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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산의 죽음으로 악비를 얻다 (40/57)

역발산의 죽음으로 악비를 얻다

"왜 안 된다는 말인가요? 이 나라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데 그냥 보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마마! 그것이 아니옵니다. 당가를 비롯해 구파일방의 무림인들이 사사혈천의 무리를 다시 탑리목 분지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또한 예부터 황궁과 무림은 서로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마마께서 사사혈천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무림과의 약조를 어기는 셈이 되옵니다. 그럼 무림은 더 이상 황궁을 존중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마마."

현수는 사사혈천을 막으러 가자는 공주를 만류하고 있었다. 수빈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흥, 그들이 황궁을 존중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아바마마께 연락해서 황궁의 군사들을 이끌고 무림을 쓸어버리라고 하면 그만이에요. 지금은 고통 받는 백성들을 생각할 때입니다."

"마마, 그들 역시 이 땅의 백성들이옵니다. 또한 무림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였사옵니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으나 수년 안에 세외의 무리 역시 중원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허면 그들을 누가 막겠사옵니까."

"그래서 이 공은 사사혈천의 간악한 무리가 중원으로 넘어와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자는 말입니까."

구구절절 백성을 위해 말하는 수빈은 영락없는 NPC였다.

"아니옵니다. 그냥 보고만 있자는 것이 아니옵니다. 다만 무림의 일은 무림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또한 황궁에서는 그저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옵니다. 무림이 사사혈천의 무리를 막지 못했을 때, 그때 황궁에서 황군을 동원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더 이상 수빈은 현수에게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현수의 말에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하나 그냥 넘어갈 수빈이 아니었다.

"그래요, 알겠어요. 이 공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하나, 만일 무고한 이 땅의 백성이 피해를 볼 때는 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공을 비롯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삼족을 멸할 것입니다."

"마마!"

차갑게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수빈을 보고 현수는 앞이 깜깜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휴!"

금릉의 밤은 깊어만 갔다. 현수는 천연장에 조그마하게 만들어 놓은 정자에 앉아 달을 쳐다 보았다. 낮에 수빈과의 말싸움이 피곤했던지 조금은 힘이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아가씨!'

품안에서 피리를 꺼내 입에 가져다 대었다.

삐리리, 삐리리.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천연장의 주위에 퍼지기 시작했다. 천연장의 사람들은 현수의 피리 소리를 듣고 있었다.

"고운 소리군요."

언제 왔는지 옆에서 수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현수는 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낮에 있었던 말싸움이 생각났는지 인상을 쓰고 있는 현수를 수빈은 볼 수 없었다.

"마마의 귀를 어지럽게 했사옵니다."

"그래요, 그러니 이 공은 한 번 더 피리를 불어 보세요."

현수는 다시 피리를 불었다. 그 옛날 구미호가 가르쳐 준 그 노래였다.

"소리에 애절함이 담긴 것 같군요. 무엇이 그렇게 이 공을 애절하게 만들까요?"

"마마, 개인적인 사정이옵니다."

현수의 피리 소리에 수아 역시 밖에 나와 있었다.

"현수 오빠에게 저런 모습도 있었네."

수아의 눈에는 현수와 공주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려 보였다. 피리를 부는 현수와 그 소리를 감상하는 금릉의 밤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천연장의 하루는 그런 대로 지나갔다. 현수는 미령의 남동생에게 학문을 가르쳤고 수아는 여동생에게 수지천율이라는 무공을 가르쳤다.

그런데 천연회가 사사혈천의 이벤트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터졌다.

"악비 형님의 전서구다."

"문제가 생겼어?"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사사혈천의 함정에 빠졌대. 구원을 요청할 만한 곳이 없다고 우리에게 연락이 왔다. 아마 형수님께서도 그곳에 있나 보다."

남궁세가를 위해서라기보다 악비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도 천연회는 남궁세가를 도와야 했다. 베타를 거친 유저들에게 악비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상당했다. 비록 지금은 남궁세가에서 말지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었다.

"악비 형님이 먼저 떠났으니까, 건이가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라. 난 공주와 여기에 남을 테니."

"그래! 지금 가는 것이 좋겠지?"

만약 수빈이 알고 따라간다고 난리를 치면 시끄러워질까 싶어 수빈이 모르게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지금 가라. 공주가 따라간다고 하면 골치 아프다."

모두 떠날 준비를 하고 막 천연장을 벗어나려고 할 때, 수빈이 나타났다.

"어디를 가느냐?"

"친구가 위험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를 구하기 위해 나가는 길입니다. 마마!"

수빈은 건수 하나 올렸다고 생각하고는 천밀위 산에게 명을 내렸다.

"나의 말도 준비하라. 내가 친히 가 이 공의 친구를 구하겠다."

산이 서둘러 수빈의 말을 데려오기 위해 한쪽에 마련된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당황한 건이 나서서 수빈을 말렸다. 이 철부지 아가씨를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해 오는 것 같았다.

"마마, 마마께서는 저기 이 공과 함께 천연장에 계셔야 하옵니다. 혹시 마마께서 부상이라도 입으시는 날에는 황제 폐하께서 우리를 경치실 것이옵니다."

건이 공주를 말리는 틈을 타, 모두 천연장을 벗어났다. 수빈은 현수를 찾아 붙잡고 늘어졌다. 그 틈을 이용해 건 역시 천연장을 빠져나갔다.

"이 공, 나도 저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데리고 저들의 친구, 아니 이 공의 친구를 구하러… 헛!"

현수는 그런 공주에게 용천검을 내밀었다. 수빈과 함께 생활하면서 현수는 벌써 수빈을 통제할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아니 이 공, 이게 무슨……."

"공주는 명을 받으라."

용천검을 대하는 수빈은 고분해졌다. 자신은 지금 영취 공주의 NPC를 가장하고 있어 용천검의 권위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소녀, 군의 명을 받사옵니다."

"그대는 나와 이곳에 머물며 저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라."

공주와 현수만이 천연장을 지키고 있었다. 똑같은 날이 반복되자 수빈은 조금씩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흥! 감히 용천검을 앞세워! 두고 보자."

수빈은 밤을 틈타 천연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런 수빈 의 앞에 령이 나타났다.

"마마, 용천검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반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현장에서 이 공이 마마의 죄를 물을 수도 있사옵니다. 잘못하면 황후 마마와 황자 폐하까지 함께 경치실 것입니다."

수빈는 령의 말에 천연장의 탈출을 포기했다. 령은 뜻밖의 말로 수빈의 마음을 위로했다.

"조금 천한 방법이지만 마마! 미인계를 한번 써 보심이… 마마의 미모는 황궁 제일 미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 마마의 눈웃음을 보고 이 공께서 마음을 돌릴 것입니다."

"령!"

"말씀하십시오, 마마?"

"넌 이현수의 무공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마마! 속하가 무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오나, 군을 이길 수 있는 무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옵니다."

수빈은 자신의 무공과 비교해 주기를 원했다.

"제왕경을 극성으로 익힌 나와 비교하면?"

"솔직하게 마마께서 반 수 밀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은 경험에서 오는 것으로 앞으로도 마마께서는 극복하기 힘드실 것입니다."

다른 유저들이라면 반 수 정도는 자신의 사기성 아이템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수에게는 자신이 없었다. 베타 시절 아흔아홉 번을 싸워 진 적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휴! 알겠다. 그대는 은밀히 나를 따라 보호하라. 물러가라."

"예!"

령은 방을 빠져나가고 수빈은 혼자 방에 있었다. 이때까지 일어난 사건의 중심에 현수가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조금 났다.

"헉!"

"령! 공주의 호위에만 신경 써라. 만일 공주의 신변에 작은 상처라도 있을 때에는 너를 비롯해 천밀위 전체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미유를 찾긴 했는데 인문 18관을 통과해서 나올 때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어. 그래서 데려오지 못했다."

령은 순간 현수의 말을 듣고 놀랐다. 미유를 찾았다는 말보다 인문 18관을 모두 통과했다는 말 때문이었다.

"인문 18관을 모두 통과했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리고 18관의 초상화에서 대해서 물어볼 것이 있다."

현수는 구미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다. 용천비가는 어떻게 보면 구미호가 세운 무가였다. 자신과 친밀한 문파이기도 했다.

"뇌력살천 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뇌력살천?"

구미호가 동영에서 얻은 이름이 뇌력살천이었다. 뇌전의 기운이 담긴 일초식의 검을 사용한다 하여 얻은 이름이었다.

"그렇습니다. 뇌력살천 님께서는 처음 8명의 제자를 두었습니다. 동영의 살수 8대 무가는 뇌력살천 님의 제자들이 세운 무가입니다. 우리 용천비가의 초대 가주님께서는 뇌력살천 님의 대제자였습니다. 저희 용천비가뿐만 아니라 8대 무가 역시 인문 18관과 같은 수련 관문을 설치해 제일 마지막 관문에 뇌력살천 님의 초상화를 두게 했습니다."

동영의 살수무가는 구미호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그래, 뇌력살천이라… 고마워! 그리고 미유는 아마 중원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으니 내가 한번 알아볼게."

"감사합니다."

현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령은 돌아가는 현수를 보며 오른손을 심장에 대고 두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숙였다. 살수들이 살황을 보면 대하는 행동이었다.

수빈은 미인계를 사용해 무림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이미 섭혼술과 미염술을 통달한 현수는 요지부동이었다.

"이 공!"

"마마, 안 되옵니다."

수빈은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다. 무림으로 가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현수를 협박했다. 그런 수빈의 행동이 현수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휴!"

"그럼, 가셔서 저의 말을 꼭 들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꼭 이 공의 말을 듣겠습니다."

현수는 건에게 공주와 함께 사천당가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전서구를 보내고 그곳의 일이 끝나면 장원을 옮겨 줄 것을 당부했다.

현수와 공주는 사천에 있는 당가로 향했다. 독황문과 대치하고 있는 곳을 알고 그리로 향했다. 독황문과 대치 상태에 있는 당가로 가서 수진을 조금 도와주고 다시 천연장으로 돌아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가와 독황문은 독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이라 소리 없는 전투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독황문이 독을 풀면 당가에서는 독을 해독하여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사사혈천과 무림의 싸움보다 더 치열했다.

"어서 오세요, 오빠."

수진은 스포츠 센터에서 함께 운동을 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수진은 두 사람을 당가의 가주에게 안내했다.

"그분이시냐?"

"네, 가주님!"

당가의 가주 당시현! 무리에서 무공으로는 크게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못하나, 독에 관해서는 무림 최고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은인을 뵙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당시현의 모습에서 현수는 그 역시 사사로운 무림의 관례를 벗어난 인물임을 알아보았다.

"아닙니다, 당가의 피해가 없어 다행입니다."

현수는 당시현에게 형식적으로 인사했지만 당시현의 표정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이들이 사사혈천의 첩자라니 잘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현수의 도움으로 당가는 피해 없이 독황문을 막을 수 있었다.

"이분은……."

"공주 마마십니다."

공주라 불리는 수빈에게 무림의 인사법으로 인사를 했다. 이는 공주를 황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1명의 무림인으로 대우하는 행동이었다.

"공주 마마를 뵈옵니다. 이곳은 위험하니 당가로 가심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여기 이 공께서 저를 지켜 주실 것이고, 저 또한 황궁에서 무공을 익혔습니다. 백성이 고통을 당하는데 어찌 저만 편히 있겠습니까."

수빈 역시 무림의 인사법으로 당시현에게 인사하며 자신 역시 한 팔 걷어 돕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닙니다. 비록 독황문이 강하다고는 하나 우리 당가에 비하면 한 수 아래입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당가에 가셔서……."

"더 이상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저를 공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무림인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가주께서 저에게 대례를 올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시현은 수빈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공주 마마는 제가 보호할 테니 가주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또한 독황문은 사사혈천과 함께하기에 비록 당가보다는 아래의 힘을 가지고 있는 문파지만 조심은 해야 할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은인의 도움에 감사를 드립니다."

당시현은 자리를 떠나 주위를 살폈다. 공주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독황문에서 알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모두에게 입단속을 철저히 하라 명했다.

"당가의 명월이 마마를 뵈옵니다."

"안녕하세요, 무림에서 십룡오봉 중의 1명인 명월 님,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요?"

현수는 지금의 상황을 묻고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음, 그러니까 독황문의 주 세력은 막고 있지만 중간에 사사혈천에 합류한 세력은 놓쳐 버렸다는 말이네요."

"네, 오빠! 그로 인해 남궁세가가 위험에 처했다고 들었어요. 달려가고 싶지만 지금 우리의 사정도 좋지 않아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수빈은 현수와 수진의 대화를 통해 당가 역시 사사혈천의 간세를 찾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번 이벤트 사건의 중심에는 현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괜찮을 거예요. 친구들이 남궁세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으니까요. 다른 놈들은 못 믿어도 건이는 믿을 만하거든요."

수진은 친구들이 함께 갔다는 말에 안심했지만, 여전히 조금은 불안했다. 상대는 사사혈천과 독공을 사용하는 독황문이기 때문이다.

수빈은 현수와 수진의 대화에서 이번 이벤트 사건의 주모자가 현수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사사혈천을 움직인 것은 일마 이현수의 짓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간세가 심어졌다는 것을?"

수빈은 자신의 아이템을 착용한 다음, 주위를 살펴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호호, 내가 독황문을 처리해 주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겠지. 그럼 사사혈천을 막으러 간다고 해도 반대하지는 않을 거야."

수빈은 당가의 진형을 떠나 독황문의 진형으로 들어갔다. 수빈은 독황문을 처리해, 그 빌미로 사사혈천의 본진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 몇 명 보이지 않는군!"

수빈은 독황문의 경계 무사들에게 접근했다. 빠르게 검을 뻗었다.

"죽어라!"

슈슈슈슈슈!

"크악!"

독황문의 경계 무사가 수빈의 검에 쓰러졌다. 조용한 밤에 울리는 경비 무사의 비명을 시작으로 수빈과 독황문의 많은 무사들이 싸움을 벌였다. 한편 당가의 진형에서는 수빈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급히 찾아 나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공주가 사라지다니!"

"그게… 잘 모르겠어요. 분명 공주가, 정해 준 막사로 들어갔는데 안 보여요."

수진은 무엇이 그리 미안한지 현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치겠네."

"은공! 은공!"

밖에서 급히 부르는 소리를 듣고 현수는 밖으로 나갔다. 당가에서 정보를 담담하고 있는 이였다.

"조금 전, 적의 진형에서 싸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 여자라고 합니다. 아마 그분이……."

현수는 그 여자가 공주일 거라고 생각했다.

"령!"

"부르셨습니까, 군?"

나타난 령 역시 이 모든 말을 듣고 있었다. 수빈의 대책 없는 행동에 령 역시 조금은 불안했다. 현수의 질타로 불안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부하를 어떻게 교육시킨 거야! 공주가 독황문와 싸우고 있다고 한다. 공주가 저들과 싸우러 가기 전에 너의 수하들이 공주를 말려야 하는 것 아니야?"

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공주가 잘못되면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모두 죽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어리석은 너의 수하들 때문에 수많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왜 몰라? 폐하께서 황군을 동원해 이번 일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죄송합니다, 군!"

고개를 들지 못하는 령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해 댈 뿐이었다.

"너, 빨리 달려가서 공주를 보호해. 만일 공주의 옥체에 작은 생체기라도 있으면 내 친히 천밀위 전체를 벌할 것이니까. 빨리 가!"

순간 천밀위의 신형이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공주의 일은 우리 황궁인들이 처리하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수는 이들에게 말하고 뒤돌아 독황문의 진형으로 넘어갔다. 사태의 심각성을 안 수진은 당가의 가주를 찾아갔다.

"그게 사실이냐?"

"네! 가주님. 그러니 당가를 움직여 적 진형에서 싸우고 있는 공주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 당시현은 당가를 움직일 수 없었다. 물론 공주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일 이곳에서 당가를 움직여 공주를 구하러 가면, 그 틈을 노려 독황문의 무리가 이곳을 치고 중원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중원에는 더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당가를 움직일 수는 없다. 공주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독황문의 세력이 중원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일 독황문의 세력이 중원으로 넘어간다면 수많이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수진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공주였다. 자칫 잘못되면 당가는 무림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주가 혹시라도 독황문의 세력에 죽임을 당하면 황제는 그 책임을 우리 당가에 물어 당가를 멸문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당시현의 결정은 쉽지가 않았다.

"휴."

"가주님!"

"미안하다. 만일 공주가 독황문에게 죽어 당가가 황궁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한다 하더라도 움직일 수 없다."

당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철부지 한 사람 때문에 자신의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해도 어쩔 수 없었다. 자신들의 뒤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가 십이수十二手를 너에게 붙여 주겠다. 혹시 모르니 피독주를 챙겨 그들과 함께 공주를 구하러 가거라. 공주를 구하면 곧바로 돌아와야 한다."

당시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 당시현 역시 일국의 공주가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명월의 이름을 걸고 꼭 공주를 모시고 돌아오겠습니다."

수진과 당가 십이수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 독황문의 세력을 향해 떠났다.

* * *

수빈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것인지 모른 채, 몰려드는 독황문의 무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흥!"

수빈은 독황문 무사들의 검을 몸으로 막았다. 자신의 사기성 아이템을 믿고 행동했다. 독황문의 무사들의 검은 수빈의 방어구에 의해 튕겨 났다. 그 틈을 이용해 수빈의 검이 독황문의 무사들을 베어 넘겼다. 하지만 수빈 역시 지쳐 가고 있었다.

"보갑에 보검이라! 누구의 여식인지 몰라도 겁을 상실했군."

"탐이 나기는 합니다."

독황문의 문주 만독신마와 그의 아들 맹허량이 수빈을 보고 있었다. 만독신마는 수빈의 아이템에 욕심이 났다. 하나 맹허량은 아이템이 아닌 수빈의 미모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야들한 것이?생각만 해도 살이 떨리는군."

아버지가 옆에 있어도 상관없는 듯 몸을 꼬며 수빈이 잡히기만을 기다리며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만독신마는 그런 자신의 아들을 보고 한심한지 그에게 수빈을 잡으라고 명을 내렸다.

"무사들의 피해가 심하다. 너는 가서 독으로 제압해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나 독보다는…… 이것! 흐흐흐, 환희쾌락산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몸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보였다. 만독신마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했다.

맹허량은 수빈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싸우고 있는 공주를 향해 다가갔다.

"휴! 늦게 낳은 것을 오냐오냐 했더니……."

만독신마는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맹허량은 수빈에게 다가갔다.

"대단하군. 그러나 이제 그만 해도 좋다."

"흥! 내 오늘 너희 독황문의 세력을 이곳에서 쫓아낼 것이다."

맹허량은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음흉한 미소를 짓는 그였다.

"흐흐흐, 잠시 후면 나에게 간절하게 부탁할 것이다. 받아라!"

수빈을 향해 환희쾌락산을 던졌다.

"어딜!"

수빈은 검으로 주머니를 반으로 갈랐다. 주머니에서 뿌려지는 가루들을 수빈은 덮어쓰고 말았다.

"흥! 이 정도로 나를 어떻게 해 보려고 했느냐?"

수빈은 당당하게 소리치고 검을 겨누었다. 하지만 맹허량의 눈은 수빈의 몸을 훑어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낀 수빈은, 마치 벌레가 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맹허량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놈이…… 헉!"

수빈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맹허량을 보는 수빈의 눈에 살기가 강하게 흘러나왔다.

"이, 이놈!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좋은 짓! 잠시 후면 나와 떨어져 못 산다고 애원할 것이다, 하하하."

맹허량은 잠시 후의 행복한 시간을 생각하는지, 그의 입가에는 음탕한 미소가 그려졌다.

"잡아라!"

독황문의 무사들은 수빈을 향해 공격했다. 수빈은 내공을 끌어 올려 약의 기운을 억제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독황문의 무사들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크악!"

"움직이면 죽는다."

수빈을 뒤쫓아 온 천밀위 산을 비롯한 3명의 천밀위사가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났다. 무사들을 베어 넘기는 산을 보며 인상을 쓰는 맹허량이었다.

"이건 또 뭐 하는 잡종이야!"

행복한 시간이 조금 늦어진다고 생각하자, 짜증이 났는지 맹허량은 산을 향해 욕을 했다. 산은 그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빈의 상태를 살폈다.

"마마!"

"괜찮다, 이곳을 빠져나가자."

수빈은 내공으로 약의 기운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 힘이 드는 듯 보였다.

"알겠습니다,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곳을 빠져나가겠습니다. 길을 열어라."

"누구 마음대로, 쳐라!"

독황문의 무사들이 천밀위들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산 역시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맹허량은 이렇게 조금만 시간을 끌면 약의 기운이 수빈의 전신에 퍼질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곧 자신의 부하들을 막고 있는 놈들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밀려오는 무사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 산을 비롯한 천밀위사들 역시 지쳐 가고 있었다. 하나 이들은 사력을 다해 독황문의 무사들을 막았다.

"크악!"

천밀위사가 독황문 무사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뒤로 물러나면서 이들을 막는 천밀위사 들은 산을 제외하고는 모두 쓰러졌다. 산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 물러서라!"

고작 4명을 잡지 못해 시간만 흐르는 것이 짜증이 났는지, 맹허량이 직접 산을 향해 공격을 했다.

"앙천마마천독공!"

맹허량는 급한 마음에 자신이 지닌 최고의 무공을 펼쳤다. 주색잡기에 빠져 대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위력은 대단했다.

"이런!"

산은 이를 악물었다. 내공을 모두 끌어 올려 맹허량의 공격을 막아 냈다.

"검류천막!"

천밀위들에게 내려오는 무공서 천사밀전! 그중 검으로 검막을 형성시켜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검류천막을 펼쳤다.

콰과과광!

"큭! 제길, 지치지만 않았어도."

지친 몸으로 펼친 검류천막은 맹허량의 앙천마마천독공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 내고 뒤를 보았다. 내공으로 몸속에 환희쾌락산을 억제하는 수빈의 얼굴이 보였다. 이미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수빈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흐흐, 이제 죽어라!"

맹허량의 두 손이 다시 한 번 앞으로 뻗어졌다. 산은 두 눈을 감았다. 막을 힘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공주 마마!"

산은 수빈을 감싸며 등으로 맹허량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검류천막!"

콰광광광!

눈앞에서 검류천막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수좌!"

"너의 죄는 나중에 묻겠다."

"웬 놈이냐?"

맹허량의 말을 무시했다. 또다시 나타난 방해꾼 때문에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상태는 어떠하냐?"

"안 좋습니다, 최음제에 마마께서 당했습니다."

환희쾌락산이라는 말에 천밀위의 수좌인 령은 분노했다. 고귀해야 할 분을 상대로 그런 저질스러운 물건을 사용한 맹허량을 노려보았다.

"죽여 주겠다. 황실을 업신여겨 마마를 욕보인 죄로 모두 죽여 주겠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조심해라!"

천밀위의 수좌인 령은 살수다. 비록 현수에게는 졌지만 그래도 중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급 살수였다.

"크악!"

"어디냐? 이놈! 천혈독장!"

맹허량은 수빈을 보호하고 있는 산에게 공격을 가했다.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산이 자신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천사밀전 검류천막! 으으악!"

산은 있는 내공을 다 사용해 막아 냈다. 하나 산 역시 그리 좋은 상태만은 아니었다.

"이런!"

산이 쓰러지자 령이 놀라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하, 그곳이더냐, 쳐라!"

사사혈천의 무사들은 모습을 드러낸 령에게 달려들었다. 맹허량은 눈앞의 산을 먼저 처리하기 위해서 다시 공격했다.

쾅!

"크악!"

산이 몸으로 맹허량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심한 부상을 입었다.

"크아악!"

령의 살수에 독황문의 무사들이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령은 빠르게 독황문의 무사들을 베어 넘기며 산의 곁으로 가 수빈과 산을 보호했다.

"산! 괜찮나?"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수좌! 쿨럭."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피 속에는 내장의 조각들이 함께 섞여 있었다.

"제길!"

뒤에서 강한 살기를 느낀 령과 산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현수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 난 너에게 말했다, 마마를 잘 보필하라고……."

"군!"

현수는 수빈의 상태를 보고는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령과 산에게 명을 내렸다.

"공주와 함께 당가의 진형으로 돌아가라. 너희들의 임무는 공주를 당가까지 모시는 것이다. 만일 이것조차 실수한다면 난 아마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천하의 죄인으로 만들지 마라."

현수의 모습에서 천밀위의 수좌인 령은 떨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현수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라!"

"어디서 개 잡종들이 몰려와 안방의 주인처럼 행동하느냐!"

맹허량은 현수를 보고 소리쳤다. 현수는 오히려 맹허량에게 되물었다.

"네놈이 독황문의 망나니냐?"

"이놈이……."

령과 함께 수빈을 데리고 떠나려는 산이었다.

"어딜!"

"움직이지 마라. 명만 재촉할 뿐이다."

현수의 검이 움직였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현수의 검은 순간 빛을 내며 독황문 무사 1명의 목을 날리고 있었다.

"가라! 명심해라! 너희들의 임무를!"

공주와 함께 떠나갔다. 현수는 떠나는 이들을 막으려는 독황문의 무사들을 베어 넘겼다.

"이, 이…이놈이……."

맹허량은 눈앞에서 먹이를 놓친 것이 아쉬웠는지 현수를 향해 욕을 했다.

"너희들은 애초에 사사혈천과 손을 잡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너희들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가르쳐 주겠다."

현수는 힘을 최대한 아끼면서 이들을 상대했다. 정면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살수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 그리고 호심발도술! 이것 세 가지면 충분히 이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친놈! 쳐라, 저놈의 뼈를 갈아 마셔야겠다."

눈앞에서 수빈을 놓친 맹허량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달려드는 독황문의 무사들을 비웃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놈이 사라졌다, 주변을 경계해라."

"크악!"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독황문의 무사가 쓰러졌다. 하나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살기만이 강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놈……."

"크악!"

죽어 가는 독황문의 무사만 있을 뿐, 현수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죽은 무사의 수는 10여 명이 넘고 있었다. 맹허량은 쓰러지는 독황문의 무사들을 보고 겁을 먹기 시작했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게 무사들은 하나 둘 죽어 가고 있었다.

"이놈, 나와라!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흥! 정정당당? 그러는 놈이 비겁하게 암수를 쓰냐?"

"앙천마마천독공!"

츄아아아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독장을 뿌렸으나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리석은 놈!"

"헉, 헉, 나와라!"

자신의 최고 무공을 두 번이나 사용해서 그런지 맹허량은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크악!"

자신의 공격과는 상관없이 독황문의 무사들은 계속해서 쓰러졌다. 맹허량은 서서히 공포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죽는다는 것을 느꼈다. 존재조차 찾을 수 없는 적에게 죽을 것을 예감했다.

"크악!"

그런 가운데서도 독황문의 무사들은 계속 쓰러져 갔다.

"물러나라, 본 진영으로 후퇴하라."

맹허량은 후퇴를 명하고 빠르게 돌아갔다. 그때 하늘에서 암기의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만천화우!"

"크윽!"

"당가에서 쳐들어왔다, 피해라."

만천화우의 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뒤로 물러나는 현수는 이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누구 마음대로! 그대는 공주를 욕보인 죄를 치러야 한다."

현수가 맹허량의 앞에 나타나 검을 겨누었다.

"악! 살려 줘! 살, 려, 줘!"

맹허량은 현수의 모습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뒤로 물러났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독황문의 만독신마였다. 그는 한심했다.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자신의 아들이… 또한 현수의 무위에 놀라고 있었다.

"한심한 놈! 여자에게 빠져 무공을 게을리 하더니, 그나저나 저놈은 대체 누구이기에……."

"문주님, 소주님께서……."

"알고 있다, 구해 오라."

"옛!"

조금은 어이가 없어진 현수는 맹허량을 보고 있었다.

하나 만독신마 역시 현수가 살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현수가 살황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고 그냥 물러났을 것이다.

수진은 오는 도중 수빈을 데리고 당가의 진형으로 복귀하는 령과 산을 만났다. 현수 혼자만 독황문과 싸우고 있다는 소리들 듣고 당가 십이수와 더불어 수빈을 당가까지 안전하게 모시라는 명을 내리고, 수진은 현수를 찾아 나섰다.

현수는 암기의 비가 쏟아질 때 당황했다. 설마 수진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오빠!"

수진은 현수를 발견하자 안심이 되는지 그를 불렀다.

"돌아가요, 위험하니……."

현수는 수진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수진은 함께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들을 향해 만독문의 무사들이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수진의 무공은 현수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했다. 암기에 독이 섞여 있어 그 위력은 더욱 빛이 났다.

'좋아, 때려잡는다.'

현수는 수진의 공격에 주춤하는 독황문의 무사들을 보고 결정했다. 수진이 도와준다면 다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황족을 능멸한 죄를 물어 너희들의 삼족을 멸하겠다."

수진은 현수의 말을 듣고 눈에 빛이 났다. 현실에서는 잘 몰랐는데 지금의 모습은 참으로 당당하고 박력 있어 보였다.

"황족은 무슨! 그년이 공주라도 된단 말이냐?"

맹허량은 모여드는 아군들을 보며 힘을 얻어 현수에게 소리쳤다.

"가장 먼저 너를 죽여 주지. 환영사사연혼술!"

현수의 손에서 환사의 술법이 발휘되었다.

"수진아, 지금! 만천화우를……!"

수진은 순간 놀라 현수를 보았다. 처음으로 수진 씨가 아닌 수진아로 불러 주었기 때문이다.

"네, 오빠. 만천화우!"

대답하는 수진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갔다.

파앗! 슈우우욱! 팟팟팟팟!

환사의 술법에 당한 독황문의 무사들은 떨어지는 암기의 비 속에서 속절없이 당했다.

수진이 역시 놀라 멍해졌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도 수십 명이 자신의 공격에 나뒹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쓰러진 자들을 죽여."

현수는 먼저 달려 나갔다. 현수의 목표는 맹허량이었다. 실력도 없는 것이 입만 산 것을 보면 독황문의 주요 인물쯤 될 것 같았다.

"뇌전류!"

"커억!"

어깨가 잘려 나간 고통보다 더 지독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수진은 쓰러져 있는 독황문의 무사들을 착실히 죽이고 있었다.

"멈추어라."

"흥!"

현수의 검이 조금 더 빨랐다. 맹허량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고 뒤로 물러선 현수였다.

"이놈이, 소문주를……!"

'소문주?'

현수는 인상을 썼다. 소문주는 이번 이벤트의 상품에서 제외된 인물이었다. 문주, 부문주, 각 당의 당주를 죽여야 이벤트의 상품이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나? 멸친어린천룡군!"

"네, 이놈을……!"

부문주인 천독자는 현수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런 현수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쓰러진 무사들을 죽이는 수진을 발견했다.

"그놈 죽겠는데……."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맹허량을 보고 말하는 현수였다.

"독화장!"

천독자는 현수를 향해 쌍 장을 뻗었다.

"천밀밀!"

현수는 천독자의 공격을 막으며 천독자를 공격해 들어갔다. 만독신마는 자신의 아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 몸을 떨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번 기회로 자신의 아들이 좀 변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서 허량이를 데리고 오너라."

"옛!"

만독신마의 그림자인 인살이 나타나 맹허량이 쓰러진 곳으로 날아갔다.

현수는 천독자를 죽여 이벤트 상품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부문주라는 직책이 그리 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 거의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다.

'대단하다. 동영해서 레벨 업과 살수들과의 싸움이 없었다면 내가 필패했을 것이다.'

인살이 나타나 맹허량을 어깨에 들쳐 메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천독자는 만독문의 무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공격해라! 천독천통千毒天桶을 쏘아라."

팟팟팟팟팟!

독 암기들이 사방을 메우며 현수와 수진에게 쏟아져 내렸다. 현수의 신형이 다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나 수진은 내려오는 암기들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쓰러진 무사들을 다 죽였을 때, 이미 피하기에는 늦어 버렸다.

"피하기 늦었다. 만천화우!"

수진은 쏟아져 내리는 암기들을 향해 또 한 번 암기들을 뿌렸다. 하나 모든 암기를 쳐 낼 수는 없었는지 수진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악!"

"이런!"

현수는 피하지 못하는 수진을 향해 다시 달려갔다.

"운중비록 운중탄영신!"

쏟아지는 암기들보다 한 발 빠르게 수진을 낚아채고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운중무영보!"

"놈이 도망간다. 쏘아라, 놈을 잡아라."

퓨슈슈슈슈슈!

천독천통에서 쏘아지는 암기들은 현수가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을 봉쇄했다.

"꼬이는군, 젠장!"

"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잡아라."

그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소문주에게 상처를 입힌 놈을 그냥 둔다는 것은 독황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현수 역시 독 암기에 당한 수진을 안고 천독천통에서 쏘아지는 암기를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젠장! 천밀밀!"

콰광광광광!

"젠장!"

천독천통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급히 내공을 끌어 올려 간신히 막은 현수는 약간의 내상을 입었다.

"쿨럭!"

한 움큼의 피가 입에서 흘러내렸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독황문의 정예들을 노려보았다. 수진은 이미 독에 중독이 되었다.

"괜찮아?"

"아니요, 오빠 제 가슴 안쪽 주머니에 피독주가 있는데 그걸 꺼내 제 입에 물려 주세요."

수진은 힘들게 말했다. 현수는 망설임 없이 수진의 가슴 안쪽으로 손을 넣어 피독주를 꺼내 수진의 입에 물렸다.

"힘들겠군."

몰려드는 이들을 보고 싸우는 것을 포기했다. 혼자라면 싸울 수도 있지만 부상 당한 수진이 걱정이 되어 싸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피할 때다.'

현수는 수진을 안아 들었다. 여전히 수진은 무겁게만 느껴졌다.

'휴, 무겁다, 제길!'

"쳐라!"

독황문의 정예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암기들을 보고는 어지럽게 발을 움직였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공격하는 이들을 피해 거리를 조금 벌리고 심호흡을 한번 했다.

"좋아! 간다. 운중비록, 운중무영신!"

순간 현수의 모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중탄영신과 같이 포물선을 그리며 포위를 빠져나갔다.

"이런 무공이……. 잡아라! 쏘아라!"

하늘을 수놓는 천독천통이지만 여러 개의 신형을 모두 잡을 수는 없었다.

"놓쳤습니다."

"돌아간다!"

부문주인 천독자는 독황문의 무사들을 데리고 독황문의 본 진영으로 돌아갔다.

부스스스륵!

현수가 빠져나간 곳에서 소리가 났다.

"휴, 물러났나? 하긴 파라극도 찾지 못했는데……."

나타난 인물은 다름 아닌 현수와 수진이었다. 피독주의 도움으로 수진의 독은 중화되고 있었다.

"괜찮아?"

수진은 입에서 피독주를 물고 있어 그런지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

역시나 고개를 흔드는 수진이었다. 현수는 할 수 없이 수진을 업었다.

'수영장에서 봤을 때는 그리 살찐 모습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무겁지?'

속으로 투덜대는 현수는 당가의 진형으로 발길을 돌렸다. 현수의 등에 업혀 있는 수진은 입에서 피독주를 빼내 다시 품속에 넣고 얼굴을 현수의 등에 기대었다.

수진은 당가의 진형에 가까이 왔을 때 현수의 등에서 내렸다. 그 모습을 본 현수는 수진을 노려보았으나 수진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현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당가의 진형으로 달렸다.

"내가 당한 것인가……."

현수는 이렇게 생각하며 당가의 진형으로 들어와 수빈을 찾았다.

천막 안에는 공주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령과 함께 무릎을 꿇고 있는 산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또한 당시현 역시 안절부절못했다.

"가주님!"

"무사했구나."

분위기가 조금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수진이었다.

"무슨 일이……."

당시현은 공주를 보았다. 붉게 물든 얼굴에서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독에?"

"아니다, 독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공주 마마는 최음제에 당했다."

"최음제라면!"

"환희쾌락산이다. 공주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수진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청사진처럼 그려졌다. 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분명 너에게 경고했다. 쓸데없는 참견 말고 공주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죽여 주십시오, 군!"

"열린 입이라고 말은 쉽게 하는구나, 산! 네놈의 목숨으로 이 일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넌 고작 알량한 너의 목숨으로 이번 일을 넘기려고 하느냐!"

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수는 당시현에게 수빈을 치료할 방법을 물었다. 수빈을 살려 놓고 봐야 했다.

"가주님, 그것 외에는 치료법이 없습니까?"

현수가 묻는 것은 음양화합의 방중술법이었다.

"아닙니다. 꼭 방중술법이 아니더라도 공주 마마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하나 시간이 부족합니다."

현수는 가주를 보고는 다시 산을 보았다.

"너의 처벌은 공주를 구하고 난 뒤에 하겠다. 령은 죄인 산을 감시해라."

"알겠습니다, 군!"

현수는 당시현에게서 수빈을 구하는 방법을 들을 수 있었다.

"강한 양의 성질을 가진 내공의 소유자가 마마의 몸속에 있는 환희쾌락산을 내공으로 태우는 방법입니다. 하나 그런 내공의 소유자는 무림에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얼마의 내공이면 됩니까? 꼭 양의 내공 성질을 띠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공의 수위가 조금 더 높아야 합니다. 3갑자의 내공 수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 무림에 3갑자의 내공을 보유한 인물은 3명뿐입니다."

"3갑자의 내공이면 됩니까?"

당시현은 현수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 60년을 1갑자라 말한다. 하지만 천에서 유저들은 내력 600의 수치를 1갑자로 보고 있었다.

현수의 내공 수위는 2,300이 조금 넘는다. 보통 내력 600을 1갑자로 생각하면 현수의 내공은 4갑자에 조금 못 미치는 내력이었다.

"그렇습니다, 은 공! 그런데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현수는 몸을 돌려 수빈를 보았다. 그런 다음 산을 보았다.

"죄인 산은 명을 받아라!"

"죄인 산! 군의 명을 받습니다."

"너의 내공을 나에게 조금 넘겨라! 그럼 나의 내공으로 공주의 몸속에 있는 환희쾌락산을 태우겠다."

현수의 말에 모두 놀라고 있었다. 내공으로 환희쾌락산을 태운다. 넘겨받은 내공을 곧바로 사용할 수는 없다. 자신의 내공과 중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넘겨받는다고 해서 모두 다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1갑자의 내공을 넘겨받으면 20년의 내공이나 30년의 내공밖에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중간에 중화하는 단계에서 소실된다.

지금 현수의 말에 모두 놀라는 이유는, 현수의 내공이 최소한 3갑자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꺼이…… 공주 마마를 구할 수 있다면 저의 모든 내공을 드리겠습니다."

산은 현수의 등 뒤에서 손바닥을 붙였다. 산의 내공이 현수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과도한 내공을 사용한 산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현수는 자신의 내공과 산의 내공을 몸속에서 중화하기 시작했다.

몸속에서 내공을 중화시키는 것을 끝낸 현수는 누워 있는 수빈을 일으켜 앉혔다. 그러고는 수빈의 몸속에 내공을 주입해 환희쾌락산을 태우려 했다. 당시현은 그런 현수를 저지했다.

"은공! 먼저 혈에 숨어 있는 약의 기운들을 격발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당시현의 입에서 혈도의 이름들이 나왔다. 다행히 현수는 인문 18관에서 인체의 혈도에 대해서 완전히 익힐 수 있었기에 당시현이 부르는 혈을 순서대로 짚어 가며 공주의 몸속에 녹아 있는 약의 기운들을 깨웠다. 그럴수록 수빈은 더욱 몸을 꼬며 현수를 안으려 했다.

'아, 씨! 가만히 좀 있지.'

현수는 속으로 자신에게 계속 안기려는 수빈을 욕했다.

"지금입니다."

현수는 수빈의 몸속에 환희쾌락산을 태우기 시작했다. 막사 안에는 약 기운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붉은 수빈의 얼굴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수 역시 힘든 과정이었는지 얼굴에 땀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휴!"

"됐다, 은공께서 공주의 몸속에 있는 약기운을 다 태웠다."

이 순간 누구보다 기쁜 것은 산이었다. 산은 현수가 수빈의 몸속에 있는 약을 태우고 있을 때 깨어났다.

"괜찮다, 군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다. 너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수좌!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마마께서 무사하신 것으로 만족합니다."

비틀거리는 현수의 신형을 수진이 부축했다.

"오빠! 괜찮아요?"

당시현은 그런 모습이 보기 좋은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수진과 잘되어 현수를 당가의 사람으로 받아들이면 아니,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당가는 날개를 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 쉬어야겠습니다. 령과 산은 공주를 지켜라."

현수는 이 말을 하고는 수진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한편!

건을 비롯해 천연회의 사람들은 독황문과 사사혈천의 함정에 빠진 남궁세가를 구하기 위해 사사혈천의 무리와 싸우고 있었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보이는 것은 피를 뒤집어쓴 악비의 모습이었다. 악비 역시 무너지려고 할 때 건이 나서서 도왔다. 악비는 천연회의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싸웠지만 역부족이라는 것을 느꼈다. 본가의 사람들이 조속히 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건! 앞을 막아라!"

건이 몰려드는 사사혈천의 무리를 막고 악비를 비롯해 천연회의 사람들은 건을 보조했다.

"역발산! 몸으로 때워. 너 답지 않게 왜 피해!"

"시팔! 니가 맞아 봐라. 이것들 상당히 아프다."

싸움은 치열했다. 남궁세가의 정예들은 독황문의 독에 당해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독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악비를 비롯해 천연회의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눈앞에 보이는 이들을 모두 죽여야 남궁세가의 정예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연회는 격전지에 도착하자마자 질풍노도와 같이 사사혈천의 무사들과 독황문의 무사들을 쓸어 나갔다. 하나 그것도 잠시, 진형을 정비한 사사혈천에서 정예들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시팔! 정파라는 새끼들은 왜 보이지 않아!"

필살검이 짜증 나는 듯 외쳤다. 다소 무리가 있는 싸움이었다. 건과 화화공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계속해서 밀려드는 이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들은 저레벨 때부터 함께 사냥해 연수 합격에 능했기 때문에 그래도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신이 난 것은 화화공자뿐이었다. 비록 현수에게는 졌지만 그래도 주작의 무공은 대단했다. 화화공자는 이번 일이 끝나면 건과 한번 싸워 볼 생각이었다.

악비는 남궁세가의 정예들 사이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세가의 사람들이 도착할 것이다."

악비는 외치며 천연회의 사람들을 다독거렸지만 갈수록 힘이 들어 갔다. 작은 상처들이 몸에 새겨질 때마다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나왔다.

"시팔! 이것들이 진짜!"

수금인과 카오스는 악을 한번 써 봤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야! 역발산, 너 똑바로 안 할래? 악!"

카오스의 어깨 위로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시팔! 진짜 아프네!"

"야! 저놈 입 좀 막아라. 정신 사나워서 집중이 안 된다."

이렇게 가다 간 모두 전멸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빠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천연회가 이 무모한 싸움에 뛰어든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악비를 천연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건과 화화공자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이 죽으면 손해였다. 이번 이벤트에서 그들이 죽으면 이벤트와 상관없이 무공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젠장!"

역발산은 금강부동심결을 나름대로 열심히 사용해 선두에 서서 적의 공격을 막고 있지만, 사사혈천의 정예들은 일반 무사와 달라 그 충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덕분에 바빠진 건 혜련이었다. 손상되는 역발산의 체력을 보충해 주는 한편 다른 이들의 체력까지 보충해 줘야 해서 그 수고는 두 배로 늘었다.

"야! 빨리 처리해."

역발산은 소리를 질렀지만 다른 이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모두 남궁세가가 있는 곳으로 빠져. 역발산, 잠시만 막고 있어!"

환상검이 외치자 역발산을 제외한 천연회의 사람들은 남궁세가의 정예가 모여 있는 곳으로 후퇴했다.

"형님! 힘든데, 그냥 가면 안 되겠지요?"

"당연하지! 그냥 싸우다 죽어. 무공은 사라지지 않잖아."

악비가 미워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악비는 그런 이들을 위로했다.

"최대한 힘을 아껴 적을 상대한다. 죽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방어만 한다고 생각해라. 곧 정파에서 사람들이 올 것이다."

곧이라고 말하지만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갈수록 상황은 힘들어져 가는데 신이 나 있는 건이 보였다.

"젠장! 그래도 그렇지, 저놈만 신이 났군."

"화화 오빠가 왜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은 화화공자뿐이었다.

"그럼, 오빠들도 화화 오빠처럼 강해지면 되잖아요. 조심해요, 수지천율, 은하유성탄!"

수아는 이들에게 핀잔을 주고는 달려오는 사사혈천의 무리를 향해 공격했다.

"아, 씨! 더럽게 아프네. 이것들아, 저놈들 눈에는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냐! 왜 나만 때리고 지랄이야."

"크악!"

필살검의 검이 사사혈천의 무사 하나를 처리하고 있었다.

"힘든데 경험치는 장난이 아니다."

남궁세가 앞에서 자신들의 무사를 베어 넘기는 이들을 보고 있는 사람은 사사혈천의 제2단주 괴력신마 요충이었다.

"고작 10명 남짓한 놈들 때문에 막힌단 말이냐! 멍청한 것들."

요충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독에 중독된 남궁세가의 정예를 치는 것도 그렇지만, 또 앞을 막아선 이들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눈에 역발산이 들어왔다. 자신과 비슷한 덩치에 무식한 힘으로 자신의 수하를 막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와라!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요충은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천연회의 사람들 역시 요충을 보고는 감탄했다.

"저기 역발산 같은 놈이 또 하나 있군. 너와 형제 아니냐? 헉헉!"

힘든 가운데 농담을 주고받는 이들이었다. 남궁세가의 인물들은 이들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말지기인 악비가 그렇게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인 줄도 몰랐지만 악비의 동생들 역시 만만한 인물들은 하나도 없었다.

"소주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지금 그곳에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소! 한 놈이라도 더 잡아야지. 윽! 시팔, 이것들은 지치지도 않나."

"악비, 그대는 도대체 누구요?"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시현은 악비를 보고 물었다.

"전 세가의 말지기입니다. 또한 이들은 옛날 나의 동생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위험해 처해 있다는 것이고 또 이제 모두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막아 보겠으나 아마 힘들 것 같습니다."

침착하게 말하는 악비를 보고 남궁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오히려 악비를 위로했다.

"그런데 악비, 그대를 보니 살아갈 확률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마 힘들 것입니다."

요충은 역발산을 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덩치의 사내를…….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너, 곰탱이! 나의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

요충이 나서자 잠시 전투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역발산은 자신과 비슷한 놈이 나와 소리치자 어이가 없었다.

"내가 곰탱이면, 넌 고릴라냐?"

"고릴라?"

요충은 고릴라가 뭔지 몰랐지만 그것이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역발산의 말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놈이……."

요충은 역발산에게 달려들었다. 역발산 역시 요충에게 달려들었다. 서로 허리를 잡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악비는 그런 둘을 싸잡아 욕했다. 무식한 힘자랑이 시작되었다.

"쯧쯧, 미련 곰탱이들!"

역발산과 요충의 대결로 인해 전쟁의 승패가 가려질 것 같았다. 역발산은 있는 힘을 써 보지만 요충에게는 조금 무리였다. 역발산의 허리가 꺾였다.

"크하하! 어떠냐? 나의 제자가 되겠느냐?"

"윽! 시팔, 힘들어 죽겠는데 말하고 지랄이야! 아아앗!"

다시 젖 먹던 힘까지 써 보지만 역발산이 조금 밀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역발산이 이기지 못할 것 같아 보여 건은 화화공자에게 다가갔다.

"있냐?"

"없다.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둘의 대화를 수아와 혜련, 그리고 남궁세가의 정예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알고 있었다. 화화공자는 혜련이를 보았다.

"맞아 죽겠지?"

"그래도 접속하지 못하면 그만큼 우리에게는 손해다. 건, 부탁한다."

필살검이 건에게 총대를 넘겨주었다.

이야기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수아와 혜련은 건을 보았다.

"혜련아, 미안하다. 오늘 한 번만 도와 다오."

"왜 무슨 일인데요, 오빠?"

"야! 급하다, 역발산이 무너지고 있다."

악비의 외침이 건의 귀에 들림과 동시에 혜련의 팔목을 잡고 역발산의 머리 위로 넘어 날았다.

"역발산! 여기를 보아라. 맹룡강천!"

건은 땅을 향해 무공을 사용했다. 도황의 승천도결이 건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파장으로 인해 혜련의 치마가 올라갔다. 역발산은 그것을 보는 순간, 피가 머리 위로 몰리는 것을 느꼈다.

"컥!"

역발산은 순간 힘을 쓰기 시작했다.

"시팔! 혜련을……. 너희들 다 죽었어. 으아아아악!"

"이런!"

혜련이와 수아는 건을 노려보았다. 설마 하니 천연회의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혜련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것도 잠시, 곧이어 들리는 비명 소리로 인해 모두 역발산과 요충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크악!"

요충의 허리가 꺾였다.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역발산을 보았다.

"크하하하하!"

역발산은 대소를 터뜨렸다. 사사혈천의 무리는 요충을 구하기 위해 역발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금강부동심결!"

요충의 허리를 잡고 놓지 않았다. 사사혈천 무사들의 공격을 몸으로 막았다.

"산아!"

천연회에서 다시 움직였다. 건과 수아, 필살검과 화화공자는 자신들의 내공을 모두 모아, 역발산을 공격하는 사사혈천의 무사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크악!"

"이놈들아!"

"죽어라!"

"사사혈천의 무리를 모두 죽여라!"

정도의 무사들과 유저들이 몰려와 사사혈천의 무사들과 함께 어울려 싸우기 시작했다.

"역발산!"

"크크! 내가 이겼다."

-역발산 님께서 사사혈천의 당주인 요충을 죽였습니다. 해당 아이템은 이벤트가 끝난 후에 지급됩니다.

혜련이 역발산에게 달려갔다.

"미안해, 혜련아… 널 지켜 주고 싶었는데……!"

역발산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갔다. 혜련은 역발산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젠장!"

건은 늦게 도착한 정도의 무사들과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천연회의 무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고운 시선은 아니었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형님! 하지만 우리가 왜 형님을 도왔는지는 알고 있을 줄 압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건은 뒤를 돌아 그 자리를 벗어났다. 수아는 건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고 천연회의 사람들은 사사혈천의 무리를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젠장!"

악비는 남궁세가의 정예들 틈에서 아레스를 안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남궁시현는 그런 모습을 더욱 이상하게 여겼다.

"악비! 보통 인물이 아니다. 그는 기인이다. 그런데 아레스와는 어떤 사이일까? 혹시 아레스가 악비의 제자?"

남궁시현은 세가 사람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세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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