

"헉!"

피슝우웅!

"커어억!"

조금씩 우세를 점해 가던 금정산사의 무승들은 다시 천연회의 등장으로 인해 피해를 입어야 했다.

특히 카오스의 화살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카오스는 봉황산정의 낭인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는지 봉황산정의 낭인들이 위험할 때는 어김없이 화살을 날려 보내 적에게 부상을 입혔다.

"화화와 짭새는 천마파멸진의 선두를 맡아! 카오스는 진의 중심을 유지해. 들어가! 최대한 빨리 끝내야 뒤를 막아 주는 하오밀문이 편하다. 천마파멸진, 개진!"

만사귀의 외침으로 천연회의 식구들이 하나의 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수아와 이화 그리고 혜련이는 악비의 보호 속에서 천마파멸진의 위력을 감상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장사진과 비슷했지만 일렬로 늘어선 진의 처음과 끝이 모호할 정도로 빠른 연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화화공자는 주작의 무공, 짭새는 패황신군의 군림패황권을 앞세워 빠르게 금정산사의 무승들을 제압해 나아갔다.

"크아악!"

화화공자와 짭새로 인해 많은 무승들이 쓰러지자 장로들은 협공으로 두 사람을 공격해 들어왔다.

"화령진기!"

"패황무적 팔만사천권격술!"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일어나는 기의 소용돌이에 무승들의 승포 자락이 펄럭이고 내력이 약한 이들은 기의 충돌을 이기지 못하고 내상을 입어야 했다.

"쿨럭!"

화화공자는 한 모금의 피를 토해 냈다. 하지만 그 둘을 공격한 장로들은 이미 피범벅이 되어 믿기지 않는 눈으로 두 사람을 보고 서 있었다.

"믿을 수가……!"

퍼어어엉!

그러고는 피가 몸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하나둘 차디 찬 바닥에 쓰러졌다.

장문인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것처럼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오늘 금정산사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하지만 이들이 누군지 알고 죽어야 덜 억울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네놈들은 누구냐?"

한쪽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악비가 나섰다.

"소뇌음사의 앞잡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리고 우리가 누군지 물었나? 우리는 중원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지. 결코 소뇌음사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어떻게……!"

악비는 짐작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듣는 금정산사의 주지승은 그게 아니었다.

금정산사의 주지승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두 손으로 천개령을 찍어 자살해 버렸다. 남아 있던 무승들은 끝까지 저항했지만 만사귀가 만들어 낸 천마파멸진을 끝내 넘어서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만수문을 공격한 솔악문과 진중파 역시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만수문을 제압할 수 있었다.

소문이 밖으로 새 나가는 것을 하오밀문은 철저하게 막았지만 완전히 막지 못했는지 다른 성들의 유저들 역시 서서히 움직일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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