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취 군주 (39/57)

영취 군주

호면객의 암살로 인해 무림은 극도로 불안해졌다. 무림인들은 호면객이 말하는 아가씨가 구미호일 거라고 모두 생각했다. 그리고 구미호의 레이드에 참가한 유저들이나 NPC들은 그들의 문파나 방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사혈천을 막는 것도 좋지만 호면객으로부터 살아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호면객 덕분에 큰 이득을 보는 곳은 바로 사사혈천이었다. 호면객이라는 든든한 아군으로 인해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감숙성의 공동산에 터를 잡고 있는 공동파의 장문인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공동파는 사사혈천이 중원무림에 있는 이상 무림에 나서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사사혈천의 감숙성 지부가 되었다.

광소는 공동산에 머물면서 사사혈천의 무사들을 청해로 보냈다.

청해에는 곤륜파가 존재하고 있었다.

사사혈천의 승승장구에 비해 독황문은 당가와 만독문에 막혀 대치 중이었다.

사사혈천의 무사들이 청해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자 무림맹은 긴급히 청해로 무사들을 보냈다.

현수 역시 무림맹의 움직임을 쫓아 청해로 이동했다. 그곳에도 구미호의 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곤륜산!

하늘에 닿을 만큼 높고 보옥이 나는 명산으로 전해졌으나 전국시대 이후 신선설이 유행함에 따라 신선들의 성지가 될 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또한 불교가 유행할 때는 곤륜산을 수미산으로 부를 만큼 그 신비가 더해지는 산이기도 했다.

이런 곤륜산에 터를 잡고 있는 문파가 바로 구파일방의 곤륜파였다.

곤륜파는 흔히 삼청(태청, 옥청, 상청)을 가리키는 말로 도가무학의 발상지라고 할 만큼 뿌리가 깊고 역사가 오래된 문파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옛날의 영화는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오랜 역사가 이어져 내려오면서 보완하고 발전시킨 무공이지만 그 무공을 이를 기재가 부족하여 곤륜파는 점점 구파일방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 갔다.

무당산의 무당파, 그리고 화산의 화산파의 위세에 밀려난 곤륜파는 비록 중원무림을 대표하는 구파일방의 하나이긴 하지만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곤륜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사혈천의 공격에 대비해 이미 곤륜파의 문하생들과 속가제가, 그리고 무림맹의 무사들까지 청해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치우검 민성은 천에서 랭킹 120위의 고수였다. 그 역시 처음, 욕심으로 인해 구미호의 레이드에 참가한 유저이기도 했다. 그는 곤륜파가 있는 곤륜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쉐이이익!

파공성과 함께 치우검 민성에게 무엇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스캉!

검에 부딪혀 튕기는 것은 다름 아닌 비검이었다.

'호면객!'

구미호의 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은 호면객이라는 이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벌써 그에게 당한 수가 50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민성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나와라!"

쉐이이익!

대답 대신 비검이 날아왔다.

"이런 잔수로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민성은 다시 한 번 비검을 쳐내고 비검이 날아온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치우광검"

슈슈슈슈슈!

랭커에 드는 실력의 고수라 그런지 그의 무공은 강맹하기 그지없었다.

하나 허공만 가를 뿐 그곳에 호면객은 없었다.

크아아악!

그때 뒤편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사사혈천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유저의 외침이 민성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호면객의 등장에 이은 사사혈천의 공격이 연이어서 일어나자 민성은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딜!"

"아가씨를 공격한 놈들은 다 죽는다. 나 호면객이 결코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기척을 느끼고 공격해 보았지만 호면객의 소리만 있을 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민성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뇌전류!"

"이런!"

파아앗!

민성은 몸을 돌려 호면객의 공격을 막았지만 생각보다 빠른 쾌검이었는지 어깨를 허용당했다.

"치우살검!"

고통도 잊은 채 반격하는 민성의 행동은 전광석화라는 말을 실감 나게 했다.

"천밀밀!"

콰아아앙!

민성은 주춤거렸다. 설마 하니 자신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호면객에게 속고 있다. 놈은 살수가 아니라 무인이다.'

민성은 자신의 최고 무공을 사용해 호면객을 끝장낼 생각이었다.

"치우만검!"

많은 검기가 호면객을 향해 쏘아져 갔다. 민성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호면객은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격에 호면객이 얼었다고 생각했다.

"호심발도술!"

하지만 늦게 출수한 호면객의 공격이 자신이 만들어 낸 검기를 부수며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을 보자 망연자실했다.

"크억!"

저벅저벅!

호면객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검을 찌르는 것을 보고 민성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생각했다.

"강하다, 호면객! 방심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나 다음에는 꼭 널 죽이겠다."

"할 수 있으면……."

민성의 얼굴은 또 한 번 일그러졌다. 호면객이 NPC가 아니라 유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저구나."

"난 NPC라고 한 적 없어. 다만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지."

호면객이 떠나는 것이 보였다. 민성은 감겨 오는 눈을 감았다.

현수는 빠르게 사사혈천과 곤륜에 모인 사람들과의 싸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크아악!"

"호면객이다. 호면객이 사사혈천을 도와 무림인을 주살한다."

NPC의 외침이 들리자 유저들은 순간 방향을 바꾸었다. 호면객에게 걸려 있는 현상금은 무려 10만 냥. 이번 살행으로 인해 그 상금이 올라간 상태였다. 앞으로 계속해서 살행을 성공하면 그의 현상금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이런! 사사혈천의 무사들을 막아라."

순간 자리를 떠나 버린 유저들에 의해 곤륜산에 쳐 놓은 방어진이 뚫리기 시작했다.

금전 10만 냥!

현금으로 억 소리 나는 돈이었다.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이 경매에서 얼마나 가격이 나올지는 모른다. 확률이 적은 것에 기대기보다는 지금 눈앞에 있는 호면객을 잡는 것이 더 큰 이벤트였다.

"크아아아!"

-레벨이 올랐습니다.

현수는 알림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용천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후후! 너희들은 다 내 몫이다. 환영사사연혼술!"

"크억! 뭐야……!"

순간 환영으로 뒤덮여 놀란 유저들은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현수는 그런 유저들을 비웃으며 그들의 사이를 종횡무진 휩쓸고 다녔다.

"크아악!"

"피해라!"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놈들 죽이는 것이 현수의 베타 시절 특기 중의 한 가지였다.

"운중비록 운중광속신형보!"

빠른 속도로 유저들을 스치며 지나가는 현수였다.

"팔검수화진검류!"

"크아아아악!"

유저들은 속절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환사의 술법에 틈을 보이는 유저들은 결코 현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현수는 환사가 지닌 술법의 매력에 흠뻑 젖어 있었다. 환사의 술법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현수의 내력 때문이었다.

일반 유저들의 내력은 현수의 내력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기에 환사의 술법을 벗어날 수 없었다.

"후후, 너희들의 욕심을 탓하라."

"호면객이다! 저곳에 있다."

또다시 한 무리의 외침이 들리자 현수는 입 꼬리 양쪽이 올라갔다.

"오라, 다 죽여 주마."

현수는 마치 베타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도전해 오는 자들을 결코 살려 보내지 않는다. 이것이 일마 이현수를 있게 만든 모티브였다.

곤륜산에서 현수는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 나갔다. 일마 이현수의 전설이 아닌 호면객의 전설을…….

유저들이 잇달아 자리를 이탈하자 곤륜은 사사혈천에 의해 무너졌다. 곤륜파의 장문인은 사사혈천의 무사들의 손에 쓰러졌다. 공동파는 사사혈천의 감숙성 지부라는 치욕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보존은 할 수 있었지만 곤륜파는 그렇지 못했다. 곤륜파의 각 도관들은 전소되었고 수많은 무공들이 사사혈천 무사들의 손에 의해 태워졌다.

멸문!

구파일방으로서 중원무림을 대표해 온 곤륜파는 사사혈천에 의해 멸문을 당했다. 살아남은 곤륜파의 젊은 무사들은 청해를 벗어났지만 그 수는 백을 넘지 못했다.

무림맹의 임시 맹주는 불제자지만 이번 곤륜파의 일로 인해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개인의 욕심으로 도가의 성지로 추앙받는 곤륜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NPC들과 유저들 사이에 불화가 끊임없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유저들 중 호면객이라는 유혹을 떨쳐 버릴 유저들은 거의 없었다. 곤륜의 일이 끝나고 호면객의 현상금은 10만 냥에서 15만 냥으로 늘어났다.

하나 호면객의 살행은 계속되었다. 아직까지 호면객의 살인 명단에서 살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사혈천의 광소는 호면객에게 호법의 자리를 주겠다며 그를 회유하기 위해 찾을 정도였다.

사사혈천은 드디어 중원의 변방을 넘어서서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수빈은 속이 타들어 갔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수빈은 하루빨리 천에 접속하려고 천을 독촉했다. 하지만 천 역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더 당길 수는 없었다.

호면객의 살행은 갈수록 도가 지나쳤다. 그의 손에 죽은 사람들의 수는 무려 300명이 넘었다.

무림맹이나 사도련에서조차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의 현상금을 올리는 한편 호면객에 대해서는 공동의 적으로 함께 공조하기로 결정했다.

호면객의 현상금이 30만 냥이라는 초유의 금액이 걸리자 호면객을 잡기 위해 현상금 사냥꾼들이 따로 행동할 정도였다. 호면객이 사사혈천을 도와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후, 사사혈천과 맞붙게 하여 사사혈천과 호각세를 이루고 있었다.

사사혈천과 무림이 호각세를 이루자 현수는 잠시 살행을 멈추었다. 현수는 천연장으로 돌아와 천연회의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성에 대한 세부적인 상황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현수는 천연장에서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한 환사의 술법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사혈천이 어디를 공격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가서 유저들을 죽이는 일을 계속해서 진행했다.

현수는 수련이 끝나면 천연장의 한쪽에 지어진 정자에서 쉬면서 인문 18관에서 얻은 구미호의 초상화를 보며 구미호를 생각했다.

"현수 오빠가 요즘 외로움을 타는가 보네."

천연장에서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는 대장금이 현수를 찾아왔다.

"왜?"

"그냥, 요즘 오빠가 외로움을 타는 것처럼 보여서. 나이를 속일 수가 없나 보네."

대장금은 정자에 올라 현수와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옛날 베타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때 내가 오빠를 생각할 때는 있잖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진짜 오빠랑 건이 오빠랑은 괴물이었어."

조금은 과장되게 몸을 떠는 대장금이었다. 현수는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아니잖아."

"뭐가 아니야. 하긴 들리는 소문에 호면객이 꼭 베타 시절의 오빠 같아. 혹시 오빠가 호면객은 아니지?"

'헛!'

여자의 직감은 무시할 수 없나 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현수는 흠칫했다.

"하긴 오빠는 사신낭객이니, 호면객이랑은 조금 거리가 있겠지. 그런데 아마 베타를 겪은 사람들은 한 번쯤은 오빠를 생각할 거야. 오빠를 제외하고 특별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거든."

대장금은 마치 현수가 호면객이라 생각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내가 조금 경솔했구나.'

하지만 앞으로 조심하면 상관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감히 나를 사칭하는 놈이 있을까? 기회가 되면 호면객을 잡아야겠네. 그놈 현상금도 엄청나다면서?"

"응, 30만 냥! 억 소리 나는 돈이지."

현수는, 자수하면 현상금의 일부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 생각이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대장금에게 함께 사냥하러 다니라는 말이었다. 대장금이 함께 사냥하면 거의 무한 사냥에 가까운 사냥을 할 수 있고 또한 레벨 업 역시 빠르게 할 수 있다.

"싫어, 난 이곳이 좋아. 레벨? 서열? 이제 솔직히 지쳐. 그냥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편히 쉬면서 나름대로 즐기는 것이 좋아."

마치 달관한 듯 말하는 대장금이었다. 잠시 후에 역발산과 혜련이 천연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상당히 친해진 모습이었다.

"왔냐?"

"현수야, 우리 호면객 잡으러 가자."

역발산은 현수를 보자 첫마디가 호면객을 잡으러 가자는 말이었다. 역발산 역시 그에게 걸린 현상금의 유혹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하는 놈을 어떻게 둘이 가서 이겨?"

"그건 다른 애들 이야기고 너랑 건이랑 우리가 나서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억이다, 억! 30만 냥이면 3억이라는 소리야. 안 끌리냐?"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왜? 자신이 없어?"

'무식한 놈, 어떻게 내가 날 잡을 수 있겠냐!'

사정을 말 못 하는 현수는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혜련이는 대장금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같은 의원 계열이라 혜련은 대장금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하나 둘 천연회의 식구들이 모두 천연장으로 돌아왔다. 화화공자는 현수를 보자 한번 붙어 보자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작에게 배운 무공으로 현수를 한번 눌러 줄 생각이었다.

"다친다."

"아, 씨! 한번 붙어 봐!"

"야! 화화가 대단한 무공을 배워서 너에게 자랑하고 싶다는데 한번 붙어 봐라. 설마 화화가 무서운 것은 아니겠지?"

수금인이 현수를 도발했다.

"그렇게 무공에 자신이 있는 거야? 날 이길 수 있을 만큼?"

"아마, 천에서는 가장 강한 무공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10개의 던전에 있는 무공보다 더!"

자신감에 찬 화화공자였다.

"너 내력이 얼마나 되는데?"

"내력은 왜?"

현수는 한 방에 묵살시키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내력만 높으면 환사의 술법에 이어 뇌전류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2,000 조금 안 되지. 아마 내력도 내가 천에서 가장 높을걸."

화화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였다. 어디서 영약을 차떼기로 먹지 않는 이상 화화공자의 레벨에서 2,000에 가까운 내력을 모을 수는 없었다. 주작에게 얻어먹은 영약으로 인해 화화공자의 내력은 급상승해 있었다.

'음! 별로 차이가 안 나네. 기연이라도 대박 기연을 얻었나 보네. 그래도 내가 300 정도 앞서니 몇 초는 가능하겠다. 좋아! 감히 나에게 도전을 했단 말이지.'

"좋아. 그런데 화화야, 명심해라. 난 나에게 도전해 오는 사람은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을!"

현수가 정색을 하자 화화공자는 흠칫했다. 베타 시절의 악몽이 떠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 재미난 구경이라도 난 듯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내가 먼저 갈까, 아니면 네가 먼저 들어올래?"

"먼저 와!"

화화는 선공을 현수에게 양보했다. 주작에게서 배운 무공을 믿었기 때문이다.

"야, 너 한번 죽고 나더니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선수를 양보하다니. 그것도 현수에게!"

역발산이 부러운 듯 외쳤다.

"좋아, 그럼 내가 먼저 들어간다. 환영연환사혼술!"

순간 화화공자는 당황했다. 환술에 순간 당황했지만 곧 풀려날 수 있었다. 그만큼 화화공자의 내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이미 바닥을 굴러야 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화화공자는 현실을 부정했다. 뒤이어서 날아오는 현수의 주먹질에 소리를 질러야 했다.

'주작! 그놈이 나에게 사기 쳤어. 뭐! 최강이라고… 된장!'

"항복!"

화화공자는 이미 현수의 기세에 눌러 기를 펴지 못했다.

"말했잖아. 난 나에게 도전해 오는 사람을 그냥 둔 적이 없다고. 그건 화화 너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

웃으며 말하는 현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몸을 떨어야 했다.

"여전하네. 뭔가 새로운 것을 익힌 모양인데, 동영에 가서."

달라진 현수를 보자 건 역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오빠, 현수 오빠한테 이길 수 있겠어?

-몰라. 두어 단계는 올라간 것 같다. 레벨 업도 많이 한 것 같고.

수아와 건은 전음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래도 오빠는 도황의 승천도결을 익혔잖아.

건과 수아는 서장에서 아나타를 도와주면서 레벨을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아나타가 대뇌음사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공격할 때 건은 대뇌음사의 경장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경장각에서 도황의 승천도결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건이 익힌 승천도법이 바로 도황의 승천도결의 열쇠였다.

건은 수아와 함께 대뇌음사를 빠져나와 승천도결을 찾기 위해 수메르산에 올랐다. 수메르산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산이라 하여 서장의 모든 사람들이 신성시 여겼다.

건은 수메르산 정상에서 자신이 익힌 승천도법을 무공서로 환원해서 태우고 연기가 인도하는 곳에 도착했다. 그때 도황의 승천도결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도황이 남겨 놓은 진원진기의 정화인 사리를 복용함으로써 도황의 모든 것을 이을 수 있었다.

-솔직히 현수가 화화를 어떻게 제압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질 것 같지는 않은데 조금 두렵기는 해.

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현수의 응징이 끝났다. 역발산은 화화공자를 부축하고 혜련이와 함께 화화공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자리를 떠났다. 모두 현수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건과 수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화화공자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사냥을 했기에, 내심 화화공자가 한 번쯤은 현수를 눌러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다.

현수를 보자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천연회의 사람들이었다. 건은 현수를 보고 웃었다. 그러고는 엄지를 추켜올렸다.

"내가 요즘 너무 조용히 있었나 봐. 한 번쯤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줄 필요가 있겠는데."

"천하의 호면객이 조용히 있다고 말하다니! 한 번 제대로 움직이면 어떻게 되냐!"

건은 현수가 호면객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옛날 구미호의 죽음으로 현수를 찾아간 적이 있었기에 호면객이 아가씨의 복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짐작했다.

"애들에게 말하지 마. 안 그래도 역발산이 나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그래, 솔직히 탐은 나잖아. 3억이면……."

"그럼 못다 한 승부를 한번 내 볼까?"

현수는 건에게 은근히 협박했다.

"싫다. 아무래도 너의 내력이 2,000은 넘는 것 같은데 싫어."

건은 현수가 화화공자의 내력을 물어보고 화화공자를 제압할 때 현수의 무공이 내력과 상관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벌써 눈치 챘냐?"

"친구잖아. 그리고 넌 나의 유일한 경쟁 상대이니 내가 자연스럽게 너에게 관심을 둘 수밖에……."

현수는 그런 건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현수 역시 건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다만 내력에 우위를 점한 다음, 환사의 술법을 이용해 빠르게 제압하면 승부를 내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하나 건의 내력 역시 현수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현수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건이 현수보다 조금 더 유리한 입장이었다. 건은 현수를 알고 있는데 현수는 건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 슬슬 공성 준비에 들어가야지."

"그래야겠지."

천연회는 이제 본격적으로 공성 준비에 들어가기 위해 의론을 나누었다.

"그러니까 모산이 있는 곳으로 장원을 옮기잔 말이지?"

"그래,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모산과 공조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 같다. 동양 서버와 서양 서버의 통합을 생각하면 감숙성의 중심인 난주가 더 좋을 것 같은데 지금은 사사혈천의 손에 들어가 있으니 말이야."

현수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현수는 사실 감숙성의 난주를 생각했지만, 사사혈천의 손에 떨어진 난주는 위험부담이 컸다.

"그래, 그것도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서버 통합이 되면 감숙성은 시끄러울 것 같다."

필살검 역시 장원을 옮기는 쪽으로 의견을 냈다. 금릉은 너무도 쟁쟁한 문파들이 많아서 인원이 적은 천연회가 공성을 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럼, 악령이랑 윤석이랑 이야기해 봐야겠네. 그들 역시 강소성을 터전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 그래서 우리 천연회와 솔악문, 그리고 진중파, 하오밀문이 강소성을 완전히 장악했으면 해. 다른 문파들이 아예 도전하지 못하게 말이야."

"음,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오빠, 파벌이 다르잖아. 우리는 중립이고 진중파는 정파 그리고 솔악문은 사파인데 공성을 하면 어떻게 서로 도와줄 수가 있어요?"

수아가 서로가 다른 성향의 문파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사실 천에서는 정파는 정파, 사파는 사파, 중립은 철저한 중립을 요구하고 있어. 진중파가 솔악문의 공성전에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그거? 방법이 있지. 이번에 호면객으로 인해 정파와 사파가 손잡았잖아. 그걸 이용하면 돼."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청부를 넣는 방법이지."

"청부요?"

혜련이 역시 잘 이해할 수 없었는지 다시 물어 왔다.

"그래, 상대 문파의 고수들을 제거해 달라고 청부를 넣으면 돼. 청부금으로 사례를 하고… 아마 다른 문파들 역시 생각하고 있을 거야. 이런 쪽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를 잘 쓰거든."

"아!"

그때서야 수아와 혜련 그리고 말없이 앉아 있는 이화는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각 성에 근접된 지역인 서주나 양주는 제외했어. 그런 곳은 경쟁이 심하니 피해를 많이 볼 것 같아서."

"그렇게 하면 너무 실속이 없는 것 아니야? 실질적으로 서주나 양주는 많은 상인들이 있는 곳이잖아. 그만큼 경제활동이 활발한 곳을 그냥 둔다는 건……."

수금인이 조금은 아까운 듯 이야기했다. 그곳에서 1달에 거두어들일 수 있는 세금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성을 하는 이유도 그 세금 때문에 하는 것인데 그런 알짜배기 지역을 그냥 둔다는 것이 수금인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싸움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백성의 피해는 커져. 양주나 서주는 앞으로 많은 공성전 때문에 힘들 거야. 그럴 바에는 좋은 사냥터가 있는 곳을 먹는 것이 나아. 사냥터를 왔다 갔다 하는 유동 인구도 많을 거잖아. 또 지역이 안정되면 상거래 역시 활발해지니 수입이 더 좋을 수도 있어."

"그래도 조금은 아쉽다, 서주는 몰라도 양주는."

"미련 두지 마. 그리고 강소성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지역에 하오밀문으로 하여금 전장, 객잔, 표국 등등을 맡길 생각이야."

현수가, 하오밀문의 정보를 보다 빠르게 얻기 위해서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그래야지, 가까이 있으면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모두의 생각 역시 그런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럼, 먼저 빠르게 전장을 정리하고 모산파가 있는 강소성 구용현에 전장을 옮기는 일부터 착수하자."

푸드드드득!

그때 전서구가 현수에게 도착했다. 현수는 전서구를 보고 인상을 썼다.

"왜? 안 좋은 일이야?"

"그래, 안 좋은 일이야. 황궁에서 공주가 무림으로 나온대."

"황제가 미친 것 아니야?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공주를 무림으로 보내다니 말이야."

화령검객은 어이가 없는지 나라님을 욕했다.

"야! 그래도 내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마라. 폐하를 모독한 죄를 물어 널 죽일 수도 있으니.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보고 책임을 지라는데."

천연회의 사람들은 현수가 조금은 불쌍해 보였다.

현수에게는 뜻밖의 복병일 수도 있었다. 공주로 인해 더 이상 구미호의 복수를 할 수 없게 되고 사사혈천과 무림인들의 싸움을 부추길 수도 없게 된다.

'젠장, 영감탱이가 왜 공주를 보냈지! 아, 씨! 안 그래도 처리할 일이 많은데.'

다음 날 천연장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마당을 쓸고 방을 치우며 공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공주라 하는 사람이 천연장에 천밀위의 호위 속에 도착했다. 령과 산, 그리고 4명의 천밀위사가 함께 천연장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마마!"

"그대가 이 공인가요?"

조금은 도도하게 보이는 영취 군주, 아닌 영취 군주로 변한 수빈이었다.

"그렇습니다, 마마!"

"영취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간단한 한마디. 공주라는 표를 확실히 내는 수빈이었다. 천연장을 둘러보는 모양새가 '나 먼 길 왔으니 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천연장의 사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수빈의 미모에 넋을 놓았다. 건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황궁 제일 미라 불리는 영취로 분한 수빈은 아름다웠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누추하나, 생활하시는 데는 불편함이 없을 것입니다."

공주가 온다는 말에 미령의 가족들은 방을 깨끗이 치워 놓았다. 수아는 여자가 쓰는 화장품이며 옷가지들을 사 놓았고 여자들에게 작업을 잘 거는 화화공자가 여자의 취향에 맡는 가구들을 들여놓았다.

"그건 보고 결정해야겠지요."

수빈이 방으로 들어가자 수아는 건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오빠도 다른 사람들이랑 같네.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을 보니."

남자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장금은 그 모습이 우스운지 연방 킥킥거렸다.

"뭐! 여자인 내가 봐도 반할 만큼 예쁘던데, 오빠들이야 오죽하겠니."

그래도 함께한 시간이 많은 대장금이 남자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예쁘긴 뭐가 예뻐."

수아는 건의 팔을 잡고 천연장을 벗어났다.

수빈은 인공지능 컴퓨터 천에 모니터링이 되지 않는 인간들이 다 모여 있다는 사실에 반가워했다. 방을 둘러보는 수빈은 세세하게 신경 쓴 그들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수빈의 마음에 꼭 드는 방이었다.

"그런 대로 지낼 만하겠어요. 이 공!"

"과찬이십니다, 마마!"

현수와 함께 금릉을 돌아다닌 수빈은 천연장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