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 천에 접속하다
월아천月雅泉!
돈황의 남쪽 방향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모래와 암반으로 이루어진 명사산이 있다. 명사鳴沙라는 이름에서와 같이 산언덕에서 모래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면서 나는 소리가 마치 사람의 울음소리와 같다 하여 지어진 곳이다. 이곳 명사산에는,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고 명사산의 모래 바람에도 견디는 샘이 있다. 마치 초승달과 같다 하여 그 샘을 월아천이라 불렸다.
중원의 사파고수들은 돈황을 점령한 사사혈천의 광소를 기다리며 돈황의 오아시스라는 월아천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사사혈천의 본진이 누군가에 의해 털렸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누가 그런 기발한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밤을 보내고 있었다.
스스스스!
일단의 무리가 움직였다.
사사혈천의 무사들이 밤을 타, 사파연합 세력인 사도련을 치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었다.
"쳐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외침이, 조용한 월아천의 밤을 깨웠다. 커다란 함성 소리가 아니라 거대한 함성이라고 해야 옳았다. 사사혈천의 무사들은 질풍노도의 기세로 사도련의 무사들을 공격해 들어갔다.
"적이다! 사사혈천이 쳐들어왔다."
"죽여라! 아이템이 기다린다."
유저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무기들을 빼 들고 사사혈천의 무사들과 어울렸다. 기세 싸움일까? 양측은 한 치의 밀림도 없이 서로 부딪쳐 나갔다.
"크아아악!"
어둠을 뚫고 적, 아의 구분 없이 비명 소리가 월아천의 하늘에 울렸다.
"시팔! 뭐가 이리 강해."
사사혈천의 내원에서 사냥해 보지 못한 이들은 사사혈천의 무사들이 지닌 강함을 보고 경악했다. 처음에는 기세등등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사혈천의 무사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크악!"
"후퇴하라."
이미 외침이 있기 전에 도망가는 유저들을 비롯해, 사도련의 유저들은 월아천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사혈천의 무사들은 자신들의 본거지가 털린 것에 앙심을 품었는지 그들을 끝까지 쫓아 주살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일방적인 도살이 시작되었다.
사막의 푸름을 나타내는 월아천은 이미 피로 붉게 물들어 버린 지 오래다.
"우리 본 천을 농락한 놈들이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그 결과, 월아천에서 사사혈천의 무사들을 막으려고 모인 사도련의 유저들은 전멸이라는 치욕을 당했다. 옥문관에 모인 정파의 무림맹은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긴급회의를 열었다.
"사도련이 명사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멸당했습니다."
"사사혈천의 무력이 그렇게 강하다는 말인가요?"
제갈혜미!
이곳 옥문관에 모인 무림맹의 책사였다. 사사혈천이 많은 비밀로 덥혀 있어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제갈혜미에게는 실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비록 사파의 고수들이 많이 빠져 있다고는 하나 그들을 하룻밤에 몰살시킬 정도의 무력이라면 우리 역시 힘든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군요. 듣기에는 사사혈천의 무사들과 싸워 본 경험이 있는 천지회는 무림맹의 구성에서 빠졌다고 하던데……. 그들은 독자적으로 사사혈천을 막을 생각이라고 하던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음! 그럼, 일단 우리는 방비를 해야겠군요."
제갈혜미는 옥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진을 설치하고 무림맹의 무사들에게 하나의 검진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서생에서 책략가로 전직을 하면 진을 설치하고 검진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일회용이라 한 번 사용하면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진과 검진은 책략가라면 레벨 업을 하며 계속해서 만들어 낼 수 있기에 그러한 단점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또한 병술가는 부대 운용에 있어 효과적인 군진을 사용할 수 있어 공성전을 하는 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사사혈천의 무사들이 옥문관을 넘으면 많은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막아야 할 것입니다."
NPC들은 제갈혜미의 말을 듣고 결의에 차 있었지만 유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NPC는 죽으면 끝나는 삶이지만, 유저는 죽어도 이벤트가 끝나면 다시 접속할 수 있기에 유저에게는 이벤트가 또 다른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사사혈천이 온다."
돈황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제법 빠른 이동속도였다.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면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사사혈천의 무사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 중 광소는 보이지 않았다.
제갈혜미는 진을 활성화시켰다. 진 속에 배치된 무림맹의 무사들은 하나의 검진을 형성하고 숨어 있었다.
"쳐라! 옥문관을 넘으면 꿀과 젖이 가득한 중원이다. 모든 것이 너희들의 것이다."
외침을 듣고 사사혈천 무사들의 사기가 충천했다.
옥문관에서 사사혈천과 싸움을 시작한 무림맹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법도 검진도, 사파의 사도련을 몰살시킨 사사혈천의 기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크아아악!"
NPC들은 끝까지 사사혈천을 막았지만, 유저들은 죽으면 이벤트가 끝나기 전에는 접속할 수가 없기에 그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니 싸움은 사사혈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유저들은 왜, 천지회와 천마회 그리고 몇몇 방파들이 이번 이벤트에서 빠졌는지 알 수 있었다. 먼저 나서는 쪽보다 뒤에 나서는 쪽이 전체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것을 죽음으로 배웠다.
옥문관에서 사사혈천의 무사들을 막던 무림맹의 고수들 역시 많은 피해를 입고 옥문관을 사사혈천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옥문관에서 살아난 유저들은 무림맹에 전서구를 날려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하고, 다음 무림맹의 임시 지부로 복귀했다.
옥문관을 넘은 사사혈천의 무사들에 의해 감숙성의 옥문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버렸다.
"감숙성이라……."
"이곳은 공동파가 그 위세를 떨치는 곳입니다."
"공동파? 무림을 영도해 간다는 구파일방의 그 공동파 말인가?"
"그렇습니다."
광소는 책사의 말을 듣고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떠올렸다.
"공동파라… 크크! 구파일방의 수장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라. 모두 내가 무릎을 꿇지 않으면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이다."
광소는 구파일방에게 경고를 보냈다.
* * *
인문 18관에 든 현수는 5관을 통과하고 6관에 들었다.
살수가 되기 위한 관문이라 그런지 현수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복습이라는 것은 실로 많은 것을 얻게 해 주니 현수에게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관문이었다.
"6관은 뭘 복습시켜 주려나……."
인체의 혈도가 그려진 커다란 그림이 한 장 있었다.
"응?"
현수는 그림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일반 유저들에게는 이런 인체의 혈도가 중요치 않았다. 의원 계열, 특히 침을 사용하는 의원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혈도라……!"
현수는 자리에 주저앉아 그림을 눈에 익히려고 노력했다. 완전히 외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눈에 익히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크르르르릉!
"응?"
쿵쿵쿵!
묵직한 발소리가 현수를 위협했다. 현수는 발자국의 주인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인체의 혈도가 그려진 그림을 보았다.
"……!"
파앗!
청동 인간이었다. 그의 공격은 빠르고 정확했다. 현수는 순간 방심해서 그의 주먹에 나가떨어졌다.
"아 씨, 현천파열권!"
콰앙!
하지만 청동 인간은 아무런 충격도 입지 않았는지 현수를 다시 공격했다.
"진짜 저 많은 혈도를 다 외어 이놈에게 사용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현수는 뇌전류를 사용했다.
"하하하하!"
뇌전류에 의해 몸통이 두 조각 난 청동 인간이었다.
"별거 아니구만."
하나 그것도 잠시, 또 다른 청동 인간이 나왔다. 현수는 별 생각 없이 뇌전류를 사용해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었다.
현수는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끊임없이 나오는 청동 인간들을 보고 결국 6관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청동 인간들을 상대했다.
"헉헉!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건데."
현수는 그림을 보고 청동 인간의 공격을 피하며 혈도를 하나하나 눌렀다. 그는 멈추지 않는 청동 인간을 보고 욕을 해 대고 있었다.
번쩍!
짜증이 났는지 현수는 다시 뇌전류를 사용해 청동 인간을 처리하고 또 다른 청동 인간을 기다렸다.
쿵! 쿵! 쿵!
"젠장!"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최소 4~5명은 되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6명의 청동 인간이 현수를 가로막았다.
"휴!"
현수는 한숨을 쉬며 청동 인간들의 공격을 피했다. 혈도를 점혈하는 방법은 익히기 싫어도 익힐 수밖에 없었다.
* * *
-광소가 본격적으로 무림을 침공할 것 같습니다.
충격이라고 해야 옳았다. BS 그룹의 수빈과 형욱은 월아천의 사파와 사사혈천의 전투, 그리고 옥문관의 무림맹과 사사혈천의 전투를 지켜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은 BS의 인공지능 컴퓨터인 천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결코 사도련이나 무림맹의 무사들의 무력이 사사혈천의 무사들에 비해 약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일방적으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사도련의 경우 유저들의 욕심으로 인해 전멸당했고 무림맹의 경우 유저들과 NPC들의 호흡이 맞지 않아 무너져 버렸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어딘가요?"
-공동산의 공동파를 시작으로 구파일방을 무너트리기 위해 움직일 것 같습니다.
"음! 천, 아직 천마회와 천지회, 그리고 솔악문과 진중파를 비롯한 몇 개의 문파는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까?"
답답함에 형욱이 물었다. 실제로 이번 이벤트에 빠진 문파들의 힘이 유저들의 절반 이상이라 형욱으로서는 그들의 참여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서장이나 동영에서 레벨을 올리기 위해 사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림인이 아닌가요? 왜 이번 이벤트에 빠진 거예요?"
수빈 역시 답답한지 천에게 물었다. 그들이 나서지 않으면 아마 힘들 것 같았다. 또한 이벤트의 기간이 길면 길수록 죽은 유저들은 접속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말이 나올 것이다. 심하면 게임을 접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수빈의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아마 다음을 준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음요?"
-그렇습니다. 천지회의 혁무기 님이나 천마회의 방각 님 등은 이미 베타 시절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이번에 빠진 문파의 수장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공성전을 위해 힘을 아끼고 있는 듯합니다. 먼저 이벤트에 끼어들어 문파원들이 죽으면 그들은 그만큼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뜻하지 않은 이벤트의 부작용이었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이벤트를 시작해야 되지만 이번 이벤트는 그렇지 않았다.
준비도 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고 이벤트에 참가하지 않는 그들을 욕할 수는 없었다.
"공성전이면 다음 에피소드 아닙니까? 천, 그들이 벌써 다음 에피소드를 준비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미 천을 시작하면서부터 공성전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형욱은 한국의 유저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천의 모니터링을 위해 귀국했지만 천을 모니터하면서 느낀 것은 게임을 죽자 살자 한다는 점이었다.
외국에서는 그냥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게임을 한다면, 한국에서는 게임 자체가 생활이 되어 버린 경우를 종종 보았다.
"천! 사사혈천이 중원으로 들어오면 그들의 기반도 흔들리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쯤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광소가 중원의 구파일방을 무너트리고 사사혈천의 세상을 열어도 그들을 쉽게 건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을 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니 광소는 공생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NPC가 별것 다 한다고 생각하는 형욱이었다.
"황궁은, 황궁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이 죽고 고통을 당하는데 움직이지 않다니요?"
-그렇게 되면 무림과 황궁이 정면충돌을 하게 됩니다. 그럼 광소는 황궁을 넘볼 것입니다. 황제는 무림의 일은 무림의 손으로 해결하란 뜻일 것입니다.
수빈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이미 자신의 오빠는 연구진과 함께 불치병을 치료하는 몇 개의 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정부에 특허 승인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일마 이현수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소식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 역시 이번 이벤트와는 상관없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알겠어요."
수빈은 천이 있는 방을 벗어나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돌아가는 수빈의 어깨는 황궁의 난이 일어나려고 할 때처럼 처져 있었다.
"어떻게 안 될까요? 수빈 양이 힘이 없어 보이는데."
-아마,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의 천의 기본 프로그램을 만든 컴퓨터를 찾으면, 어쩌면 이번 일을 쉽게 해결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찾을 수 없으니 문제지요. 천! 계속 수고 좀 해 주세요. 전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볼게요."
-수고하십시오.
수빈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파일을 꺼내 보고 있었다.
천의 고수들을 따로 빼내 관리하는 파일이었다. 그곳에서는 그들의 신상 명세와 사는 곳 그리고 천에서 얻은 무명과 무공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상위 10개의 파일은 이름만 있을 뿐 나머진 여백으로 남아 있었다.
수빈은 그 파일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께서도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을까?"
수빈은 비록 광고의 목적이라 하더라도 모니터링 불가라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 그것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화가 나기는 했다.
수빈은 다음 파일을 보았다. 천지회의 회주와 천마회의 회주인 두 사람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것이 보였다.
"휴!"
-한 번 타협을 하면 또다시 타협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편한 것을 알기 때문에…….
수빈은 지난날 현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지만 수빈은 그들을 끌어들여서 사사혈천을 막아야 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현수 씨!"
수빈은 파일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몇몇에게 전화를 했다.
* * *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아는지 알은 척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사사혈천의 이벤트에서 빠진 문파들의 수장들이었다. 수빈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천연회의 인물들은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수빈은 그들에게 이번 사사혈천의 이벤트에 참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많은 설명을 했지만, 먹혀들지는 않았다.
부르주아 백수들이라 이해타산이 그만큼 빠르기도 했지만 그들은 이런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벤트에 참여하면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방각이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만약 자신들이 죽으면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하루 이틀이라면 몰라도 한두 달 갈 경우에는 굶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테니 이들로서는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수빈은 이러한 부르주아의 생활방식에 젖어 있는 그들을 욕했다. 그들의 눈은 분명 뭔가를 요구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어차피 그들이 구파일방을 공격하게 되면 여러분의 입지도 흔들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함께 빠르게 이벤트를……."
"우리는 우리 영역을 쉽게 내줄 정도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 영역만 지키는 일이라면 황궁에서 황군을 보낸다고 해도 막아 낼 자신이 있으니까요."
악령이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솔악문과 진중파 그리고 하오밀문이 연합하고 있기에 충분히 사사혈천으로부터 강소성의 전부를 지켜 내지는 못하더라도 터를 잡은 세 곳만은 지킬 자신이 있었다.
"혁무기 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사혈천이 아무리 강해도 천지회만은 노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사혈천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그들 역시 우리를 치기 위해서 계속되는 소모전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우리들보다 구파일방이라는 선과제가 있으니까요."
혁무기가 모두의 생각을 대신 말해 주었다. NPC들이 비록 프로그램화가 되어 있다고는 하나, 계속적인 소모전은 그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니, 당연히 어느 정도만 지켜 내면 그들은 타협안을 내놓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다른 유저들과의 생각 차이였다. 수빈은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일이 더욱 어렵게 풀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베타 시절에 이름값을 한 이들인데 정작 현수를 비롯해 건과 다른 8명이 빠졌군요."
수빈은 순간 당황했다. 그들에게 모니터 불가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번 일로 이들 역시 그런 조건을 걸고 나온다면 차라리 중원이 사사혈천에 먹히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그들이 누구인가요? 지금 계신 분들은 지금 천에서 가장 강하다는 분들만 모였는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보다 더 강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인가요?"
수빈의 연기 실력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었다.
"그렇군요."
그들은 믿지 않았지만 수빈의 말을 듣고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여러분이 이벤트에 참가해서 함께 천을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그건 유저들의 자유의사입니다. 이미 저희 문파에서는 회의를 거쳐 빠지기로 결정했습니다. 더 이상 그 문제로 우리를 불렀다면 저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저 역시 일어나겠습니다. 천상지애 촬영이 있어 천에 접속해야 합니다."
"좋아요. 사실대로 말해요. 전 여러분이 이벤트에 참여해서 사사혈천을 막아 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보상해 줄 생각이에요."
수빈은 그들에게 손을 들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보상을 해 줄 순 없어요. 그래서 사사혈천의 광소를 비롯해서 독황문의 문주인 만독신마와 그들의 부문주 그리고 각 당주를 죽이는 사람들이 만약 여러분의 문파 사람이라면 기존의 보상과 함께 천의 무료 이용권을 드리겠어요. 물론 등급에 따른 차등은 있어요."
무료 이용권, 생각보다 끌리는 조건이었다. 1달 계정비 10만 원이면 그들에게 큰돈이었다.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3년, 2년, 1년!"
수빈의 말을 듣고 모두 생각에 잠겼다. 그리 손해 보는 것은 아니었다. 3년이면 3,600,000만원이다. 게임을 해서 그 정도를 못 버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계정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저희는 그들 1명당 유저 두 사람이 함께 혜택을 받으면 참가하겠습니다."
악령이 먼저 자신의 입장을 말했다.
"안 돼요, 우리는 단지 이벤트의 기간을 줄이고자 할 뿐이에요. 솔직히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든지 상관은 없어요."
수빈으로서는 강수였다.
"그럼 포기하겠습니다."
악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령이 일어나자 자연히 윤석이도 함께 일어났다.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인가요?"
"우리는 참여하겠습니다."
결국 천마회와 천지회 그리고 솔악문과 진중파를 제외한 다른 문파는 모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수빈은 다른 유저들에게는 이 일을 비밀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 역시 다른 유저들에게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일종의 거래처가 되는 셈이다. 그런 거래처를 알려 경쟁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수빈은 돌아와 이와 같은 이야기를 천에게 했다. 물론 형욱은 자리에 없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유지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시 천지회와 천마회가 없으면 힘든 건가요?"
-아닙니다. 그들이 있어도 함께하지 못하면 결과는 똑같습니다. 다만 무력이 더해지니 유지만 할 뿐입니다.
"그렇군요? 천! 그럼 기간은 어느 정도 예상하나요?"
-빠르면 3달. 현실로 1달을 예상하지만 얼마나 걸릴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렇군요. 기간을 당길 수는 없나요?"
-일마 이현수나, 일황 최건이라면 이번 사태를 빠르게 종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일마와 일황요?"
수빈은 또 그들의 이름이 나오자 천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들이다.
-그렇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유저들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입니다. 그리고 유저들을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구심점으로 정파와 사파를 모아 사사혈천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요? 방각이나 혁무기는 힘듭니까?"
수빈은 지금 최고수라는 방각과 혁무기가 떠올랐다. 검증되지 못한 둘보다는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다른 제의를 할 생각이었다.
-그들은 인지도가 조금 부족합니다. 지금 최고수라고 해도 그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 일마와 일황은 다릅니다. 일마와 일황이라는 이름에서 주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방각 님이나 혁무기 님께서도 이들의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결국 수빈은 현수를 이번 이벤트에 끌어들여야 했다. 하지만 현수를 끌어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현수라…….'
"천! 제가 천에 접속해야겠어요. 제 아이템의 봉인을 풀어 주세요."
-조금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이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천은 수빈의 제안을 거부했다. 사실 수빈이 다른 유저들을 끌어들인 것도 정당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 알겠어요, 그렇게 하겠어요. 천, 수고하세요. 전 조금 쉬어야겠어요."
-그렇게 하십시오, 수빈 님.
수빈의 어깨는 여전히 힘이 없어 축 처져 있었다.
* * *
현수는 아침부터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야, 안 가면 안 되지?"
월요일! 야가 현수를 위해 스포츠 클럽의 회원권을 끊고 운동 가는 첫날이었다.
-다녀오십시오. 몸 생각도 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아무 말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처음이 힘든 것입니다. 한번 가 보면 현수 님도 주위 환경에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현수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대문을 나서는 순간 수진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네! 운동하러……."
"그래요? 학교 가세요?"
수진은 현수가 학교 운동장을 뛴다는 것을 알고 물었다. 현수가 고개를 흔들자, 궁금한지 다시 물었다.
"그럼, 어디요?"
"시내에 있는 스포츠 클럽에 가요. 회원권을 끊었어요."
현수는 순간 수진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수진의 말을 듣고 속으로 야를 욕했다.
"저도 그곳에서 운동하는데, 잘됐네요. 같이 가요."
수진은 현수를 자신의 차에 태워 스포츠 센터로 향했다.
'분명 야의 계략이야. 빌어먹을!'
하지만 현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스포츠 센터에서 수진은 이것저것 현수에게 알려 주었다.
"수영장에서 봐요."
수진은 탈의실로 들어가고 현수 역시 2층에 있는 남자 탈의실로 향했다.
수영장은 지하에 있었다. 2층에서 1층을 거치지 않고 바로 수영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을 만들어 놓아 남자들은 그리로 수영하러 다녔다.
현수는 자신의 손에 든 수영복과 모자 그리고 안경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제법 돈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왕 온 거 열심히 해야지. 좋게 생각하자. 나의 건강을 생각한 야의 배려야……."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야의 배려라기보다는 야의 계획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옷을 다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가다가 현수는 순간 당황했다.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아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아저씨!"
수진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렸다.
'빌어먹을……!'
"와! 아저씨 몸도 생각보다 좋네요?"
'부끄러움도 모르나…….'
현수는 이렇게 생각하며 수진을 곁눈질했다. 현수야 많이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나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수진의 몸매는 운동으로 다져져 있었다. 다만 수영을 해서 그런지 어깨가 보통 여자들에 비해 조금 더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어깨로 인해 훨씬 균형 있어 보이는 몸매였다.
"아이, 부끄러워요."
수진이 장난기로 현수에게 말하자, 주위에서 끽끽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수진은 그런 현수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참! 아저씨, 수영할 줄 아세요?"
현수는 기분이 조금 상한 듯 수진을 보았다.
현수의 고향은 남해였다. 물이라면 어릴 때부터 익숙한 현수였기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준비 운동하고……."
수진은 스트레칭을 하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현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수진을 따라 한 후, 함께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 현수는 바다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켜보는 수진은 답답한지 현수를 불렀다.
"에이, 아저씨!"
수진이 다가오자 현수는 당황한 듯 수진에게 변명했다.
"아니, 저 진짜 수영할 줄 알아요. 어릴 때부터 물에서 놀았는데……."
헤엄과 수영은 조금 달랐다. 물에서 논다는 것은 같지만 조금의 차이는 있었다.
하지만 현수는 이내 적응한 후 헤엄을 곧잘 치기 시작했다.
"봐요, 저 할 줄 알잖아요?"
"킁!"
수진은 현수가 오늘처럼 귀엽게 보인 적이 없었다. 현수가 하는 수영은 그냥 물에서 헤엄치는 것이었다. 자유형이니 배형이니 하는 그런 것들이 아닌, 견공들이 물에서 즐겨 하는 개헤엄이었다.
주위에서 그런 현수를 보고 입을 가르고 웃는 것을 본 수진은 현수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내 손 잡아 봐요."
수진이 손을 내밀자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수진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수진은 현수에게 헤엄이 아닌, 수영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렇게 하자 현수는 적응해 가더니 자유형으로 제법 잘 다녔다. 물론 급하면 개헤엄이 나오지만 그래도 현수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운동에 임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수진은 현수에게 4층에 있는 헬스장에서 보자며 올라가 버렸다.
현수 역시 수영장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고 4층 헬스장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러닝 머신 위로 올라가 뛰기 시작했다.
'역시, 난 뛰는 게 체질이야.'
현수는 거의 무아지경의 상태가 될 때까지 뛰고 있었다.
옆에서는 수진이 함께 뛰고 있었다.
"역시 아저씨 잘 뛰네요."
현수는 수진이 말을 걸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러닝 머신에서 내려온 두 사람은 휴게실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땀을 식혔다.
"항상 혼자 운동하면 심심했는데 오늘은 아저씨랑 같이하니까 더 잘되는 것 같아요. 역시 뭐든지 같이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재미있고 그런가 봐요."
"저도 오늘 수진 씨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에이! 수진 씨가 뭐예요. 그냥 수진아! 그래요."
현수는 순간 당황했다. 정말 대책이 안 서는 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불러요?"
"왜요? 괜찮아요. 저도 아저씨라고 안 부르고 이제부터 오빠라 부를게요."
"쿨럭!"
마시는 음료수가 코로 나올 것만 같았다. 현수는 사레가 들렸는지 계속해서 콜록거리자 수진이 현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괜찮아요, 오빠?"
'휴!'
"네, 괜찮아요."
"그냥 편히 말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는지 현수는 계속해서 수진에게 반 경어를 사용했다.
"천천히요."
"그래요,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편해질 거예요. 1년간은 함께 다닐 테니… 뭐!"
'야의 계략이야. 수진 씨와 어떻게 해 보라는…….'
운동이 끝난 두 사람은 다시 수진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수는 집 안으로 들어서서 야를 불렀다.
"야! 다 너의 계획이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의 계획이라니요?
"일부로 수진 씨가 다니는 스포츠 클럽에 회원권을 끊었잖아."
-수진 씨를 만났습니까? 호오! 역시 현수 님과 연분이 있으신가 봅니다.
능청을 떠는 야의 모습을 보자 현수는 기가 찼다. 도대체 컴퓨터라 부르기에는 정말 정체가 의심스러운 야였다.
"그래, 알겠다. 넌 모르는 일이라 그거지, 그치?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고 싶지?"
-우연입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그곳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니 제가 그곳에 회원권을 끊은 것뿐입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언제든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일을 벌이는 야였다.
"알았어. 증거가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 하지만 증거를 찾기만 해 봐."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현수 님께서는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지 않을 작정이십니까?
천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진지해지는 현수였다. 야는 이미 현수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 현수가 야를 이길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응! 보상도 별것 없고 해서……."
-지금쯤 천은 사사혈천으로 인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현수 님께서 지금 상황을 잘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참에 이벤트를 이용해서 유저들을 방해해 그들의 힘을 확실히 떨어뜨려 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사사혈천의 득세가 오래가면 오래갈수록 현수 님을 비롯해서 천연회에게는 이득이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그럼 지금 동영에서 중원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지금은 인문 18관에 들었거든. 그곳을 모두 통과한 후에나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십시오. 이벤트는 지금 시작이니 나오신 후에 하셔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알았어. 대충 유저들 중에서 조금 강하다는 놈만 죽여 주면 되지?"
-그렇습니다. 이번 기회에 유저들을 상대로 현수 님의 실력도 가늠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는 편이 공성전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니 말입니다.
현수는 야를 보고 웃었다.
"그래, 나, 운동 열심히 할게. 절대 감기 같은 병 안 걸릴게. 그러니 야! 너도 건강해야 돼. 혹시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말해. 당장 서비스 센터 직원 부를 테니 말이야."
그러고 보면 현수는 참으로 단순한 성격이었다.
접속을 하는 현수는 처음 120 레벨까지 올릴 계획을 수정하고 인문 18관을 빠져나가면 바로 중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천연회에 알릴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면객은 무림공적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그 누구도 호면객이 현수라는 것을 모를 테니…….
* * *
수빈은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꼭 일마 이현수가 방해할 것만 같았다.
"그때, 너무 성급했어."
수빈은 현수에게 타협을 제안하던 날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만나 그들에게 친 방호벽을 거두어 달라고 이야기해야겠어. 아무래도 현수를 모니터링 하지 못하면 불안해."
수빈은 BS 그룹의 회장인 아버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수빈은 사무실에서 나오다 형욱과 마주쳤다. 형욱은 수빈과 저녁이라도 함께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려고 했지만 수빈은 아버지를 만나야 된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수빈은 차를 몰고 아버지가 계신 농원으로 향했다. 수빈의 아버지인 정만재 BS 그룹의 회장은 그룹의 일에서 거의 손을 놓은 상태였다. 자신의 아들, 딸이 일을 잘해 주고 있었고 무엇보다 전문 경영인들이 그룹을 잘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은 할 일이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시골에 조그만 땅을 구입해서 자연과 벗 삼아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
수빈은 별장에 들어서서 아버지를 불렀다.
"이게 누구냐, 나의 사랑하는 딸 수빈이 아니냐? 연락도 없이 웬일이냐?"
반갑게 맞이해 주는 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주는 든든함 같은 것이었다.
"그냥,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요."
"허허! 말만 한 처녀가 어리광은… 누가 우리 딸을 데리고 갈꼬, 허허허!"
"아버지는, 전 아버지랑 같이 살 거예요."
그런 수빈이 싫지는 않은지 정 회장은 수빈을 보며 웃었다.
"허허, 그래. 이 애비와 살자. 그런데 말이야, 사위랑 같이 살았으면 더 좋겠구나."
마음이 편해진 수빈은 아버지를 만나러 온 목적도 잊어버렸다. 그냥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아버지의 말벗이 되어 하루를 보냈다.
"무엇 때문에 온 것이냐?"
날이 밝자 정회장이 수빈에게 물었다. 자존심이 강한 수빈이 이유 없이 왔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수빈은 현수를 비롯해서 다른 모니터링이 불가한 사람들의 방호벽을 철회하고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빈아, 장사는 말이다. 신용이 중요한 것이란다. 내가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신용을 저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또한 함부로 일을 벌여서도 아니 된다."
정회장은 이미 수빈이 다른 유저들을 만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전문 경영인과 자식들에게 기업을 맡겼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했다. 특히나 수빈은 강가에 내놓은 자식처럼 여겨져, 그런 수빈을 늘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아버지, 하지만……!"
"그냥 순리대로 흘러가게 놓아두면 된다. 억지로 그 흐름을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더 힘들게 될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
"……!"
수빈은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만약에 내가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누군가가 방해되어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을 쫓아 달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럼 쫓아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그 일을 핑계로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수빈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자신이 다른 유저들을 만난 것을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을 주의하란 말처럼 들렸다.
"일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가겠냐. 살다 보면 이런 경우 저런 경우를 다 당할 수 있단다. 그러면서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지."
"네! 명심하겠어요."
"수빈이는 현수라는 친구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수빈이 너만 좋다면 그 친구를 너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구나."
수빈은 아버지가 자신을 놀린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왜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마음에 드세요? 아버지도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잖아요?"
"그렇지, 한 번 만났지. 그 첫인상의 강렬함을 잊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조금 알아보기도 했고. 어떠냐? 관심 있으면 애비한테 말하거라. 이 애비가 소개해 줄 테니 말이야."
"아이참, 아버지도! 그럼, 현수라는 사람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아세요?"
사는 곳을 알면 찾아갈 생각이었다.
"몰라."
"알면서."
"몰라. 하지만 알아봐 줄 수도 있지. 그 친구와 계약할 때 모종의 연락망을 만들어 놓았으니."
결국 수빈은 아버지를 만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마 자신이 유저들을 만난 것에 대한 모종의 조치를 취해 놓았을 것이다. 결국 이번 일로 자신의 점수가 깎이는 결과만 낳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수빈의 마음은 편해졌다.
다시 돌아가면 전전긍긍할지라도 지금은 마음이 편했다. 수빈은 형욱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식사하자고 전했다.
* * *
현수는 수빈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빠르게 인문 18관을 익혔다. 아니, 복습해 나갔다. 6관의 혈도를 배우는 과정을 제외하고는 현수의 발목을 잡는 관문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수는 12관부터 초상화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용천비가의 가주들이나 인재들이 자신의 성취를 표시하기 위해 놓고 간 것이라 생각했다.
15관에 들었을 때 젊은 시절의 령의 초상화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야, 젊었을 때는 한 인물 했네. 령도!"
15관의 관문부터는 검법을 수련하는 곳이었다. 현수가 용천비가의 비전을 알고 있다면 수련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지 모르지만 현수의 무공은 이미 용천비가의 무공을 뛰어넘고 있었다.
16관, 17관을 통과하고 마지만 18관에 들어섰을 때 현수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아가씨!"
구미호의 초상화가 18관에 그려져 있었다. 한 장의 서찰과 함께…….
현수는 천천히 구미호의 초상화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현수는 구미호의 초상화를 보자 구미호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을 쫓는 무림인들을 피해 동영으로 갔다는…….
아마 현수는 이 용천비가를 세운 사람이 아가씨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가씨!"
하지만 초상화는 말이 없었다. 현수는 놓인 서찰을 뜯어 읽었다. 자신이 비록 용천비가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18관에 들어왔으니 읽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또 정인이 후대를 생각해서 남긴 편지였다. 가능하다면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편지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인문 18관을 모두 통과한 사람은 세가의 위험이 있을 때, 바다를 건너 중원의 백마사에 와서 자신의 후인을 찾으란 말만 남겨 놓았다.
현수의 눈에서 눈물이 맺혔다. 이제는 백마사로 찾아가도 그립고 보고 싶은 아가씨를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를 슬프게 했다.
"꼭 찾을 거예요, 꼭……."
현수는 인문 18관에서 구미호가 그린 초상화를 얻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현수는 18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냥 나가기는 아쉬웠기 때문이다.
"아가씨, 이제 저 갈게요. 두고 보세요, 계획에는 없었지만 이벤트를 통해 아가씨의 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을 죽일 거예요. 그래도 그들은 손해가 없을 것이니… 그것만은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정빈은 제 손에 죽었어요. 대학사와 1황자 역시 제 손에 죽을 거예요. 그러니 아가씨는 걱정 마세요."
현수는 혼자 중얼거리고는 초상화를 품속에 넣고 인문 18관을 빠져나왔다.
현수가 나온 곳은 다름 아닌 미유가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곳은 사람의 온기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휴! 령에게 뭐라고 말하지. 일단 중원으로 간다. 그리고 이벤트를 멋지게 진행시킨다."
현수의 레벨이 113이었다. 현수는 중원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하오밀문의 문주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자신이 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사혈천를 막기 위해 참가한 문파들을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현수 역시 모두가 참석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최소한 방각이나 혁무기는 이벤트에서 빠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수가 배를 타고 중원에 도착했을 때 하오밀문의 문주로부터 전서구를 받을 수 있었다.
전서구를 확인한 현수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생겼다. 만약 방각이나 역발산이 곁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도망갔을 것이다.
"두려워해라. 나 이현수가 돌아왔다."
현수는 항구에서 벗어나 먼저 사사혈천을 막기 위해 모인 사파연합인 사도련의 세력을 찾아갔다.
왕귀파의 수장인 왕귀는 호면객의 방문을 받았다. 왕귀는 사사혈천을 막기 위해 사도련의 회의에 참석하고 자신의 문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누구냐?"
한 문파의 수장답게 현수를 찾아내는 왕귀였다. 아니 현수가 일부로 그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호면객?"
상대를 확인한 왕귀는 입이 귀에 걸렸다. 현상금 5만 냥짜리가 찾아왔으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가씨에게 검을 든 자는 모조리 죽는다."
왕귀는 뜻 모를 호면객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흥! 네놈을 잡아 관에 넘기면 팔자를 고친단 말이지. 잡아라!"
자신을 호위하는 4명의 문파원들에게 명령한 뒤 자신 역시 검을 빼 들고 호면객을 압박하려 했다.
"환영사사연혼술!"
왕귀는 순간 거대한 뱀이 자신을 삼키려고 달려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헉!"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수는 그 틈을 타 왕귀에게 공격해 들어갔다.
"뇌전류!"
"커억!"
환영으로 인해 현수가 공격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 왕귀는 위험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도 피하지 못했다.
"호심발도술!"
"크아악!"
왕귀는 현수의 공격에 손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크크! 기억해라. 아가씨에게 검을 든 자들은 모두 이처럼 될 것이다. 나 호면객의 손에……."
현수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왕귀를 호위하던 4명의 무사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비록 자기네 문파의 문주는 랭커 150위 안에는 못 들어가더라고 천에서는 상당히 강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문파를 세울 수 있었고 사람들을 모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호면객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호면객의 살행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호면객이 말하는 아가씨가 누구인지, 또 호면객이 왜 사사혈천의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일을 벌이는지 알 수는 없었다.
* * *
호면객의 일로 수빈은 또 한 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호면객이 왜 유저들을 공격하는 거죠?"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가 사사혈천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사혈천에 유저들이 들어간 것도 호면객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천은, 사사혈천의 광소가 호면객을 앞세워 먼저 주요 인물들을 암살한 뒤, 밀고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형욱은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호면객이 말하는 아가씨는 누굴까요? 혹시 구미호가 아닐까요? 전에 천이 구미호의 레이드가 있었다는 말을 했잖아요."
수빈은 형욱과 다르게 추측해 보았다. 호면객이 사사혈천의 침입으로 그 혼란을 틈타 일을 벌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구미호에게 제자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행적을 모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구미호를 비롯해 사신수, 적룡, 그리고 현수는 모니터링이 불가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천은 현수와 구미호의 관계를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수가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을 익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앞으로 호면객이 계속해서 유저들과 NPC들을 암살하게 되면 유저들은 사사혈천을 막기보다는 호면객을 잡으러 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의 현상금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사사혈천의 이벤트 상품보다 호면객의 현상금이 더 많아지면 유저들의 관심은 사사혈천에서 호면객으로 옮겨 갈 것이다. 그럼 아마 NPC들은 사사혈천의 손에 모두 죽게 될 것이다.
"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데 일마 이현수의 행적은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입니까?"
수빈은 지금 현수를 찾아 부탁하고 싶었다. 제발 이 힘든 상황을 황궁의 난처럼 멋지게 해결해 달라고…….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 님은 서장에서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수아라는 유저와 함께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 역시 함께 서장에서 사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현수 님의 행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천연회의 수아와 이화 그리고 혜련을 통해 가끔 모니터링이 되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현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수빈은 현수가 황궁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천에 접속하기를 원했다.
"안 되겠어요. 제가 천에 접속해서 일마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모니터링 해야겠어요. 천! 나의 아이템 봉인을 풀어 주세요."
이번에는 의외로 순순히 수빈의 요구를 들어주는 천이었다. 그만큼 수빈이 속을 태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접속하시겠습니까?
"아니, 일마와 부딪치면 나를 경계할 것이니 나의 모습을 바꾸어서 접속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왕이면 황궁인의 신분을 만들어 주세요. 그래야 행적이 묘연한 일마 이현수를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천은 대답이 없었다. 불가능할까 싶어 수빈은 천에게 물었다.
"왜? 불가능합니까?"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황궁의 사람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일마 현수에게 명을 내릴 수 있어야 하니 신분도 높아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영취 군주 NPC로 수빈 님의 신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럼 더욱 일마 이현수를 모니터링 하시기에 편할 것입니다. 또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무공! 무공이 필요해요. 무림으로 나가야 일마 이현수를 부추길 수 있을 것 같아요."
-황궁무공의 무공 중 황손들만 익힐 수 있는 제왕경을 극성으로 익힌 것으로 하겠습니다.
"위력은?"
-천에서 몇 안 되는 초일류를 넘을 수 있는 무공입니다.
듣고 있는 형욱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껏 천을 겪어 온 형욱은, 너무도 쉽게 수빈의 요구를 들어주는 천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내일 당장 접속이 가능하겠어요?"
-힘듭니다. 기존의 영취 공주 NPC를 수빈 님으로 바꾸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현실로 일주일 정도 소요됩니다.
"최대한 빨리 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 수빈 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그를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레벨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레벨은 120대가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수빈은 자신의 목적을 다 이루었는지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형욱은 천을 보고 입을 열었다.
"천!"
-말씀 하십시오, 형욱 님.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형욱 님도 겪어서 아시겠지만 수빈 님에게 잘못 보이면 평생 동안 그 잔소리 때문에 고생해야 합니다.
"그건 그렇군요. 공주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무림에 바람이 몰아치겠군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